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우는 새(終)
- 여강 최재효
내은비는 일어나서 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잠을 푹 잔 탓에 얼굴
이 매끈거렸다. 입술과 볼 그리고 눈썹에 최대한의 정성을 다해 치
장하였다. 종이 되기 전 평소에 즐겨 입던 남색 삼작 저고리와 황색
치마로 입고 머리를 올리고 노리개를 찼다.
은비녀로 곱게 빗은 머리를 지르고 큰머리를 얹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에 내은비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위세 당당한 사대부가의
며느리 모습이었다.
“언니도 이제 깨워라. 단장 하고 있어야 한다. 혹시 대감이 우리 모
녀를 부를지도 몰라. 너도 최대한 예쁘게 단장을 하고 있어라.“
“네에. 어머니.”
“난, 먼저 사랑채에 나가 볼 테니. 너는 은금이 언니 일어나거든 단장
시키고 별채에서 조신하게 기다리고 있어라.“
“네에. 어머니.”
사랑채에서 내은비를 껴안고 질펀한 방사(房事)를 치렀던 고령군도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생전 남의 사랑채에서 밤을 새워 본적이 없었지
만, 내은비의 요염한 자태와 뜨거운 열락에 자신을 포기하였었다. 밖에
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간밤에 내은비와 한 약속을 기
억해 냈다.
‘내가 괜한 약조를 했나? 만약에 일을 그르치면 어떻게 한다? 괜히 그
계집의 약조를 들어주었다가 나에게 불똥이라도 튀는 날이면 재미없는
데, 어쩌나?‘
사내는 무거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써보았다.
‘그렇지, 만약 일이 어그러지면 난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는 수밖
에…….’
“대감, 대감, 기침하셨어요?”
“으응? 내은비 목소리인데?”
“대감, 들어가도 되는지요?”
내은비가 방으로 들었을 때 젊은 사내는 홀랑 벗은 상태로 막 일어나
앉아 있었다. 새벽까지 자신과 질펀한 정사를 벌였던 방이었다. 벌거벗
은 사내를 보자 내은비는 웃음이 났다.
“대감, 아직도 주무시고 계셨어요. 대청에 조선 최고의 호걸들이 모두
와 계신데.“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고 내은비를 올려다보던 사내는 눈이 번쩍 뜨였다.
곱게 단장한 내은비의 모습에 가슴이 떨려왔다.
‘아, 과연. 과연 조선 최고의 미색이로다. 내가 지난밤 이 여인을 품에
안고 잠을 잤었지. 이 계집을 오늘 밤 빼돌려 내 첩실로 삼을 테다. 노산군
의 여인보다 훨씬 곱고 매혹적이로다. 이제 나에게 행운이 찾아온 모양이
구나.‘
“대감, 무얼 그리 뚫어져라 바라보세요?”
“응, 아, 아니다. 자, 이리 오거라.”
사내가 내은비의 손을 이불속으로 끌어 들였다.
“아이, 대감. 얼른 기침하시고 손님들과 어울리셔야지요?”
“난, 네가 더 좋으니라.”
“대, 대감…….”
사내는 강제로 내은비를 이부자리에 눕혔다. 간밤의 열락이 아직 두 사
람의 가슴에 남아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아 있었다. 곧 불씨가 살아났다.
사내는 내은비의 치마를 훌렁 걷어 올리더니 바로 자신의 의지를 과시하
였다.
“대감, 대낮에 이러시면…….”
향긋한 분내음이 사내의 음심을 강하게 자극하였고 격렬한 몸짓이 쉬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사랑채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신음소리에 사랑채를
청소하던 하인들의 귀에 들렸다.
“염병할, 누구는 평생 빗자루와 씨름하는데 어떤 놈은 밤낮 육덕을 주무
르고 있으니. 어이쿠, 이 빌어먹을 놈에 세상…….“
윽-. 사내는 외마디 신음소리와 동시에 내은비에게서 떨어졌다. 숨을 헐떡거
리며 문신(文臣)의 허약함을 드러냈다.
“대감, 이제 만족하셨어요?”
“그, 그래. 너는 이 조선 땅의 최고 육덕을 지녔도다. 과연, 과연 네가 최고
야. 최고.”
