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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난주 마리아

* 창작공간/단편 - 정난주 마리아

by 여강 최재효 2018. 7. 4. 11:48

본문

 

 

 

    

 

 

 

 

 

 

                         

 

 

 

 

 

 

 

 


             정난주 마리아

 


                                                 


                                                                                                                                                      - 여강 최재효

 

 

 


  끝내 경한이를 만나보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하게 되는구나. 어미

자식이 작은 바다를 가운데 두고 만나지도 못하다니…….


 동장군의 기세가 사라지고 영등 할망의 심술도 어느 정도 잦아들

무렵에 서울 할머니 정난주(丁蘭珠, 본명, 명련命連) 마리아는 서른

일곱해 고단한 노비 생활 끝에 하늘의 부름을 받고 말았다. 그미가

반평생 넘게 노비 생활을 했던 주인 김씨 가문 사람들은 스스로 상

주가 되었다. 주인집에서는 조쌀한 그미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최고

의 예우로써 제주 대정현 모슬포 뒷산에 성대하게 장례를 지냈다.


 그미가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애타게 기다리던 아들 황경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주들 역시 그가 나타나기를 기대하였으나,

그미의 관이 묻히고 봉분이 마무리 될 때까지도 아들 황경한의 모

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그미 나이 예순 여섯이었다.

 

 

* 그미 - 주로 소설같은 문학 작품에서 '그녀'를 멋스럽게 부르기 위한 말.

 

 

 

 조선의 체제를 부정하고 외세를 끌어들이려 했던 대역죄인 황사

영(黃永)을 능지처사에 처하고, 그의 처 정명련과 두 살배기 아들

을 원악도제주 대정현에 부처하라.

 

 어린 왕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는 대왕대비 김씨의 명은 비수보

다 날카로웠다. 그녀의 명에 감히 토를 다는 중신은 아무도 없었다.

대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우두망찰 중신들은 이마를 바닥에 쳐박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신유사옥이 일어났다. 이를 두고 다른 사람들은 신유박해라고 했다.

이 불행한 사건의 발단은 영조의 아들로 뒤주 안에서 사망한 사도세자

다. 의 계비인 대왕대비 김씨의 친족들과 노론들은 친소론 성향

의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저궁(儲宮)에 있을 때부터 세자 이

훤(李暄)은 노론과 외척세력들에게 각을 세우며 보이지 않는 기싸움

을 벌이고 있었다.


 조정의 실권을 쥐고 있던 노론은 나이 많은 임금이 갑자기 훙서(薨

逝)하는 날이면 수백 년간 유지되던 권력을 송두리째 잃을 판이었다.

마구발방으로 행동하는 그들은 당리당략을 위해서는 왕자 하나쯤

희생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선은 임금이 아닌 사대부

들이 움직이는 성리학의 나라였다. 숫백성들은 그들을 떠받치기 위

해 존재하는 부류에 지나지 않았다.


 늙은 임금이 승하(昇遐)하자 삿된 노론들과 구지레한 외척세력들

은 끝까지 세손이 보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지만 사도세자의 아이산(李祘)이 천신만고 끝에 결국 보위에 올

다. 새 임금과 조정에서는 선대왕을 영종(英宗 - 훗날 영조(英祖)

개명됨)이란 시호를 내렸다.

 

 새 임금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음에 이르게 한 대왕대비 김씨와

그의 일족들 그리고 노론 계열의 중신들을 대거 숙청하였다. 젊은 임

의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착살스런 대왕대비 김씨는 손자의 시선

에서 사라져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숨을 죽이며, 고단한 세월을 죽

은듯 지내야 했다.


 보위에 오른 지 24년 만에 젊은 임금 이산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로 훙서하였다. 그의 죽음을 두고 조정 안팎은 물론 저자거리에서

조차 임금이 노론들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개혁 군주였던 이산의 죽음으로 조선은 또 다시 권력투쟁의 소용돌

이 속으로 빠져 들었다.

  

 조정에서는 급서한 왕에게 정조(正祖)라 시호를 수여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정조의 어리보기 아들이 보위에 오르자 대왕대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며, 정권을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조정의 중신들은

가리산지리산하며 그녀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그녀의 눈꼴틀린

행동에도 중신들은 누구 한사람 나서서 밀막거나 간언하지 못했다. 

 

 모지락스러운 그녀에게 지난 24년간의 설움을 풀 기회가 온 것이다.

그녀는 거드럭거리며 자신을 핍박한 남인 계열의 중신들을 하나

제거하였다. 지지부진한 반대 세력들에 대한 숙청에 염증을 느낀 대비

는 일거에 친 정조 세력을 쓸어버릴 수 있는 방도를 찾기에 골몰하였

다.


 정조 임금 당시에는 천주교를 서학(西學)이라 하였으며, 유학을 거

하고 어머니의 신주(神主)를 불살라 버린 충청도 금산 사람 윤지

충(尹持忠)을 처형한 이외에는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임진란 이후 외국의 문물이 대량으로 수입되었고, 이

때 전래된 천주교는 이승훈(薰)이 베이징에서 영세를 받고 귀국

하면서 전국에 급속히 확산되었다.


 정조 임금에 의해 친가가 멸문지화의 불운을 겪은 대왕대비 김씨

원한은 엉뚱하게도 천주교도들의 악랄한 핍박으로 이어졌다. 그

녀는 천주교도들은 성리학을 거부하고 평등사상을 부르짖으며, 조

선의 통치이념인 성리학을 부정한다고 판단하였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며, 나라가 나라

꼴이 되는 것은 교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른바 사학은

어버이도 없고, 임금도 없어서 인륜을 무너뜨리고 교화에 배치되어

저절로 금수(禽獸)의 지경에 돌아가고 있다.


