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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전선(마지막)

* 창작공간/단편 - 제2전선

by 여강 최재효 2009. 4. 16.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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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전선(마지막)

 

 

 

 

                                                                                                                                                                                          - 여강 최재효

 

 

 

 

 “예, 알겠습니다요. 백설 공주님.”

 “이히히힝 -”

 

 알몸의 미연이 사내 등에 타고 채찍을 휘둘러 댔다. 미연은 어린 아이처럼 구는

사내에게 반말로 하면 사내는 학생처럼 대했다. 사내의 등짝이 벌겋게 변한 뒤

미연은 사내로부터 자신의 아내가 사망하면 즉시 자신을 안내로 맞이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미연은 그것도 미덥지 못해 사내에게 각서를 요구하였고 사내는 즉석에서

각서를 쓰고 사인까지 해 주었다.

 

 ‘아, 빨리 그 여자가 죽어야 할 텐데…….’

 땀으로 범벅이 된 사내의 가슴에 안겨 미연은 편안한 휴식을 취하였다. 사내는 자신의 욕구충족을 너무나 완벽하게 채워주는 미연이 천사 같았다. 지난 10년 오로지 S그룹 안 주인이 되기 위하여 온갖 고통을 감수한 미연이였다. 결혼 후 어쩌다 갖는 남편과의 합방은 미연이에게 밍밍한 물 같았다.

 

 물론 지금 이 집은 남편 이대로의 명의로 되어 있지만 구입할 당시 반은 자신의 돈이 투입되어 이제는 두 배 가까이 집값이 올라 있었다. 미연은 자신이 S그룹 안주인이 된다면 몇 푼 안 되는 이 집은 포기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주위의 시선과 추측이 신경 쓰일 것같았다. 밤 10시가 좀 넘은 시각 대취한 이대로와 지현이는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택시를 내린 이대로는 집안을 살폈다. 자신의 성(城)인 2층은 불이 꺼진 채 고요에 휩싸여 있고 1층 거실은 커튼이 쳐져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동쪽에 위치한 안방의 창문 역시 시커먼 것이 분명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분명히, 그 작자가 와 있겠구먼. 빌어먹을 내가 이 집 주인인데 주인행세를 못하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군. 호구지책에 발목이 잡혀 제 아내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다니…….’


 이대로는 아내 미연과 집이 팔리면 합의 이혼하기로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본 뒤 철 구조물로 2층까지 연결되는 임시 계단을 설치하고 집안에서 1층과 2층으로 통하는 통로를 폐쇄하였다. 완전히 각자의 성을 만들어 놓고 부부는 성주(城主)가 되었다.

 

 “대로씨, 어서 올라가지 않고 뭐해요?”

 “…….”

 “대로씨.”

 “쉿, 나 집에 온 거 와이프가 모르니까. 조용히 해.”

 

 이대로는 아내 미연이 살고 있는 1층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고 살며시 밀어보았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현관 문틈으로 미약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아내 미연이 집안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내가 크리스마스이브 밤에 혼자서 집안을 지키고 있을 거란 생각은 순진 그 자체였다. 이대로는 아내의 침실인 동쪽의 방 아래로 살며시 기어가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아내의 침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다만 붉은 빛이 커튼 사이로 비치는 것으로 보아 분명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이대로는 몇 년 전 우연히 훔쳐본 아내의 미끈한 등이 아래위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움직이던 충격적인 광경을 기억해 냈다.

 

 ‘아아, 아닐 거야. 혼자서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고 있을 거야.’

 비록 아내와 집이 팔리면 합의 이혼하기로 약속하였지만 아직까지는 합법적으로 아내 미연이의 성(性)은 엄연히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니 아내의 아랫도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대로씨, 뭐해요?”

 “쉿!”

 “대로씨, 나 추워요. 어서 들어가요.”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지현이 저 뒤에서 이대로에게 소리쳤다. 자신을 집 앞에 세워두고 아내의 침실을 기웃거리는 이대로가 우습기도 하고 딱해보이기도 했다. 지현이도 이대로의 요염한 아내 미연이를 잘 알고 있었다. 미연이는 늘 회장과 붙어 다니며 S그룹 내에서 공주로 통할 정도였다.

