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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2)

* 창작공간/단편 - 날 개

by 여강 최재효 2008. 2. 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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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2)

 

 

                                                                                                                                    

 

                                                                                                                                                                                  - 여강 최재효



 나는 남편 담당의사의 의도를 알면서도 어수룩한 척 하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의 진지한 경청에 더욱 용기를 얻은 담당의사는 더욱 열을

내며 요즘 주부들의 외도가 도를 넘어섰다면서 출처불명의 통계를 인용해 가

며 침을 튀겼다.


 마치 집에서 조신하게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나 하는 양처(良妻)들은 모두

바보라는 이상한 논리를 펴가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물론 인터넷과 휴대전화

의 보급으로 생면부지의 남녀들이 각종 정당한 이유를 만들어 만나면서 문명

의 이기(利器)들이 만들어 내는 정에 빠져 스스로 탐욕의 제물이 되는 경우

가 허다하다.


 저녁 식사를 마치자 그는 자신이 잘 아는 고급 바(Bar)가 있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내 의사를 타진했다. 그의 제안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미루어

짐작이 갔지만, 그를 따라 갈 경우 나 역시 스스로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판

단이 들어 적당한 이유를 들어 정중히 거절하였다. 그는 집요할 정도로 함께

갈 것을 종용하였다.


 꼭 남편을 위하여 할 이야기 있다면서 오늘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천추의 한이 될 거라고 은근히 으름장을 놓기도 햇다. 할 수 없이 11시까지

함께 있는 조건으로 그를 따라 갔다. 택시로 강변북로를 달리다 한남대교를

타고 남으로 향했다. 10여 분후 그가 말한 바가 있는 빌딩 앞에 차가 멈추

었다.

   
  나는 그날의 충격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온
남편의

담당의사는 나를 테이블에 앉혀 놓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사라졌다.

 20분 후 그가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는 어느새 여자가 되어 있었다. 30대 중반의 여인으로 탈바꿈한 그는 목

소리까지 변해있었다. 내가 앉아있는 곳은 여자들 보다 더 예남자들이 모

이는 바였다. 서울에 게이 바가 있다는 이야기를 회사 동료들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지만 내 발로 찾아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다.


 매주 한번은 이 바에 와서 여장(女裝)을 하고 남자아닌 여자로 활하면서

같은 취향의 여장남자들을 만나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자신들끼리 정보도

교환하면서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고 했다. 바 안에는 스무 명 남짓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었지만 정작 진짜 여자는 나 혼자 밖에 없었다. 남편의 담당의

사가 아름다운 미시로 변하면서 나는 이곳에 올 때까지 내가 세상의 상당

부분을 착각 속에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휴게소 여자 화장실 앞에 여자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럼 두세 시간 이상을 차안에 갇혀있다 겨우 해방 된 여자들이었다.

원하게 볼 일을 보고 다시 벤츠로 향했다. 날씨는 개었지만 빙판으로 변한

도로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남편과 그동안 살아 온 소설 같은 이야기를 천

천히 되새김 할 수 있었다. 남편은 내가 차타자 남편은 차에 시동을 걸

다.


  “이거 약속 시간보다 너무 늦는데…….
  “여보 천천히 가요. 날씨가 이런걸 어째요. 할 수 없지요.”
  “글쎄. 날씨가 하필이면…….


 백색의 도로에는 차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거북이 걸음보다 느린 차들이

종종 맞은편에서 지나가는 광경만 목격될 뿐 도로는 우리 부부를 위하여 방

금 하얀 아스팔트를 깔아놓은 것 같았다. 고급차의 진가가 하얀 아스팔트

위에서 발휘되었다. 휴게소를 출발하고 20분 쯤 남편의 휴대폰이 울렸다.


 오늘 만나기로 약속했던 사람에게서 온 전화였다. 일곱 커풀과 싱글 세 남

자들이 약속한 장소로 모이기로 했는데, 서울서 출발한 우리 부부대전에

출발한 한 부부만 도착하지 않았다면서 길이 끄러우니 조심해서 오라는

내용이었다.