 그녀는 재바르게 천주교를 사학(邪學)으로 단정하고 전국에 대대

적인 단속령을 내리기로 하였다. 천주교도들 중에는 친 정조의 세력

이었던 정약용, 정약전, 이승훈, 이가환, 황사영 등이 포함되어 있었

다.  


 또한 그녀는 천주교를 금지하는 교지를 내리면서 오가작통법을 시

하여 백성들 끼리 서로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있으면

관아에 고발하게 하였다. 만약 한 집에서 천주교 신도가 적발되면 다

섯 가구 모두 처벌하도록 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신유년 박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조정에 의해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받자 황사영은 충청도 제천 봉

면 구학리에 소재한 배론에 숨어들어 그 유명한 황사영백서(黃嗣

永帛書)를 제작하였다. 백서는 흰 비단에 주문모 신부의 활약상과

조선의 천주교 신도들이 박해받고 있는 상황 등을 적어 청국으로

떠나는 동지사(使) 일행을 통해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 한 장문의 서한이었다.


 그러나 백서가 유출되기 전에 발각되면서 황사영은 반역자로 능

처사되었고, 천주교도들에 대한 조정의 탄압이 더욱 가혹해졌다.

조정은 천주교 탄압이 정당하였다고 주장하며, 토역반교문을 반포

하였다. 이때 희생된 사람이 대략 오백 명이 넘었다.


 신유박해는 급격히 확대된 천주교세에 위협을 느낀 지배세력의

종교탄압이었다. 또한 이를 구실로 노론(老論) 등 집권 보수 세력

이 당시 정치적 반대세력인 남인을 비롯한 진보적 사상가와 정치

세력을 탄압한 권력다툼의 일환이기도 했다. 신유박해 이후 살아남

은 신자들은 수도와 박해지를 피해 강원도와 경상도 깊은 산간지역

으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형성해 나갔다.


 황사영 알렉시오는 남인 계열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 때

과거 진사시에 합격할 만큼 영민하였고, 주문모 신부에게 영세를 받

세속적 명리(明利)를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주 정씨인 약현의

딸 난주(명련)과 혼인하였다.


 그미 역시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마리아라고 하였다.

그미의 가문을 보면 당시 최고의 실학자로 불리는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형제가 그미의 숙부들이었다. 그미는 혼인한 지 10년 만에

학수고대하던 아들 경한(景漢)을 얻었다.


 그러나 나라에 반역한 죄로 처형된 지아비의 죄에 연좌되어 그미

두살 박이 아들을 품에 안고 원도(遠島)인 제주 대정현으로 귀

양살이를 떠나야 했다. 겨울의 초입에서 떠난 그 길은 살아서 돌아

오지 못할 죽음의 길이나 마찬가지였다.

 

 

 


                                           ♣

 

 

 


 한양을 떠난 지 이십 여일 만에 남해 바닷가 강진에서 그미는 제주

향하는 작은 관선(官船)에 올라 탔다. 초겨울 새벽 바다를 넘실거

리는 파도는 모자(母子)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열 명 정

도 탈 수 있는 소형 관선이 중간 지점인 추자도 쯤에 이르자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기 시작하면서 배가 난파될 위험에 처했다.


 “저 바닷가에 배를 대시오. 바람이 잠잠해지면 출발합시다.”
 유배인의 감시를 맡은 호송관은 선임 사공에게 이름도 모르는 섬에

배를 정박하라 명했다. 호송관은 잠시 볼 일을 보고 오겠다며, 마을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들을 나처럼 평생 노비로 살게 할 수는 없어. 호송관도 없으니

마침 잘되었어. 저기 바닷가에 어촌이 있는 것 같으니 어부들에게

맡겨야겠어. 그러나 어떻게 이 아이를 맡긴단 말인가. 어부들이 받

아나 줄까. 천주님, 이 아이가 자유인이 되어 주님만을 믿고 의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미는 간절히 기도하였다.


 “아저씨, 저기 바위에 앉아 아기 젖 좀 먹이고 올게요.”
 “조심해요. 바위가 미끄러우니.”


 그미는 사공들을 이끄는 선임 사공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들을

안고 바닷가에 있는 갯바위로 올라갔다. 어미와의 이별을 눈치를

챘는지 아기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미는 한양을 떠나올 때 만약

을 위해서 아기 옷깃 안에 부모의 이름과 세례명, 직함 그리고 아

기 이름과 생년월일 등 인적사항을 상세히 적어 놓았다.

 

 그미는 보채는 아기를 달래고 젖을 물렸다. 아기가 젖을 다 먹

고 잠이 들자 그미는 아기 손에 묵주를 감고 강보에 둘둘 말아서

어부의 집과 가까운 바위 틈 사이에 아기를 올려놓고 돌아섰다.

그미는 배가 있는 해안가로 돌아가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사력을 다해 이를 악물고 걸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걷는 그미의 심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뭐라고, 아기를 바위에 떨어뜨려 죽어서 물속에 버렸다고?”

 호송관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명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

나 그는 멍련에게 다그치거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으리. 용서하십시오. 제가 불민하와 그만-.”
 그미는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호송관은 통곡하는 그미를 측은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 볼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를 어쩐다. 배를 타고오다 아기가 병으로 죽었다고

보고를 올려야 하겠구먼.” 


 그미를 호송하던 호송관은 상황을 대충 짐작하고 더 이상 그미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한양에서 유배지로 향할 때부터 그미는

호송관을 친정아버지처럼 따르며 진심으로 그를 존경하는 모습을

보였다. 호송관의 식사를 챙기며, 그의 호감을 사기도 하였다.

