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2)
- 여강 최재효
“철민씨, 급히 상의하겠다는 게 뭐예요?”
“자기야, 우리 멀리 도망가서 살자. 북유럽의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혹은 남아메리카의 브라질이나 베네수엘라 같은 곳으로 가서말야.”
한바탕 폭풍우가 친 객실은 박철민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지연은 보드라운 시트에 누워 박철민이 동그랗게 말아 뿜어내는 하얀
연기과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방금 일전을 치룬 결과에 대하여 속으로
나름대로 음미하고 있었다.
‘역시 승호씨가 이 사람보다 한 수 위야. 어쩌면 남자들은 가슴에 불덩
이를 안고 살아가는 여인의 마음을 그리도 몰라주는 거지? 이제 남편
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니 앞으로 어쩌누? 이 사람 말대로 모든 거 여기
내버려 두고 훨훨 날아가 볼까?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말이야. 그거
꽤 재미있을 거 같은데......’
지연은 영상처럼 흘러가버린 두 사내들과의 외설적인 장면들을 다시
떠 올렸다. 방금 용암을 토해냈지만 다시 심해에서 화산이 터지려고
부글거리고 있었다.
“지연이, 뭘 그렇게 생각해?”
“응?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지연은 도둑질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당신은 정말로 멋진 여자야. 지금까지 내가 겪어 본 여자 중에 최고의
여자라고.”
철민은 지연의 미끈한 둔부와 허벅지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서울에서 여성편력에 두 번째 가라하면 서러워 할 남자였다. 지금의 아내도 상당한 미 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지난해 교통사고로 여성으로서의 제 기능을 상당부분 상실하여 박철민은 욕구불만이 목까지 차 있었다.
“피이~~”
“우리, 이 지구를 떠날 수 없으니까. 한국에서 가장 먼 나라로 가서 한 일 년
만 살다 오자. 응?”
“철민씨, 그럴 용기 있어요? 당장 마누라가 뒤쫓아 올 텐데요?”
말이 사라질까? 염병할 그 놈의 마누라 쟁이. 빨리 죽지도 않아. 무당에게 찾아 가 마누라 빨리 죽게 해달라고 궂도 했는데......, 빌어먹을......" “세상에나. 자기 마누라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철민씨 밖에 없을 거예 요.” 지연은 박철민의 볼을 꼬집었다.
“어이구, 그 놈의 마누라, 마누라. 이 세상에서 언제 그 지긋지긋한 마누라라는
“모르는 소리. 서울에만 자기 마누라가 교통사고나 예기치 못한 사고
혹은 병으로 빨리 죽기를 바라는 남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지난
해 어떤 여론조사 기관에서 현재의 마누라에게 만족하고 사는 남자가
서울에는 이십 퍼센트도 안 된데. 아마도 여자들도 마찬가지일걸?”
“어머나? 그게 정말이에요?”
“왜 어디 찔리는데 있어?” 박철민은 지연의 조각 같은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
았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탐나는 여자였다.
웬만한 여자는 몇 번만 봐도 금방 싫증이 나거나 지루한데 지연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비록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아내와
의무방어전을 치룰 때에도 박철민은 지연이의 풍만하고 눈부신 육신을
상상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아냐, 더 낮을 거야. 십 퍼센트? 아니 오 퍼센트는
될 거야. 거기에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남자들까지 합치면 이 삼 퍼센트
밖에 안 될 거야. 이제는 결혼이라는 게 점점 변질돼 가고 있어. 지고지순
한 청춘남녀가 가정을 꾸미고 아이를 낳고 남편 뒷바라지하는 그런 현모
양처를 바라던 사회가 아니야.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권리가 있어. 남자들이 경제활동을 하면 여자
들도 할 수 있는 거고, 남자들이 밖에서 묘령의 여인들을 만나면 아내
들도 미지의 남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대야. 경진이 계집애 같은 경우
남편이 버젓이 있어도 애인이 열 명이 넘잖아.
