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 간 것에 대하여
- 여강 최재효
또, 뇌리와 가슴에 박힌
에메랄드보다 귀한 추억 몇 개 꺼내어
말끔히 삭제시켜 버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맑은 하늘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믿었던 벗이 외계인처럼 행동하거나
손이 큰 아내가 걸신(乞神)으로 비춰질 때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엉뚱하게도 사치스럽게 느껴지면서
내 손과 눈에서 떠나 간 것들이
죽고 싶도록 보고 싶은 것이다
그 것들은 지금 쯤,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의 떠돌이 혜성이 되어 있거나
우리은하 중간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소멸되었거나 또는 항성인 나를 정점으로
이름 없는 행성(行星)이 되어 달처럼
공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먼 훗날 날개를 달고 훨훨 창공을 날게 되면
나 또한 그 누구에게 떠나 간 것이 되어
쓸데없이 값싼 슬픔을 요구하거나
거짓 눈물을 강요하는 일은 절대 하지않으리라
내가 백지장처럼 이승의 모든 기억으로부터
철저히 자유롭기 위하여 제일 먼저 케케묵은
내 추억의 단편들을 잘게 부수어
허공에 흩뿌리고 자전(自轉)만 아는
우직한 붙박이 별이 되려고 한다
지나 온 길을 되돌아가지 않기 위하여
- 창작일 : 2008.06.25. 2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