 

 그미가 한양을 떠날 때 친정과 친지들이 돈과 패물을 마련하여 그

미에건넸다. 일반인이 유배를 갈 경우 현지에 도착할 때까지 일

체의 비용은 유배인이 대야 했다. 심지어는 호송하는 의금부나 포청

의 관리의 비용도 대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미는 패물 일부를 호

송관에게 건네고 제주에 도착할 때까지 안전을 부탁하였다.


 유배 행렬은 한양에서 출발하여 남으로 향하면서 밤이면 주로 객

사(客舍)에서 묵었는데, 이때 그미는 호송관에게 사비로 술과 좋은

안주를 주문하여 호송관에게 건네곤 하였다. 호송관은 그미의 지

극한 행동에 고마움을 느끼며, 그녀의 행보를 최대한 편하게 해주

었다.

 

 의금부 소속의 호송관은 그미가 남편으로 인하여 신분이 격하

되고 억울하게 유배를 가게 된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

호송관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호송관은 어찌된 상황인지

대강은 짐작하면서도 명련의 일을 그냥 덮어 버리기로 하였다.

마침 바람이 잠잠하여 다시 배를 띄울 수 있었다.


 “나리, 지금 빨리 출발해야 해 떨어지기 전에 제주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요. 해가 지면 바람이 다시 불어 뱃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사공이 호송관을 채근하였다. 명련과 사공은 행여나 호송관의 마

음이 바뀌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였다.


 “아저씨, 저 섬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그미는 선임 사공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는 추자도야. 추자도는 상추자도 하추자도로 나뉘는데 댁이

아기를 수장한 곳이 하추자도라는 섬이지. 그 마을에 어부들 집 서너

채 보이던데, 아마 내 짐작으로는 그 마을이 예초리가 맞을 거야.

추자도에도 죄를 짓고 귀양 온 귀양다리들이 더러 있다고 들었어.”
 선임 사공은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하추자도 예초리. 누군가 경한이를 발견해야 할 텐데. 아, 천주님

경한이를 보호하여 주세요. 그 어린 것이 지금쯤 잠에서 깨어 어미

를 찾으며 울고 있을 겁니다. 경한이가 어부들 손에 들어가도록 도

와주소서.’ 

 

 그미는 아기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기도하였다. 선임 뱃사공은

그미의 의도를 눈치 채고 호송관에게 길을 재촉하였다. 호송관이

아기를 찾겠다고 나서면 일이 복잡하게 전개 될 터였다.


 ‘아가야.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하거라. 너의 운명이 천주님과 어부

님의 손에 달렸구나. 그 분들이 어미를 대신해서 너를 보살펴 주실

것이다. 우리 모자가 운이 좋으면 먼 훗날 상봉을 할 수 있겠지만,

혹여 만나지 못하더라도 운명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내 아들 경한

아, 잘 자라다오.’


 “선임 사공, 돛을 최대한 높이고 빨리 노를 젓도록 하시게.”

 호송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명련과 사공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

다. 그미는 아기가 있는 바위를 향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속으로 아기를 위하여 기도를 하였다. 사공들이 노랫가

락에 맞춰 제주를 향해 노를 저었다. 다행히 풍랑이 잦아들어 추

자도에서 제주까지 가는 바닷길은 순탄하였다.


 “여보, 저기 바닷가 황새바위 쪽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서 가

보니 이 아이가 강보에 싸여 있었어요. 잘 생긴 사내 아기네요.”


 그미의 바람대로 섬 주민이 아기를 발견하였다. 하추자도 예초리에

거주하며, 대대로 어업에 종사하던 오상선은 아기의 옷깃 안에 적힌

인적 사항을 보고 아기가 섬에 남겨진 자초지종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낮에 관선 한척이 바닷가에 잠시 정박하다 떠나더니만…….’
 오씨는 아기와의 만남을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낳은 자식처럼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그에게는 이미 장성한 자식들

있었다. 그는 자식들에게 철저히 입 단속을 시키면서 외부 사람들

에게 비밀로 하라고 하였다.


 “이 아이는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오. 혹여 누가 물으

뭍에 사는 친척의 아인데, 아기 엄마가 병으로 죽어 우리가 대신

키우고 있다고 둘러대야 하오. 아기는 본관이 창원 황씨로 아비는 황

사영이고 이름은 경한이오. 하지만 우리는 이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

지만 업동이라고 부릅시다.”


 “업동이, 거 이름 한번 좋구랴.”
 오씨 부부는 정성을 다해 업동이를 키우기로 했다. 이름을 바꾸어

부르기로 한 것은 만약 관리들이 소문을 듣고 역적의 자식인 아기

를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종종 전라도나 제주

에서 죄를 짓고 추자도나 횡간도로 도망하는 죄인들이 있어 관아

에서 그들을 추포하기 위하여 가택수색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

 

 

 


 정난주 마리아는 하루도 아들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미는 제주도 서남부 지역인 대정현 서정리의 유지 김석구(金

錫九)의 집에 배정되어 침모(針母)로 노비생활을 시작하였다.

김석구는 유학을 공부한 학자풍의 사람으로 풍신도 좋고 거들

먹대지 않으며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

었다. 그는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춘궁기에 가난한 이웃 주

민들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등 선심을 베풀었다.


 그미는 틈틈이 김석구의 두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큰 공부

는 서당에 나가서 배우지만 서당에서 가르치지 않는 예의범절에

관한 과목은 그미의 몫이었다. 김석구의 두 아들들은 그미를 이모

고 부르며, 그미를 존경하며 따랐다. 그미는 주인의 두 아들을

마치 친 자식처럼 가르쳤다. 김석구의 두 아들이 추자도에 두고 온

그미의 아들 황경한과 비슷한 또래여서 더욱 정성을 다해 훈육하

였다. 주인은 그녀의 곡진한 태도에 감화되었다.


