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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몽(終)

* 창작공간/단편 - 상사몽

by 여강 최재효 2008. 8. 2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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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사몽(終)

 

 


                                                                                                                                                                                                - 여강 최재효 

 

 

 

  한번 난 길은 발길이 쉽게 드나들게 마련이었다. 꿈결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낸 덕중

밤마다 귀성군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근신하고 있는 처지의 몸으로 함부로 외간 남자를 끌어 들일 수 없었다. 밤보다 낮에 잠시 만나 다과를 함께 드는 것만으로
덕중은 만족해야 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었다. 불안을 느낀 귀성군은 덕중을
멀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덕중은 그런 귀성군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밤 귀성군이 오기를
바랬다. 하루 이틀 사흘 열흘이 지나도 귀성군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자
초조해진 덕중은 자신의 심정을 적은 간단한 편지를 써서 함께 일하는 나인들에게
주면서 환관 최호와 김중호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두 사람의 서너 번의 은밀한 만남이 결국 무수리들의 입을 통하여 궐내에 소리 소문
없이 퍼져 나갔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 재생산 되어 결국 귀성군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아, 이일을 어쩐다. 내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
상감께서 아시는 날이면 난 죽은 목숨이로다.‘
 귀성군은 고민 끝에 아버지인 임영대군에게 궐내에 떠돌고 있는 자신과 관련한
소문의 자초지종을 고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냐?”
 “네에, 아버님.”


 “어허, 이거 큰일이로다. 형님이 아시면 너와 나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
그 계집과 어느 정도까지 갔느냐?”
 “......”


 “왜 말을 못해? 이 아비가 자세히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게 아니냐?”
 “......”


 “네가, 그 계집을 건드렸느냐?”
 “......”
 “허허, 답답하구나.”


 “아버님, 죄송하옵니다. 이 미련한 자식을 죽여주시옵소서.”
 귀성군은 덕중이 자신에게 보내 온 편지 두통을 아버지인 임영대군에게 내 보였다.


 “아니다. 분명 네 성정으로 보아 그런 위험한 여인을 건드릴 리가 없다. 이제부터
 너는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야 하느니라.”


 “네에, 아버님.”
 잠시 아비와 자식 간에 침묵이 흘렀다.


 “너는 그 계집과 단 한 번의 만남도 없느니라. 그 계집이 너에게 일방적으로 연서를
보내와 네가 잠시 고민하고 있었던 것 밖에는 너에게 아무 일도 없었느니라. 알겠느냐?”


 “네에, 아버님.”
 “물러가 있거라. 내 잠시 생각해 보고 너에게 이야기 하겠다.”

 
 ‘큰일이로다. 형님의 성정으로 보아 저애가 비록 그 계집과 통정한 사실이 없다할지라도 우리 부자(父子)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형님이 준이를 귀여워하시니 말만 잘한다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내일 아침 일찍 형님과 독대를
하여 그 계집이 일방적으로 준이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힌 것으로 말하면 될 것이야.’


 그러나 이미 조정 중신들 귀에 귀성군 이준이 덕중과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소문이 들어가고 말았다. 평소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던 귀성군에게 강한 질투를 느껴오던 중신들과 종친들은 귀성군의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다며 성토하고 나섰다. 결국 수양의 귀에도 소문이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편전에 든 임영대군과 귀성군은 수양 앞에 엎드려 지나간 일의 전말을 고했다.


 “전하, 나인 덕중이 지난번 송중과의 연서 사건으로 근신중임에도 또 다시 음심(淫心)을 억제하지 못하고 귀성군에게 검은 손길을 뻗쳤습니다. 다행히 귀성군이 그녀의 유혹에 응하지 않고 이렇게 전하께 고합니다.”


 임영대군은 덕중이 귀성군 이준에게 전한 연서 두 장을 상감에게 올렸다. 상감이 덕중의 연서를 읽더니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년이 지난번 송중놈과 일이 있으 후 내 은혜를 베풀어 자숙하게 하였더니 또 음심을 들어냈더란 말이냐?”
 “황공하옵니다. 전하.”

