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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촌(終)

* 창작공간/단편 - 삼 촌

by 여강 최재효 2007. 8. 29.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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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 촌(終)


 

                                                                                                                                                                                   - 여강 최재효




  그분을 집으로 초대한 뒤로 매주 월, 수, 금요일 오전 10시면 어김없이

그분의 발자국 소리를 현관 앞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은 습관처럼 한 층

을 계단으로 내려와 16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분이 탄 엘리베이터가

수직하강을 하면 외출준비를 마친 나는 그분이 뒤를 이어  엘리베이터 버튼

을 눌렀다.


 그분이 공원 저쪽 한편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으면 나는 살며시 다가가 그 분

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그분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을 읽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공원을 한 두 바퀴 돈 우리는 다음에 아파트 단지에서 가까운 커피 전문점이

나 한방차를 취급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커피를 선호하지만 그분의 

취향을 고려해 한방차를 취급하는 찻집을 주로 찾곤 했다. 내가 그분을 만나러

나갈 때 실수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차지 않으면 그분의 얼굴빛이 약간 굳어

지거나 먼데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면 나는 집에 두고 온 것이 있다고 핑계를 대고 집으로 달려와 다이아몬

드 목걸이를 착용하고 다시 공원으로 나갔다. 그분은 얼굴은 금방 아이처럼 

변했다.  


  나와 그분이 아파트 근처에 갈만한 장소는 한정되어 있었다. 한번은 내가 자

동차를 운전하고 그분을 조수석에 앉게 한 다음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돈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분은 소풍가는 어린아이처럼 콧노래를 부르고 처음 보는 빌

딩이나 큰 구조물을 보면 큰소리를 치며 좋아했다.


 해외에서 국내에 들어 온 뒤로 서울시내 구경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떤 날은 함께 명동일대를 구경하였는데 그분은 나에게 루비와 에머럴드가 박

힌 팔찌를 선물로 사주었다. 팔찌를 손수 내 팔목에 끼워주면서 참으로 잘 어울

린다고 했다.


  그렇게 매주 세 번씩 우리는 데이트를 하였고 그때마다 그분은 나에게 명품

여성 의류나 액세서리를 선물하였다. 나는 속으로 그분이 끝없이 재물이 나오는

화수분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분에게 큰 선물을 받을 때마다

나는 어떻게 그분에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어느 늦봄 햇살이 고운 날이었다. 그때도 아침 10시에 만나 공원을 산책하

고 나는 그분을 집으로 모시고가 점심을 대접하고 싶었다. 물론 처음 초대할 때

처럼 시장을 봐오거나 거창하게 음식을 준비하지 않고 평소 집에서 먹던 반찬

으로 점심 상을 차려 드리면 그분에게 심적 부담이 덜 될 것 같았다.


  “애기 엄마의 음식 솜씨는 정말 알아줘야해.”
  나와 마주앉아 식사를 하던 그분은 된장찌개를 몇 숟가락 들더니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였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 내가 음

식 솜씨가 좋다는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주로 양주 한 잔 하시겠어요?”

  “아냐, 양주 말고 혹시 소주 있으면 좋은데…….


  나는 얼른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따라 드렸다. 연거푸 석 잔을 마시더니

나에게 잔을 건넸다. 어른이 주는 잔을 거절할 수 없어 그분이 따라주는 소주

를 두 잔이나 받아마셨다.


 나는 맥주가 체질적으로 맞아 소주는 잘 마시지 않지만 집에 친구들이 놀러

오거나 친정에서 누가 오면 그들이 마시다 남은 소주를 버리기 아까워 간혹

한 두잔 마셔봤을 뿐이었다. 소주의 쓴 맛이 달콤한 것에 길들여진 내 입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점심을 들면서 소주 두병을 마셨다. 한 병 반은

그분이 나머지는 내가 마셨다. 소주에 약한 나는 그날도 그분을 처음 초대하

던 날과 비슷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어르신.”
  “응?”
  “제가 어르신을 삼촌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오늘처럼 함께 있을 때만요.”


