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이 흐른 뒤
- 여강 최재효
봄이 되면 진달래는 필 테고
뙤약볕아래 매미가 악을 쓰고 울 테고
서늘한 바람에 코스모스 한들거릴 테고
초승달은 여전히
여린 가슴들에게 눈물을 요구할 테지
시간의 포로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단 일초는 황금보다 소중한 것
장정(長程)을 떠나기 전 까지 그 누구도
함부로 큰 사람 흉내를 내거나
스스로 진정한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하리
지구가 스스로 삼만 육천오백 번을
팽이처럼 돌더라도
봄이면 거짓말처럼 진달래가 나오고
매미와 코스모스가 여전히 존재할 테니
신월(新月)은 어제의 일을 잊은 채
순진한 가슴들에게
더욱 많은 눈물을 요구하며 손을 내밀 테지
백 년 전 사람들은 망각의 강을 건너
새로운 가문에 일원이 되었거나
복날, 죽음의 공포에 떠는 충복(忠僕)으로 있거나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 있거나
혹은 심연(深淵)의 물고기가 되어 있거나 하겠지
지금의 추억을 까맣게 잊은 채
- 창작일 : 2008.06.12. 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