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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2)

* 창작공간/단편 - 뽕

by 여강 최재효 2007. 11. 26.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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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강 최재효

 

 

                                                                                                  終




 

 군청색 하늘에 소금을 흩뿌려 놓은 듯 은하수가 소리 없이 대포산위로 가로질러

흐르고 이따금 무리에서 이탈한 유성들이 긴 꼬리를 달고 앞산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반딧불이 한 쌍이 원두막 앞문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해주의 시선을 유혹했다.


 “해, 해주.”
 “응? 왜 기정씨이?”


  “나. 기분이 묘해. 우리가 마치 사랑에 빠져 부모님 몰래 도망친 먼 옛날 어느

나라 왕자와 공주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동화책에도 비슷한 이야기 많이 나오

잖아. 그리고 우리 어릴 때 소꿉장난하며 난 늘 아기가 되어 젖병을 물고 있었고,

해주씨가 늘 엄마가 되곤 했지. 오늘밤에도 우리 소꿉장난 할래?”


 기정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해주의 불룩한 젖가슴을 쓰다듬었다. 마치 아기가 엄마

의 젖을 먹기 전에 이리저리 가지고 지분거리는 것처럼. 기정이 해주의 젖무덤을

입술로 애무하자 해주의 몸이 달아올랐다.


 “기, 기정아…….”

 해주는 기정이 노골적으로 젖가슴과 엉덩이를 진하게 애무해 오자 인내에 한계를

느끼며 기정의 입술을 살며시 눌렀다. 그때 산비둘기가 제 짝을 찾았는지 사납게

울기 시작했다. 원두막을 배회하던 반딧불이 들도 제 각각 한 몸이 되어 원두막 문에

매달려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밖에 있던 검은 그림자가 원두막 앞문에 붙어 서서 두 사람의 뜨거운 밀어와 신음

을 듣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원두막 안에서 달콤한 입맞춤과 싱싱한 두 육체의

격렬한 율동이 번갈아 이어졌다. 폭풍우가 그친 뒤 원두막 안은 죽음 같은 고요가

엄습했다.


 “해주씨, 아니 해주야.”
 “응?”


 “오늘밤 있던 일 우리 엄마한테 절대로 비밀이야. 알았지? 우리 엄마가 알면 난

죽음이야. 죽음.”
 “그런데, 학생이 그렇게 어른 흉내를 완벽하게 낼 수 있어?”


 해주가 아직 채 식지 않은 열기에 흡족해 마면서 기정이의 뺨을 어루만졌다.

기정이 또한 자신도 모르게 해주에게 남자로서 어른 행위를 한 것에 대하여 만족해

했다. 해주는 기정과의 오늘밤 정사(情事)를 가지게 될 줄 예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공부만 하는 샌님으로 알고 있던 기정이 순간적으로 사나운 수사자로 돌변

하여 자신을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하여 더욱 흥분했다.

 

 그냥 막연한 연애심리로 기정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 이었었다. 물론 남자

를 전혀 모르는 해주는 아니지만 기정이와 야릇한 행위가 이루어 질 것이란 일말의

기대가 현실이 되었다. 공부만 하는 샌님이라고 얕본 것이 잘못이었지만 해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어 가슴이 뿌듯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너에게 아무 해가 가지 않도록 할께.”
 이번에는 반라(半裸)가 된 해주가 기정이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조금 전까지 가슴

이 떨리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격정의 순간이 이내 온 몸으로 잔잔한 평화의 파도

처럼 퍼져 나갔다. 원두막 밖의 검은 그림자는 주먹을 쥐고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며 오던 길을 되돌아 나갔다. 
 

 창밖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내린 눈이 눈보라가 되고 어쩌다 지나

가는 자동차는 하얀 안개 속을 달리는 듯 했다.


 “아저씨, 무슨 생각을 그리 오래 하세요? 찌게 다 식겠어요.”
 “아주머니, 송씨네 셋째 딸은 그 후 좋은 소식이 있었어요?”

 사내의 눈에 물기가 어려 보였다.


 “좋은 소식이 다 뭐예요. 그 딸만 불쌍하게 되었지요.”
 “예, 불쌍하다니요?”


 “모르셨어요? 동창이라면서? 하기야 오랜만에 들르셨으니.”
 주인여자는 한숨까지 쉬어가며 마치 자신의 피붙이의 일처럼 생각하는 듯 했다.


