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비봉 - 필자 직촬
서 있는 길
- 북한산 비봉을 오르며 -
- 여강 최재효
지천명이 되도록 누운 길만 걸었다
한 번도 길이 나에게 삿대질을 하거나
강하게 반항한 적은 없었다
나는 이제껏 내가 언제나
누운 길만 걸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신발 수십 켤레를 버리고 나서
나는 우연히 서있는 길을 발견하였다
항상 곁에 있었는데
왜 이제서야 눈에 들어 온 걸까
나는 오늘도 서 있는 길을 오른다
누운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아 무료하다
서 있는 길은 끝이 눈앞에 있지만
오를 때 마다 오금이 저린다
서 있는 길도 본래 누워있었다
서 있는 길 끝에는
무수한 무덤이 널려 있어 꽤 볼 만하다
바람의 무덤이 있고
세월의 무덤이 있으며
방황하는 발걸음의 무덤도 있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길 정점에는
나를 닮아 수줍은 초승달이 앉아 있다
- 창작일 : 2011.10.2.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