“대감, 어제 밤 소첩과 한 약조를 잊지 않으셨지요?”
“암, 잊을 리가 있겠느냐?”
“정말이지요? 일만 잘 성사되면 소첩과 소첩의 두 딸년은 평생 대감의
은총을 입고 대감을 위하여 목숨이 다 할 때 까지 대감을 모실 것입니다.“
“대감, 이제 기침하시고 주인대감이 기다리는 주연장으로 가셔야지요.”
“그래야지.”
맨 마지막으로 홍윤성이 어여쁜 기녀 두 명을 대동하고 대문으로 들어섰
다. 그의 도도하고 방자한 성정은 한양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함께 온 기생들의 태도로 보아 홍윤성의 총애를 듬뿍 받은 듯 했다.
“여봐라. 나 홍윤성이 왔는데. 어찌 주인은 얼굴도 보이지 않느냐?”
하인들이 허리를 굽실거리며 홍윤성을 주연이 준비된 안채로 안내했다.
안채로 향하던 홍윤성의 눈에 한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들어왔다.
‘아니, 늙은이가 복도 많구먼. 어찌 저런 절세가인을 끼고 산단 말인가?’
홍윤성이 일부러 큰소리로 헛기침을 하였다. 그러나 여인은 모르는 체
하였다.
‘아니, 이년이? 감히 내가 누군 줄 모르나?’
“에헴-”
그제야 내은비는 고개를 돌려 홍윤성을 바라보았다.
‘앗, 저, 저년은 절재대감의 며느리, 아니 내은비라고하는 그 계집이로
다. 오, 과연. 과연 천하절색이로다. 상감은 어째서 저런 경국지색을 나
에게 아니 내리고 다 늙어빠진 이에게 하사하셨단 말인가? 참으로 아깝도
다. 아까워.‘
“어서 오소서. 인산군(仁山君) 대감, 강녕하시온지요?”
험-. 홍윤성은 내은비의 공손한 인사를 모른 체하고 지나쳐버렸다.
‘빌어먹을 놈의 종자. 네놈이 우리 가문을 풍비박산 내는데 앞장을 섰었
지. 내 결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아니 죽어서 지옥에 가더라도 네 두꺼
운 얼굴을 잊지 않을 것이야.‘
홍윤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내은비는 입술을 깨물었다. 함박눈이 내리
기 시작했다. 눈송이가 내은비의 눈으로 떨어지면서 눈물로 변했다.
‘내, 결코 네놈들의 소행을 잊지 않을 것이야. 죽어도.’
대청에 이어진 큰 포장이 대청 앞마당에 쳐졌는데 포장 아래 멍석이 깔리
고 그 위에 푹신한 깔개가 덮였다. 깔개 위로 좌우로 열 개의 상이 놓이고
가운데 상 세 개가 마련되었다.
가운데가 주연을 주최한 주인의 것이고 좌우측은 주인의 가장 최측근이
나 주인보다 벼슬이나 연령이 높은 자가 앉을 것이라고 했다. 주인이 나타
나자 미리 와서 앉아 있던 내빈들은 일제히 일어나 주인에게 가벼운 목례
를 하였다.
“자자, 앉으시오. 이렇게 누추한 소신의 집을 찾아주신 여러 대신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태 전 상감을 도와 역적 황보인과 절재 등
조정의 기강을 흔들고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했던 두 괴수를 척살하고 또
역심을 품은 이개, 성삼문, 박팽년 등 일부 난신(亂臣)들을 색출하여 모조
리 씨를 말렸소이다. 이제 우리의 세상이 왔습니다.
앞으로 우리 조정대신들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상감을 잘 보필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해야 합니다. 내 그런 의미에서 여러 조정중신들을 초대
하여 조촐한 주연을 준비했습니다. 모쪼록 마음껏 드시고, 부디 즐거운 시
간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자, 우리 함께 상감의 강녕하심과 종묘
사직의 안정을 위하여 건배 합시다.“
“대감, 건배 제의는 이 사람이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주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술이 덜 깬 고령군이 술잔을 잡고 자리에
서 일어났다.