 사십년 가까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려 본적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요지경이라는 서울에 살면서 내가 얼마나 서울

에 대하여 모르고 지냈는지, 그날 남편의 담당 의사를 따라가서야 깨달았

다.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고 온실 안 화초였다. 여자보다 더 예쁜 트랜

젠더들로 북적거리는 바에서 받은 충격에 헤매고 있던 나에게 그는 브랜

디를 약간 가미한 카카오피즈를 시켜주었다. 달콤하면서 쌉싸한 맛에 나

는 금방 잔을 비웠고, 그는 신호에 따라 종업원이 두 번째 잔을 내 앞에

올려놓았다.


 그는 자신들의 세계에 대하여 나에게 기초 상식 정도의 소개를 하였다.

자신도 물론 병원에서 퇴근하면 한 가정의 가장이면서 한 여자의 남편이

고 두 아이의 아빠이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 이며 상당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있다고 했다. 말속에 그의 음종한 성정이

배어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자신의 취향으로 아내와 정상적인 부부생활이 어려워지면서

현재는 한 지붕 아래서 살고 있지만 부부 아닌 부부로 살고 있다고 하

였다. 10년이 넘도록 한 이불 덮어 본적이 없다며, 그의 아내는 아내대

로 다른 성적 흥미를 유발하는 그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부부가 함께 오래 살다보면 유유상종이 되는가 보다.


 그는 성적 욕구불만을 이성이 아닌 자기 스스로 창조해낸 이성에 만족을

느끼고 같은 트랜스젠더들과 어울려 극대화 된 성적 유희로 세상사는 맛

을 한껏 맛 본다고 하였다. 이성복장자들은 보통 크로스 드레서(Cross

 Dresser)나 트랜스 베타이트(Trans Vestite)라고 하는데 보통은 이성

의 옷을 차려입고 정서적으로나 성적으로 만족을 얻는 사람들이라고 하

였다.


 그들은 겉옷 뿐만 아니라 언더웨어도 여성의 것으로 치장한다고 했다.

유명 여자 연예인이나 아름다운 여인이 입던 속옷을 고가에 구입하여

입으면 자신이 마치 그 여인이 된 것처럼 성적 만족을 느끼거나 관계를

맺은 것 처럼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속옷에 여인의 분비물이 묻어

있는 경우에는 더욱 인기가 높다고 하였다. 


 바 안의 분위기는 여느 바처럼 조용하면서도 간헐적으로 남자들의

(嬌聲)이 들렸다. 저음의 장엄한 음악과 유쾌한 음악이 수시로 바뀌면서

바 안의 분위기는 무척 달떠있었다. 삼삼오오 테이블에 앉아 여염집 여인

들처럼 예쁜 남자들은 준비해 온 장신구나 새로 온 화장품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개 여장 남자들의 이야기는 요즘 잘나가는 모델들의 화장이나 의상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트랜스젠더 중에서 새로운 애인을 사귀었다는 시시

콜콜한 것들이었다. 또한 며칠 전에 유명한 가수 H가 상당한 돈을 들여

완벽한 여성으로 태어났다면서 부러워하는 축들도 었다.


 그들이 말하는 완벽한 여성이란, 뿌리를 제거한 하초에 오밀조밀하

환상적인 신(神)의 영역을 자신의 다른 부위의 표피를 이용하여 진짜처

만들어 삽입하거나 상체를 더욱 풍만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였

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같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성형 수술이 어렵지

만 태국이나 싱가폴 같은 나라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카카오피즈 두 잔을 다 마셨을 때 몽롱한 상태에서 거의 의식

잃었고 다음 날 정오 쯤 낯선 곳에서 그의 품에서 눈을 떠야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전날 밤 만취 상태의 옷차림 그대로 였다. 머리가 지끈거

렸지만 정신은 맑았다.


 화려한 방으로 보아 여염집은 아니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장식들

이곳이 고급 호텔 객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내가 이곳까지 오

게된 경위를 생각하려고 해도 바에 들어 간 것 이외에는 아것도 떠오

르지 않았다.