 

 어쩌면 지현이 이대로를 미연이로부터 이혼시키게 된 것이 같은 여자로 태어나 그룹의 회장으로부터 절대적인 총애를 받는 미연이에 대한 시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 한 잔해요. 아마도 당신 아내, 아니 S그룹 최고의 공주님은 아래층에서 음흉한 백설 공주가 되어 백마 탄 왕자의 품에서 행복에 겨워하겠죠?”

 

 “…….”

 “같은 여자로 태어나 불평등한 경우를 나는 볼 수 없다고요.”

 “아냐, 아내는 지금 잠들어 있을 거야.”

 “공주의 퇴폐적 기질이 어디를 가겠어요?”

 

 “…….”

 “대로씨, 아래층에 분명히 미연씨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거예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우리 춤춰요.”

 

 “…….”

 “어서요. 그래야 저 인쥐들이 당황하죠.”

 “그냥 조용히 있어도 되잖아. 이렇게 우리 둘만 있는데…….”

 “싫어요. 저들에게 당신의 존재를 알려야해요.”

 “뭐 꼭 그렇게 할 필요까지 있어?”

 

 “대로씨는 원통하지도 않아요?”

 “나는 이렇게 당신을 안고 있잖아.”

 “치이, 나는 내가 원해서 그 사람하고 이혼했지만 대로씨는 타인의 강요에 의해 결혼 하였다가 또 그 사람에 의해 이혼하는 거잖아요.”


 “꼭, 강요만은 아니야. 나와 아내는 처음보터 안 맞았어.”

 “…….”


 “이제 서로의 길을 가야해. 그게 편해. 어서 이집이 팔리면 서둘러 갈 길을 가야지.”

 지현이 컴퓨터를 부팅하고 음악 전문 카페에 접속하여 부르스 풍의 음악을 연속 듣기로 설정하였다. 음악소리는 2층의 공간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아 아래층에서도 충분히 감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일부러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의 신경을 자극하기 위한 지현의 방법이었다.

 

 ‘분명히 아내는 그 분과 함께 있을 거야. 그러나 나는 왜 그 분의 사회적 위상에

눌려 아무 말도, 그 어떠한 힘도 쓸 수 없으니 나는 무엇인가? 그래도 나는 그 분의 배려로 이 만큼 성장하였고 여전히 그 분의 총애를 입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남편과 아내가 어느 특정 집단의 오너에게 총애를 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부부에게 있어 재앙일 수 있어. 면밀히 따지고 보면 지금의 내가 철저히 그 분의 계산에 의하여 총애를 받으며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나에게는 채찍과 사탕을 적절히 분배해 주면서 최면에 걸리게 해놓고 황금에 눈 먼 아내에게는 늘 사탕만 제공함으로써 깨어날 수 없는 미몽(迷夢)에 빠져들게 하는 그 분이 구세주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악마가 분명하다고 나는 판단하고 있어. 돈이란 참으로 존재의 가치가 있으면서도 더러운 것이지. 염병할 놈의 돈. 그 돈 때문에 나는 내 영혼마저 악마에게 저당 잡힌 채 아내와 이혼하지 못해 안달하고 있으니 과연 내가 제대로 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대로씨, 무얼 그리 생각해요?”

 자신의 풍만한 육덕을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감흥(感興)을 표현하지 않는 이대로를 보고 지현이 불만을 표시하였다.

 “응? 아냐. 아무것도.”

 

 “우리, 디스코풍이나 비트음악을 틀어 놓고 춤춰요. 이 집에는 인쥐가 없나봐요. 아무도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으니 우리 신나게 춤이나 춰요. 아니면 크리스마스이브 밤이니 멋진 나이트클럽에 놀러가서 밤새 놀던 지요. 대로씨, 그런 무뚝뚝하고 우울한 표정 나는 싫어요.”

 

 “아, 알았어. 미안해. 지현이 맘대로 해.”

 “고마워요.”

 지현은 컴퓨터에 스테레오 시스템을 연결하여 음량을 최대 출력으로 키워놓고 혼자 춤을 추었다. 원더 걸스의 노바디(Nobody)가 2층 전체를 흔들었다. 지현의 방법은 적중했다. 아래층에서 단잠을 청하려하던 미연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죄송해요. 위층에서 지진이 일어났나봐요.”

 “아냐, 괜찮아. 신경쓰지마.”

 “죄송해요.”

 “괜찮아. 나는 그대를 안고 천국여행을 하는데 위층에서 우리를 질투해서 내는 소린인데 신경쓰지말어.”

