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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필 때면(1)

* 창작공간/단편 - 목련꽃필 때면

by 여강 최재효 2006. 5. 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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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꽃 필 때면(1)                                                                                       
                                 

                                                                                                                                                                                     - 여강 최재효



                                                   


   
  “재연아, 나 죽으면 조카들 네가 잘 돌봐 줄 거지?”
  두 달 넘게 암투병으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큰 누이는 겨울나무 처럼

앙상한 손을 내밀면서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는 막내 남동생에게 유언을 하듯

가늘게 속삭였다. 한적한 농촌에서 칠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터울이 큰 어린 막내

에게는 어머니나 다름없는 누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년 내내 흙과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번지, 명성황후가 탄생한 바로 이웃집에서 태어나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던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일년 전 장가를 들면서 현재의 점봉리로

분가를 하였다. 타고난 근력(筋力)과 부지런한 습관이 몸에 배인 아버지는 결혼

후 십여년 만에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논 2마지기를 열배 가까이 불렸고 밭도

곳에 많은 평수를 마련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봄부터 기러기가 날아올 때 까지 별을 보고 들로 나가서 풀잎

맺힌 밤이슬을 밟았다. 하루 종일 텅 빈 집에는 큰누이와 내가 지루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나는 주변의 가족들을 알아 볼 나이가 되면서 큰 누이를 어머니로

알 정도였다.


 큰 누이를 엄마로 알고 자라나는 막내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측은한 시선을 큰

누이가 세상 여행을 마치고 난 뒤까지도 부담으로 느껴야 했다.

  아직도 봄의 햇살이 잔약해 겨울의 한기를 완전히 물리치지 못한 듯 하다. 창

문을 올리고 악셀레이터에 힘을 준다. 매년마다 바뀌는 차창 밖의 늘 보던 풍경

이 오늘은 생경(生硬)하게 보인다. 영동고속도로 여주 톨게이트 옆으로 자나 깨

나 잊을 수 없는 내 고향이 도심지로 나간 아들을 반긴다. 시골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아주 기이한 형태로 변질 된 내 고향, 점봉리의 왜곡된 모습에 가슴이 아

려온다.

  삼십 오년 전 영동고속도로가 동네 등허리를 뚫고 지나가기 전 고향 마을은 전

형적농촌이었다. 봄이면 들녘에는 종달새 우짖는 소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흥

겨운 노랫가락,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전부였고 여름이면 참새 쫓는 소리가

녘마다 초저녁 이슬 내릴 때까지 들려오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티라노사우르스같은 거대한 몸집의 고층 아파트가 나타나 동네

앞에 떡 버티고 서서 오랜 세월 살아온 동네를 무참하게 짓밟아 버렸다. 공룡이

동네에 들어오고 난 뒤 나는 고향을 찾는 일이 예전보다 수월하지 못했다. 복사꽃

피는 꽃 대궐을 하루아침에 망가뜨린 거대한 녀석 때문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

때문이다.

  주막거리에서 소주 한 병과 오징어포와 과일 약간을 준비했다. 장호원 방향

으로 방향을 잡고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준다. 농번기에는 학교 갔다 오기

바쁘게 소를 몰고 답울기나 평장계로 나갔다. 소죽을 쑤어주지 않아도 되는 여

름철에는 소가 좋아하는 풀이 그곳에는 지천으로 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들의
환영(幻影)들이 창밖으로 휙휙 지나간다.

 

그들 중에 나도 있고 뒷집의 상운이와 덕화의 해맑은 모습이 변함없어 보인다.

톨게이트에서 십분 거리인 큰 누이 산소가 있는 하거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오묵

산 중턱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집들이 따사롭게 느껴진다. 큰 매형에게 알리

않고 바로 누이에게 향했다.

  매년 한번쯤은 외로운 누이를 찾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세파에 떠다니다보니

마음 같지 않다. 늘 소화가 안 된 듯 속이 편치 않다. 아늑한 누이 무덤에 파릇파

봄이 무르 익어가고 있었다. 무덤 좌우에 있는 목련은 노란 봄에 겨워 막 몽우

리를 터트리고 있다. 목련은 누이다.