  “삼촌? 그야 어르신이라는 말보다야 듣기 좋지. 애기엄마 마음대로 해요.”
  “그럼, 이제부터 저에 대한 호칭도 애기엄마에서 다른 호칭으로 바꿔서 불러

주세요.”


  “다른 호칭이라? 뭐가 좋을까?” 

  나와 그분이 나에게 알맞은 호칭을 생각하느라 잠시 골몰했다. 잠시 후 그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제니가 어떨까? 촌스럽지도 않고 약간은 세련된 맛도 풍기는데.”
  “어르신 그 이름 혹시 외국에 근무하실 때 사귀던 애인이름 아니지요?”
  “애인이름? 그럴지도 모르지.”

 
  그때부터 나는 그분을 삼촌이라고 불렀고 나는 제니가 되었다. 서로 부자연스

러웠던 호칭에서 해방되니 우리는 더욱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입가심으로

맥주를 마셨다.


 처음 그분을 집에 초대했을 때처럼 홀리오이글레시아스의 감미로운 음악이 거

실 안을 훈훈하게 했다. 으레 그래왔던 것 처럼 나는 그분의 품에서 춤을 추었고

소파에 앉아 그분의 어깨에 기댔다. 잠시 후 그분의 거친 호흡소리와 입김이 내

귀를 자극하였고 나는 거의 누운 상태로 그분의 무릎을 베었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긴 시간 우리는 한 폭의 아름다운 정물화가 되었다.


  둘째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나는 낮잠에서 깼다. 흐트러진 잠자

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분은 집에 가고 없었다. 침대가 운동장만큼이나 넓어

보였다. 그러나 죄책감 같은 전혀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외간남자를

집안으로 끌어들인 것도 큰일이거늘 그 이상의 행동에 대하여 나는 서서히 도덕

불감증이라는 전염병을 앓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나는 거울 속에 흐트러진 머리와 무엇

때문 인지 모르지만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여인을 보았다. 예전의 여인이

아니었다. 따뜻한 물이 나의 전신을 말끔하게 씻어 내릴 때 나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유방과 남자라면 누구라도 눈길을 주지 않고 배기지 못할 감각적인 엉덩이

를 만져보았다.


  ‘그분이 나의 육덕에 반해 마지막 정염을 볼 태우고 있는것은 아닐까?’
  복잡한 생각을 하고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둘째 아이가

분명했다. 먼저번 처럼 나의 은밀한 행동이 들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와 그분

사이의 밀월은 칠월 중순까지 은밀하게 지속되고 있었다. 


 아이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나와 그분 사이의 은밀한 데이트는 쉽지않았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지방에 있는 친정집을 다녀오기로 했다. 거의 보름간을

친정집에 머물다 서울로 올라왔을 때 나는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다. 월, 수, 금요

일이 되어도 그분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내가 친정에 간 동안 그분도 미국에 있는 자식들에게 갔거나 또는 다른 볼 일이

있어 집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름 가까이 지났어도 그분의 인기척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분의 소식이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용기를 내어 그분의

초인종을 눌렀다.


  “저어, 어르신계세요? 아랫집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어준 사람은 먼저 번 그 여자가 아니었다. 삼십대 초반의

여인인데 그분과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저어 어르신 잡수시라고 시골서 가져 온 옥수수를 쪄왔어요.”


  “…….”
  “어르신 집에 안 계세요?”


  “…….
  “어디 나가셨어요? 어르신께서요?”


  “죄송하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네에?”
  “저는 그분의 큰 딸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래층에 사시는 분이 오시면 전해 드리

라고 하는 게 있어서요.“


  “제 이름은 제니인데요. 어르신은 어디 계세요?”
  “아버지는 여행 떠나셨어요?”
  “여행이라니요? 어디로요?”


