나
- 여강 최재효
삼신할미는 자궁에 씨앗을 심으면서
터럭 같은 세월을 썰어 주었고
하늘이 원군援軍이라고 착각한 소년은
시간을 물 쓰듯 했다
신명神明은 얼마 전에
엄중한 경고를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물 같은 시간은
토막 난 채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중간 역에서 시간의 포로가 된 소년
뒤늦게 자신이 신기루 같은
찰나의 시간 덩어리였다는 사실을 알고
대성통곡하고 말았다
허공에는 지나간 흑백의 족적足跡들이
비수가 되어
형체 없는 소년의 심장을 노리고 있다
‘태초부터 나는 물, 불, 바람, 흙
그리고 보이지 않는 티끌보다 작은
허무한 시간이었어요’
- 창작일 : 2011.12.20. 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