 살며시 손을 뻗어 내 하체를 만져보았다. 매끈한 스타킹이 그대로 있

었고 상체는 브라우스를 입은 채였다. 나의 결론은 옆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는 남자가 나의 어느 부위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한편

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약간 서운한 감정이 일었다. 그가 신사

도를 발휘한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전날 밤의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곤히 잠자고

있는 남자를 깨워 어떤 이유에서 호텔에 오게 되었는지 추궁할 수도 없

었다. 간단한 메모를 남기고 호텔을 빠져나와 집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점심 식사를 했느냐고 물을 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차라리 나에게

간밤에 어디 가서 무엇을 했고, 누구와 자고 왔느냐고 물었다면 덜 섭

섭했을 것이다. 나 역시 굳이 구차한 변명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

담당의사와의 예정에도 없는 동침으로 나는 심한 정신적, 도덕적 갈등

속에서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다음날부터 남편의 눈치가 이상했다. 나의 외도가 남편에게 큰 충격으

로 다가갔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만취한 채 새벽 두시 쯤 귀가한 남편

나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마치 의사와 짜고 말하는 것처럼 ‘씨내리’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처음에 나는 왜 남편이 그 같은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

한때 유행했던 ‘스윙(swing)’을 떠올리자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 남편 이외의 이성과 묘한 관계를 설정하거나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비정상적인 성애(性愛)에 대하여 상상 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나에게 말한 씨내리는 남자의 성적능력 부족으로 가문의 대를

이어야하는 절박한 심정의 발로가 아닌, 단지 장기적인 상대방의 정서

불만족을 해소시켜주기 위한 배려 차원이라고 하였다. 부부가 무엇인가?

, 하는 물음과 함께 나는 며칠간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많은 고민해야

했다.


 나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남편은 외국의 여러가지 사례를 이야기 하였

고,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보여주면서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를 썼다. 

남편은 담당의사의 견해와 자신의 신체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세조각 팽창형 보형물을 선택하였다. 수술은 순조롭게 마쳤고 이틀 후

남편은 퇴원하였다.


 이 물질이 몸속에 들어있는 탓 인지 남편은 비치적비치적 걷는 모양이

우습기도 했다. 남편은 걸을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고 하였다. 수술 후

일주일이 지난 주말 밤, 하늘의 뜻에 따라 이성지합의 역사적 사명을

시험하는 시간이었다. 수술한 신체의 상태를 간품하는 날이기도 했다.

남편은 일찍 퇴근하였고 나는 파스텔 톤의 강한 색조화장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다.


 나는 평소에 착용하지 않던 T자형 언더웨어와 가터벨트와 진한 분홍색

스타킹을 신었다. 남편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낸다면서 수입산 작스트립

을 착용하고 가운데에 패드까지 넣어 거대한 모양을 만들어 보여주기도 했

다. 남편은 잘 아는 장소가 있다며, 기대해도 좋다는 묘한 뉘앙스를 풍겼

다. 하루 종일 영업소에서 나는 남편의 이상야릇한 미소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끝내 해석하는데 실패하였다.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명동에서 알아주는 제임스 박의 최신 작품을

입었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검정색 계통의 벨벳으로 만든 원피스에

흰색 머플러로 멋을 내고 위에 엷은 금색 빛의 밍크코드를 걸쳤다.


 거울 속 여인은 마치 오랜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반쯤 이성이 마비된 표정이었다. 나는 거울 속에 여인이 케네디 형제들

과의 염문을 뿌리다 요절한 마릴린 먼로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전신을 휘감으며, 나는 전율하였다.


 남편과 택시 편으로 도착한 곳은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만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남편은 자신만 혼자 바라보기 아까워 나를 만인 앞

에 내놓고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최근에 지어진 인텔리

전트 빌딩 내부에 있는 고급 살롱은 자본주의라는 치열한 싸움터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장소였다.