난 겨우 다섯 밖에 안 되지만. 능력이야. 지금은 남자나 여자나 무한
경쟁 사회라고 남자의 바짓가랑이나 붙잡고 남자의 처분만 바라며 눈물
짓는 그런 멍청한 여인들은 이제 설 자리가 없는 냉정한 사회라고.
인생은 한번 뿐이야.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한 남자의 그림자에 가려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아까운 인생을 무의미하게 허비할 수 없는 거야. 그러나 대다수의 멍청한
년들은 남편이 물어다주는 밥만 처먹고 돼지같이 살만 뒤룩뒤룩 쪄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남편들이 일정 부분 빼돌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병신같은 년들......‘
“자기야, 나 정말 마누라가 싫어. 이젠 얼굴만 봐도 속이 울렁거려.”
“철민씨, 그럼 안돼요. 아이들 엄마잖아요. 한때 죽자 사자 좋아해서 결혼
했을 거고요. 죄받아요. 그러면.”
“빌어먹을, 언제까지 이 지옥 같은 생활을 해야 하나.”
“나 역시 애 아빠하고 살고 싶어 사는 줄 아세요? 아이들 때문에 마지못
해 살고 있어요. 그건 철민씨가 잘 알잖아요.”
참하고 잘 생겼던데?” 철민은 한 달 전 지연이 운영하는 카페에 갔다가 지훈을 만났다. 친하게 지 내는 교수들과 아내 지연이 운영하는 카페에 들렸다가 철민과 마주쳤었다.
“먼저 자기네 카페에 갔을 때 인사시켜준 남자가 자기 남편이라며?
“그런데, 철민씨. 아내랑 정말로 이혼하려고 하는 거예요?”
“이혼이 마음만 먹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이혼을 하려고 하니까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더군.”
이내로 해야 해요. 오년, 십년, 이십년 넘어가면 힘들어져요. 아이들이 커가 니까 아이들 눈치를 봐야하고, 자신의 노후에 대하여 깊이 고민도 해야 하니 까요.” 지연은 박철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아셨군요. 이혼하려면 아이가 태어나기 전 이나 최소 결혼하고 오년
‘그놈의 마누라쟁이를 어떻게 해야 위자료 한 푼 안 주고 쫒아낼 수
있지?’ 박철민은 자수성가한 사내였다. 명문대학 졸업 후 K건설에 입
사하여 주로 해외에서 근무를 해왔다. 건설 붐을 타고 사세(社勢)가
비대해지자 현장에서 노하우를 익힌 박철민은 퇴사와 동시에 소규모
건설회사를 설립하였다.
박철민의 창업은 시기적절한 선택이어서 회사설립 5년도 안 돼서
주식상장회사로 급성장하였다. 박철민은 사세가 급신장하면서 자신
감을 얻게 되었다. 문어발식 운영으로 건설업계에서도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IMF 때 박철민의 회사는 부도를 맞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 앉게 될 박철민은 재력가인 장인의 지원으로
간신히 기사회생하면서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부부간의 문제는
이때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박철민의 아내는 남편의 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남편과 갈등이
점점 커져갔다. 여자는 늘 집에서 가사나 돌보고 아이들 교육에만 전념
하면서 남자의 뒷바라지에 전념해야 하는 여인상이 박철민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물론 박철민의 아내는 부도직전까지 갔던 남편의 회사 운영 방식에
대하여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박철민이 사업차 집을 비우거나 해외
출장을 가면 반드시 동행을 요구하였다.
처음에는 한두 번 재미삼아 아내를 동행하였지만 횟수가 잦아지면서
박철민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처가(恐妻家)니, 아내의 손아귀에서 벗
어나지 못한다 거니 하는 불쾌한 소문이 나돌았다. 박철민이 아내에게
더 이상의 동행은 사업상 바람직하지 않다며 동행을 거부하자 박철민
의 아내와 갈등이 증폭되기에 이르렀다.
“철민씨, 결혼하면서 이룩한 부는 이혼 시에 뒷바라지 해준 아내에게
일정 부분 위자료로 지급해야하는 거 잘 아시잖아요? 철민씬 이혼하려
면 현재 재산의 반은 위자료로 주어야 할 거에요. 재산의 반을 아내에게
줄 수 있어요?”