“오. 고령군 대감. 문장으로 보면 이 조선에서 대감을 따를 자가 없지
요. 그대의 학식과 지식은 명 나라에서도 따를 자가 없다지요? 자. 그럼
대감께서 건배사를 해주시구려.“
주인의 좌측에 상을 받고 앉아서 잠자코 술잔을 기울이던 고령군이 금
술잔을 들고 일어났다. 잠시 침을 삼키는 듯 하더니 건배사를 토해내기
시작 했다.
“우리는 수양대군, 아니 상감을 도와 무능하고 문약했던 노산군을 몰아
내고 새로운 조선을 세웠소이다. 상감은 조선에서 혼탁한 세상을 구할 유
일한 지존이시며, 앞으로도 조선 천년의 역사의 기틀을 세우는데 초석이
되실 분입니다. 물론 우리 조정 중신들은 신명을 바쳐 상감의 의중을 헤
아리고 그에 마땅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오.
지금 조선은 안팎으로 우환이 많소이다. 변방의 여진 오랑캐들이 호시
탐탐 국경을 넘보고 남으로 왜적들이 우리 조선 땅을 넘보고 있소이다.
또한 안으로 아직도 이 개나 박팽년, 성삼문 등과 뜻을 함께 했던 무리들
이 우리의 뒷덜미를 물려고 하고 있소이다. 그런 때 오늘 우리는 다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앞으로 우리 중신들이 똘똘 뭉쳐서 상감을 만세 반석에 앉히고 성군
(聖君)이 되도록 절치부심해야 합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제가 건배사
를 마치고 크게 외쳐보겠습니다. 대조선 만세! 상감마마 천세!“
“만세!”
“천세!”
“고맙소이다. 과연 조선 제일의 달변가답습니다. 자, 고령군 대감
한잔 받구려.”
“대감, 어제 밤에는 너무 고마웠습니다. 평신 잊지 못할 밤이었습니
다.”
“그 계집이 마음에 꼭 들은 모양이구려.”
“세상에 태어나 그런 계집은 처음입니다.”
“그 계집은 미색이 출중할 뿐만 아니라 시화서 또 가무에도 뛰어나다오.
내 처음 그 계집이 내 집에 왔을 때 나 또한 사내로서 무한한 기쁨을 맛
보았습니다.“
“대, 대감. 그래서 부탁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부탁?”
“네에, 대감.”
“말씀해보오. 내 고령군 대감의 부탁이라면 못 들어줄게 없소이다.”
“저어. 그게…….”
“무엇을 주저하세요?”
“아, 아닙니다. 다음에 시간이 될 때 대감께 조용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 놈이 내은비를 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계집보는 눈은 있어서.’
“그리하시구려. 자자, 오늘은 어제 밤에 이어서 대취해 봅시다. 이 조선
천지에 상감 빼고 누가 감히 우리의 즐거움을 방해할 자가 있겠소.“
“그렇지요.”
잔치가 중반으로 치달았다. 동원된 기생들의 군무와 칼춤이 이어지고
가야금에 맞춰 장안 최고의 기생이라는 해월이 노래를 하며 춤을 추었다.
사내들은 옆에 기생 한명씩 끼고 앉아 호사를 부렸다. 어떤 자는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생의 젖가슴을 주물러댔고, 어떤 자는 자신이
데리고 온 계집의 치맛자락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은밀한 곳을 지분거렸
다. 동네 사람들은 대문 안으로 들어와 사내들의 질탕하게 노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염병. 쇠돌아범. 저기 저 기둥 옆에있는 년놈들을 보구려. 대낮에도 계
집의 엉덩이를 까고 빨아대는 구려. 참으로 좋은 세상이여. 조정의 중신
들이란 자들이 여염집 아낙들을 빼앗아 자신의 음심을 채우는 대상으로
삼다니. 태조 이성계가 개국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 나라가 이리도 타락
하였을꼬. 젠장.“
“저놈 좀 보소. 기생년 젖퉁이를 내놓고 빨아대는구려. 한 손은 아예 거
웃을 잡고 있지 않는가?“
“어휴. 빌어먹은 세상. 우린 뭔가. 우리처럼 하늘을 무섭게 생각하고 나라
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나라에서 하라는 일 아무 말 못하고 고분고분 듣
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쉿! 이 사람아 조용히 말해. 누가 들으면 경을 치려고 그래?”