  “하늘로요."

  "네? 하, 하늘로요?


  "아버지는 이십일 전에 세상을 뜨셨어요.”
  “뭣, 뭐라고요? 정말이에요?”


  “그럼, 제가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댁과 말 장난을 하고있다는 말씀이세요?”
  “미, 믿을 수가 없어요.”


  “아버지는 주무시다가 돌아가셨어요. 병원서는 기운이 쇠약한 상태에서 갑자

기 심한 운동 후에 나타나는 심장 피로증과 전부터 앓아오시던 고혈압이 갑작스

러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했어요. 아버지의 유언대로 화장하여 서울 근교 사

찰에 영가를 모셨답니다. 그리고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가 제니라는 분에게 쓴

편지를 발견했어요. 댁이 제니씨 틀림없죠?“


  나는 편지를 받아들고 방망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한 상태로 집으로

내려왔다. 한 층을 내려 오는데 몇 년이 걸린 것 같았다. 어떻게 계단을 내려왔는

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고 냉수를 들이켰다. 그분이

내게 남겼다는 편지를 뜯어보았다. 하얀 종이에 청색을 펜으로 쓰인 글씨가 천천

히 눈에 클로즈업 되었다. 

 


     내 사랑, 제니에게

 

    우선 이 사람을 용서해달라는 말부터 하고싶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뜻을

  알고 있으리라 믿어. 나를 낳아준 부모도, 한 평생 얼굴을 부비고 살던  부부도,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들도 언젠가는 자신으로 부터 다시는 돌아 올 수 없

는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망각을 하지. 


   지난 1년간이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어. 다시는 꽃을

  피우지 못할 것 같은 고목에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들었다는 사실에 나는 지금

  이 시각에도 벅찬 감동을 느끼고 있어. 요즘들어 심장에 큰 무리가 간 모양이야.

  자다가도 몇번씩 깨어나지. 내일 아침에 뜨는 태양을 볼 수 있을지 강한 의문이

  일기도 하지. 내가 그대를 알지 못하고 레테의 강을 건넜다면 나는 이 세상에 대

  해 너무 원통해 하고 아쉬워서 차마 갈길을 가지 못할거야.


    그대와 함께 했던 시간이 비록 길지는 않았어도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황금같은 추억이 되었어. 나는 그대를 알고난 뒤부터 매일

  밤 제니에게 편지를 쓰지. 다음 날 아침 내가 온전하게 눈을 뜨면 나는 간밤에 써

  놓은  편지를 찢으면서 오늘 하루 그대를 더 볼 수 있다는 희망에 존재의 이유를

  찾곤해. 만약 제니가 이편지를 읽게 된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부디 이 편지도 내가 내일 아침 내손으로 찢어버릴 수 있으면 좋겠어.


    그대에게 좀 더 잘해주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해주지 못한것이 늘 아쉬워. 다음에

  날씨가 좋으면 제니와 함께 남산케이블카를 타고 싶어. 남산타워에 올라가 서울의

  야경을 보고싶어. 라운지에 제니와 마주앉아 테킬라선셋을 마시며 서해로 지는

  낙조를 함께 보며 환하게 웃고 싶은데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올지 모르겠어. 이 순간

  에도 심장이 옥조여오는 느낌이야. 곧 통증이 올테고 약을 먹으면 잔잔한 호수같이

  평온을 찾겠지. 


    인생의 후반에 제니를 만나 새로운 인연을 쌓았는데 그 인연이 사막의 신기루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와의 인연이 오래 이어지면 좋을텐데. 약을 복용하였

  더니 평온이 찾아오는 것 같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하겠어. 창 밖에 새벽달이

  너무나 창백하네. 마치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같애. 내일도 나는 저 달을 볼 수 있

  으리라 믿어. 그러나 점점 늘어만 가는 약봉투를 보면 자신이 없어지기도해.