 

 시집가기 전에 누이는 집 뒤꼍에 있던 불두화와 백목련을 몹시 좋아했다. 늦봄

달빛에 촉촉이 젖은 백목련의 자태는 바로 누이의 모습이었다. 꽃을 좋아하는

는 시집에서도 그 순수한 심성이 꽃처럼 나타났다. 봄이면 시댁 뒤쪽 역시 자목

련과 백목련으로 함빡 뒤덮이곤 했다. 물론 누이가 없는 지금도 주인 잃은 목련

나무들은 여전히 밤마다 울고 있다.

  “재연아, 나 죽으면 조카들 네가 잘 돌봐 줄 거지?”
큰 누이가 나에게 한 마지막 말씀이 귀에 메아리로 울린다. 잠시 눈을 감아본다.

어린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남기고 나비가 되어 피안(彼岸)으로 훨훨 날아가 버

누이 얼굴이 영화 스크린처럼 비쳐진다.


  “누님, 죄송해요. 매년 온다고 약속만 하고…….”
  살아생전 입에 대본 적 없는 술을 한잔 따르고 절을 하고 술을 무덤 주변에 뿌리

면서 누이에게 이야기를 청해 본다. 

  ‘누이 나는 당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세상을 버린 지 십 오년이 지났지만

세월이 쌓여 갈수록 누이의 모습은 더욱 생생하답니다. 누이의 분신인 광현이와

광일이, 현희는 잘 살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현희가 교통사고로 약간의 찰과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난해 장가 든 막내

광일이가 아직도 누님의 품이 그리운지 자주 울곤 하지요.

 

 그러나 세월이 모든 일을 해결해 주리라 믿습니다. 혹여 자식들이나 제가 보고

싶어 잠 못 이루고 계신 건 아니신지요? 이제는 걱정하지 마시고 영면(永眠) 하세

요. 제가 삶이 다하는 날까지 조카들을 돌보겠습니다. 이제는 눈을 감으세요. 저 하

목련이 보이시는지요? 생전에 누이가 그렇게 사랑했던 목련이 눈보다 더 희게

피었습니다. 누이 기억하시지요? 그날 밤 누이는 매형이 아닌 막내 남동생과 첫날


밤을 치룬 사연을…….‘ 
                                                  

  내가 여섯살 되던 봄날, 어제 아침부터 집안은 마치 시골장터 같았다. 동네 아주

머니들이 모여들어 방마다 차지하고 앉아 떡, 부침개, 간랍, 두부 지짐, 고기산적,

다식, 약식등 잔칫상에 오를 음식을 만드느라 부산했다.


 경험 많은 옆집 박씨 아저씨와 반장아저씨는 광에다 시렁을 층층으로 만들어 놓

은 과방(果房)에 잔치에 쓰일 과자며 과일, 고기등 각종 울긋불긋하게 단장한 음

식들을 정갈하고 보기 좋게 차려놓고 혹시 동네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들 손을 탈

까 삼엄한 경계를 펴다가 나만 보면 빙그레 웃으며 과자를 집어주곤 했다. 

  나는 내 또래 아이들에게 큰 선심이나 쓰듯 과자를 나눠주며 은근히 어깨에 힘을

 주었다. 동네 장정들이 뒤꼍에서 아버지가 애지중지 하시던 돼지를 잡느라 웅성거

다. 돼지의 비명이 담장을 넘자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은 최 씨네 집에서 잔치준비

한창임을 알아차렸고 이웃들은 국수 한 관씩을 가져와 어머니께 인사치레를

했다. 

  다음날 새벽부터 집안은 부산했다. 어젯밤 늦게 서울사는 큰고모님과 담터에

사시는 막내 고모부부 그리고 새벽같이 새터 사시는 고모부부가 오셨고, 얼굴을

모르는 친인척들이 아침 일찍부터 집에 모여들었다. 오늘은 큰 누이가 시집가는

이다.


