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3)
- 여강 최재효
“아저씨, 이제 그만 내려가세요. 지금부터는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둘만의 은밀한 시간을 보내는데 곁에 누가 있으면 신경이 쓰이거든요.”
“그러지요. 그런데 이곳에 오는 커플들 중에는 이상한 취향도 있더라고요.”
“이상한 취향이라뇨?”
“지난달 중순경에도 서울서 어떤 커플이 하룻밤 묵고 갔는데, 밤 12시경에 나보고
2층으로 올라오라고 하더라고요.?
“왜요?”
“그래 자다말고 올라갔더니. 두 사람이 한창 일을 치루고 있는 중이었는데 관중없이 두 사람만 일을 치르려고 하니 재미가 없다며 나보고 침대 곁에 앉아서 그냥 관전만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요?”
동혁의 눈에서 빛이 났다.
“그래서 나는 밤새도록 마른침만 삼키며 관전만 했죠.”
“아, 그런 커플도 있군요.”
“요즘 커플들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든 일도 하더군요.”
“저희는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자, 그럼. 두 분 행복한 밤 보내시고 좋은 추억 많이 만드세요. 난 이만 내려가리다.”
관리인이 내려가고 이층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민지는 긴장이 풀린 탓인지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잠이 든 것인지 그냥 눈만 감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동혁이 밝은 조명 아래 미끈한 육신을 드러내 채 조각처럼 움직이지 않는 민지 곁으로 다가
갔다. 알코올과 니코틴 그리고 땀으로 얼룩진 민지의 노골적인 육신이 동혁에게 왜
가만히 있느냐고 항의하는 것 같았다.
‘내가 엄연히 남편이 있는 여자를 이런 은밀한 산장에 데리고 와서 변태적인 행위를
자행해도 되는 건가? 지금쯤 와이프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시 아내도 나 모르는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냐, 그 여자는 순진해서 이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 어찌 보면 나는 여인들의 깊이 숨겨진 욕망을 개발해내는 일종의 개혁자라고 할 수 있지.‘
동혁이 민지의 유방을 혀로 애무하자 민지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살며시 눈을 떴다.
“잠든 줄 알았지. 어땠어?”
“동혁씨, 고마워요. 내가 학대를 받아야 극도의 쾌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오늘에야 참 맛을 알았어요. 지난 세월 남편과의 미지근한 물같은 행위가 얼마나 무의미 한 것인지 이제 생각하면 후회가 되요.
예전에 우리 여인네들에게 섹스란 여자가 사회 구성원을 생산해내면 그 뿐, 그 이후에는 남자들의 강요된 복종과 시댁식구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가며 어쩌다 남편의 욕구불만이나 배설의 욕망을 해소해주는 쓰레기 같은 거였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단지 남녀의 성기(性器)의 결합만이 마치 섹스가 전부인 양 생각하는 목석같은 남자들은 여인들을 품을 자격이 없어요. 인류문명이 고도로 발달되었다고 하지만 남녀의 미묘한 성적인 문제는 천년 전이나 백 년 전이나 변한 것이 없어요.“
“왜 변한 게 없어? 지금 다른 남자의 아내인 그대가 나와 이런 한적한 산장에서 별별 요상한 행위로 쾌락을 추구하는데?“
“그건 나에게 큰 의미가 될 수 없어요. 나는 그동안 동혁씨에게 마치 성적 노예처럼 취급되어 왔어요. 나 스스로도 이전의 나를 부인하기 위하여 동혁씨의 요구에 스스럼없이 응해 주었고요. 오랜 세월동안 우리 여인들은 평생 한 남자만을 태양처럼 바라보며 자신을 헌신해 왔어요. 그러나 남자들은 한 여자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친다고 허풍을 떨면서 뒤로 은밀히 다른 여인을 탐해왔어요. 왜, 여인들은 말도 안 돼는 굴레에 속박당하고 남자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여도 사회가 용서해 주는 것인지 저는 모르겠어요.“
동혁은 담배 연기를 천정을 향해 훅 뿜어대며 민지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예전의 애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순순히 응해주는 무뇌(無腦)의 여인인 줄 았았었다. 부풀어 올랐던 욕망이 풀 없이 사그라지고 있음을 감지한 동혁이 민지에게 해소하려고 침대 위로 올라왔다. 수갑을 푼 민지는 동혁의 의지를 잘 알면서 동혁의 뜻을 거역하고 있었다.
“민지, 왜 이래?”
“동혁씨, 우리 서울로 돌아가요.”
“서울로? 이 밤에?”
“네에. 갑자기 사랑이고 뭐고 다 싫어졌어요.”
“벌써 밤11시인데.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한거라도 있어?”
“그냥이요. 이유는 묻지 마세요. 갑자기 세상이 싫어졌어요.”
동혁이 아무리 민지를 달래보았지만 민지는 완강하게 거부하며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오늘밤 오래오래 추억에 남을 이벤트를 기획했던 동혁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짐을 꾸려야 했다. 관리인은 몹시 아쉬운 표정으로 두 사람이 탄 차의 미등이 안 보일 때 까지 멍하니 서서 중얼거렸다.
