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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에 걸린 아미

* 창작공간/Essay 모음 2

by 여강 최재효 2006. 11. 1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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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융프라우 정상에서  필자

 

 

  (2) 알프스에 걸린 아미(蛾眉)

 

 

 

 

 

                                                                                                                          - 여강 최재효 

 

 


  프라하 공항에서 쌍발 제트 엔진의 날렵한 스위스 흰색날개에 올랐다.

까를의 땅을 조망(眺望)해 보면서 섭섭함을 속으로 삭혀야 했다. 거만해

보이는 30중반의 매부리코 여승무원의 떨떠름한 서비스를 받았지만 탐탁하지

않았다. 앳되고 착한 우리 여승무원들 생각이 간절했다. 스위스 땅을 밟자 멀리

석양빛에 촉촉이 젖어 위용을 뽐내는 알프스 산맥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유럽의

지붕이라고 하는 알프스, 단아하고 감칠 맛 나는 우리의 백두대간 보다 덩치가

커 보이지만 배타적으로다가 온다.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려진 스위스의 전원(田園)이 손에 잡힐 듯 아기자기하다.

바둑판처럼 잘 다듬어진 목초지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초록색과 노란색

그리고 갈색으로 묘하게 어울리는 얕은 구릉이 개발 논리에 밀려 헐벗은 우리의

산하를 돌아보게 한다. 쥬리히 공항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나는 순간 반가움에

가슴이 알싸하게 시려왔다.


  독작(獨酌)을 즐기는 나는 종종 그니와 대작(對酌)한다. 이제 막 새롭게 단장한,

상(靑孀)의 아미(蛾眉)를 꼭 닮은 벗을 알프스 상공에서 만나다니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만년설한 풍으로 초겨울 같은 분위기의 알프스 중턱 소도시 베르네의

한인식당에서 오랜만에 대하는 김치찌개가 향기롭다. 제육볶음에 스위스의 맥주

대신 가져 간 소주로 이국의 향수를 달래본다. 속이 찌르르하며 전율이 전신으로

흐른다. 다음날 새벽에 만날 융프라우(해발 4,158m)를 위하여 오지 않는 잠을

간신히 청해본다.

 


  휴양도시 인터라켄에서 시작 된 유럽의 가장 높은 철도 중 하나인 융프라우 철도

(1896~1912 건설)는 아이거와 묀히 산허리를 지나 묀히융프라우 사이의 고갯길

(3,944m)인 융프라우요크까지 길이가 약 7㎞ 되는 터널을 통과한다. 7Km 바위속을

뚫어 터널을 만든 스위스인들의 눈물과 땀이 협궤철로에 점철되어 있었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숨을 죽인다. 중간 중간 쉬면서 터널에 뚫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알프스의 모습에 경탄하면서도 시커멓게 오염된 채 서서히 녹아내리는 만년설

가슴이 아프다. 언젠가는 인간의 욕심에 신음하는 알프스 산신령의 호된 질책을 받게

 되리라. 융프라우 정상 설원(雪原)에서 동료들과 어색한 포즈를 몇번 취하며 순간을

영원으로 승화 시켜본다.


  현재 진행중인 융프라우 가는 길의 거대한 바위 속에서는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이

진행 중이었다. 일본의 어느 건설회사 사장의 사진이 새롭게 건설 중인 내부터널 공

현장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아마도 건설공사에 상당한 기술력과 자금을 지원한

탓이리라. 유럽의 깊은 산중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약삭빠른 그네들의 상술

(商術)에 경탄과 시기심이 교차한다. 융프라우를 내려오면서 기분이 좋지 않다. 100년 전

스위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거대한 바위 속을 뚫었을까? 100년 후 벌 떼처럼 몰려들

코리언들을 염두에 두었던 것을 아니었을까?


  차라리 바위 속에 구멍을 뚫지 않고 그냥 두었더라면 융프라우는 더욱 신성하고

고고한 성자(聖者)의 모습으로 존재하면 하찮은 존재들이 아래에서 목을 뒤로 젖히

존경해 마지않았을 것을. 혹시 휴전선에 땅굴을 뚫은 자들이 여기서 힌트를 얻은 것은

아니었는지? 오염되어 녹아내리는 만년설 아래에 산 중턱부터 시작한 민가(民家)가

아래로 거미줄처럼 어지럽다. 소들이 뛰어다니는 알프스는 고공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이 아래에서 본 것만큼 시원하지 못해 답답하다.


  영리하다고 생각되는 스위스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충고가 있다면 융프라우를

원상회복하고 사람들은 산 아래로 내려오고 소들을 산 아래로 몰아내어 방목을 시켜

스위스의 산하가 장수(長壽)하리라. 알프스 아래 에메랄드보다 투명하게 빛나는

호수가 아름답지만 그 속에 물고기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수지청즉무어(水至

則無魚)라고 하신 공자님 말씀이 생각난다.


  알프스를 뒤로 하고 로마시대속으로 달리는 필자 눈에 어제보다 제법 살이 통통

게 오른 벗이 서쪽 하늘에 날렵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오늘밤은 밀라노에 도착하면

임과 걸쭉하게 수작(酬酌)판을 벌려봐야 겠다.

 

 

 

 


                                                                                   2006.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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