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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커플(4)

* 창작공간/단편 - e 커플

by 여강 최재효 2008. 7. 1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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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 커플(4)

 


                                                                                                                                                                                                  - 여강 최재효

 

 


 

   아침 겸 점심 식사를 대충 끝내고 연주는 강화 읍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남편 후배에게 나갔다 오겠다는 말도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 스타킹과 흰색 블라우스만 입고 흰색 미니스커트에 검정색 재킷을 걸친 연주는 불안하면서도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을 느꼈다.


 생전처음 속옷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이 속옷을 입지 않은 것을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아 자꾸 뒤를 돌아면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봄바람이 버스 창문을 통하여 들어와 스커트 밑으로 기어들었다. 혹여 누가 볼까봐 핸드백을 무릎에 올려놓고 스커트가 날리지 않도록 하였다. 다행히 오후의 버스 안은 노인 서너 명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간밤에 자신이 술에 취해 잠든 상태에서 장농과 빨래 줄에 널려있던 팬티와 브래지어만 훔쳐간 일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에 음심(淫心)을 품은 남자라면 술에 취한 여자를 범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남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데 도대체 누굴까? 남편이 새벽에 서울서 일부러 내려와 마누라의 팬티와 브래지어만 훔쳐갈리 없을 테고, 그럼 도대체 누구일까?’


 연주는 남편 후배를 의심해 보았지만 착하고 순박한 남자가 자신의 속옷을 훔쳐 갈 파렴치한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아파왔다. 버스가 코너를 돌고나 덜컹 거리면 땅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남편도 아니고 남편 후배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면식도 없는 호동왕자가 새벽에 살

며시 찾아와서 사이버 아내의 팬티와 브래지어만 훔쳐 갔을 리는 더더욱 없을 테고…….’


 당초 강화읍내로 머리도 식힐 겸 쇼핑을 하려고 계획했던 연주는 강화읍내에서 인천행 버스로 갈아 탔다. 오후의 도로는 한가해 보였다. 오랜동안 바닷가에서 속세를 잊고 살던 연주는 도심속에 들어서자 아스팔트의 역한 냄새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여성 속옷전용 코너 아가씨는 한번에 많은 개수의 브래지어와 팬티를 사는 연주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포장해 드릴까요?”
 “아니에요. 그냥 주세요.”


 팬티, 브래지어 각 다섯 세트를 구입한 연주는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대형서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무작정 서점 5층으로 올라갔다. 이런 저런 책을 구경하다 쉼터가 있는 1층으로 내려와 멍하니 의자에 앉았다. 30대 중후반의 두 남녀의 다정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남자가 여자의 허리를 한손으로 감싸고 책을 읽어 주는 것 같았다. 핑크색 립스틱이 좀 야하다 싶은 여자가 환히 웃으며 남자와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연주는 그들이 호동왕자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두 남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관찰하는 도중에 서너 번 연주와 여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 나의 왕자님은 정녕 꿈속에서 조차 볼 수 없단 말인가?’

 연주는 자신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이 젖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두 남녀의 다정스런 모습에 넋을 빼고 있었다. 연주의 시선에 부담을 느낀 여자가 남자를 데리고 서점을 나가 버렸다. 연주는 무의식적으로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바라보았다. 서점 옆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연주는 남녀를 놓칠까싶어 얼른 서점을 나왔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남녀의 뒤를 밟았다. 그들이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가 연주에게는 무척 궁금했다. 남녀는 화장품 점과 편의점을 들리더니 핑크빛 글씨가 선명한 간판이  달린 상점으로 들어갔다. '성인용품'이라고 쓰인 간판이 연주에게 손짓을 했다.