 언뜻 보아도 300여 평이 넘어 보이는 홀 벽에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대형 작품들이 금테를 두른 액자 속에 빛나고 있었다. 보티첼

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보는 사람을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언젠가 바

티칸 시티의 베드로 성당 안에서 본 중세를 대표하는 유명 화가들의

성화(聖畵)보다 더 화려하고 찬란해 보였다.


 분명 나는 서울이라는 곳을 잘 알지 못하고 있음이 다시 한번 입증

는 순간이었다. 남편은 스무평 남짓 되는 룸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남편의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미루어 이미 여러 차례 드나들던 곳 같

았다. 내가 룸에 들어 설 때 나는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예전에 텔레비젼 화면 속에서 봤던 유명한 여인 두 명이 중년의 신

사 두 명과 원탁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앉아 있었다. 화면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세련되고 젊고 매혹적인 이미지 였다. 두 여인 모두 나

와 비슷한 올백 헤어스타일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머리 장식 핀을 꽂

아 마치 아라비아 슐탄의 애첩처럼 보였다.

 

 한때 장안의 남성들 가슴을 들뜨게 했던 S는 새치름하게 앉아 흰색

재킷의 바람기가 있어 보이는 남자 곁에서 양담배를 피워댔다. 남자

우들과 스캔달이 잦았던 K는 음종해 보이는 얼굴이 붉게 달아 올라

위스키가 가득 담긴 언더락스 잔을 들고 나를 뚫져라 바라 보았다.


 중년의 두 남자는 남편과 업무상 자주 어울리는 중견 기업체 사장님

들로 외모 또한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남편이 나를 네 사람에게 소

개하자 두 남자들은 크게 웃으며 반겼으나 두 여인들은 도도한 태도

로 나를 본체만했다.

 

 내 스스로 두 여인과 비교하여도 외모나 의상 또는 액세서리 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여인들은 질투심 어린 시선으로 흘끗거리며

나를 훔쳐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최고라는 허위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 했다. 긴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가 매우 인상적인 S는 하얀

허벅지를 거의 다 드러내놓고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그녀가 자세를

약간 바꾸면 샅이 드러날 것만 같았다.


 처음 보는 생소한 이름의 양주병이 들어오고 에베레스트산 처럼 장

엄하면서도 오묘하게 데코레이션된 안주가 테이블 위를 아름답게 장

식했다. 나는 두 여인이 혹시 남편의 담당 의사와 함께 갔었던 바에

서 본 트렌스젠더가 아닌가 하는 이상한 상상을 했다. 두 여인의 색

정적인 모습과 은밀한 행동에 남자들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밴드가 홀 안으로 들어왔다. 두 여인은 나를 의식 하지 않고 남편에

게 아양을 떨며, 고의로 나의 질투심을 유발시키려 하는 것 같았다.

아이샤도우를 진하게 하고 방금 도살한 개고기를 날로 먹고 왔을 것

같은 K의 반짝거리는 입술이 서울의 뭍 사내들을 모두 잡아먹을 것

처럼 무시무시해 보였다.


 약간의 취기가 홀 안을 지배하자 K가 남편의 손을 끌고 플로어로

가더니 춤을 추기시작했다. 은은한 조명아래 흐느끼듯 음률이 홀 안

을 끈적끈적하게 감쌌다. 남편은 나를 자주 쳐다보았지만 나와 시선

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살며시 미소로서 응답해 주었다.


 K의 손이 남편의 엉덩이를 유린하며, 마치 이전부터 두 사람이 연인

관계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L이라는 남자가 내 곁에 앉더니 침을

튀겨가며 나의 미모를 찬양했다. L은 자신이 남편의 사업에 큰 영향력

을 행사한다며 자신의 행동에 약간의 무례가 있더라도 양해 해 달라

는 뜻을 은연 중 내비추었다. 남편의 사업을 내세운 은근한 협박이 틀

림없었다.