 “그 처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아마 죽었을 거 에요. 아이를 낳았다고 집에서 내쫓다시피 해서 한 삼사년 친척집에

있다가  돌아왔는데 반쯤 정신 나간 사람 같았어요. 나중에 폐병이 걸려서 몇 년 고생

하다 집을 나갔어요. 병든 몸으로 집을 나갔으니…….” 


 “또 다른 동네 소식은 없나요?” 

 “동네 소식이요? 동네 소식이라, 뭐가 있을까? 참, 다리한쪽 없는 차씨네 막내아들이

정신병자가 되어 가끔 동네에 나타났었어요.”


 ‘차씨네집 막내아들? 차씨네 집 막내가 왜 불구가 되고, 정신이상자가 되었을까?’
 사내는 힘없이 반쯤 남은 소주잔을 비웠다.


 “아주머니, 그 차씨네 집은 지금 어찌되었어요? 동네에서 가장 큰 부자였는데?”
 “말도 마세요? 그 차씨 부인은 몇 해 전 불구의 막내아들 때문에 병을 얻어 돌아가시고 그 집은 풍비박산 났어요. 지금은 흉가가 되었지요.”
 사내는 가슴이 아려왔다.

 

 다음날 밤 10시쯤 해주는 다시 어젯밤 기정을 만났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진호를

만나기 위해서 나갔다. 진호가 벚나무 위에 올라가 앉아 막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참이었다. 해주는 진호가 값비싼 화장품과 양산을 선물로 준 보답으로 한번만 만나

보기로 했다. 그네 밑에서 서성거리자 진호가 살며시 다가갔다.


 “해주씨. 고마워.”
 해주는 말이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쳐다보았다.


 “우리 다른 데로 가요. 이곳은 동네 사람들이 놀러 나와서…….”
 해주는 말없이 진호가 가는 곳으로 따라갔다. 묵직한 물건들이 담겨있는 검정비닐

봉투가 진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진호는 기정이네 뽕밭이 있는 돌박지로 갈 참이었다. 


 “진호. 어디로 가는 거야?”
 “으응, 저기 박 씨네 참외밭에 있는 원두막.”


 해주는 참으로 묘한 기분을 주체 할 수 없었다. 어제 밤 기정이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

장소였는데 오늘 또 진호가 그곳으로 가자고 하니 안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동네 사람들의 눈에 뜨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들판을 함부로 쏘다닐 수 도 없었다. 


 “진호, 나 거기 가기 싫어. 우리 다른데 가자.”

 해주가 뒷걸음질치듯 하자 진호는 실망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읍내로 걸

어 나갈 수도 없었다. 읍내에 가면 다방도 있고 맥주집도 있겠지만 한밤중에 시오리

를 걸어 그곳에 갈수 도 없었다. 


 “해주씨, 마땅히 갈 곳이 없는데 거기 말고…….”

 진호가 말끝을 흐렸다.
 “박씨 아저씨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초저녁에 보니까 그 아저씨는 이미 거나하게 취해있었어. 요즘 참외를 팔아서 재미

좀 봤나봐.” 

 진호는 해주를 안심시켰다. 원두막은 닫혀있었다. 진호가 먼저 들어가 호롱불에 불을 붙였다. 


 “자, 해주씨. 올라와요.” 


 진호가 해주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해주는 혼자서 계단을 올랐다. 어젯밤 기정이와

사랑을 나누던 장소였다. 아직도 기정의 풋풋한 체취와 자신의 신음소리가 묻어있는

듯 했다.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졌다. 진호가 검정 비닐봉투속에서 소주 한 병, 맥주

두병, 오징어포와 과자를 꺼냈다.


 “자, 우리 한 잔해요.” 


 진호가 빈종이 잔을 내밀었다. 해주는 진호가 마치 ‘어젯밤 네가 한 일을 다 알고 있으니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해’라고 은근히 위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주씨 고마워.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어. 내가 해주 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지?” 

 해주의 속내를 모르는 진호는 해주가 옆에 앉아있다는 사실에 흥분이 되었다.


 “밤이 깊었어요. 그리고 이 곳은 불안하구요. 우리 이 술 마시고 얼른 내려가요.”

 해주는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에는 이 곳이 마치 신혼 첫 날밤을 보내는 낙원 같은 곳이었지만 오늘 밤은

지옥 같은 해주의 마음이 별로 유쾌하지 못했다. 


