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素女(1)
- 여강 최재효
30년만의 꿈이 현실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힘
차게 용솟음치면서 굉음을 내고 있다. 약 10분 정도 비행기의 머리 부분
이 15도로 치켜들고 경사를 유지하면서 비행기동체와 승객들은 숨을 죽
인 채 일체가 되었다. 비행기가 안전하게 고도에 접어들었으니 안심하라
는 기장(機長)의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다행히 창밖에 있는 좌석이어
서 마치 신선이나 선녀들이 살 것 같은 꿈속 같은 구름나라가 시야에 들
어왔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그녀의 나라 유력 신문과 방송국 홈페이지를 수천
번도 더 들락거렸다. 30년 전의 인연을 도저히 그냥 한때의 추억으로 묻어
버릴 수 없었다. 하얀 피부와 모나리자의 미소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모습
을 기억의 저편에 묻어버린다면 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직무유기나 다름
없다고 판단했다. 스튜어디스가 천천히 다니며 승객들에게 음료수를 따라
주고 있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알코올만한 것이 없다.
한 달 전 그녀의 나라 유력 신문기자 T로부터 이메일을 받고 나는 두근
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려야 했다. 그레실은
Q시에 있는 대형 병원에서 근무 중이라고 하면서 간신히 찾았으니 만약
자신이 한국에 가거든 크게 한턱 쏴야한다고 T는 너스레를 떨었다. 이전
에도 T는 서울에 서너 번 다녀갔다고 했다. 또한 최근에 그녀의 병원까
지 찾아가서 촬영한 그녀의 최근 모습이 담긴 사진까지 첨부물로 보내
왔다. 그녀의 모습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때 그녀에게서 온 편지와 사진을 보여주면 신
기해하면서도 혹시 막내아들이 국제결혼을 하여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
며느리를 맞는 게 아닌가 하시면서 은근히 걱정하시곤 했었다. 두서너
달마다 배달되는 국제 우편물에 어머니보다 아버지께서 더 좋아하셨다.
영어를 모르시는 아버지는 막내아들에게 그녀에 대한 내용을 꼬치꼬치
여쭤보시곤 했다. 아버지 역시 막연하나마 외국인 며느리를 기대하시는
눈치였다. 칠 남매 중 나는 가족들에게 대학가면 외국어를 전공하여 세
계를 안방 드나들 듯 할 거라고 공표를 해놓은 상태였다.
“손님, 어떤 걸로 드릴까요?”
카트를 앞에서 끌며 스튜어디스 아가씨는 상냥하게 웃으며 나와 시선
을 맞추었다. 배시시 웃는 모습이 큰 딸과 비슷하다. 4-5년 후 큰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큰 딸의 희망이 세계 굴지의 항공사에 입사하는
것이다.
“코냑 한 잔 마실 수 있어요?”
스튜어디스 아가씨는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손님, 먼저 손님들께 음료수를 드리고 난 뒤 갔다 드릴게요. 잠시만 기
다려 주실 수 있죠?”
아가씨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국으로 주는 대로 먹지 뭘 특별한 걸 찾느
냐?‘하는 무언의 항의가 담겨 있었다. 선임인 듯 한 스튜어디스 아가씨가
레미 마텐에 레몬조각을 띄워 한잔 가져왔다.
“고마워요. 좋은 인연이 되길 빌어요.”
“…….”
아가씨는 나의 의미심장한 말 한 마디에 얼굴이 빨개졌다. 나의 인연이란
세상 사람들이 이미 보이지 않는 인연으로 엮여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
뿐이다.
6시간 만에 P국에 도착했다. 4월 말이지만 아스팔트에서 후끈 달아오른
열기로 숨이 턱턱 막혀왔다. 국제공항이라고 하지만 인천공항에 비하면 초
라해 보일 정도로 비좁고 낙후 된 시설물들이 P국의 경제사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미리 국내 여행사를 통해 3일간 묶을 호텔과 일정을 대충 잡아 놓
았다. 여행사의 다른 여행들과 오고 가는 항공편과 숙박 장소만 같고 나머
지는 나 홀로 여행이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현지 가이드에게 나의 사정을 말하자 본국에서 이미
연락을 받았다면서 조심하라고 했다. 우리나라보다 치안이 좋지 않고 특히
한국인들은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이유로 현지 소매치기나 강도들의
가장 손 쉬운 표적이라고 귀띔했다. 호텔에 도착한 뒤 바로 T에게 전화를
걸었다. T는 이미 내가 묶을 호텔을 알고 이미 라운지에 도착해 있다고
했다. 한국에 관심이 많아 기본적인 일상생활 대화는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라운지로 내려갔다. 몇 차례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은 사진에서 금방 T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늘색 와
이셔츠 차림의 T역시 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이 죽마고우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저녁 시간이지만 T와 M시내
한국인 식당을 찾았다. 이미 상당히 많은 동포들로 식당은 북적였다. 준
비해 간팩 소주를 내놓으면 소주 자랑에 침을 튀겼다.
