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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귀환

* 창작공간/자작시 감상실 1

by 여강 최재효 2022. 10. 29.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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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귀환

 

 

 

 

                                                                                                          - 여강 최재효

 

 

 

어머니, 이제 돌아왔습니다 

지난 70년 간 숨탄 것들과 동거했던 

가라피리의 생활은 위리(圍籬)가 분명했고

쇠로 만들어진 뇌옥보다 음습했습니다

 

투실하고 푸르렀던 살점은 바람처럼 흩어졌지만

하얀 몸으로 학수고대했던 고향

의인(宜仁) 땅을 밟을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고 말할 수 없는 희열입니다

 

쑥대머리로 세상모르고 뛰어놀던

나의 우묵한 마을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얼룩소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우(故友)들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네요

 

적탄으로 부서진 육신이 상자에 담겨 돌아왔지만

행주치마 당신께서는 보이지 않고

황우(黃牛) 같던 아버지 헛기침 소리도 없으니

참으로 제가 오래 집을 비운 듯합니다

 

어머니, 만산에 진달래 붉을 때

한여름 파란 하늘에 천둥 번개 으르렁댈 때

백설이 계곡에 천 길로 쌓일 때

이 아들은 맨발로 천 리 꿈길을 달렸습니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습니다

천상천하의 세월이 다른 것 같지만

수백 번 손꼽아 헤아려 보아도

피차(彼此)의 경계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요

 

길고 긴 꿈을 꾼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 삭은 뼛조각과 철판에 숫자가 남아 있기에

후인(後人)이 저를 알아보고

애타게 그리던 고향을 갈 수 있게 도왔습니다

 

아비가 유복의 자식을 몰라보고

그 아이가 아비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태가

참으로 야속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동구 밖에 계실 것 같아 차마 영면할 수 없었습니다

 

2022.10.28.

 

 

 

 

 

한국전쟁 때 전사했다가 2020년 강원도 양양 가라피리((加羅皮里)에서 백골로

발견된 의인(안동의 옛 지명) 출신 故 장기수 일병님의 명복을 빌며 졸시(拙詩)를

바칩니다. 고인의 아내는 67년 동안 지아비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다 2018년 91세로

돌아가셨습니다. 두 분이 부디 꿈속에서 재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장기수 일병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당신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 [2022.10.28. 중앙일보 기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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