 “해주씨. 나, 나 비록 중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꿈이 많아요. 나중에 도시로 나가서

돈 벌면서 공부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에요. 난 해주씨처럼 예쁘고 착한

여자가 필요해요. 제발 내 마음을 받아줘요. 해주씨.”
 진호가 술기운에 해주를 안으려 하자 해주는 냉정히 뿌리쳤다.


 “진호씨, 난 아니야. 난 진호씨가 선물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인사차 나온 것이지

난 진호를 마음에 둔 적 없어. 나도 공부를 더해서 보란 듯이 멋진 직장에 취직할

거예요. 내가 시골에서 뽕이나 따고 누에나 키우고있다고 우습게보거나 하면 정말

이지 불쾌하단 말이에요.”
 해주는 맥주 두병을 모두 마셔 버렸다.


 “야, 임마들아. 저기 박서방네 원두막에 가서 좀 쉬었다 가자.”


 어디서 술을 거나하게 마신 인근 동네에 사는 불량기 있는 사내들 세 명이 원두막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종종 박 씨네 원두막에 놀러와 참외도 따서 먹기도

하고 바람기 있는 동네 처녀애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 밤새 이상한 짓을 하던 곳이

기도 하였다.

 

 세 사내들은 원두막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자 호기심이 발동했다. 참외를 다음날 읍내

장에 내다 팔기 위해 박씨 부부가 밤늦게 일하 는 때를 제외하곤 웬만해서 원두막에

불이 켜지는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폿집 여자는 멍하니 서서 창밖을 내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눈이 그친

듯 했다. 창문 밖 천지가 온통 하얀 세상으로 변해있었다. 눈이 오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심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추억을 되씹곤

한다.

 

 사내도 눈이 그친 창밖을 보며 차갑게 식은 찌게에 수저를 넣고 매콤한 국물을 한입

떠 넣고는 다시 담배 한대를 빼 물었다. 연기가 천정을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올라

간다. 주인여자가 다시 사내 앞에 와서 앉는다.


 “아주머니, 그 후 그 아가씨 소식 좀 알면 알려 주세요.”
반쯤 피우던 담배가 사내의 구둣발에 처참히 뭉개진다. 나머지 소주를 마셔버린 사

내의 눈이 충혈되있다. 가끔 기침을 심하게 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나도 들은 소식인데요, 그 아가씨가 얼굴도 반반하고 몸매도 괜찮아서 사내들이

많이 따랐나 봐요. 서울서 큰 식당, 다방, 술집으로 전전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서울 청량리 588에서 봤다고 하기도 하고, 정확한 건 아니에요.”
 사내는 충격을 받아 다시 담배 한대를 쉬지도 않고 피워대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찌 되었나요?”
 주인여자는 사내가 성서방네 셋째 딸에 대하여 꼬치꼬치 물어오자 그 처녀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고 동시에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에 착오가 있

그 사내에게 자칫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처자를 588에서 봤다는 것은 그 처자와 비슷한 아가씨를 봤다는 이야기지

꼭 성씨네 딸이라는 것은 아니에요. 제 말씀 잘 새겨들으세요.” 


 주인 여자는 방금 전 자신이 한 말에 혹시 사내가 마음을 쓸까하는 노파심에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때, 이웃동네 사는 애꾸눈 곽씨와 김씨가 주점 안으로 들어

왔다.


 “아이구, 이게 누구셔? 그동안 어딜 갔다 인제 온겨 그래? 애간장 다 녹는 줄

알았구먼.”
 주인여자는 길 떠나갔던 임이라도 돌아온 듯 엉성한 충청도 사투리까지 써가며

아양을 떤다.

 

 주점 안에 웬 낯선 사내가 앉아있자 그들은 본능적으로 경계의 눈빛을 띠었다.

사내가 앉아있던 테이블 옆으로 자리를 잡더니 안주로 삼겹살과 막걸리를 주문

했다. 곧 버너위에 올려놓은 석쇠에서 삼겹살이 노릿노릿 익어가자 곽씨가 김씨

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해주는 진호의 이야기를 듣고 맥주 두병을 단숨에 마시고 진호가 마시고 남아있던

소주까지 마셔버렸다.


 “해, 해주씨?”