  제니, 잘자요. 내일이 금요일인데. 그대를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20**. 8. 2. 새벽에

 

  

  "바보. 당신은 바보야. 그리도 철석같이 약속을 해놓고 먼저 가다니."

  나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삼촌의 큰딸이라고 하는

여인이 나와 삼촌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하여 꾸며낸 수작이라고 생각하고 싶

었다.


  "아냐, 그렇게 쉽게 갈 삼촌이 아니야."

  나는 한참 울고나서 윗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큰딸이라는 여

인이 현관문을 열었다.


  "여보세요. 삼촌이, 아니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말이 저를 놀리기 위해 한 말씀

이죠? 그렇죠?"


  여인은 찌푸린 얼굴로 나를 쏘아보았다. 한심하다는 눈빛과 나를 경멸하는 시

선이 혼합되어 나의 자존심을 구기고 있었다.


  "말씀해보세요. 우리 삼촌 잠시 어디 놀러 가신거죠? 그렇죠?"

  "이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우리 아버님은 돌아가셨단 말이예요. 어쩌면 당신이

우리 아버지를 빨리 돌아가시게 했을지도 몰라요." 

  "아닙니다. 정말이지 아니라구요. 저와 그분은 마음을 나누고 지냈던 사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하나님도 아시고 계실겁니다."


  "흥, 미친 여자로군."

  여인은 나와 실랑이를 벌이고싶지 않은 듯 문을 쾅 닫아버리고 말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똑바로 말씀해 주세요."

  나는 현관문을 두드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다른 이웃들을 의식해서 그

런지 곧 현관문이 열리더니 그 여자가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이봐요. 당신 미쳤어요? 우리 아빠가 돌아가신건 당신 때문이라구. 당신이 몸

이 성치않은 우리 아빠를 유혹해서 못된 짓을 유도해 우리 아빠의 건강이 악화돼

빨리 돌아가신거라구요. 알았겠요? 경찰 부르기 전에 어서 돌아가세요."


  "이봐요. 그럼 그분을 모신 절이 어디인지 알려주세요."

  "인천에 있는 정토사 극락전에 모셨어요."

  "정토사 극락전?"


  여인은 현관문이 부서져라 닫아버리고 말았다. 나는 인터넷에서 정토사의 위치

를 알아내고 자동차를 몰았다. 집에서 나올 때 삼촌에게 받은 선물들을 모두 가지

고 나왔다. 미친 듯 자동차 악세레이터를 밟아댔다. 한 시간만에 정토사에 도착해

극락보전으로 향했다. 마침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고 있었다.


 극락보전 가운데에는 서방정토에 계신다는 아미타여래가 계셨고 좌우로 근엄한

지장보살과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관세음보살이 협시(脇侍)하고 있었다. 보전 우

측 벽쪽에 삼단으로 만들어진 단 위에 십여개의 영가들의 액자사진들이 진열되

어 있는데 사진 앞에 하얀 보자기로 싼 납골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사진

들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 보았다. 맨 아래중간쯤 왔을 때 나는 숨이 멎는줄 알

았다.


  "아, 삼촌. 삼촌이 어떻게 여기에……."

  삼촌이 잔잔한 미소를 띠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정 사진은 10년 전쯤 촬

영한 것 같은데 엷은 하늘색 정장에 분홍색 넥타이를 맨 삼촌의 모습은 영화배우

뺨칠 외모였다.


  "삼촌, 어떻게 여기 계시는 거예요? 네에?"

  나는 바닥에 주저 앉아 삼촌의 납골 항아리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나의 통곡 소

리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스님은 염불에 열중했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지미 사바하 …….


  천수경염불이 끝나자 스님은 울고있는 나를 진정시키고 법문을 시작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보살님, 어이 그리 우시는지요?"

  "저는 이분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잠시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돌아가셨

여요."