 노비생활을 하면서도 그미는 조심스럽게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어려서부터 늘 서책을 가까이 한 탓에 그미는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김씨 가족은 물론 이웃 사람들에게도 예

의로써 대하였으며, 그미의 성실한 인품과 절제있는 품행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주인 부부는 그미의 고매

한 인품반해 그미에게 별채를 내주어 생활하도록 편의를 제

공하였다.


 그미의 신앙심은 주로 자기 내적인 발전과 자신을 믿고 의지

하는 지인들의 교화로 이어졌다.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원도

라고 하지만 아직도 신유박해의 두려움이 사람들 뇌리에 잔존

하고 있었다. 그미가 노비로 생활하면서 알게 된 사람은 같은 처

지의 노비와 평범한 섬 주민들이 고작이었다.


 대정현의 현감이나 모지락스러운 아전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늘

미의 주변에 아른 거렸다. 지아비의 반역으로 인하여 죄인이 되

어 하루아침에 양반에서 노비로 신분이 강등되어 귀양 온 신분인

만큼 조심해야 했다. 침착하고 차분한 성격의 그미는 대놓고 하느

님을 칭송하거나, 모임을 갖지 않고 생활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주변인들이 천주교를 이해하도록 교화하였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을까.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면 자연 관아

의 기찰(譏察)에 걸려들게 마련이다. 착살맞은 아전들의 눈총이

그미의 행동을 어렵게 하였다. 그미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면 하느님께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 때 역시 하느님을 호명하였다.

 그미에게 일어나는 사소한 일부터 일상사까지 그미는 항상 하느

님과 함께 한다는 자세로 신앙심을 굳혀나갔다.


 그러나 그미 역시 한 아들의 어머니였다. 그미가 하느님께 기도

를 할 때마다 추자도에 있는 아들 경한을 생각하였다. 당장 섬을

탈출하여 아들이 있는 추자도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주에서 뭍으로 또는 다른 섬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관할하는 수령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했다.

 

 당시 제주에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불량한 기질의 유랑민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전국에 추쇄령(推刷令)을 내

려 도망간 노비나 하층민들을 잡아 고향으로 돌려보내도록 하였

며, 이들을 잡기위한 전문 추쇄꾼들도 생겨났다.


 설날이나 추석 또는 경한의 생일이 되면 그미는 바닷가로 나가

북쪽을 바라보며, 아들 경한을 그리워하였다. 아무리 바다를 바

라보며 아들의 이름을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파도 소리뿐이었다.

강보에 싸인 어린 아들을 갯바위 틈에 두고 온 것이 그미의 흉중

에 커다란 상처와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경한아, 내 아들 경한아, 너도 이 어미를 생각하고 있느냐. 우리

모자가 저 바다를 가운데 두고 생이별을 하였구나. 지금쯤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겠구나. 혹여, 이 어미를 원망하거나 밤낮으로 울고

있는 건 아겠지. 내가 죽기 전에는 꼭 너를 만나볼 것이야. 저 갈

매기도 이 어미의 아픔을 알고 있을 것이다.


 네가 있는 추자도에도 저 갈매기들이 날아가겠지. 갈매기를 보거

이 어미를 보듯 대하거라. 또한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이 어미는

달님에게 너를 보호해 달라고 빌고 있으니, 달님을 보거든 역시 이

어미를 대하듯 하거라.


 “서울 아지망, 또 아들 생각했나봅니다. 아들이 있는 곳이 추자

도라 했지요. 벌써 이십년이 지났으니, 아드님도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겠네요. 어쩌면 장가를 들어 자식을 봤을 수도 있을 테고

요. 저 달님이 서울 아지망 소식을 아들에게 전해 주었을 겁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셔요.”


 그미가 보름달을 넋을 빼고 바라보고 있는데 같은 집에서 허드렛

일을 거들며, 함께 살고 있는 해남댁이 다가와 말을 붙였다. 깔밋해

보이는 그녀는 시가에서 쫓겨나 오갈 데 없는 처지에서 제주로 흘러

들어와 유리걸식하고 있었다. 그미로부터 해남댁의 딱한 사정을 들

은 마음씨 좋은 집주인이 그녀를 거두었다.


 “해남댁이 내 마음을 잘 아는구려. 고향에 아들이 있다면서요?”
 “그 녀석은 즈아부지만 알지 제 애미는 안중에도 없답니다. 즈아

부지가 새마누라를 얻었다고하니 새엄마하고 살겠지요. 바보같은

자식.”
 해남댁이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해남댁, 전 남편이나 아들을 원망하지 말아요. 사람 인생의 행로

전적으로 본인의 행동에 따라 정해지는 겁니다.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남의 탓만 하게 되어 있답니다.

 

 내가 노비가 되든 또는 장상(將相)이 되든, 그 모든 결과물은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랍니다. 하느님은 매사에 공평하세요.

치우친 데가 있다면 세상에 평지풍파가 일겠지요. 지금 내 행

과 불행은 내일이되면 반대로 바뀔 수도 있는 거랍니다.” 

 그미는 해남댁에게 아들을 원망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잘 알겠어요. 그런데, 요즘 아지망이 많이 안 좋아 보여요.

얼굴도 많이 핼쑥해졌고, 드시는 것도 시원찮아요.”
 해남댁이 그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벌써부터 그미

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채고 있는 해남댁이었다. 그러나

눈치만 보고 있었을 뿐 자세히 묻지는 못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오랜 한이 사무치면 병이 되나 봅니다. 낮

에 주인께서 약재를 주시어 한 첩 달여 마셨으니 차도가 좀 있

겠지요.”

 

 애써 해남댁의 시선을 피하는 그미의 눈시울이 가늘게 요동쳤다.