  ‘무엇하러 젊은 남녀가 대낮에 저런 델 들어갈까?’
  연주는 전봇대 옆에 서서 그들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15분 쯤 남녀는 나왔는데 남자의 손에 검정색 비닐 봉투하나가 들려있었다. 연주는 망설이다가 숨 한번 크게 쉬고 도둑고양이처럼 성인용품점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40중반의 여성이 연주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실내는 꽤 넓어보였는데 벽 좌우 상품 전시대에는 생전 처음 보는 기기묘묘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인조 남근(男根)부터 시작해서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여성의 묘한 체위를 형상화한 인형들, 무르익은 여인의 은밀한 인조 옥문(玉門)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성인용품들이 은은한 전등 빛을 받아 형형색색 빛나고 있었다.


 “손님,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있으세요?”
 “아, 네네.”


 “말씀해 주시면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우리 매장은 다른 매장에 비해 다양하고 질 좋은 물건을 다량으로 준비해 놓고 있어 연인들뿐만 아니라 중년의 부부들 또는 초로의 부부들도 많이 찾아오십니다.”


 '부부들이? 부부들이 왜 이런델 올까? 실물을 지니고 있으면서…….'
 여자 주인의 연주의 눈치를 살피더니 어제 들어 온 미국산이라며 요즘 중년 부부들이 많이 찾는 물건이라고 시커먼 딜도(Dildo)를 내밀었다.


  “흑인 청년의 거시기를 본떠 만든 것인데 상당히 부드러워서 혼자 사는 여자나 혼자지내는 기혼여성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답니다. 자, 손님, 한번 만져보세요.” 


 마치 실물의 그것 같았다. 연주는 순간 호동왕자와 남편을 생각했다. 남편의 그것을 떠 올린 연주는 피식 웃었다. 남편의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 그것 같다고 생각했다.


 “온(on)에 스위치를 넣으면 작동이 되고 오프(off)에 넣으면 작동이 멈춰요. 그리고 밑에 있는 스위치를 이렇게 돌리면 반대로 돌아가지요. 그리고 요 다람쥐 혀가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고속으로 자극하기 때문에 웬만한 여성은 이삼분도 안돼 홍콩을 오락가락 한답니다." 
 주인여자는 딜도의 작동 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면서 연주에게 열을 올렸다.


 “저어, 방금 나간 남녀는 무엇을 사갔나요?”
 “…….”


 “사장님, 방금 이 가게에서 나간 남녀가 산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 없나요?”
 “손님께서 그분들을 아세요?”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남자가 해외에 오랜 기간 나가있을 거라고 하면서 저것을 사서 여자 친구에게 선물했어요. 부부는 아닌 것 같은데…….”
 ‘여자친구?’


 주인여자가 가리킨 것은 방금 전 자신에게 설명해주었던 흑인의 거시기를 본떠 만들었다는 시커먼 딜도였다. 당당하고 무지하게 생긴 놈의 머리는 마치 거북이 머리처럼 생겼다. 연주 남편은 몇년 전 동경에 학술 세미나에 다녀오면서 딜도를 사온 적이 있었다.


 연주는 처음에 그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몰라 오랫동안 장농에 보관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친구들에게서 딜도를 사용한 경험담을 듣고 난 뒤부터 남편이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 서너번 사용해 본 경험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물질이 몸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으나 차차 기계에 노예가 되어 나중에는 남편보다 기계를 더 존경하였었다.



 “저어, 이건 얼마에요?”





 “네에 이십 만원인데 할인기간이라 십오 만에 드려요. 이왕 오셨으니 하나 장만하세요. 요즘 우리나라

웬만한 기혼 부부들은 장농 은밀한 곳에 이런 물건 한두 개쯤은 보관하고 있어요. 남편들이 해외 여행갔다


오다가 사오기도 하지요. 우리나라 대도시면 거의 이런 물건 안 파는 데가 없어요. 전에는 혼자 사는 여인들이 주로 사용하였지만 요즘에는 남편들이 사다가 와이프에게 선물을 많이 한답니다. 저도 우리 아저씨가 해외 나가있을 때는 이 물건을 사용하고 있어요.”