“개 같은 세상. 들으라면 들으라지. 제 놈들이 역적인 주제에 진짜 충신
들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그 것도 모자라 충신들의 재산과 여인들까지
가로채고도 저리들 낯짝들이 뻔뻔하다니. 도대체 하늘은 저런 무뢰배 같
은 놈들에게 왜 벼락을 내지지 않는단 말이야.“
“이 사람아. 조용히 떠들어. 누가 들어.”
담장 밖에서도 동네 아낙들은 숨을 죽인 채 안채 대청과 뜰에서 펼쳐
지는 희한한 구경거리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기녀들의 춤에 이어 소
리꾼들의 창이 이어지고 다시 속곳 차림의 기녀와 한량이 한상이 되어
검무를 추자 좌중은 마른 침을 삼켰다.
요염한 자태의 기녀가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며 한량오가 대결을 펼
치기도 하고 한량의 품에 안겨 온갖 해괴한 짓을 하자 술에 취한 내빈들
은 신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기생의 춤이 끝나자 주인이 일어나더니 큰소
리로 외쳤다.
“자, 여러분. 한때 조선의 최고 실력자였던 자의 며느리가 이 사람의
종으로 왔소이다. 여러분들도 알고 있을 것이오. 아직도 그 계집은 자신
이 사대부가의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있소이다. 오늘은 그 계집과 그 계
집의 두 딸을 불러내 가무를 시켜보겠소이다. 괜찮겠소이까?“
주인의 말에 좌중은 큰 박수소리와 웃음소리가 터졌다. 대부분 내은비의
시아버지가 조정의 실권을 잡고 있을 때 감히 시아버지 얼굴도 제대로 쳐
다보지 못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소개를 하지 않아도 세 여인이 누구인
지 잘 알고 있었다.
별채에서 혹시나 주인의 부름이 있을까하여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던 내
은비 모녀에게 속히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로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애들아. 잘 들어라. 오늘밤 이집에서 야반도주해야 한다. 그러니 혹시
주연장에 가서라도 절대 술을 입에 대서는 아니 된다. 혹 누가 술을 마시
라고 강요하여도 절대 마시면 안 된다. 알겠느냐?“
“네에. 어머니. 염려 마셔요.”
내은비는 종의 신분으로 전락하였지만 도도하고 사대부가 며느리의 기
세를 잃지 않으려고 하였다. 곱게 단장한 두 딸을 앞세우고 내은비가 주
연장으로 들어서자. 대취하거나 구경 온 마을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항아보다 더 기가 막힌 내은비의 모습에 사내들은 마른침을 넘겨야 했고
두 딸도 어미 못지않게 절색이었다.
“희야. 경국지색이로다. 상당군(上黨君) 대감, 저 세 여인들이 절재대감
의 며느리와 손녀딸들이란 말이오?“
“허. 정경(正卿), 저 계집을 처음 보오?”
“과연, 미색이로다. 이집 주인 대감은 참으로 여복이 있소이다. 저런 선
녀 같은 여인네 셋을 거느렸으니 얼마나 좋을꼬?“
“허. 정경. 저 세 계집뿐만 아니외다. 죽은 취금헌의 처도 이집에 있소
이다.”
“다 늙은이가 말년에 여복(女福)에 겨워 어쩔 줄 모르겠구려. 참말로 금
상께선 저렇게 잘 난 여인들을 모두 한 사람에게 주다니.“
“여봐라. 오늘은 내 조정의 중신들을 초대하여 주연을 베풀고 있느니라.
너와 네 두 여식은 주연을 흥겹게 해보 거라.“
“네에. 주인마님. 소첩, 주연을 흥겹게 만들어 보겠나이다.”
악사들이 가야금과 대금을 은은히 연주하자 내은비는 목소리를 다듬고 노
래를 시작하였다.