 “나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는데, 난 이런 촌구석에서 썩을 여자가 아냐, 난 내 꿈이

있어. 내일이라도 당장 서울로 올라가 내 꿈을 위해 뛰고 싶다고. 지금은 여건이 안돼

잠시 집에 있는 거야. 난 아직 연애니 사랑이니 이런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선물은 정말로 고마워. 오랫동안 잊지 않을게.”
 해주는 긴 한숨을 토했다.


 시골구석에서 어쭙지않은 촌놈에게 자신이 평가절하 받는 느낌이 들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해주의 심정을 진호는 이해하지 못했다. 술이 오르기 시작했다. 선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호에게 이끌려 이곳 까지 왔지만 해주의 기분은 엉망이었다.

진호는 술에 취한 해주가 흐트러짐을 보이자 음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살며시 해주의 어깨를 껴안으려 하자 해주는 가만히 있었다. 진호는 해주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허락을 하는 줄 알고 더욱 세게 팔에 힘을 주며 껴안으려고 하자

해주가 진호의 뺨을 후려갈겼다.

 

 “나쁜 자식, 나를 이렇게 하고 싶어서 이곳에 데려왔니?”
 “나쁜 놈, 넌 늑대야, 늑대”

 앙칼진 해주의 외침이 원두막에서 새어나와 돌박지 밤하늘을 갈랐다.


 “야, 너희들도 들었지? 분명히 저 원두막에서 나온 소리. 박씨가 자기 마누라 하고

싸우나? 암튼 가보자.”

 불량 끼가 가장 심한 사내가 속삭였다. 검은 그림자 세 개가 살금살금 원두막을

해 접근해갔다. 


 “해주, 사랑해. 난, 난 너를 내 애인으로 삼고 싶어. 서울에 가지 말고 이곳에 살면

안돼?”

진호가 해주를 달래보려고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싫어, 난 이곳이 지긋지긋해. 정말이지 지겨워 죽겠다고.” 


 진호가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면 해주는 크고 앙칼진 목소리를 냈다. 더 이상 해주를

말로 설득 할 수 없다고 판단하자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본전의식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여자를 완력으로 제압하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법이다.  

진호는 강제로 해주를 껴안고 원두막 바닥에 눕혔다.


 “난, 난 너를 사, 사랑한단 말이야.”

 진호의 우악스런 손이 얇은 티셔츠 속으로 들어가 해주의  젖가슴을 감싸 안았다.

동시에 해주의 입술을 더듬었다.


 “악, 안돼. 이러지마. 이러지마 이 새꺄.”

 원두막 천정에 매달린 호롱불이 심하게 흔들거렸다.


 원두막 아래에서는 세 개의 시커먼 그림자가 숨을 죽이고 안에서 벌어지는 남녀

의 원색적인 행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원두막 안에서 계속해서 해주의 앙칼

진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내부의 상황을 감지한 세 사내들은 침을 삼키면 참기 힘

든 본능을 달래고 있었다.


 “야, 박씨는 아닌데. 어떤 놈이 지나가던 여자를 납치해서 강간을 하려고 하나봐.

이 곳이 우리 구역인데 언놈이 겁도 없이, 우리가 구해주자. 저 여자 망가지기 전에.”
 “가만히 있어봐. 새꺄. 좀 더 살펴보고.”

 다른 사내가 주의를 주었다.


 “아무래도 저 새끼가 여자 죽이겠다. 우리가 구해주던지, 아니면 여길 뜨자. 괜히

공범 되지 말구.” 


 세 사내는 숨을 죽이고 안에서 흘러나오는 심음소리에 말초신경이 자극되자 참기

어려웠다. 세 사내끼리 옥신각신 속삭였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아악-. 해주의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다시 한번 산골짜기의 정막을 깼다.


 “에이, 시팔. 내가 저 새끼를 가만두지 않을 꺼다.”

 제일 성질이 급한 사내가 원두막으로 뛰어들자 나머지 두 명의 사내들도 원두막

안으로 뛰어 들었다.


 애꾸는 곽씨가 주인여자를 옆 의자에 앉히고 엉덩이를 쓰다듬자 여자는 몸을 꽈배기

처럼 꼬며 간드러진 웃음을 흘렸다. 함께 온 김씨도 두 사람의 농지거리를 보며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야, 임마. 너만 재미 보기냐?”

 김씨가 질투 섞인 한 마디를 던졌다. 옆에 이방의 사내가 있었지만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주인여자가 사내를 바라보며 곽씨와 김씨에게 주의를 주자 그들은 점잔을 빼며 다시 낯선 사내를 쳐다보았다.