 임영대군과 귀성군은 상감이 노발대발하자 벌벌 떨면서 상감의 눈치만 살폈다.


 “귀성군은 듣거라.”
 “네에, 전하.”


 “짐이 생각하건데 너에게는 죄가 없다. 너에게 어떻게 해서 이 편지가 전해졌으며 그 아이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소상히 말해보거라.”


 “전하, 소신이 덕중을 알게 된 것은 전하께서 잠저에 머무실 때 아버님과 자주 전하의 잠저에 오가는 중에 얼굴만 익혔을 뿐 말 한마디 나눠본 적도 없사옵니다. 이 편지는 환관 최호와 김중호가 소신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여봐라, 지금 당장 내시 최호와 김중호를 잡아 들여 형틀을 준비하라.”
 수양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순식간에 마련된 국문 장에 소문을 듣고 대소신료들이 모여들었다.
 

 형틀에 묶인 환관 최호와 김중호는 부들부들 떨었다. 이미 상감의 성정을 잘 알고 있는지라 목숨을 부지 어렵다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했다.


 “네놈들이 이 편지를 귀성군에게 전한 것이 맞느냐?”
 수양이 직접 형틀에 묶인 채 두려움에 떨고 있던 두 내관에게 편지를 보였다.


 “상감마마, 죽여주시옵소서. 덕중 마마와 함께 있는 나인들이 소신들에게 전해준 편지가 맞사옵니다. 소신들은 단지 덕중 마마님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편지인 줄 알고 전달만하였을 뿐이옵니다. 믿어주시옵소서 상감마마.“


 “여봐라, 덕중과 나인들을 잡아 들여라.”
 덕중과 함께 같은 처소에 있으면서 덕중의 편지를 내관들에게 전해 준 두 명의 나인과

덕중이 나졸들에게 잡혀왔다.


 “네년 놈들이 그 계집과 귀성군을 연결하여 준 것이 아니고 단순히 편지만 전해 줬을 뿐이라고 했느냐?”


 “네에, 상감마마. 사실이옵니다. 그냥 개인적인 편지인줄 알고 전해드렸을 뿐이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환관 최호는 부들부들 떨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고하였다.


 “형리들은 들어라. 저 네년 놈들이 끝까지 이실직고를 하지 않는구나. 저 연놈들을 형틀에 묶어 사실을 말할 때까지 매우 쳐라. 그리고 저 계집은 감옥에 가두어라 나중에 짐이 다시 국문하리라.”


 수양은 한때 자신의 여인이었던 덕중의 보들보들한 엉덩이가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피가 튀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까지 출산했던 여인이었기에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딱-.  딱-
 아침 일찍부터 대전 앞에서 매를 치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궐내를 울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귀성군을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의 처신으로 말미암아 엉뚱한 생명들이 목숨을 잃는다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환관 최호와 김중호 그리고 덕중의 처소에 함께 기거했던 궁녀 두 명이 장살(杖殺) 당하고 말았다.


 “전하, 귀성군 이준과 나인 덕중이 어디 한 두번 연서를 주고받았겠습니까. 분명 이전에도 여러 번의 통정이 있었을 것인 즉 엄하게 다스리소서.”


 “그러하옵니다 전하. 이는 국가의 기강과 내명부 및 종친부의 정의를 세우는 일로 그냥 넘어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이 일에 관련된 귀성군 이준과 나인 덕중을 엄벌에 처하소서.”
 “엄벌에 처하소서.”


 육조의 대신들이 대전에 들어 귀성군과 덕중의 죄를 단죄하라고 수양을 압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귀성군을 친 자식처럼 아끼는 수양은 선뜻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경들은 들으오. 이 일은 왕실의 일인즉 짐이 종친들을 불러 의논한 후 처리할 것이니 경들은 더 이상 이일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간신히 들끓는 중신들의 입을 막은 수양은 머리가 아팠다.