동경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이런만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만 빼앗긴 걸 어찌
하릿고
처용가가 애절하게 끊어질 듯 하다 다시 이어지고, 이어질 듯하다가
끊어지면서 내은비는 노래에 시아버지와 지아비를 그리고 혈육들을 무참
히 살육한 사내들에 대한 원한을 토해내고 있었다. 내은비의 노래와 얼굴
표정에서 섬뜩함을 느낀 몇몇 사람들은 큰 소리로 헛기침을 하면서 애써
시선을 돌렸다.
‘아니, 저 년이. 하필이면 오늘 저렇게 처량한 노래를 부르는 거야?’
주인은 좌중이 넋을 잃고 감상하고 있는 내은비의 노래를 중단 시킬 수
없었다.
“좋다. 좋아.”
술에 대취한 홍윤성은 큰 소리로 좌중의 내빈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큰
소리로 박수를 좋아했다. 내은비의 속뜻을 알아차린 한명회가 홍윤성에
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홍윤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쇠똥어멈, 저 여인이 절재대감의 며느리였다면서요? 정말 얼굴도 곱고
목소리도 아름다운데 어쩌다 하루아침에 종이 되었을꼬? 에구, 아까워라.
지아비와 자식 모두 잃고 원수들 앞에서 노래하는 저 여인의 심정이 오죽
할까?“
“에구. 무슨 팔자가 저리도 기구할꼬?”
내은비의 노래를 듣고 있던 동네 사람들은 수런거리며 내은비의 처지를
동정하기도 하고 마치 자신들의 일인 양 가슴 아파 했다. 내은비의 노래가
끝나자 내빈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개중에는 휘파람을 불며 또 한곡
을 부르라며 성화였다.
“대감, 오늘 주연이 파하면 저 계집은 내가 잠시 빌려가야겠소. 한 달포
만 빌려주시오.“
“허, 수옹. 저 계집은 상감이 내려주신 계집이오. 나도 어찌하기 부담이
간답니다. 상감께 주청해 가져간다면 모르지만 어찌 물건도 아닌데 빌려
준단 말이오?“
“대감은 너무 욕심이 많소이다. 저년 말고도 또 세 년을 거느리고 있지
않소?“
“대감도 하사받은 계집이 있거늘…….”
“있지만 저 계집보다 훨씬 못하다답니다. 오늘 저 계집을 보니 대감이 보물
은 모두 다 차지했소이다.“
홍윤성뿐만 아니라 하객들은 모두 내은비와 내은금 한금의 자색에 반해
흑심을 품었다. 내은비에 이어 장고와 피리소리에 맞춰 내은금과 한금이
춤을 추기 시작하자 좌중은 조용했다. 이때 대취한 대신 두 명이 나오더니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두 여인을 껴안았다. 춤판이 이상하게 되었지만
좌중은 박수를 치며 킬킬거렸다.
밤늦게 까지 이어진 주연은 새벽이 돼서야 끝났다. 내빈들은 각자 데리
고 온 하인들에 의해 집으로 돌아갔고, 주인 대감도 대취한 채 사랑채에 곯
아 떨어졌다. 주인이 코고는 소리를 확인한 내은비는 별채로 들어 두 딸에
게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힌 후 밤이 이슥하기만 기다렸다. 달도 없는 밤
이고 하인들도 대부분 술에 취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은금은 손님들이 건네는 술 서너 잔을 받아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
주연 중간에 고령군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간밤에 내은비와 한 약속
때문이었다. 가마 세대를 담장 밖 으슥한 곳에 숨겨두고 내은비가 나오기
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자시(子時)가 훨씬 넘은 듯 했다. 내은비와 두 딸은 어둠을 의지한 채 한
발 한발 움직여 사랑채 오른편 담장 쪽으로 향했다. 심장이 떨려 한발국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두 딸을 뒤에 바싹 따르게
하고 천천히 움직였다. 별채와 안채를 통하는 작은 문이 삐걱하며 소리를
냈다. 다행히 집안에 개를 키우지 않았다.
“어머니, 도저히 심장이 떨려서 못가겠어요.”
“은금아, 힘을 내.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노비로 살아가야 한다.