 주인 여자는 연주의 눈치를 살펴가면서 분명 연주가 이혼하였거나 무슨 사연으로 혼자 사는 여자일거라고 판단하고 연주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좀 비싼 거 같은데…….”
 연주는 가게에 들어 올 때만 해도 성인용품을 사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단지 남녀가 산 것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남녀가 딜도를 샀다고 하니까 연주도 은근히 호기심이 발동했다.


연주는 지갑을 만지작 거리면서 방금전 두 남녀의 행위를 상상해 보았다. 갑자기 연주 아랫부분에서 미열(微熱)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럼, 두개가 동시에?'

 연주는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저어 손님, 잘해드릴게요. 하나 장만하세요. 서비스로 젤리도 하나 드릴게요. 사용하실 때 딜도에 바르면 아주 부드럽게 사용하실 수가 있답니다.”

  “이, 이걸로 하나 주세요.”

 연주는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말을 더듬으며 간신히 주인 여자의 시선을 피했다.


 ‘아, 이게 아닌데. 내가 왜 이런 요상한 물건을 사야하지?  나에게 남편도 있고 호동왕자도 있는데…….’
 얼떨결에 딜도를 구입한 연주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누가 볼까봐 고개를 푹 숙이고 성인용품점을 나왔다.


 남녀가 사라졌을 골목 안으로 좀 더 들어가 보았다. 주점과 음식점이 즐비하고 좀 더 들어가자 도로 좌우로 모텔들이 빽빽했다. 가림 막을 길게 늘어트린 모텔마다 주차장에 주차된 손님들의 승용차 번호판이 가려져 있었다. 


 ‘낮에 어떤 사람들이 이런데 에 오는 걸까? 참으로 희한한 일이야.’
 연주는 순간적으로 호동왕자를 생각했다. 그러나 저승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호동왕자가 야속했다. 갑자기 목이 마르고 허기를 느꼈다. 어젯밤에 마신 술이 아직도 덜 깬 탓에 목이 깔깔했다. 마침 눈앞에 방금 문을 연 호프집이 보였다.


 ‘저기서 호프 한잔하며 목 좀 축이자.’

  오랜만에 마시는 생맥주의 쌉쌀하고 시원한 호프가 뱃속으로 넘어갈 때 연주는 행복감을 맛보았다. 젊은이 취향으로 꾸며진 홀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모키의 ‘리빙 낵스트 도어 투 앨리스’의 가사만 열정적으로 홀 안을 흘러 다녔다.


 ‘혹시, 예전에 나도 모르게 어떤 남자가 나를 짝사랑 했었던 적이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편 이외에 그 누구를 짝사랑 하거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지. 그런데 갑자기 호동왕자님이 혜성처럼 나타나서 나를 처녀시절로 돌아가게 했어. 참으로 고마운 왕자님. 그러나 살아서는 볼 수 없으니 내가 허깨비를 사랑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호동왕자는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면서 현미경으로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어젯밤 누가 내 속옷을 몽땅 훔쳐 갔을까? 아, 머리아파.’


 테이블 위에 1000cc 빈 잔이 두 개나 올려져있었다. 땅거미가 내리고 주변의 보안등이 오렌지 불빛을 햇살처럼 쏟아냈다. 다시 1000cc 호프 한잔을 주문했다. 남자 종업원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연주를 살피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니고 안 취한 것도 아닌 상태였다.


 대학생 차림의 손님들이 홀 안으로 몰려들었다. 홀 안이 갑자기 시끌시끌했다. 젊음이 부러웠다. 자신도 대학생 시절이 있었지만 공부만 하는 얌전이 였다. 이제 후회 해 보아야 쓸데없는 짓이지만 연주는 가능하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젊음을 만끽해 보고 싶었다.


  홀 안은 랩송과 담배연기로 가득했다. 1000cc 호프 두잔이 한 번 더 배달되고 나서 연주는 주점에서 나왔다. 다리가 약간 후둘 거렸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까보다 더욱 더 휘황찬란한 불빛을 모텔간판들이 쏟아내고 있었고 초저녁부터 차량들이 남의 눈치를 봐가며 모텔로 사라졌다.