 안 마당에 대형 포장이 처지고 동네 이장과 반장들이 모여들었으며 힘깨나

는 청년들이 동네창고에서 교자상과 식기등 잔칫날 소용될 물건들을 실어 날랐

다. 누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둘째 누이와 아침 일찍 읍내 미장원에 간 듯했다. 

  나는 괜히 신이 나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때 나이에는

누이가 시집간다는 것은 예쁜옷을 입고 매형 될 분과 잠시 어디 놀러갔다 오는

것쯤으로 생각했었다. 오전 열시쯤 매형 될 남자가 친구들과 함께 집에 나타

났다. 마치 맡겨 놓은 물건을 찾아가기 위하여 온 사람들 같았다. 

  마당에 초례청이 마련되고 다리가 편치 않은 이장님이 축문을 읽어 내려가자

 매형과 누이가 서로 절을 하기도 하고 술잔을 교환하기도 하였다. 예쁜 활옷을

입고 짙은 화장한 누이가 이상해 보였다. 평소의 온순한 누이 모습이 아닌,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모습이다.


 이마와 양볼에 동그란 빨간색 종이가 붙어 있고 입술연지는 빨갛다 못해 파랗게

보였다. 한 달 전 누이에게 장가들기 전 처음 왔던 매형 될 분은 형님들이 보는 만

화책에 등장하는 옛날 대감들이 입던 파란관복 같은 것을 걸치고 모자를 썼는데

의젓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어린 소년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뚫어질 듯 누이와 매형의 얼굴을 쳐다보고

묘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매형이 예전부터 함께 살던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전혀

 거북스럽거나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매형의 키도 누이와 비슷했고 얼굴 생김새

도 마치 남매 같아 보였다. 누이의 예쁜 모습에 넋을 빼고 바라보는 소년 곁으로


막내고모가 다가왔다.

  “재연아, 누이 예쁘지? 넌 이제 어떻게 하니? 누이 시집가면…….”
  “누나 갔다 다시 오는 거 아냐?”


  “시집가면 죽을 때 까지 그 집에서, 아니 네 매형 될 남자하고 사는 거야. 이젠 보

힘들게 되었구나.”
 가살스러운 고모는 어린 조카 가슴에 못을 박았다.

  ‘그럼 오늘 누나를 마지막으로 본단 말인가?’
  어린 소년은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길로 동네 뒷산으로 달려 간 소년은 하루 종일

 먼 하늘만 바라보며 속으로 울고 있었다.


  ‘누나가, 누나가 시집가면 영영 볼 수 없을 텐데, 어쩌나?’

 해가 대포산으로 빠른 걸음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밖에 나와 산바람을

맞은 탓에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집에는 많은 동네사람들로 붐볐다. 잔칫상이

안방, 건넌방, 사랑방을 모두 차지하고 방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배가 고팠지만 어느 누구도 소년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

하는 사람은 없는 듯 했다.

   심지어 앞마당과 이웃집 방과 마당에 조차 모두 잔칫상이 놓여있다. 동네 사람

들과 건너 마을에서 온 하객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는 듯 어쩌

아버지나 어머니와 마주치면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비비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곤 했다. 누이는 안방에 다소곳하게 앉아있었다. 나는 누이가 언제 떠날지 궁

금해 하면서 누이 곁에 앉아 누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누이는 나를 보자


말없이 눈물을 보였다.

  “신랑 신부가 신랑 댁으로 간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매형

이 나를 보더니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앞마당에는 가마가 준비되어있고 가마꾼

들이 술을 마시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나는 미리 동구 밖을 향해 뛰었다. 누이를

태운 가마가 집안을 빠져나왔다.

 

 동네 아이들과 친인척들이 아쉬운 듯 동구 밖까지 따라 나오고 있었다. 나는

더 앞서서 달렸다. 가마가 주막거리 쯤 오자 가마를 뒤따르는 사람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혹시 누이가 볼까봐 주막집 뒤로 숨었다가 가마가 앞서가는

것을 보고 백미터 쯤 떨어져 뒤 따랐다. 