 “옛날, 저 건너 마을에 살았었데요. 오랜만에 왔는데 아까부터 술만 마시며 전에 점말 살던 성씨댁 소식을 꼬치꼬치 물어보더라고요.”
 주인여자가 사내의 눈치를 보며 두 사내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러자 애꾸눈 곽씨의 한쪽 일그러지면서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성씨댁, 소식을?”
 곽씨는 신음소리를 냈다. 김씨도 주인여자가 성씨 댁을 들먹이자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내는 세 사람의 짖꿎은 행동을 곁눈질로 바라보면서 생뚱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마디 던졌다.


 “제기랄, 도시나 시골이나 그저 늑대새끼들은 계집을 보면 물불 안 가리는구먼.”

 사내가 알아들 듯 말 듯한 소리로 혼자 중얼거렸으나 귀 밝은 곽씨가 알아듣고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저 새끼가.'
 “아주머니,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고 찌개 좀 다시 해줘요.” 


 사내는 시큰둥한 얼굴이다. 김씨가 그 사내의 얼굴을 곁눈질로 자꾸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을 보면 분명 뭔가 골똘히 생각해 내려는 모양이다. 


 “그래, 맞아 그놈이야. 그놈”
 김씨는 기분 좋게 주인여자의 풍덕한 엉덩이를 주무르던 애꾸눈 곽씨에게 눈을 찡끗

하면서 밖으로 불러냈다.


 “야, 애꾸야. 너 혹시 저놈 어디서 본 적 없냐?”
 “글쎄? 자세히 보지 못해서.”


 “저 새끼가 널 애꾸로 만든 그 새끼야. 내 기억이 분명해. 그날 밤 너를 이렇게 만든

놈이 틀림없다고.”
 애꾸눈 곽씨는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다. 정신을 차린 애꾸눈 곽씨가 다시 주점 창문으로 다가가 술 마시고 있던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더니 주먹을 콱 쥐었다.


 “맞아, 저놈이야.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든 놈이 바로 저놈이 맞아. 원수는 외나무다리

에서 만난다더니, 그렇게 찾아 헤매던 놈이 내 눈앞에 제 발로 나타날 줄이야.”


 “맞지? 그지?”
 김씨가 애꾸눈의 동의를 구했다.


 “그래, 맞는 것 같다. 그날 밤 본 그 얼굴이야, 죽어도 그 마귀 같은 얼굴을 잊을 수 없지, 그런데 어떻게 저놈이 여길 왔지?”


 “주인여자가 좀 전에 그랬잖아, 저놈이 성씨네 소식을 꼬치꼬치 묻더라고. 분명해

저 놈이 그날 밤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든 그 놈이 틀림없어. 제 발로 기어들다니. 복수를 해야 해. 복수를…….” 


 김씨는 애꾸눈에게 해묵은 복수를 하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오랜 과거일이고 당시의

일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야기 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애꾸눈은 그 날 밤일을 떠올

리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래, 오늘 저놈을 그냥두지 않을 테다.”

애꾸는 두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방금 전 마신 술기운이 갑자기 전신을 휩싸고

돌았다.


 흐릿한 불빛아래의 원두막 안 광경은 열기로 뜨거웠다. 해주는 거의 전라의 상태로

진호의 아래에 깔려 버둥대고 있었고, 진호 역시 하의가 벗겨져 있는 상태여서 방금

전까지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두 남녀는 갑자기 들이닥친 세 남자를 보자 진호는 대경실색, 눈앞이 아찔했다. 


 “야, 이새꺄, 연약한 여자를 강간해? 이 나쁜 새끼를 봤나?”
한 사내가 진호의 배를 걷어차자 진호는 숨이 멈을 듯 배를 움켜쥐고 나동그라졌다.  

 
 “히야, 고년 엉덩이 죽이네.”
 세 사내는 갑자기 해주의 나신(裸身)을 덮쳤다. 서로 옥신각신 하더니 덩치 큰 사내가 먼저 해주를 강간하기 시작했다.


 “어, 엄마야-.”
 술에 취한 해주의 육신은 아무 저항도 못하고 무너져갔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진호의 두 눈에 불이 켜지면서 주머니에 있던 칼을 빼어들고 해주를 덮치고 있던 사내에게 덤벼들었다.


 악-.  덩치 큰 사내가 비명과 동시에 얼굴을 감싸더니 나뒹굴었다.