 연주가 골목 중반 쯤 빠져 나왔을 때 샹그릴라 라는 모텔에서 눈에 익은 커플이 막 나오고 있었다. 서점에서 시선을 주고받던 그 커플이었다. 여자가 연주를 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여자는 매우 피곤해 보였고 남자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여자 엉덩이를 주물러 대며 히죽거렸다.


 ‘저, 저럴 수가? 분명 부부가 아니라고 했는데. 대낮에 이런 델 들락거리다니 그렇다면 여자가 아까 그 물건을 사용했겠군? 흥, 정말로 좋은 세상이야. 나 같은 여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아직도 소녀 같은 가슴과 불같은 열정을 지니고 있는데,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용도폐기 된 차란 말인가? 남편의 손에 의해 강제로 폐차된 몹쓸 물건이란 말인가? 아냐. 아닐 거야. 난 아직 싱싱해. 애도 낳을 수 있고, 얼마든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여자라고. 아냐, 남편이 나를 벌써 폐기한 건 아닐 거야.’


 연주는 방금전 그 커플들이 모텔에서 벌였을 행위예술을 상상하며 혼자 히죽히죽 웃기도 하고 슬픈 얼굴 표정을 짓기도 했다.


 도심 골목길의 음습한 기운이 연주의 전신을 감쌌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 나온 이후로 지금까지 노팬티에 노브래지어 상태였다. 갑자기 연주는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언젠가 읽었던 삼류소설이 생각났다. 바람기 많은 기혼녀인 여주인공은 외출할 때마다 가죽으로 된 미니스커트에 노팬티 차림이었다. 그녀는 지하도나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 갈 때 일부러 젊은 남자들 앞에서 걷거나 서있는 것에서 일종의 쾌감을 얻곤 했다.                                

 


 골목을 빠져 나오자 지하도가 나타났다. 강화도 가는 시외버스를 타기 위하여 지하도를 건너야 했다. 지하도 계단을 내려 갈 때는 지나가는 행인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대낮보다 밝은 50여 개나 되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행동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술 취한 연주가 휘청거리며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거리며 계단을 오르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은 연주에게 일제히 시선을 던졌다. 특히 중년의 남자들의 시선이 빛을 발하며 육감적인 연주의 뒤태에 흥분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어떤 나이든 남자는 혀를 차며 속으로 중얼거리기도 했다.


 ‘흥, 나도 할 수 있다고. 나도 얼마든지 삼류소설의 여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이 모습을 남편이나 호동왕자가 본다면 어떤 모습을 할까?’


 연주는 시원한 바람이 살살 스커트 밑을 파고들 때 서늘함을 느끼면서도 수많은 뜨거운 시선들이 자신의 섹시한 엉덩이에 고정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흰색의 팽팽한 미니스커트는 연주의 엉덩이를 강조하며 암내를 물씬 풍겼다. 김장김치를 저장하는 후덕하고 둥근 항아리 같은 연주의 뒤태에 엉큼한 아저씨들은 마른 침을 넘겼고, 어떤 총각들은 휴대폰을 꺼내 조심스럽게 연주의 뒷모습을 찍기도 했다.


 강화행 막차에 몸을 실은 연주는 창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취기를 날리려고 애를 썼지만 이제 막 술이 오르기 시작한 뒤라 쉽게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간신히 버스에서 내리자 선배의 부인이 늦은 밤까지 돌아오지 않자 콘도사장은 걱정이 되어 버스 승강장에 나와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형수가 집에 간 것은 아니겠지?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왜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나갔을까?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선배가 알면 난 혼날 텐데.‘
 밤 열 시 반쯤 막차가 동네 슈퍼마켓 앞에 정차하자 연주의 휘청대는 모습이 보였다.


 “혀, 형수님. 아니, 어딜 다녀오시는 거예요? 말씀도 없으시고…….”
 “사장님, 나, 나 시내 쇼핑 다녀왔어요.”