그미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은 채 속으로 기도를 올렸

다. 기도하는 그미의 모습이 얼마나 진지하고 경건해 보이는지,

해남댁도 옆에 서서 달을 올려다보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였다.

 

 


                                             ♣

 

 


 정난주 마리아는 신유년의 아픈 기억에서 어느 정도 마음의 치유

이룬 상태였다. 더 늦기 전에 아들을 찾아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진작부터 아들에게로 향하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주변

의 상황이 아직도 녹록하지 않았다. 대역죄를 짓고 유배와 있는

몸으로 거주지 제한이 있는 터라 함부로 외부로 나다닐 수 없었다.

 

 또한 주인에게 깊은 신임을 받고 주인 아들까지 훈육을 맡고 있는

라, 그미의 행동은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아들 경한에 대한

모정의 사무치는 한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이모님, 그런 일이라면 진작 말씀하시지 않고요.”
 그미는 더 이상 지체하였다가 아들을 영영 찾을 수 없을 것 같

았다. 집주인 김석구의 두 아들 중 자신의 형편을 잘 이해하고

있는 큰아들 김상집에게 넌지시 하추자도에 있는 아들을 찾고

싶다고 마음을 내비치자, 그는 선뜻 자신이 힘을 써보겠다고 했

다. 김상집은 명련으로 부터 훈육을 받아온 터라성정이 차분하

고 매사 일처리가 꼼꼼하며, 외양도 드레져 보였다.


 “나는 조정에 죄를 짓고 이곳에 노비로 온 여자입니다.”
 “이모님께서는 말이 죄인이지 사실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대

정현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제가 사람을 놓아 곧 하추자도

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날 김상집은 해남댁을 방물장수로 변장시켜 하추자도에 들

어가게 하였다. 그녀는 황경한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정난주 마리

아에게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집이나 불쑥 들어

가 다짜고짜 황경한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사람들이

음 졸이며 살아가고 있을 황경한에게 위해가 될 수도 있었다. 

 

 해남댁은 김상집이 특별히 준비한 배를 타고 하추자도 예초리

에 도착하였다. 예초리는 10가구 정도인데 대부분 어업에 종사

하는 어부들이었다. 낮이라 그런지 마을에는 사람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다. 마침 한 노파가 걸어오고 있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방물장수입니다. 말씀 좀 물어볼게요. 이

마을에 스무 살 정도 된 총각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느 집인가요?”
 노파는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가짜 방물장수 해남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방물장수가 그건 왜 물어?”
 “할머니, 이 마을에 착하고 성실한 총각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

참한 색시를 소개하려고 제주에서 일부러 왔어요.”
 해남댁은 생글생글 웃으며 노파의 환심을 사려고 애썼다.


 “그럼, 업동이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개똥이를 찾는 것인가? 이

마을에 총각 둘이야. 아니지 개똥이는 지난해 장가를 들었지.”
 “네네네. 맞아요. 그 총각 이름이 업동이가 맞을 거예요. 할머니,

이건 제가 이 마을에 처음 온 기념으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해남댁이 얼른 방물함에서 바늘 한 쌈과 얼레빗이 든 예쁜 상자

를 꺼내  노파에게 건네자, 노파는 입이 함지박만 해 졌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줘. 저기, 저 바닷가에 있는 집이 오업동이

집이여. 업동이는 그 집 친아들이 아니고 상선이 먼 친척 아인데,

부모가 병으로 죽어서 데려다 상선이가 친아들처럼 기르고 있어.

업동이는 심성도 곱고 일도 잘해. 그 애가 뉘 집 사위가 될지 모르지

만 그애를 사위로 맞으면 복받은 거여.”
 노파는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해남댁에게 들려주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해남댁은 오상선의 집에 들렀다. 마침 오씨의 처가 마당에서 남편이

아온 생선을 정리하여 횃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방물장수입니다.”

 “…….”
 “이 댁에 혼기가 꽉 찬 총각이 있다고해서 들렀습니다.”


 해남댁은 일을 거드는 척 하다가 말이 통하자 왜국에서 들여온

분이며, 입술연지, 빗 등 여인네들에게 소용되는 물건을 잔뜩

벌려놓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해댔다.


 “아들을 장가보내려면 신부댁에 함을 보내잖아요. 요즘엔 함 속에

외국산 분첩을 넣어 보낸답니다.”
 해남댁은 알록달록하고 앙증맞은 방물들을 들어 보이며, 순진
한 촌

부의 눈을 어지럽히며 정신을 쏙 뺐다.


 “우리 집에 총각이 있는 걸 어찌 아셨누?”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인물 좋고, 심성도 착하고, 일도 잘한다고요.”
 해남댁 말에 어부의 처는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업동이는 최고 신랑감이지. 이 물건들은 값이 꽤 나가겠는데.”
 “오늘은 제가 이 마을에 처음 온 기념으로 외상으로 드릴 테니 값은

내년에 주셔도 좋아요. 형편 좋을 때 천천히 주셔요.”


 외상이라는 말에 오씨의 처는 방물함 안에 있는 물건의 반을 구

입하였다. 해남댁은 방물 몇 가지를 덤으로 주면서 자연스럽게 업동

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 냈다. 오씨 처는 처음 보는 해남댁에게

업동이에 대한 상세한 것까지 들려주며 참한 색시 있으면 중신을 서

달라고 하였다.


 “해남댁, 다녀오느라고 고생했어요. 이건 수고비입니다.”
 “아이고, 안 주셔도 되는데요.”
 해남댁이 돌아오고 나서 상집은 집사와 하인 등 두 명을 하추자도로

보내 정식으로 황경한을 찾아 가도록 하였다. 집사가 오상선의 집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제주 대정현에서 왔습니다. 이 댁에 황경한이라는 총각이 살

있는지요?”
 “이집에는 그런 총각 없습니다.”