“염병할, 오늘은 성능좋은 카메라는 설치해놓고 기가 막힌 장면들을 찍으려고 했는데 물거품이 되고 말았군. 거참, 이상한 연놈들일세. 어제 왔던 삼십대 미친 커플들은 밤새도록 괴성을 질러대며 지랄발광을 떨었는데 저 연놈들은 왜 1차전만 치
루고 가는 거여. 참으로 오늘밤은 심심하게 되었군. 에이, 퉤. 재수없어. 어제 몰래 촬영한 비디오나 보며 술이나 퍼야겠군.“
[이제야 회장님하고 외국 바이어들 만찬이 끝나서 회사로 가는 중인데. 지금
회장님께서 급히 찾으세요. 회사에 30분 내로 오실 수 있죠? - 비서실]
“아, 여보. 조금만 더 힘 좀 써봐요. 나 곧 느낄 것 같어”
형욱은 민지에게서 답신이 없자 아내와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들어와 한창 부부애를 돈독하게 진행 중이었다. 그때 휴대전화 진동을 느낀 형욱이 거의 절정에 달한 아내의 육신에서 떨어지며 휴대전화를 열었다.
“아니, 왜요?”
“응, 회장님이 찾으셔.”
“지금 밤 열두시가 넘었는데요?”
“밤 열두시건 새벽 세시건 오너가 찾는데 어쩌겠어. 회사에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인데. 얼른 다녀올게. 거역하다가는 언제 구조조정 대상에 이름이 오를지 몰라.“
열락의 정점에 거의 다다르다 김이 샌 형욱의 아내는 시큰둥한 얼굴로 옷을 입는 남편을 바라보며 무성한 숲을 꽉 움켜쥐고 못 다 푼 욕망에 허탈해 했다. 말수가
적고 늘 차분한 성격의 샌님 같은 남편과 오랜만에 치르던 정사(情事)가 불발로 끝
나자 한편으로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당신, 정말로 회사로 가는 거지?”
“허, 이 사람이? 못 믿겠으면 이거 좀 봐.”
형욱 내민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형욱의 아내는 이불을 뒤집어 썼다.
“다녀올게.”
형욱은 불만이 머리꼭대기까지 찬 아내를 뒤로하고 나와 아내 몰래 베란다에 숨겨 둔 가방을 꺼냈다.
[형욱씨, 출발하셨으면 여의도로 얼른 와요. 샤워하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민지의 문자메시지를 본 형욱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뗬다.
[OK, 지금 그대를 향해 달리고 있어요. 20분후면 도착할 것 같아요.]
형욱이 사는 동네에서 한강 다리 하나 건너면 바로 여의도 였다. 거대한 마천루들이
거만하게 밤하늘을 마음대로 잘라 기하학적 모양의 스카이 라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동혁과 헤어진 뒤 곧바로 집으로 온 민지는 사워를 마치고 벌겋게 물든 엉덩이에
로션을 바르며 살살 문질러 주었다. 알코올 기운이 쇄진해지자 엉덩이에서 약간의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민지는 침대에 누워 몇 시간 전의 일들을 회상했다. 밝은
조명아래 자신의 나신이 모두 드러난 채 가죽 채찍으로 학대를 당했던 장면이 클로
즈 업 되면서 민지는 가랑이 속에 두 손을 집어넣고 몸을 뒤 틀었다.
‘밤새도록 동혁씨에게 학대를 당하며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면 나는 몸이 가루가
되었을 거야. 그 남자와는 반만 욕구 불만을 해소하고 나며지는 형욱이란 남자에게서 풀어야지.‘
민지는 머리를 풀어 어깨 까지 내리고 흰색 브래지어 팬티 세트로 갈아 입고 속이
거의 비치는 검정색 나이트가운을 걸쳤다. 동혁을 만나러 갈 때 붙인 붉은색 인조
손톱을 모두 떼어내고 하얀색 바탕에 빨간색 파랑 노랑색이 가로 선으로 그려진
손톱을 단단한 부착한 뒤 끝부분을 날카롭게 다듬었다. 민지는 양 손을 들어 조명에
비춰보았다. 뽀얀 손가락에 붙인 손톱에서 금방이라도 피가 튀길 것 같은 괴기스러움이 연출되었다.
진한 빨강색 립스틱으로 입술을 감추고 페르몬 향이 강한 향수를 은밀한 부위에
살짝 뿌리고 대형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았다. 원숙한 야화(夜花) 한 송이가 색기를
민지는 갈증을 느꼈다. 발렌타인을 언더락스 잔에 반쯤 채우고 콜라를 부어 단숨에
들이 켰다. 갈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한잔의 스카치위스키를 입안으로
흘려보내고 나서야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창문을 열자 한강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무수한 차들이 강변북로 위를 달리며 어디론지 사라져 갔다. 60평이 넘는 타워형
아파트에 덩그러니 홀로 있다고 생각하니 고독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왔다. 주체
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파도여서 금방이라도 민지를 덮칠 것 같았다.
‘아, 왜 이리 늦는 거야? 혹시 우리 집 동호수를 모르나. 그럴 수도 있지 이집을
다녀간 지 몇 달되었으니.‘
민지가 휴대전화로 아파트 동호수를 막 전송하였을 때 현관 벨이 울렸다.
‘아니, 벌써?’
“이야, 민지씨. 하늘에서 막 하강한 선녀 같아요.”
“정말?”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요?”
“고마워요. 형욱씨.”
“민지씨, 회장님과 어디 갔다 왔어요?”
형욱이 검정색 007가방을 거실에 내려놓았다. 며칠 전 민지가 주문한 물건들이
들어있는 가방이었다.
“아뇨. 그냥 집에서 책도 보고, TV도 보고, 운동도 하다가 갑자기 내가 어떤
외딴섬에 홀로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너무 외로워 못 견딜 것 같았어요.“
“그럼 빨리 연락하지 않고서요?”
“형욱씨, 문자 받을 때 뭐하고 있었어요?”
“그냥 혼자 거실에서 TV보고 있었어요.”
“에이, 거짓말. 부인하고 한창 사랑 나누던 중 아니었나요?”
“외화보고 있었다니까요?”
“치이, 거짓말. 있다가 내가 자세히 확인해 볼 거야.”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