 ‘아, 두 사람 다 죽이고 싶지 않도다. 조정대신들의 들끓는 상소를 막기 위해서는 두 사람 중에 한명을 희생시켜야 하는데 누구를 죽여야 한단 말인가?’
 조정 대신들이 물러가자 곧 이어 종친부 사람들이 대전으로 몰려들었다.


 “전하, 귀성군과 나인 덕중은 국가의 기강을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엄하신 어명을 어긴 대역 죄인들입니다. 두 명 모두 죽이시어 내외명부의 기강을 엄히 세우소서.”


 “엄히 세우소서.”
 “엄히 세우소서.” 


 수양은 종친부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귀성군만은 살리고 싶었다. 종친부내에서도 귀성군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만, 그만들 하시오. 짐은 이미 이일과 연관된 환관 두 명과 나이 두 명 등 모두 네 명의 목숨을 거두었소. 더 이상의 피는 보고 싶지 않소이다. 그만하면 기강은 어느 정도 섰다고 보오. 그러니 이쯤에서 덮어두시는 것이 어떠하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절대로 그냥 넘어가시면 또 다시 이 같은 일이 반복 될 것입니다. 나인 덕중은 이미 내관 송중과 연서 사건으로 이미 한 차례 단죄를 받은 적이 있지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을 죽여 국법의 지엄함과 전하의 명을 세우셔야 하옵니다.”
 종친부 원로들은 수양과의 설전에서 절대로 물러설 뜻이 없어보였다.


 “좋습니다. 귀성군은 왕실의 사람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소이다. 대신 나인 덕중은 일벌백계로 처벌할 테이니 그리들 아시오. 더 이상 이일에 대하여 함구하였으면 좋겠소이다."


 아무리 종친부 어른들이라고 하지만 지엄한 상감의 뜻을 반대할 수 없었다. 곧 감옥에 갇혀있던 덕중에게 상감의 조처가 전해졌다.


 “어찌하여 나 혼자만 죄인이 되었더란 말이냐? 내 육신을 얻지 못해 안달하던 남정네들은 죄가 없더란 말이냐. 여인이 사랑받고 싶어서 한 행동이거늘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어 올가미를 씌우는 악법이 세상 천지에 어디에 있단 말이더냐.”


 콰쾅-. 늦가을 밤비가 내리고 있었다. 덕중은 지난 날 자신의 육신을 거쳐 간 뭍사

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해 내고는 그들과의 열락의 밤을 보냈던 순간들을 회상해 보았다.


 ‘길고도 짧은 세월이었어. 나 같은 천출들이 설 곳이 없는 조선 땅에서 이정도면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천한 몸이 소용의 첩지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대단한 출세인가? 남자들의 필요에 따라 한낱 소품에 불과한 조선의 여인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내가 조선이 아닌 명국이나 왜땅에 태어 났더라면 이렇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야. 이놈의 조선, 여자를 인간이 아닌 마치 짐승처럼 대하는 이 빌어먹을 나라에 태어나게 한 부모가 원망스럽구나.


 덕중은 혼자 중얼거리다가 웃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도 하다 깔깔거리며 옥문을 두드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 곧 바로 처형될 처지라 옥문을 지키는 형리들은 못들은 척 했다.


 “염병할. 저런 미색을 죽이다니 아까워 죽겠구먼. 차라리 이 나이 먹도록 장가도 못간 나에게 주면 얼마나 좋을꼬?”
 “임마, 너보다 내가 더 급해. 이러다가 계집 엉덩이 한번 만져보지 못하고 총각귀신이 될까봐 걱정이야.”


 “아따, 행님도. 주막거리 향단이는 어쩌구유? 일 끝나기 무섭게 주막으로 달려가면서.”


 옥문을 감시하는 옥사정들은 천하일색 덕중이 내일 아침이면 처형된다는 말에 무척 아까운 듯 밤새도록 떠들어댔다. 날이 밝았다. 밤새도록 뜬 눈으로 지새운 덕중은 옥사정을 불렀다.