 오상선은 낯선 사내들이 아들의 이름을 들먹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

다. 혹시 황경한을 잡으러 관헌들이 아닌지 오씨는 잔뜩 겁을 집어

먹었다.


 “노인장, 안심하십시오. 우린 황경한의 어머니 정난주 마리아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업동이라는 총각이 황경한이라는 사실도 이

미 알고 있고요.”
  오상선은 사내들이 정난주란 이름을 언급하자 안도하였다.


 “정말로 정난주 마리아님께서 보내서 오셨는지요?” 
 “노인장, 이것을 보십시오. 이것은 정마리아님께서 아드님에게

내는 편지입니다.”
 사내가 오상선에게 편지가 든 봉투를 건넸다. 


 “아, 그렇습니까? 기다렸습니다. 진작부터 정마리아님의 소식을 기

렸습니다.”
 그제야 오상선은 두 사내를 집안으로 안내하였다.


 “업동이 총각은 지금 집안에 있습니까?”
 “업동이는 지금 어장에 나가 있습니다. 해가 져야 들어 올 겁니다.”
 오상선의 처는 급히 술상을 방안으로 들였다. 그는 업동이 황경한

을 거두어 지금까지 키워온 성장과정에 대하여 김석구의 집사에

자세히 들려주었다.


 황경한은 자라면서 형들과 달리 신체가 크고 골격 또한 굵었다.

언뜻 보아도 형들과 외관이 전혀 딴판이라 오상선은 업동이를 키

우면서 무진 애를 먹었다. 먼 친척의 자식을 입양하여 키운다는

말로 겨우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는 했지만, 언제

관아에서 업동이를 잡으러 올지 몰라 늘 좌불안석이었다.


 “노인장께서 참으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그 아이를 하늘이 내린 선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이 편지만 전하고 갈 겁니다. 경한군이 잘 있으면 되었

니다. 신유년 천주교도 박해사건이 일어난 지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업동이 경한군은 아직도

죄인입니다. 경한군이 이 섬을 떠나는 순간 위험에 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떠나고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되시면 경한군의

탄생 비밀을 본인에게 알려줘야 할 것입니다.”

 집사는 침착한 어조로 오상선에게 말하였다.


 “그래야 하겠지요. 이제 그 애도 자신의 뿌리를 정확하게 알 시

기가 되었습니다.”
 제주에서 온 두 사내의 방문을 받고 오상선은 한동안 고민하였

다. 과연 아들 업동이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될 경우 받게

될 충격과 그것으로 인해 자칫 정신이상자가 되어 집을 나가기

라도 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상선 부부는 오랜 고민 끝에 하루라도 빨리 진실을

밝히기로 하였다. 만약 진실을 은폐하려다 업동이가 다른 사람

입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될 경우 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아버지, 제가 황경한이라니요? 제 이름은 오업동인데 지금 무

슨 말씀하세요.”
 어장에서 일을 마치고 막 집으로 들어오는 아들 업동이를 오상

선이 방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자신의 출생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업동이에게 그동안

숨겨왔던 진실을 들려주기로 마음먹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자식을 거두어 20년 넘게 정성으로 길러온 오씨는 업동이의

눈치만 살피며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 업동이는 오씨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오씨 부부는

업동이에게 다시 한 번 알아듣도록 지난 과거의 일을 들려주었다.


 “얘야, 이것을 보거라.”
 오상선은 장롱 속에 보관해 오던 누렇게 변색된 옷가지를 아들에

게 내밀었다.


 “아버지, 이게 뭔데요.”
 "그 옷은 마리아 정난주님이 너를 우리에게 맡길 때 네가 입고 있

던 옷이란다. 그 옷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천천히 읽어보렴.”


 “…….”
 업동이는 떨리는 손으로 아기 옷을 들어 옷에 적혀 있는 내용을

읽고, 또 읽어보았다. 밭은 숨을 몰아쉬던 업동이의 눈에 진주같은 

눈물이 갈쌍갈쌍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노부부의

두 눈시울도 서서히 젖어들었다.


 ‘내가, 내가 진사 황사영 알렉시오란 분의 아들이라고. 어머니는 정

난주마리아님 이시고 본명은 정명련, 지금 제주 대정현에 유배되어

계시고……. 그럼, 옆에 있는 이분들은 나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

았는데, 나를 거둬 이십여 년이나 친자식처럼 길러주셨단 말인가. 지

금 이 상황을 믿어야 하는 것인가. 아버지께서 나를 놀리려고 하시는

건 아닐 텐데.’


 황경한이 된 업동이는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노부부는

그런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큰 충격을 받았을 아들이 진정되

기를 기다려 주었다.

 

 

 

                                             ♣

 

 

 “얘야, 이제부터 너는 황경한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 마을에 사는

안은 계속해서 업동이라고 불러야 하겠지. 그동안 너를 보호하

기 위하여 가짜 이름으로 불렀던 게야. 우리 부부는 너를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네 형들보다 너에게 더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먹이고 공부

더 많이 시켰다. 이만하면 정마리아님의 바람대로 된 듯도 하지

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구나.”
 오씨는 울먹이는 업동이 황경한의 넓은 등을 다독거렸다.


 “아버님, 어머님, 고맙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킨 황경한은 오상선 부부에게 큰절을 올렸다. 풍

신이 크고 기골이 장대한 황경한이 일어서서 두 사람에게 큰절을

올리자 오상선과 그이 처 눈가에 매작지근한 물기가 비쳤다.