 “내 눈, 내 눈, 앞이 안보여.”
순식간에 사내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이 새끼들, 모두 죽여 버릴 테다.” 


 진호가 다시 칼을 휘두르자 두 사내는 도망을 쳤고 진호는 얼른 해주를 들춰 업고

 원두막을 빠져나와 동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의 인사불성이 된 해주는 아랫

도리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진호는 방금 전에 자신이 얼마나 큰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다.


 “에이, 빌어먹을......”
 진호는 만신창이가 된 해주를 옆에 뉘여 놓고 풀밭에 앉아 담배 한대를 입에 물고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얀 담배연기가 은하수로 퍼져 올라갔다. 밤이슬에

촉촉이 젖은 풀이 엉덩이에 차갑게 물들었다. 


 ‘이일을 어쩐다, 분명 내 손으로 한 놈을 죽인 것 같은데......, 아니 얼굴에 칼을

맞았다고 죽지는 않겠지?’
 진호는 혼자 중얼거리며 인사불성이 되어 풀밭에 누워있는 해주를 바라보았다.    

 

 세 사내들이 원두막 안으로 들이닥치기 전까지 열락을 넘나들던 육신이었다.

어두운 밤이지만 뽀얀 해주의 허벅지 살이 진호의 음심(淫心)을 자극했다. 살며시

해주의 입술에 입맞춤을 해보았지만 해주는 술에 취해 미동도 없었다. 조금 전

까지 자신의 육체가 어떻게 유린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진호가 다시

한번 죽은 송장처럼 꼼짝도 않는 해주의 가슴위로 올라갔지만 긴장 된 탓으로 남성

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래, 이대로 도망치는 거야, 그놈들이 분명히 나를 경찰서에 신고를 했을 거야.

그리고 이 계집애도 정신이 들면 역시 나를 강간죄로 신고할 것이고......’
 멀리서 별똥별 하나가 마을 뒷동산으로 떨어졌다.


 ‘서울로 튀자, 서울에 있는 동식이한테 가는 거야. 그 녀석은 나를 보호해 줄 거야.’


 진호는 다시 해주를 들춰 업고 마을로 내려갔다. 간신히 해주네 집 대문 앞에 해주를

내려놓고 도망치듯 집으로 달렸다. 잠시 일이 있어 부산에 있는 친구한테 다녀오겠

다고 메모를 써놓고 가족들 몰래 집을 나왔다. 신작로에는 아무도 다니는 사람도

차도 없었다. 혹시 경찰들의 불심 검문이 두려워 읍내의 반대 방향인 J읍쪽으로 걸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검은 지프차 한대가 이장네 집 마당에 도착하고 이어 이장은

반장들을 소집하고 회의를 열었다. 형사들은 어젯밤에 돌박지에서 살인미수 사건이

터졌는데, 피해자는 가해자를 모른다고 했으며 범인은 중키의 20대 초반의 남,여

라고 설명을 하고 동네를 수소문 하여 간밤에 없어지거나 수상한 사람을 즉시 신고

하라고 했다.

 

 반장들이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간밤에 없어지거나 상처를 입은 사람을 조사했다.

두 식경 만에 동네에서 진호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형사들은 진호의 아버

지를 경찰서로 연행했으나 그 자리에 있던 여자가 해주라는 사실은 밝혀내지

못했다.

 

 사내는 소주병을 비우고 마지막 남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눈이 발목이 잠길 정도로

쌓였다. 사내는 담배 한 모금 피우고 기침을 해대고 다시 한 모금 피우고 심하게 쿨럭

거렸다. 대폿집 여자는 은근히 걱정하기 시작했다. 읍내로 가는 차도 끊긴 상태이고

택시도 없었다. 밖에 있던 김씨와 애꾸눈의 곽씨가 주막 안으로 들어와 사내의 눈치를

보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조금 왁자지껄했던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손님, 이제 일어나세요. 술을 너무 많이 드신 것 같아요. 나도 가게 문을 닫아야

겠어요.”


 두 사내가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먼저 주막을 나섰다. 사내는 어디로

야할지 막막했다. 시오리가 넘는 읍내까지 걷자니 중간에 얼어 죽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혼자 사는 여자에게 재워 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다. 


 “아주머니, 택시 좀 불러주세요.”
 주인 여자가 여기 저기 전화를 해보았지만 눈이 너무 많이 내려 택시운행이 어렵다고 한다. 사내는 난감해 하는 눈치다. 사내는 계산을 하고 나왔지만 막상 갈 곳이 없

었다. 