어서 힘을 내. 오늘 아니면 이집을 빠져나갈 기회가 없단다. 밖에서 우리
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어서 힘을 내.“
“언니. 힘내요. 잠시 후면 우리는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가 될 수 있
어요. 힘내세요.“
한금이 내은금을 위로했다. 도둑고양이처럼 세 여인이 사랑채 오른 편
담장에 다다랐다. 겨우 어린 아이 한명 기어서 빠져나갈 수 있는 개구멍
이 나 있었다. 내은비는 먼저 한금은 내보내고 이어 내음금을 나가게 하
였다. 그러나 내은금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어머니, 왠지 이상해요. 다시 별채로 돌아가요. 어머니.”
“안 돼. 지금 도망가지 않은 면 천추의 한이 된단다. 어서 힘을 내. 한금
아. 어서.”
내은비는 억지로 개구멍으로 딸을 내보내고 자신도 얼른 개구멍을 빠져
나왔다. 세 모녀가 개구멍을 빠져나와 담장을 끼고 돌아섰을 때 저만치 가
마 세 개가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아, 고령군 대감이 과연 약속을 지켰구나. 고맙기도 하여라.’
가마 세 개를 가마꾼들이 메고 서 있다가 내은비 모녀 일행을 보자 손짓
을 했다.
“여깁니다. 여기. 누가 보기 전에 빨리 가마에 타세요.”
“고맙습니다.”
“이제부터 서너 식경 쯤 가마를 타고 가야합니다. 가마 안에서 얌전히 계슈.”
세 여인을 가마가 날아갈 듯 목멱산 쪽으로 향해 달렸다. 가마꾼들은 쉬지
도 않고 달리면서도 한마디 말도 없었다. 종종 멀리서 개 짖는 소리와 야경
꾼들의 딱딱이 치는 소리이외에는 조용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자. 내리슈. 다 왔소.”
한적한 산 아래 있는 기와집 앞에 가마가 멈추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쉬
면서 세 여인이 가마에서 내렸다. 아담한 집이지만 지은 지 얼마 안 돼 보였
다. 한 남자가 앞장서면서 세 여인을 집안으로 인도하였다.
“대감마님, 모셔왔습니다.”
안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봉당에 신이 한 켤레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방에는 남자 한사람 밖에 없는 것이 확실했다.
“험-, 들이 거라.”
방안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내은금은 의아해했다. 많이
듣던 기침소리였다. 내은비가 방안에 막 들어서려다 그만 문지방도 넘지 못하
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네 이년들-, 고이얀. 내 네년들을 은애하였건만 나를 배신하고 도망을 쳐?”
내은비 앞에 서있는 남자는 주인이었다. 당초에 약속했던 고령군 대감은 그
곳에 없었다.
‘아아,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어떻게 해서 저 늙은이가 이곳에 있단 말이
더냐?‘
분명 집을 빠져 나오기 전에 분명 이 남자는 사랑채에서 코를 골고 있었는데.
어찌된 것인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네 이년들. 너희들이 그리 쉽게 나에게서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느
냐? 헛된 짓을 하였구나. 네 년들은 이 조선 천지 어디에도 갈 데가 없다.
이보시게 고령군 대감 이제 나오시게.“
병풍 뒤에서 한 사내가 나왔다.
“앗, 저 남자가?”
내은비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서서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간밤
에 정욕을 불태우며 믿었던 사내였건만 그 사내에게 속을 줄 내은비는 꿈에
도 생각하지 못했다.
“대감, 약속대로 저 계집을 넘겨주셔야 합니다.”
“그리하리다. 나머지 두 어린 계집도 필요하면 거두시구려.”
“아닙니다. 저는 저 내은비만 있으면 되옵니다.”
“대감, 상감께 내 이야기를 잘 말씀해 주시고 곧 조정에 승진 인사가 있을
예정이오. 상감께서는 대감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지 않소.“
“대감, 염려 붙들어 매세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역사란 이불속에서
도 이루어 지지만 사내들끼리 오고가는 술잔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법이지
요. 대감 내 상감께 대감이 이번 승진인사에서 반드시 영전하도록 고하겠
소이다.“
-끝-
_()_ 끝까지 함께하신 님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항상 여여하시고 만사 형통 하소서.
인천 소래나루터에서 여강 최재효 拜
두번 우는 새(2) (0) | 2007.1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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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우는 새(1) (0) | 2007.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