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직선

by 여강 최재효 2007. 4. 1. 00:05

굽은 직선

- 여강 최재효

              내 지금까지의 삶은
              부모님 말씀 따라
              한 치 어긋남 없었고
              태양과 달의 가르침 또한
              흠 잡을 데 없이 옳았다고 여겨왔느니

              한 데 눈길 줄 여유 없어야 살수 있었고
              외도(外道)는 곧
              천길 낭떠러지라 믿었던
              그 생명같은 선(善)이
              착각이었음을 이제야 보았네

              그대가 서울서 로마까지
              비행기를 타거나
              부산서 뉴욕까지 배를 타보라

              수치(數癡)가 되지 말지어다
              말기(末期)의 환자가 되지 말지어다
              차라리 두 눈 뜨고
              두 귀 열고 바보가 되는 게 좋겠다

              나는 분명 앞만 보고 걸었는데
            지금 뒤돌아보니
              원(圓)을 사모하여 늘 그 자리라네
              참으로 우습지아니한가

              이제 나는 갈지자 걸음을 걷겠네
              그리하면
              처녀애들처럼 새침하지 않아도 되고
              천국행 차표를 구하려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며
              자비로운 임은 나를 어여삐 여기리

            임도 종종 길을 잃을 때가 있으리
              대상(隊商)들이 아라비아 사막에서
              신기루에 홀려서
              죽음의 냄새를 맡기도 하는 것처럼

해는 떠서 곧장 가는데

서해(西海)에 스스로 수장(水葬) 되고나면
결국, 자식이 일탈하고 말았네

2007. 3. 31. 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