“자, 건배!”
T는 일방적인 나의 건배 제안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자신의 나라를 찾아
온 나를 극진히 대접하려고 무척 애쓰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식당에
오면서부터 그레실에 대한 소식을 기대했었지만 T는 아무 말도 하지 않
았다. 소주 서너 팩이 비워지자 T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미스터T, 그레실은 어찌 된 거에요? 그녀와 함께 나올 줄 알았는데.”
그녀는 보통 밤 10시가 되어야 퇴근한다면서 퇴근하면 바로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밤 10시면 아직도 3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T는 최근 한국에 연수 간 자국민이나 시집간 여인들이 한국 사람들에
게 매를 맞거나 구타를 당해 죽임을 당한 사건이 종종 발생하여 한국에
대한 국민 정서가 좋지 않다고 했다. 특히 한국인만 노리는 갱단들이
활개를 치고 있으니 되도록 많은 현금을 몸에 지니지 말라고 충고해
주었다.
T의 말을 듣고 그레실 역시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은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주던 나라였다. 그 나라
가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추락하면서 우리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뒤 떨어지지만 자존심만은 굉장해 보였다.
3시간 동안 술만 마실 수 없어 대충 저녁 식사와 소주로 배를 채운 다
음 T에게 시내 관광을 부탁했다. 시내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나는
서울의 어느 번화가쯤이라고 착각하였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쇼핑센터
그리고 나이트클럽 주변은 몽골계통의 혈통을 지닌 사람들로 만원이 었
고 어떤 호객꾼은 나를 보자 한국말, 일본말, 중국말로 좋은 곳이 있으
니 가자며 유혹 하였다. 시장경제의 활황과 성공을 만끽하는 극동 아시
안들이 순박한 이 나라 사람들을 망쳐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시내 야경은 그런대로 볼만 했지만 상품은 모두 서양이나 중국, 일본제
품들 일색이었다. 가까운 공원에 앉아 가방에 있던 소주와 오징어를 꺼
냈다. T는 한국에 갔을 때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 기절하기도 했다면서
웃었다. 공원에는 중국계와 현지인들이 나와 삼삼오오 벤치에 앉아 담소
를 나누는 장면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무척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늘 인
상이 무표정하거나 무거운 한국인들과 무척 대조적이었다.
가져 온 소주 팩이 거의 동이 날 때 쯤 T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레실이
정규 퇴근시간 보다 빨리 병원을 나와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오고 있다
고 했다. T는 그녀를 호텔 라운지로 오라고 했다. 우리는 얼른 오던 길
을 바삐 걸었다. 30년 전 이어진 인연과 만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나면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이
곳에 오기 전 처음 그녀를 만나면 인사부터 나에 대한 소개 그리고 내가
왜 왔는지에 대한 소개말을 영어로 적어 달달 외웠지만 막상 그녀가
나를 만나기 위하여 오고 있다고 하니까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T를 라운지에 먼저 가 있으라고 하고 나는 얼른 객실에 들러 회색 정
장에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한국에서 준비해 간 선물을 챙기고 다시
라운지로 내려갔다. 라운지 저쪽 끝에서 T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대략
40여 미터 쯤 되는 거리였다. 갑자기 양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머릿속
이 혼란스러웠다.
“얘, 그럼, 나는 외국인 시어머니가 되는 거니?”
“우리 동네 외국인 며느리가 들어오겠구나?”
순간 아버지 어머니께서 그레실의 사진과 선물을 보시면서 미소 짓던
일이 생각났다. 30년 전의 빛바랜 추억의 편린들이 일시에 파도처럼 밀
려들었다.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얼마 있다 대구에서 군대 생활 하는
동안에도 나는 늘 그녀의 사진을 지니고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군에
입대하면서 나와 그녀의 인연은 끝이 나는 것 같았다. 대학 졸업하고
취직과 동시에 선을 보러 다녔다. 형수, 누님들, 주변의 친인척들이 나
에게 계속해서 처녀들을 소개했다. 그때마다 나는 선보는 아가씨를 유
심히 쳐다보면서 ‘내 앞에 앉아있는 여인이 그레실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을 했었다.
우연히 나와 사상이 같고 이야기가 통하는 여인과 가정을 꾸리고 살
면서도 나는 그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시간이 갈
수록 그녀에 대한 애틋함이 점점 더해갔다. 만약 그녀의 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무난히 진입했더라면 아마도 그녀가 나를 보기 위하여 서울에 몇
번 다녀갔을 수도 있을 법했다. 그렇다면 분명히 나와 그녀 사이에 예기
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었다.