 “그래, 무작정 읍내로 가보자. 두세 시간 고생하면 되겠지.”

 “손님, 예전에 성말에 사셨다면서요? 지금도 그 동네에 아시는 분이 계실 거 아니

에요?”


 대폿집 여자가 문을 나서는 사내 등 뒤에 대고 소리쳤지만 사내는 묵묵부답이다.  

세상이 온통 하얀색으로 덧칠되어 도로와 논밭이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사내가 걸어간 뒤로 발자국이 일정 간격을 두고 생겨났지만 1분도 안 돼 흔적이 없어

졌다. 사내가 비틀거리며 읍내를 향해 걷기 시작하자 50여 미터 뒤에 두개 음습한

형체도 뒤따르기 시작했다.

 

 동네를 벌집 쑤시듯 했던 돌박지 살인미수 사건을 미결로 남겨둔 채 동네는 평상

시의 안정을 되 찾아갔다. 그러나 해주의 몸속에는 불행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고,

임신 경험이 없는 해주는 4개월이 넘어서야 자신이 홀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충격을 받은 해주는 두 달 정도 혼자 고민하다가 친구와 병원을 찾았지만 임신중절

수술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순자야, 이일을 어찌하면 좋니? 우리 엄마 아부지가 이 사실을 알면 나를 가만

두지 않을 텐데, 나 이제 어떻게 해야 되니, 응?”


 “누구야, 응? 널 이 지경으로 만든 놈이 누구냐고, 응? 그 놈한테 가서 책임을 지라

해. 바보처럼 혼자 맘 고생하지 말고 이 바보야.”


 해주는 돌박지 살인미수 사건이 있던 날 밤을 전후로 서너 명의 남자와 접촉이 있었

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이의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진호? 아니 그날 밤 그 남자들? 아냐, 아냐, 내 몸속에 사랑의 씨앗을 뿌리 사람은

기정이 밖에 없었어, 기정밖에......‘

 해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차라리 기정이 한 사람과의 만남만 있었다면 차씨 부인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틀 사이에 여러 남자를 받아들인

해주는 자신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씨앗이 기정의 씨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흘러갔고 급기야 해주의 어머니가 눈치를 챘다.


 “이년아, 네년이 어쩐지 밤마다 고양이처럼 들락거리더니 결국 일을 내었구나.

어이쿠, 이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시집도 안간 딸의 임신에 충격을 받은 해주 어머니는 자리에 눕고 말았다. 해주의

아버지 역시 믿기지 않는 딸이 임신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고 날마다 술로 살다시피

했다.


 결국 해주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서울 사는 이모네 집으로 보내졌고, 거기서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다시 한번 동네는 처녀의 출산소식에 큰 소란이 일었고 해주가

출산한 아기의 아버지가 김 씨네 둘째아들이라는 둥, 박 씨네 큰 아들이라는 둥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름이 오르내린 애꿎은 동네 총각들은 집밖에 나돌아 다니기를 꺼려했고 동네는 깊은 충격 속에 휘말렸다. 이 소식은 서울서 대학에 다니고 있던 기정의 귀에 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기정은 날마다 괴로움 속에서 자신을 학대했다.


 “아, 내가, 내가 해주의 인생을 망쳤구나. 내가......”


 기정은 잘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일찍 군대에 입대해 버렸다. 상병 때 사격훈련장

에서 하급 사병의 실수로 왼발을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고 의가사 제대를 한 후 학업을 포기하고 입산수도를 한다며 긴 세월 동안 종적을 감추었었다.


  ‘그래, 그렇게 되었구나, 이 모든 게 내 욕심에서 비롯되었구나, 내 욕심에서. 그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데. 인과응보야, 인과응보. 내가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쳐봐도 마(魔)가 끼고,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것도 모두가 나의 업보(業報)

때문일 거야, 내 업보. 빌어먹을 놈의 세상......'


 온통 백설로 뒤덮인 세상이 만취한 사내의 눈에는 목화송이처럼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발길은 옛 추억이 묻혀있는 돌박지를 향하고 있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읍내

경찰서 강력계에 전화가 울렸다. 주민신고 전화였다.
 “여기 성말 돌박지인데요. 웬 남자가 눈 속에 죽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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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1)  (0) 200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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