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아있는 것들
- 여강 최재효
태평성대 맞은 요즘 인생 백년이라고 말하지
지천명 끝자락에 서서 방황하는 한 사내 있네
천지신명께서 선물한 것들이 얼마나 남았을까
삼만 육천 오백일 중 일만 오천 밤 아직 있고
사만 사천 구백 밥그릇 끝없이 늘어서 있는데
숨 쉬고 먹는 일 있거늘 인걸은 보이지 않네
하룻밤 지나면 일월은 더 빨리 달려 갈 테지
덩달아 꽃 피고 지는 시절조차도 수상하구나
하릴없이 곶감 빼먹듯 천수를 허비하고 있네
오색(五色)에 눈먼 벗들은 극락 갈 준비하고
아지랑이에 놀란 도깨비들 천국가라 채근한다
귀신들 천년 살겠다고 궤변 늘어놓고 다니네
심산에 몰래 핀 설매(雪梅) 천년을 피고 지고
삼만 육천오백 밤잠 제대로 자는 이 누구일까
무지개 잡으려다 수중에 든 장화(墻花)를 잃네
이 밤 무사히 지나면 금쪽같은 하루 기다리네
간밤에 승천한 자에게 오늘은 목숨같을 테지
이녁 앞으로 봄꽃을 몇번 쯤 볼 수 있으려나
- 2019.2.8. [23: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