 “이보시오.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오.”
 “부탁?”
 “네에. 부탁 한 가지만 들어주시오.”


 “곧 죽을 텐데, 뭐 그러지. 부탁이 뭔데?”
 “내 목에 채워진 칼을 좀 풀어주시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올려야겠소.”


 “흠, 효녀구만.”
 형리들이 덕중의 청을 들어주었다.


 “아버지, 어머니. 소녀 먼저 가옵니다. 오래오래 살아서 불쌍하신 두 분을 호강
시켜드리려 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소녀가 먼저 가옵니다. 부디 만수무강하

소서.”


 동대문 밖에서 어렵게 살고 있을 아비와 어미를 생각하니 덕중은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남동생들이 누나하고 부르며 밖에서 손을 흔드는 환영이 보이기도 했다.


 “아, 불쌍한 녀석들......”


 덕중이 부모형제가 있는 방향으로 절을 올리고 흐느껴 울고 있을 때 형을 집행하기 위하여 한 무리의 병사들과 군관인 듯 한 사람들이 감옥으로 찾아왔다.


 “죄인을 끌어내라.”
 “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덕중에게도 들렸다.”


 ‘아아, 이제 처형장으로 가야하나보다.’
  비는 그쳤지만 쌀쌀한 늦가을 날씨가 사람들을 움츠리게 했다. 소복만 입은 상태로  덕중은 궁궐 문을 나와 야트막한 산 아래 도착하였다.


 이미 나졸들이 나와 수백 년은 되었을 법한 느티나무에 밧줄을 걸어 길게 늘어트리고 죄인이  도착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죄인, 덕중은 들어라.”
 “......”


 “죄인 덕중은 한 때 상감마마의 총애를 입어 정3품 소용의 첩지를 받은 몸으로 내관 송중과 사통하여 어명으로 첩지를 거두고 방자로 머물게 하여 근신토록 하였으나 또 다시 음욕을 참지못하고 종친에게 두 차례에 걸쳐 연서를 보내는 등 그 죄질이 나빠 교형(絞刑)에 처한다. 지엄한 국법이니 달게 받을지어다.”

 군관이 위엄있는 목소리로 어명을 전하였다. 


 곧 교형을 받아야 할 덕중은 마지막으로 귀성군이 보고 싶었다. 형리들은 덕중이 마지막으로 귀성군이 보고 싶다는 말에 비웃음으로 답했다.


 ‘내 저승가기 전에 어찌하여 상감에게 밀고하였는지 그리고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였는지 알고 싶어.'
 “형을 집행하라.”


 “싫어 죽기 싫단 말이야. 왜 나만 죽어야 하는 거야. 여자를 아무렇게나 방치한 상감이나 나를 가지고 놀던 남정네들은 멀쩡한데 왜 나만 죽어야해. 안 돼. 나는 죽기 싫단 말이야. 내 저승에 가면 결코 나를 배신한 놈들을 그냥두지 않을 거야. 절대로 그냥두지 않을 거야. 밤마다 귀신이 되어 찾아올 거야.”
덕중은 말 위에 앉은 채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누구 한 사람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허, 계집이 말이 많구나. 어서 형을 집행하렷다.”
 “이랴”


 두 손을 뒤로 묶인 채 말 위에 앉혀진 덕중의 목에 올가미가 씌어지더니 순식간에 말이 두 발을 허공에 쳐들고 긴 울음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막 아침 해가 뜨는 순간이었다. 형장에는 다시 한 번 찬바람이 불어 닥쳤다.





 

  

 


                                                                                                           -끝-

 

 

 

 

 

 

 

           _()_ 끝까지 읽어주신 임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본 작품은 조선왕조실록 세조대 기록을 전거로 하여

                 작품으로 구성하여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사랑하여

                 주소서.

 

                                             2008.8.25. 00:55

 

 

 

                        인천 소래포구 뜨란채에서 여강 최재효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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