 앞에 앉아있던 S와 남편의 친구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열렬한 애정

행위를 표시하고 있었다. 나는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남녀의 원초적

행위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L이 나

가서 춤을 추자고 하였지만 나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성적 불만

족에 시달리는 남편이 왜 이런 요상한 곳에 나를 데리고 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은 하늘거리는 실크 흰색 원피 속에 감춰진 K의 풍덕한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었다. 남편의 손길에 음종한 K는 거대하고 육감적인 엉덩

이를 실룩거리며, 조용히 그리고 스무스하게 남편과 율동을 맞추었다.


 나를 의식해서인지 K는 일부러 자신의 육덕을 자랑하려는 듯 육욕

눈먼 음황한 남성들의 지문이 남겨졌을 것 같은 지방질로 가득한 뒷

태를 강조했다. 그녀는 언더웨어를 착용하지 않고 가터벨트만 입은

상태였다.


 내가 남편과 K에게 한참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무렵 얼근해진 L이

나에게 바싹 다가앉더니 건배를 하자고 했다. 나는 남편의 체면을 생

각해 마지못해 언더락스 잔을 마주쳤다. 목을 화끈 태우며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술은 불란서 샹파뉴 지방에서 제조된 브랜디라고 하는

나는 도무지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다. 세 번째 잔을 부딪치고 나

자 정신이 흐리마리해 졌다.

 

 남편과 K가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더니 플로어에서 들어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맞은편 남녀는 헤비 페팅의 수준을 넘어 타인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행위는 점차 가열해 지고 있었다.  여인의 밭은 숨소

리가 나까지 묘한 감정에 사로 잡히게 만들었다.


 나는 정말로 서울을 잘 알 못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과연 천만 명이 살고 있는 서울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특별 시민

이 얼마나 될까. 내 앞에서 열락을 넘나들던 커플이 비치적비치적

거리며, 플로어로 나가면서 홀 안은 활화산이 뿜어내는 열기보다 더

뜨거워졌다.

 

 김수희의 질척한 곡조가 메들리로 이어졌다. 그때 L이 내 귓속에대고

속삭였다. 나를 안아보고 싶다며, 팔을 뻗어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나는 남편의 사업상 지인들이 어떻게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내가 눈을 흘기며 몸부림 쳐보았지만 L은 점점

팔에 힘을 주었다. 나는 L의 행동이 뜨악하여 그의 제의를 받아 들일 수

없었다.


 나의 의지와 다르게 나는 점점 확산되어 내 전신을 알코올로 물들이는 

술기운에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L의 먹이가 되어 가고 있다고 생

각했다. 남편은 내가 어떠한 상황에 쳐해 있는지 관심이 없는 듯 K의 육

신을 부둥켜안고 흐느적댔다.


 L의 손가락이 나의 상체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가슴이 두근
거리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잠시 저미해 졌을 때 순식간에 그의 손

가락이 내려왔다. 그의 대담한 솜씨로 보아 이성을 상대로 한 추저분하면

서도 시치름한 행위에 있어서 발군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피아노 건반을 다루듯 능란한 그의 손가락이 이미 나의 상태를 간품하

면서 나는 밭은 쉬고 있있다. 나의 보이지 수성에도 한계가 있다.  내 신

체가 한쪽으로 비꾸지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L의 도발에 화가 났지만 상황에서 나는 어할 수 없는 나의 오

달지지 못한 품성과 지금의 처지가 더욱 처량했다. L의 집요한 공격은

불쾌함을 넘어서 점차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플로어의 네 남녀는 신들린 사람들처럼 강한 밴드에 맞춰 몸을 흔

들어 댔다. 영화배우 뺨치도록 잘 생긴 L의 지분거림이 도를 넘어서

면서 이대로 무저항 상태로 있다가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불안하였

다. 나는 플로어로 나가 춤추자고 L에게 사정하였으나 L은 이미

입가경의 지경에 다다른 듯 나의 제안을 못들은 체 하고 농도 짙은

간품을 계속하고 있었다.


 청바지나 스판덱스 바지를 착용하였다면 우려할 정도 사태가 일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혹시 남편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판을 깨는

눈치없는 여자로 비쳐질까 우려되어 자포자기 상태로 L의 집요한

공격을 받고도 저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짐작컨대 L은 화려한 외모

와 현란한 손놀림으로 서울의 수 많은 여인들의 샅을 무자비하게

유린하려는 하이에나 같은 근성을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다.