 “필요한 물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하시지 않고요?”
 ‘바보야, 너에게 어떻게 내 팬티와 브래지어 사달라고 말을 하니?’
 연주는 남편 후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연주가 남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남자는 겸연쩍게 웃었다.


 ‘이 남자가 간밤에 내 속옷을 몽땅 훔쳐간 게 아닐까?’
 “혀, 형수. 제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아, 아니요. 자세히 보니 사장님 얼굴이 보통 잘 생긴 게 아니네요.”
 “네에?”


  “우리 저 슈퍼에서 캔 맥주 하나씩 해요.”
 “형수님,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전혀 안 취했어요. 앞으로 캔 맥주 같은 거 열 개도 더 마실 수 있다구요.”

 연주가 약간 혀 꼬부라진 목소리를 냈다.


 “그 종이백 이리주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아, 그래 주실래요. 삼촌, 거기 수억 원짜리 보물들이 들어 있어서 잘 들어야 해요.”
 “…….”


 “자, 건배하세요. 사장님.”
 “저어. 이제부터 저를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냥 삼촌이나 또는 그냥 후배라고 불러주세요 형수님.”


 “삼촌? 후배? 그것 참 좋은 제안이에요. 삼촌이 맘에 드는데 그럼, 이제부터 삼촌으로 부를게요.”
 “삼촌, 자 건배.”


 “어제 밤. 콘도에 누가 다녀갔어요?”
 “아니요? 왜요 형수님?”


 “참, 초저녁에 대학생 커플 두 쌍이 다녀가긴 했어요. 그런데 하룻밤 방 값이 너무 비싸다고 그냥 가버렸거든요.”
 “그래요?”


 ‘참으로 이상한 일이네. 도대체 어떤 자가 그런 변태행위를 했을까?'
 “저어 삼촌, 혹시 이 동네 변태성욕자나 성범죄 전과자가 살고 있지 않나요?” 

 “네에? 전혀요. 맨 육십 이상 된 노인들 뿐인데요.”
 
 
 연주는 콘도남자와 캔 맥주 두 개씩 마시고 콘도로 향했다. 정신은 인천에 있을 때보다 더 맑았지만 다리가 휘청거렸다. 연주의 종이백을 들고 뒤 따라 오던 콘도남자는 불안했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선배의 여자를 업거나 팔짱을 낄 수도, 부축할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콘도까지 1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데 보안등도 없어 잘못하여 연주가 넘어지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연주가 어느정도 걷다가 토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연주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괜찮대두요. 걱정하지 마세요. 삼촌 곤란하게 해드리지 않을테니……."

 연주가 다시 일어나 걷시 시작했지만 휘청거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유발할 정도였다. 남자는 콘도까지 연주를 엎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형수님, 업히세요. 잘못하다 넘어지시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겠어요. 마침 오가는 동네 사람들도 없으니 어서 제 등에 업히세요. 얼른요.”

 “아니요. 제가 어떻게 삼촌에게 업혀요?”


 몇번의 남자 제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연주는 너럭바위 같은 남자의 등에 업혔다. 남편의 앙상한 등에 비하며 남자의 등은 천년 묵은 거북이의 등처럼 넓고 편했다. 연주의 엉덩이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남자의 손을 타고 심장에 전해지자 남자의 심장 고동소리가 연주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헉-. 남자는 창호지처럼 얇은 스커트에서 전해오는 육감적인 감각에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였다. 남자가 엉덩이를 감싼 두 손을 꽉잡고 연주를 추스리기 위하여 힘껏 등을 올리면서 그만 남자의 손바닥에 연주의 엉덩잇살이 만져졌다.



 '형수가 노팬티 차림이네. 이런, 이런…….' 

 남자는 일부러 천천히 걸으면서 별의별 공상을 하였다. 1킬로 거리가 마치 10킬로 정도 되는 듯 했다. 


 ‘선배님은 정말로 복 받은 남자야.’
 “자, 다 왔어요. 형수님.”

 연주는 남자의 등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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