  염주를 굴리면서 스님은 잠시 눈을 감고있었다.


  "스님, 저는 이분께 많은 빚을 졌습니다. 어떻게해야 마음의 짐을 덜 수 있겠는

지요?"


  "나무아미타불. 보살님,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터 무거운 짐을 지게되

어있답니다. 다만 스스로 그 진 짐을 가볍게하는 것도 더욱 무겁게하는 것도 모두

가 본인의 업에 달렸지요. 선업을 지으면 가벼워 질것이고, 악업을 지으면 태어날

때 짊어졌던 것 보다 백배 천배 무거울 겁니다. 누가 누구에게 빚을 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구에게 빛을 진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지은 것이지

요.


 현세의 모습은 이전 세상, 즉 전생의 결과물이요 현생의 과업은 내생의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다만 사바세계 중생들은 현실의 결과가 자신의 듯에 의해 이루

어 진 것이라 생각한답니다.


  이승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이미 선업을 쌓은 결과이며 잘못된 부귀영화

는 미래불구덩이보다 더한 고통을 수반하게 되지요. 보살님은 너무 슬퍼할 것

도 아쉬워할 것도 없습니다. 보살님 역시 언젠가는 누구의 가슴에 슬픔을 남기게

될테니까요. 제행무상이지요. 제법무아이고요. 나무아미타불."


  나는 스님에게 법문을 듣고난 뒤 삼촌에게 백배를 올리고 절을 나왔다. 이대로

집으로 간다면 나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집에 두 아이들에게 전화르 걸어 엄마가

급한 일이 있어 늦겠으니 저녁을 시켜서 먹으라고 하고 한강으로 서울로 차를 몰

았다.


 노량진역 근처에 차를 파킹시키고 술집을 찾았다. 나는 오늘 나에게 일어났던 일

들이 잠시 낮잠을 자는 사이에 꾼 꿈이라고 믿고 싶었다. 나는 횟집에 들어가 회

한 접시와 소주를 주문했다. 쉴 사이도 없이 소주를 마셔댔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

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안주는 입에 대지도 않고 소주를 미친 듯 마

셨다. 순식간에 빈 소주병 세개가 테이블 위에서 뒹굴렀다.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걸어서 제1한강교를 향해 걸었다. 내가 휘청거리며 인

도를 걷자 지나가는 사람들과 신호대기중인 차량 운전자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

되었다.


 대 낮부터 젊은 여자가 술에 취해 비틀대는 모습에 행인들은 재미있어했다. 그들

내가 실수라도 해서 길바닥에 엎어지거나 나뒹굴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어떻게 왔는지 모르지만 나는 한강 철교 위에 있었다.


  무정하게 떠난 삼촌이 얄미웠다. 한 남자에게 시집와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

하려고 하였지만 그 남자는 나의 희망을 짓밟아버렸다. 뒤 늦게 안 또 한 남자는

나의 마지막 희망을 사정없이 무너뜨리고 홀로 하늘 여행을 떠나버렸다. 나는 매

정할지 모르지만 삼촌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사라졌다고 판단했

다. 목에 차고 있던 다이아몬드가 찬란한 목걸이와 팔찌를 풀어 손바닥 위에 올려

놓았다.


  "나쁜 사람, 나를 이따위 쇠붙이 따위로 묶어두려고 했단 말이야? 나를?"

  나는 울다 웃다가를 반복하면서 나에게 손짓하고 있는 한강물을 응시했다. 그러

나 아직은 나의 임무가 남아있고 혹시라고 마음을 돌릴지도 모를 남편이 있는 몸

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와 팔찌 그리고 잠시 눈이 멀었던 어떤 여인의 욕망

을 싸잡아 강으로 던져 버렸다.

 

 

                                                                                         -끝-

 

 

 

              _()_  아직 탈고 전입니다. 비문, 오탈자 등 이 있으니

                     깊이 혜량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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