“그게 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염병할. 내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재산을
해외나 아내가 전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빼돌렸어야 하는 건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잖아요?”
“아냐, 아내가 얼마나 영악한지 이미 내 뒷조사를 다 해놓고서 내가 재산
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손금 보듯 하고 있어.”
“그럼, 이혼은 꿈도 꾸지 말아야겠어요.”
“그래서, 자기를 오라고 한 거야. 뭐 좋은 방법 없나 해서 말이야.”
철민은 리드미컬하게 지연의 둔부를 문질러 댔다. 박철민은 아래에서 다시 강한 신호가 전달되는 것을 느끼고 지연의 도툼한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글쎄요. 무슨 좋은 수가 있을까?”
“자기가 곰곰이 생각해서 무슨 묘안을 생각해봐.”
“술집 마담이 무슨 아이디어가 있겠어요? 철민씨는 서울서도 난다 긴다
하는 사내인데 나보다 더 잘 알거 아니에요? 이럴 때 머리 좋은 친구들
에게 자문 좀 구해 보세요. 변호사도 있고 세무사도 있고 판. 검사도 있잖
아요.”
적인 강도들이야. 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만약 내 회사가 잘 못되었 다면 굶주린 이리떼처럼 달려들 거야. 명분이야 나를 도와준다고 그럴
“그놈들을 믿느니 차라리 길거리 강아지를 믿지. 그놈들은 모두 합법
듯하게 내세우겠지.”
“친구들을 못 믿으면 어떻게 해요?” 박철민은 IMF 때 친구들의 속마
음을 보았다. 초등학교 동창부터 대학동창까지 순식간에 하이에나로
돌변하여 자신을 벼랑으로 몰았던 친구들을 분명히 보았다.
“철민씨, 이제 들어가 봐야 해요. 오늘 너무 많은 시간을 비웠어요.”
“하여튼 나는 지연이하고 이렇게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만족
하고 있으니까 어디 다른 데 갈 생각하지 말라고.”
“어머나? 내가 가긴 어딜 가요? 철민씨가 곁에 있는데.” 지연은 다시
용암을 분출하기 시작했고 철민은 사우나를 한 것 처럼 땀으로 번들거
렸다.
박철민의 여자 다루는 방법은 독특했다. 누구든지 자신과 함께 은밀한 시 간을 보내면 시간당 백만 원을 주었다. 돈을 받는 여인은 자신이 마치 창녀 같다는 생각이 들어 화를 내지만 이내 박철민의 방법에 동의하고 만다. 박철민은 그 상대가 재벌가 여인이 라고 하여도 그리할 사내였다. 여인에게 굴욕감과 동시에 남자에 대한 의존심을 조성하기 위한 박철민의 고단수 술수였다. 어떤 날은 술에 취해 집에 와서도 아내와
“자, 이건 지연이가 오늘 나와 시간을 같이 보낸 대가야.”
관계 후 돈을 주었다가 냉전을 치룬 적도 있었다.
“나 이번 주말 일주일 정도 유럽에 나갔다 올 거예요.”
“무슨 일로요?”
지연은 늦게 귀가한 지훈과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TV를 함께 보고
있을 때는 같이 웃고 이야기 하다가도 잠 잘 시간이면 각자 다른 방으로 향
했다. 제3자가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부였다.
지연은 냉담하게 대답하면서 낮에 정사를 나눈 승호와 철민을 생각하였다.
“대학 교수가 세미나 참석이나 연구 목적으로 가는 일 밖에 더 있어요?”
“알았어요. 잘 다녀오세요.”
‘흥, 당신 없어도 나는 신경 안 써요. 나에게는 내 욕망을 해소시켜 줄
사내들이 얼마든지 있다고요. 당신처럼 문약한 사람은 질색이라고요.
일주일 아니라 한 달도 좋고 일 년도 좋아요. 가능하면 더 있다 오세요.’