 L은 야릇한 미소를 띠고 나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전했다. 나는

오늘 같은 일을 은근히 기대해 온 여자처럼 고분고분  L의 촉수에

로봇처럼 움직이자 그는 언제 조용히 단둘이 볼 수 있느냐고 흰수

작을 걸어 왔다.

 

 자정이 넘어 끝난 이상한 파티는 나에게 수치심과 가슴 울렁거림

등 강한 여운을 남긴 채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남편에

게 왜 나를 그런 해괴한 술자리에 데리고 갔느냐고 강하게 항의하

고 싶었으나, 기분이 한껏 고조된 남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수술은 대 만족이었다. 살롱에서의 이상야릇한 여운이 온몸에 진

드기처럼 남아 있는 상태에서 남편과의 합방은 내가 대학교 다닐

때 MT에 가서 선배에게 처음으로 수성(守成)에 실패 했을 때보다

짜릿했고 가열하였다. 사고 이후 처음으로 치뤄진 단기전에서 남편

은 밭은 숨을 헐떡거리며, 나의 느낌을 물어왔다. 나의 긍정적 답변

에 우리는 간만에 평화로운 밤보낼 수 있었다.

 

 일주일간 우리 부부는 신혼 첫날밤같은 밤을 보냈다. 남편은 오랜

괴고(壞苦)에서 완전히 탈출하는 데 성공한 듯 보였다. 하지만 횟수

가 거듭될 수록 남편의 얼굴은 굳어져 갔다. 자신의 순수한 의지와

체력이 아닌 보조물에 의한 남흔여열(男欣女悅)이 무슨 소용이 있

겠냐면서 예전처럼 각자의 방을 쓰자고 했다.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밤이면 기어이 고독한 성(城)의 주인이 되었다. 


 두수없이 그럭저럭 보름이 지난후 남편은 나에게 이상한 제안을

했다. 남편의 얼굴에는 많은 고민과 번민 속에서 방황한 흔적이 역

력했다. 잠시 외도를 통해 십년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면 자신은

괜찮으니 자신의 의도를 따라 줄 수 있느냐고 했다.


 그 제안의 속성을 정확히 알지 못하였지만 남편을 믿고 나는 흔쾌

승락하였다. 외국에서는 비밀스런 파티가 공공연한 비밀이 되면

수컷으로의 자격을 상실한 남편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고 하였

다.


 동시에 아내들에게는 성적 불만족에서 오는 정서적 갈등을 일거에

해소시켜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이어질 수 있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고 하였다. 나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나의 물음에

남편은 아리송한 응답만 할 뿐이었다.

    

 “여보,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저기 저 이정표 보이지? 저기서 좌회전

해서 조그만 더 가면 약속 장속에 금방 도착할 거 같은데.”
  비몽사몽간에 지난 일을 영상으로 음미하고 있던 나에게 남편은 큰

소리로 외쳤다.


  “다행이에요. 약속시간보다 좀 늦기는 했어도. 도착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와있을까?”
  “글쎄요. 우리하고 거의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을 거예요.”
  “당신, 오늘은 정말로 귀부인처럼 보이는데?”


 남편은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남편의 미소를 나는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차가 약간 경사진 언덕을 천천히 기어오르자 육중한 철문

이 열리고 50대 중반의 안내인으로 보이는 뚱뚱한 남자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정문을 통과해 백여 미터를 더 가자 동화책에

서나 볼 수 있는 서양풍의 산장이 나타났다.


 이미 서너 대의 고급승용차들이 주차장에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다.

고급승용차는 그 주인의 경제적 부의 척도를 알 게 해주었다. 모두

건너 온 차들이었다. 우리가 차에서 막 내리자 40초반의 반듯한 외

모의 남자가 집에서 나오더니 남편에게 악수를 청하며 반가워했다.

