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묘(맨 우측), 좌측 2기는 딸과 아들의 묘
초희를 그리다
- 여강 최재효
사백 성상 거짓말로 흘러도 허망한 틀 그대로 있네
나라님도 방관하던 철가면을 임은 힘껏 벗어 던졌지
분신 태우고 선계(仙界)에 든 뒤 중구는 가벼워졌네
저 단단한 하늘 출입문 어떤 영웅이 깨트릴 것인가
철옹성 보다 단단한 사대부 심장을 누가 도려내려나
바위에 피었던 한송이 도화(桃花)는 취중에 있거늘
개벽이 진동하고 열렸던 둔중한 큰문은 다시 닫혔지
공연히 백성들 푸른 피만 무시로 산하에 흩뿌려지고
뇌쇠한 왕조는 먼지 속에 무상한데 함성은 생생하네
지난봄에 서러운 살구꽃 담장 위에 소복이 쌓였거늘
올해도 늦도록 찬바람 머물러 있으면 어찌 해야하나
쌓여 가는 시름 다 지우지 못해 병풍에 기대어 앉았네
씨줄 날줄 얽힌 세월들은 한낱 숫자에 불과할 뿐이지
두목(杜牧) 시심 저절로 솟으면 등불은 밤을 밝히리
선남선녀 해후는 시공을 넘어 쇠심줄 연분과 같아라
지상에 구하는 바가 없다면 하늘 것에 눈길을 줄지니
옥수로 일필(一筆) 그으면 번개와 무지개 떠오르고
몽중인은 파랑새 잔등을 타고 비파를 타며 웃으리라
- 2019. 1. 27. [22:00]
[주] 초희 – 초희는 조선 중기 여류 시인인 허난설헌(1563 - 1589)의 본명이다. 후당
(後唐)의 시인 두목(호. 목지)의 풍에 호감을 보였으며, 보허사를 즐겨 창작하였
다. 동인의 영수였던 아버지 초당 허엽, 두 오빠, 허성, 허봉, 남동생 허균과 더불
어 양천 허씨 문중의 다섯 문장으로 필명을 날렸다. 강릉 초당동에 그녀의 생가,
동상과 5허의 시비가 있고,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지월리 산29-5 안동 김씨 선영
에 그녀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