40여 미터가 십리 되는 것처럼 보였다. 멀리서 보이는 그녀는 노란색
투피스에 연한 녹색 블라우스를 입고 붉은색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생머리에 하얀 얼굴의, 사진에서 늘 보았던
그녀였다. 굉장히 지성적이면서 도회지풍의 여인이었다.
30년 전 그녀의 사진을 처음 받아들고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몇날
며칠 상상의 나래를 펴가며 향학열을 높였다. 먼 훗날 내가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무역학이나
영문학을 전공하는 것이었다. 무역학과를 나오면 무역회사에 취직해 세
계 각지를 누비며 기회가 되면 그녀의 나라를 찾아가 그녀를 만나 사랑
을 꽃피우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영어를 잘해 그녀가 사는 나라에 유학을 가거나 그녀의
나라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위하여 그녀의 나라를 방문하면 자연히 그
녀와 가깝게 될 것이라고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내가 그녀에게 거의 다
가갔을 때 그녀와 T는 얼른 일어나 나더니 그녀가 나에게 두서너 발짝
다가왔다. 그녀는 30년 전의 인연을 처음 면전에서 만난다는 감격에 활
짝 웃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며 믿기지 않는 다는 듯 고개를 좌우를 흔들
며 나에게 시선을 맞추느라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오우, 미스터 C, 반가워요. 그레실 터그방이에요.”
그녀는 30년 전 나와 펜팔을 하면서도 자주 한국말에 대하여 인사하는
방법이라든가 한국의 풍습에 대하여 물어오곤 했다. 그때 마다 나는 정
성을 다해 편지를 통해 한국말을 가르쳤고 한국어 회화 책과 한국 풍습
에 관한 많은 책자를 보냈다. 나는 그녀가 하얀 손을 내밀자 그만 콧등
이 찡해 왔다. 눈물이 많은 나는 잘못하면 사내답지 않게 처음 만나는
외국 여인 앞에서 눈물을 보일 뻔 했다.
‘아아, 한국에서 비행기 타면 6시간 밖에 안 걸리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이렇게 예쁜 여인을 두고 내가 그동안 무엇을 찾아
헤맸단 말이냐?’
“아이엠 미스터C, 해피 투 미투 유”
“오우, 우리 그냥 한국말로 해요.”
그녀는 약간 어눌하지만 한국말로 의사소통하는 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어보였다. 그녀의 보드라운 손을 잡고 나는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있
었다. 입 안에서 여러 가지 영어표현들이 뱅뱅 돌았지만 선뜻 내 뱉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자 T가 웃으며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녀와 내가 한 동갑이니 그녀도 중년이어야 했지만 30대 초반의 섹
시한 미시의 모습이 나의 심장 박동을 빠르게 했다. 눈가에 잔주름 하
나 없고 배시시 웃는 가지런한 하얀 치아에서 건강관리를 무척 잘 했
을 거란 짐작이 갔다. 핑크색 립스틱이 엷은 초록과 갈색 생머리에 무
척 잘 어울렸다.
나는 지금 이 현실이 꿈이 아니길 바랐다. 그녀 역시 나를 한참동안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얼굴을 왼쪽
으로 돌리며 조용히 눈가를 닦고 있었다. 순간 나와 T는 숙연해졌다.
나는 얼른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일어났다. 그녀가 조용히 눈물을
찍어 내고 있을 때 나 역시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
다. 화장실에 들어오자 T가 급히 나를 따라오더니 갑자기 나더러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려보내도 좋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원나잇 스탠드같은 방식의 남녀들 애정행각은 크
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오우, 노노. 나는 한국에서 일부러 그녀를 보려고 왔어요. 절대로
이대로 돌려보내면 안 돼요. 그녀를 만나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나는
겁니다. 얼른 가서 내가 금방 올 거라고 하세요. 미스터T, 얼른요.”
"오우케이."
호들갑을 떨며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T의 허둥대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내가 테이블로 다시 돌아갔을 때 까지 그녀는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
다. 내가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자고 제의하자 T는 싱가폴슬링을 주문
했고, 그레실은 카카오피즈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나는 페파민트를
주문하면서 카카오피즈와 페파민트에 보드카를 1/2온스 가미해 달라
고 했다. 얼굴이 약간 상기된 그녀가 다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얼른 그녀에게 오른손을 내밀자 이번에는 씽긋 웃으며 내 손등에 키
스를 했다. 순간 나의 양 볼이 화끈 달아 올랐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