 

 “…….”

 “나 삼십분 정도 있다가 나갈게. 자정에 J그룹 이회장과 만나기로 했거든.”

미연은 할 수 없이 집에 혼자 있어야 했다. 집에 있는 것은 상관없지만 2층에서 들려오는 도발적 행위에 대해 어쩌면 밤새도록 인내해야 한다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기축년은 모두에게 소의 은근과 끈기 우직함을 기대하게 하였다. 이대로는 가까스로 집을 처분하였다. 예전의 시세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만족할 만한 가격이라고 스스로 만족하였다. S그룹의 안주인은 12월 마지막 날 이승의 여행을 마쳤다.

 

 “당신이 우리의 보금자리를 구입할 때 나보다 더 많이 투자하였으니 당신이 더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겠지.”

 이대로는 아내 미연이에게 고액권 수표 다발을 내밀었다.


 “아니에요. 똑같이 나눠요.”

 정부(情夫)의 정략적 방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대로와 결혼한 미연은 이대로에게 미안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남편 이대로가 측은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스스로 비하(卑下)했다.

 

 ‘나쁜 년. 나는, 나는 나쁜 년이야. 이러다 천벌을 면치 못할 거야. 순진한 남자를 농락한 죗값을 나중에 어찌 치러야 하나......’

 “그 동안 당신 고생 많이 했어요. 앞으로는 나처럼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남자는 만나지 말아요. 세상 살다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 못하고 사는 것도 꽤 고통스럽더군요.”

 

 이대로는 이혼하는 마당에 아내인 미연에게 존대를 하면서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을 쏟아냈다. 그러나 미연은 이대로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았다.


 ‘흥, 나는 곧 S그룹의 안주인이 될 고귀한 신분이야. 웃기지 말라고. 너처럼 하등동물들은 어쩔 수 없어.’

 미연은 남편 이대로의 잘 생긴 얼굴을 보며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아니에요. 나도 당신과 오랜 세월 함께하며 해로동혈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아 마음이 몹시 아파요. 우리의 인연은 오래토록 서로의 가슴에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을거에요. 다행히 우리에게 이세(二世)가 없어서 안심이 됩니다.”

 ‘이런 빌어먹을 여자가 있나…….’

 

 “그래, 당신말대로 이혼하는 마당에 혹이라도 하나 있다면 서로가 불편하겠지 참 잘된 일이야 혹이 없다는 게.”

 “우린 참으로 행복한 부부였어요.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행복했다고?” 이대로가 두 눈을 치켜뜨고 미연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니었던가요? 난, 그런대로 행복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 그렇지 정말로 행복한 부부였지. 당신 말이 맞아. 내가 생각해봐도 우리는 정말로 허심탄회하고 맑은 물속에서 잘 어울리는 한 쌍의 금붕어 같았지. 너무나 부부관계가 투명해 남들도 훤히 알고 있었으니까.”

 “…….”

 “나는 늘 제2전선을 구축하고 있었지. 제1전선은 나도 모르게 무너져버렸으니까.”

 

 “제2전선? 그게 무슨 뜻이죠?”

 “나나 당신이나 각자의 마지노선은 생각하고 있어야할게 아니가?”

 “나에게 제2전선은 생명선이나 마찬가지지.”

 “난,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

 

 이대로와 미연은 법원에 합의이혼 소송을 제기하였다. 미국 판 금융위기는 지구촌 여러 곳에 심한 상흔(傷痕)을 남겼다. 한 몫 보려고 벼르던 사람들에게 좌절을 안겨 주기도하고 한국을 떠나 해외에 살면서 고국의 부동산 급락을 찬스로 여기고 역으로 투자하는 부류도 있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한 달이 흘렀다. 이대로는 지현과 동거에 들어갔고 이혼하면서 집 판돈을 몽땅 새 집을 구입하는데 투자하였다. 물론 지현이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을 어느 정도 보탰다고 이대로는 부동산을 지현이 명의로 등기소에 등록하였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지현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대로는 멕시코지사로 발령을 받았고 S그룹 회장은 그런대로 미연이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구정이 지나고 며칠 후 지현이는 이대로 모르게 부동산 전문 신문에 매물로 내놓았고 S그룹에서는 사세(社勢)가 비슷한 그룹의 로열패밀리 중에서 참신하고 역량 있는 신붓감을 은밀히 알아보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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