우리가 집 안에 막 들어섰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숨이 막힐 뻔 했다.  


 얼마 전 살롱에서 만났던 두 남자, 남편에게 보형물시술했던

의사와 그의 친구인 듯한 30대 중반의 두 남자들이 거실에 앉아 있

다가 리를 보자 벌떡 일어났다. 더욱  놀라운 일은 S와 K가 그

곳에 있었고 남자들과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L과

남편의 담당 의사 그리고 S와 K에게 시선을 맞추고 눈인사를 나누

었다.


 또 한쪽에는 처음보는 세 커플이 앉아 있다가 우리 부부를 보고

목례를 했다. 세 커플은 4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그들의 외모와

입고 있는 옷으로 보아 사회에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인사들 처럼

보였다. 그 세 커플이 부부 사이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L은 씩 웃으며 나에게 윙크를 했다. 그들은 우리를 기다리며 술

마시고 있었던 것 같았다. 탁자 위에 위스키병과 잔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벽난로에서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며, 거실 안의 온도를
일정수준으로 유지시키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도착한 후 눈이 내리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촌의 밤 풍경은 환상 그 자체였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의 이벤트를 준비한 산장의 주인 P라합

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그런 날인만큼 아주 의

미 있는 파티를 준비하였습니다. 대전에서 출발한 한 커플이 아직 도

착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도착하신 섯 커플과 싱글로 오신 신사

세분을 개해 올리겠습니다. 먼저 건설업계의 살아있는 신화이신

H실L 대표이사님과 여사님을 소개합니다.“

 

 산장 주인이 커플들과 싱글을 소개를 하였지만 나의 귀속에는 아무

소리도 리지 않았다. 참석한 사람들의 소개가 모두 끝나자 식당으

로 자리를 옮겼다. 대형 라운드 테이블에 빙 둘러 앉은 일행은 마치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수십 년 사귀어 온

친구들처럼 스스럼없이 농담을 하면서 즐거워했다.

 

 열대과일, 바비큐, 와인, 위스키, 음료수, 빨간 대형 양초, 얄밉도록

예쁜 크리스마스트리, 이름을 알 수 없는 요리, 은은히 홀 안을 감싸

는 캐럴 송, 성탄절 밤을 꼬박 새우기 위하여 철저히 준비가 된 것 같

았다. 산장은 오늘 같은 이벤트를 열기 위하여 지어진 집같이 보였다.

돈 많은 사람이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하여 지어놓은 평범한 별장같지

않았다.

 

 “저어, 안내말씀 올리겠습니다. 오늘은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

자유분방하게 파티를 즐기기 위하여 몇 가지 소품을 준비하였습니

다. 남자 분들은 1호방에 가셔서 준비된 의상으로 갈아입으시고, 공

주님들은 2호실에 마련된 의상과 분장을 하시고 나오세요.“

 

 산장의 주인은 여자들에게 2호실을 가리키며 20분 내로 준비를

마치라고 하였다. 2호실에는 서양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새의 깃털

이 장식된 다양한 색상의 마스크가 거울 앞에 놓여있었고, 허벅지

가 거의 드러나는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와 비슷한 원피스가 옷

장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또한 아오자이와 기모노 그리고 속이

거의 다 드러나 보아는 원피스도 있었다.


 나는 붉은색 치파오 같은 의상을 택하였고 K와 S는 흰색과 보라

색 기모노를 그리고 초면의 세 여인은 이브닝 드레스를 선택하였

다. 코 윗부분을 가리게 되어있는 마스크는 서양의 오페라나 영화

에서 몇 번 본적이 있는 것과 비슷했다. 여섯명의 여인들은 각자

취향에 맞는 의상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거

렸다.


 마스크를 착용한 여인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여체의 S라인이 거의 드러나는 붉은색 옷과 노란색 가면

을 착용하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내가 보아도

오페라에 등장하는 배우 같아 보였다.


 남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하여 아무 군소리 없이 산장의 주인이

하라는 대로 따르기는 했지만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가슴

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팔뚝까지 올라오는 긴 검정색 장갑을 끼

고 향수를 귓가에 살짝 뿌렸다.