 “두 분 정말로 고맙습니다. 저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도

저를 친자식처럼 키워주신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까요. 제가 오

업동이에서 황경한이 되었더라도 죽을 때까지 두 분 크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황경한은 오씨 부부에게 다시 한 번 큰절을 올리고 눈물을 훔

쳤다.


 “경한아, 고맙구나. 이것은 얼마 전에 제주 대정현에 계신 어머

니 정난주 마리아님께서 인편에 보내오신 편지란다. 어머니는 또

다른 이름으로 정명련이고,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마리아라고

하신다.” 
 “어머님이 저에게 보내신 편지라고요?”

 경한의 두 눈이 화등잔만해 졌다.


 “그래, 진작 너에게 보여줬어야 하는데 좀 늦었구나.”
 오상선은 언젠가 제주에서 소식이 올 것을 예견하고 경한에게 글

공부를 시켰다. 추자도는 제주와 마찬가지로 유배인들이 거주하

있어 뜻이 있는 주민들은 자식들을 그들에게 보내 글을 배우도록 했

다.

 

 오씨는 자신의 친아들들은 이름 석 자 쓸 정도로 간단한 교육으로

끝낸 반면에 경한은 정성을 다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

였다. 


 마을 사람들은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오씨에게 업동이 아들을 공

부시켜 과거를 보게 하려고 한다며 놀려대기도 하였으나, 그는 전

혀 개의치 않았다. 남의 자식이기에 오씨는 더욱 신경을 섰다. 하늘

이 준 자식이기에 그는 하늘이 내린 천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

 


  나의 아들, 경한이에게

  이십년 전인 신유년(辛酉年)에 어미와 자식은 하늘의 뜻을

어기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역모죄에 연루된 죄인의 자식은

대대로 노비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어미는 한쪽 가슴을 도려

내는 아픔을 참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구나.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얼마 전, 네가 오

상선님댁에서 업동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지금쯤 네가 너의 뿌리를 알게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너를 거두어 친자식처럼 먹이고, 입히고, 보살펴주신 두 분을

진정한 부모로 여기고 두 분이 세상을 뜨는 그날까지 효도로써

깍듯하게 모셔야 한다. 북풍한설 휘몰아치던 그날 너를 갯바위

에 올려놓고 떠날 때 이 어미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

졌단다. 그 통한의 아픔은 우리 모자의 운명이라 누구를 탓할

없구나.


 이 어미는 제주 대정현 유지 김석구님 댁에서 침모(針母)로

살고 있단다. 내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단 하루도 너를 잊어

본적이 없었다. 네가 보고 싶을 때면 바닷가에 나가 갈매기에

게 네 소식을 물었고, 보름달이  밝은 밤에는 뒷동산에 올라가

달님에게 내 소식을 띄웠단다. 앞으로 우리 모자가 상봉할 날

이 올지는 모르겠다만, 설령, 그런 날이 오지 않더라도 운명

으로 간주하고 살아가야 한다.


 너와 내가 이렇게 저 제주 앞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승과

저승처럼 떨어져 살아야 하는 말 못할 팔자를 탓하거나 원망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차피 인생은 한번 왔다 가는 것이니,

살아있는 동안 사람으로서 행동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

가면 되는 것이다. 너는 모태신앙의 인생이니 부디 하느님

의 품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잠시도 잊으면 안 된다.


 아들아, 경한아, 네가 이글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어미는 성

령이 너에게도 임했다는 증거로 믿고 싶구나. 항상 윗사람

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으로서 예의와 은혜를 베풀고 살기 바

란다. 간절하면 이루어지게 되니 우리 서로를 그리워하며

열심히 기도하자꾸나. 또 기별하마. 늘 몸 건강하길 빈다.

 

 

                                대정현에서 정난주(명련) 마리아

 

 

 “어머니, 어머니…….”
 언문체로 쓰인 편지를 다 읽은 경한은 대성통곡하면서 어머

니를 불렀다. 경한은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받고

곧바로 답장을 써서 인편에 보냈다. 직접 다녀올 수도 있었지

만 당시에는 섬에서 외부로 나가는 것을 관에서 철저히 통제

하였고, 더구나 경한은 숨어사는 죄인의 자식이었다.


 큰 충격을 받은 경한은 식음을 전폐하고 두문불출하였다. 오

선 부부는 그런 아들을 딱한 시선으로 바라만 볼 뿐, 뭐라고

나무라거나 마음에 상처가 될 만한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의 열흘 쯤 방안에서 뒹굴던 경한이 어느 날, 이른 아침 괴나

리봇짐을 메고 오상선 부부에게 인사를 올리고자 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이렇게 하면 안 되는 일인 줄 압니다만, 이 섬

에만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제주 대정에 다녀와야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아무리 죄인의 자식이라고 하지만, 저를

낳아주신 어머님께서 살아계신데 이렇게 가슴만 태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오상선 부부는 경한의 차림새를 보고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

었다. 설령 제주에 가도록 허락을 한다하여도 제주에 가는 방법

은 배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었기에 관헌들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경한아, 네가 가는 것은 막지 않는다. 네가 나의 입양아들이라

는 사실을 마을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제주에

발을 내딛는 순간 너는 관헌들의 오랏줄에 묶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에 용케도 마리아님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자

칫 너로 인하여 정마리아님이 큰 곤욕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이십 년 전에 너는 죽었다고 조정에 보고가 되었는데, 네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마리아님은

인 은닉죄로 감옥에 가고 너는 노비로 전락되어 평생 노비로 살

아가야 할지도 모른단다.


 “아버지, 제가 알아서 다녀오겠습니다. 절대로 관헌들에게

조사를 받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안심하세요.”