  매형은 친구들이 준비한 삼륜차를 타고 이미 하거리로 출발했다고 한다. 나는

연약한 여자가 왜 가마를 타고 가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가마는 이 년 후 내가

입학할 학교 운동장을 통과하여 상거리쪽으로 접어 들고 있었다. 산에는 진달래가

군데군데 무더기로 피어올라 마치 산불이라도 난 듯 했다.


 어린 소년의 걸음걸이장정의 가마꾼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좀더 산길

로 접어들자 문둥이들이 나타나 아이들 간을 빼먹는 다는 분도고개가 나타났다.

가끔 동네 또래 아이들과 넘어보려고 막대기로 된 긴 칼을 차고 접근했지만 문둥이

에게 감히 도전할 아이는 없었다. 

  고개를 넘자 가마꾼들이 잠시 쉬었다. 나는 얼른 가마꾼들에게 발각될까 두려워

나무 뒤로 숨었다. 숨을 이유가 없었지만 순진한 시골 소년은 혹시 가마꾼들이 따

오지 못하게 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시 가마가 움직였다. 가마 속에

있는 누이가 걱정이 되었다. 오줌도 마렵고 갑갑하기도 할 터인데 잘도 참고 있는

누이가 고마웠다.


 이름 모를 산새들이 누이가 타고 가는 가마 위를 빙빙 돌기도하고 바람이 불면

향긋한 봄 냄새가 코를 간질이기도 했다. 해가 대포산을 넘자 산길은 금방 어두

워졌다. 멀리 동네가 보였다. 누이가 평생을 살아야 할 시집이 있는 동네 하거리

였다. 

  가마가 동네에 들어서자 내 또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가마 뒤를 따랐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동네가 거북하게 나를 맞아주지만 기분은 별로 나쁘지 않

았다.


 가마가 어느 집 앞에 도착하자 누이가 가마에서 내려 대문에 무엇인가를 밟고

집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매형네 집 역시 동네잔치를 치룬 뒤라 마당에는
잔칫상이 여기저기 놓여있고 술 취한 동네 노인들이 아무 곳에서나 소피를 보기도

하고, 몇몇 젊은 측들은 끼리끼리 잔칫상에 쭈그리고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뱃속에서는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오던 신호가 더욱 강력한 신호음을 내며 자꾸

채근하였지만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행여 하는 마음으로 대문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집안을 들여다보았지만 눈에

익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내가 사는 동네가 아니기 때문에 익숙한 얼굴

있을 리 없었다.

  어둠이 몰려들면서 한기(寒氣)를 느꼈다. 장가드는 매형네 집에 왔던 동네사람

들이 하나 둘 떠나고 집집마다 창문에 불빛이 비쳤다. 당장이라도 누이가 있는 집

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설령 집안으로 뛰어든다 해도 나를

과자나 얻으려고 온 이웃집 아이로 치부해 버리고 말면 그 뿐 누구도 더 이상의

관심을 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갑자기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하객들이 따라주는 술에 일찌감치 취하여 지금 쯤 사랑방에서 고단한

잠에 취해 있을 테고 어머니 혼자만 아침부터 눈에 띄지 않은 막내를 찾느라 은근


속을 태우고 있을 것이리라.

  ‘아, 어쩌나. 집에도 갈 수 없고 누나 곁으로 갈수 없으니…….’
  사랑채 툇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간신히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툇마루에 걸터

앉았다. 사랑채에서 노인의 기침 소리가 간간이 들렸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툇마루

멍석이 가지런히 세워져있고 사이에 틈이 있어 어린애 한 명이 충분히 들어앉기

적당한 공간이 있었다. 찬바람이 불어왔다. 배도 고프지만 하루 종일 누이가 탄 가

마를 쫓아오느라 지친 소년은 서서히 잠이 들고 있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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