 

 K와 S는 알몸 상태에서 기모노와 가면을 착용하였다. 왜 브래지

어와 언더웨어를 착용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S는 귓속말로 이 산

장에 오면 으레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똥겼다. 기가 막혔다. 도대

체 무슨 파티를 여는데 참석한 여자들은 알몸에 여체가 거의 드러

나는 옷을 걸쳐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야릇한 의상과 분장으로 여인들은 달떠있다. 여인들이 꽃단장

마칠 무렵 대전에서 왔다는 30대 중반의 색기가 자르르 흐르는

여인이 헐레벌떡 올라왔다. 여인들은 그 여인이 의상을 갖출 때

까지 기다려 주었다. 이로써 여인 7명, 남자 8명이 되었다.

 

 식당이 있는 홀로 내려가니 이미 10명의 남자들이 멋지게 분장을

하고 앉아 있었다. 낯설게 다가오는 이미지는 불행하게황금가면

을 쓴 남자들의 키와 체격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모두 검정

색 나비넥타이와 흰색 와이셔츠에 검정색 턱시도와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입 부분만 겨우 드러난 황금색 가면을 착용하였는데 누가 누구

인지 목소리를 자세히 듣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었다.


 모두 투탄카멘왕의 왕자들 같았다. 산장 주인은 샹들리에 조도(照度)

음침하게 조정하고 사라브라이트만의 '오페라의 유령'의 볼륨을 최

대한 높였다. 식당 우측 하얀 벽에는 대형 빔프로젝트 영사기에서 최근

에 파리와 로마에 그리고 뉴욕에서 개최한 란제리 컬렉션 쇼를 상영하

고 있었다. 식당 안은 종말의 극치를 향해 달려가는 야간 열차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 간의 대화는 거의 할 수 없었다. 산장 주인의 지시에 따라 시계

분침이 도는 방향 순으로 앉았다. 내 곁에 앉은 황금가면이 누구인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큰 목소리로 산장 주인이 건배를 하라면

배를 하고, 웃으라면 웃는 마치 산장주인의 꼭두각시들 같았다. 나

는 열 개의 황금가면 중 누가 남편인지 한 사람씩 살펴보았지만 도무

알 수 없었다.    

 

 술잔이 쉴 새 없이 부딪혔다. 먼저 와인 잔이 돌았다. 와인 10병이 비

워지자 위스키샤워가 칵테일 잔에 가득 부어져 테이블에 올려졌다.

엉덩이가 기가 막히게 빠진 모델이 하얀색의 아슬아슬한 속옷을 입고

무대를 걸어 나올 때 황금가면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쳐댔다.

정신없이 도는 술잔 속에 나는 금방 취기를 느꼈다.

 

 그러나 산장 주인은 엄살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며 이번에는

시원한 맥주를 500cc 잔에 가득 채워 돌렸다. 황금가면들은 옆에

앉은 고양이 가면을 쓴 공주들에게 이상한 미소를 지어 가며 연신

건배를 부추겼다. 내 좌우에 앉은 황금가면들 역시 나에게 계속

을 부딪히자고 채근하였다.

 

 이번에는 홀리오이글레시아스의 헤이(Hey)라는 곡이 잔잔하게 홀안

을 채웠다. 어느새 세커플이 홀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의 왼쪽에 앉

있던 황금가면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취기가 올라 몽롱한 상태에서

춤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손의 온기와 신체의 형태로 보아 그가 누

구인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L인지 아니면 남편의 담당 의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니면 남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 두 번째

곡인 '휀 아이 니드 유'가 잔잔한 호수 위에 파문그리듯 홀 안을

메우자 나머지 세 쌍이 내 곁에서 춤을 추었다. 짝이 없는 세개이

황금가면이 멀거니 춤추는 쌍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 손을 잡

주던 황금가면이 자주 몸을 밀착해 왔다. 가면의 중심이 예민한

부위를 자극할 때 순간적으로 나는 강력한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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