 경한은 오상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섰다. 해남이나

강진에서 출발하여 제주로 가는 상선을 타기 위하여 업동이

경한은 상추자도 당포항으로 향했다. 당포항은 후풍처로 뭍

에서 제주를 오가는 상선이나 관선이 풍랑이 심할 경우에 잠

시 바람을 피하는 포구이기도 했다. 어렵게 상선에 오른 경한

은 오상선이 한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내가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나로 인하여 나나 어머니가 감옥

에 갇히게 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나는 평생 노비로

살아가야 하고, 어머니는 나를 추자도에 내려놓고 죽었다고 하

였으니, 범인 은닉죄가 추가되어 모진 고문을 받을 수도 있다.'


 ‘안 돼. 내가 어머니에게 가면 안 돼.’
 “이보시오. 나를 내려주시오. 중요한 물건을 빠뜨리고 왔소.”

 황경한이 뱃사람에게 소리쳤다.


 “그럼. 빨리 내리시오.”
 막 배가 당포항을 출발할 무렵 황경한은 간신히 배에서 내렸다.

경한은 밤늦게 집으로 되돌아오면서 멀리 제주를 바라보며 오열

하였다.


 “어머니,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를 꼭 뵙고 싶었는데, 갈

수 없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오상선 부부는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마음을 다

잡은 경한은 다시 예전처럼 생활하면서 가끔 어머니에게 서신

보냈다. 정난주 마리아는 아들에게서 온 편지를 받는 날이면 밤새

도록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그리움을 삭혔다. 세월은 문틈으

로 지나가는 백마처럼 무심하게 흐르고 있었다.

 

 


                                        ♣

 

 

 그 사이 황경한은 추자도 처녀를 맞아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

을 두었다. 추자도에는 황씨 성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에 그는

창원 황씨 입도조(入島祖)가 되었다. 황경한은 틈만 나면 산에

올라 남쪽바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일락 말락 하는 제주도를 바

라보며, ‘어머니’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맑은 날은 제주를 더

가까이 볼 수 있었다. 


 아들이 추자도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로부터 마리아

난주는 매사가 고맙고 행복하였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을 돕

고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베풀었다. 주변에는 그미의 덕

행을 칭송하는 사람들이 꽤 늘었다. 그러나 그미는 아들과 서신

을 주고받은 뒤로 행동거지가 예전보다 더 조심스러웠다.

 

 아직도 그미는 자신이 노비라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경거망동

할까 스스로를 극도로 경계하였다. 세월이 흘러 그미도 나이를

먹게 되었다. 그미는 풍부한 교양과 지식으로 섬사람들을 교화

시켰고, 관청에 소속된 노비의 신분임에도 대정현 사람들은 그미

를 ‘서울 할머니’라고 부르며 존경하였다. 그미는 늘 추자도 쪽

을 바라보면서 아들을 그리워하였다. 


 그미 역시도 관노의 신분이라 대정현 지역을 이탈할 수 없었기

에 바다를 가운데 두고서 모자의 상봉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음

력 정월 하순에 접어든 어느 날, 아침까지 별탈이 없던 그미는 오

후가 되면서 갑자기 자리에 누웠다.


 “이모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아침나절까지 멀쩡하시던 분이

갑자기 자리에 눕다니요?”

 김상집이 명련의 방에 들어 그미의 상태를 살폈다.


 “조카님, 이승을 떠나야 할 때가 된듯합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드님 뵐 때까지 오래오래 사셔야지요.”


 “우리 모자는 어차피 이승에서 만날 수 없습니다. 내가 먼저 천국

에 가서 기다려야 겠어요. 조카님, 그동안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 은

혜는 죽어서 저승에 들더라도 잊지 않겠습니다.”


 정난주 마리아의 모습은 이미 이승 사람 모습이 아니었다. 꼭 감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해남댁이 곁에 앉아 그미

의 손을 잡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안 됩니다. 이리 허망하게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이모니임-.” 

 김상집이 정난주 마리아의 손을 꼭 잡고 흐느꼈다. 그러나 그미의

숨결이 점점 쇠미해지면서 정신이 들락날락 하였다. 하루 종일 사경

을 헤매던 정난주(명련) 마리아는 음력 2월 초하루, 66세로 한 많은

세상을 뒤로 하고 선종하였다. 김씨 집안에서는 하추자도에 즉시 인

편에 부고를 보냈다.

 

 그러나 부고를 받고도 황경한은 어머니 장삿날에 갈 수 없었다.

김씨 집안에서는 정난주(명련) 마리아를 제주 대정읍 보성동 김씨

선산에 유택을 마련하고 영면할 수 있게 하였다. 안동 김씨에 의한

세도정치가 본격화 될 무렵이었다


 “어머니의 부음을 받고도 찾아뵙지 못하는 불효자식을 용서하세

요. 훗날 저승에 들면 어머님께 천배, 만배 절을 올리겠습니다. 어

머님, 부디 천국에 가시어 하느님 품에 안기소서.”


 경한은 이후 삼년 동안 베옷을 입고 아침저녁으로 산봉우리에

올라 제주 대정 쪽을 향해 어머니를 부르며 통곡하였다. 자신이

대역죄인 황사영의 아들이라는 것을 숨기고 당장 제주도로 달려

가고 싶었으나, 절해고도에 숨어 사는 죄인의 처지에서 고인이

되신 어머니의 명예를 위해서 차마 그리할 수는 없었다. 대왕대

비 김씨의 정적들을 향한 복수극으로 말미암아 모자의 눈물바다

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끝-
  

 

 

        본 단편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오로지 소설로 읽어 주세요.

 

 

 

 

 

 

 

 

 

 

 

 

 

 

 

 

 

하추자도  황경한(헌)님 묘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음.

 

 

 

 

 추자도 지도

 

 

 

하추자도 신양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