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偶
- 여강 최재효
여름 귀뚜라미 경계境界에서 노래하고
나는 경지境地 저 멀리 있는데
반쯤 남은 시간에 하루가 찰라라
바쁜 발걸음 벌써 천근 이네
개구리 소리 뜰 앞에 가득하고
비바람에 백일홍 시든 꽃잎 소복이 쌓였네
눈먼 사내는 앞만 보고 걷다가 얼핏
뒤돌아보니 동녘으로 길게 드리운 그림자
몹시 지친 듯 휘청거리네
차라리 천년 고목으로 있었다면
만세반석으로 나왔다면 좋았을 것을
바람 불면 뭉턱 반쯤 깎여나가고
비 오면 반쯤 허물어져
내 어찌하여 사람 형상으로 이 자리에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네
촉견蜀犬이라면 동정이라도 얻으련만
속 없는 사람들 청죽靑竹이라 하니
감히 소임을 버릴 수 없어 풍우를 맞네
한 세월 허무하게 지나면 누가 있어
하찮은 나를 기억해 줄까
- 창작일 : 2011.8.17. 21:00
[주] 1. 偶 – 짝 우, 허수아비 우
2. 蜀犬 – 옛날 중국 나라는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 개들이
해를 보지 못해 어쩌다 해를 보면 짖는다고 한다.
(촉견폐월 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