지연은 코냑을 언더락스 잔에 8부쯤 채워 거실로 가져왔다. 양심에
가책을 받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한잔 술로 스스로를 달래고 싶었다.
술에 별로 취미가 없는 지훈은 아내가 가져온 술잔을 들었다.
“여보, 내가 늘 귀가가 늦어서 미안하오. 미래에 우리 부부와 우리
아이들의 윤택한 장래를 위하여 그리 하는 것이니 당신이 이해해 주기
바래요.”
“알았어요. 집 걱정은 마시고 당신 일에 전념하세요. 아이들은 다행
히 당신을 닮아 다른 길로 새지 않고 공부 잘 하고 있으니까요.”
“날 닮았다기 보다 당신을 닮아 아이들이 성실하겠지요?”
‘날 닮았다고? 이 남자가 비아냥거리나?’
“교수님에게 그런 말 들으니 기분이 나쁘진 않은데요?”
오랜만에 지훈과 지연은 잔을 부딪쳤다. 지연은 가슴속에 앙금이 가득한
상태였다.
을 할애 할 테니 봐주구려.” 발표다 하루 이십오 시간도 부족할 텐데요?” 지연의 말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지연이 처음부터 지훈에게 사내다운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 니었다.
“그동안 당신에게 신경 많이 쓰지 못해 미안하오. 앞으로는 당신에게 시간
“대한민국 교수님들이 무슨 시간이 많겠어요? 연구다 세미나다 논문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살다가 우연히 다른 남자의 품을 알게 되면서
부터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욕망의 늪에 빠져들게 되었다. 본래 남의
떡이 맛있어 보이고 커 보이는 법이지만,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살던
여자의 입장에서 우연찮게 먹어본 남의 떡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런 떡 맛은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한번 맛 들리면 좀처럼 그 맛
을 잊지 못하는 게 보통 여인들의 속성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두 사람은 코냑을 한 잔씩 더 마시고 오랜 만에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잠자리는 지훈의 일방적인 요구였다.
지훈의 스타일은 늘 밋밋하고 고정된 것이어서 지연은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지연이 침대 맡에 거의 도색 잡지나 다름없는 외국 잡지
를 준비해 놓아도 지훈은 한 번도 그 책을 펼쳐보거나 지연과 이야기
를 나눈 적이 없었다.
지연은 오히려 남편이 자신을 바람기 많은 여자 혹은 색에 굶주린
여자로 인식할까봐 말을 못하고 있었다. 홀로 자는 밤 외국의 홈비디
오를 보며 그림속의 떡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곤 했다.
“여보, 나 피곤해요. 낮에 가게에서 일 좀 하고 저녁에 손님들이 많아
서 무척 힘들었어요. 그냥 잠만 자요. 그리고 나 지금 그거 하는 중이
에요.”
지연이 나이트가운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눕자마자 등을 돌렸다. 그냥 좋은 게 좋다고 지내려고 하니까 나를 정말로 무시하는군. 안되겠어.’ 지훈은 돌아누운 지연의 나이트가운을 위로 훌렁 걷어 올려
“아니, 여보. 오랜만인데......”
“부탁이에요. 나 정말로 피곤해요.”
‘아니, 이 여자가 남편 알기를 개떡으로 아나? 내 아무리 말 안하고
버렸다.
“당신, 뭐하는 거예요? 왜 이래요 정말?”
지연이 앙칼진 목소리로 지훈에게 덤벼 들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지훈을 잡아
먹을 기세였다. 지훈은 잠시 멍청한 상태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있는 당신의 남편이라고.” 평소에는 순한 양 같은 지훈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거나 참을 수 없는 모욕 감을 느낄 때 욱하는 성질이 있었다. 방금 마신 코냑이 오르는지 지훈은 얼굴 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도 지연이의 하얀 팬티에 시선이 쏠렸다.
‘이 여자가 왜 이래? 남자가 생겼나?’
“난, 난 당신 남편이야. 합법적으로 당신과 섹스를 할 수 있는 권한이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