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18. 4. 28. 23:19







조정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성경(成卿)·태성(台城), 호는 정헌(靜軒)·대릉(大陵). 증조

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조태채(趙泰采), 할아버지는 조겸빈(趙謙彬),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조영순(趙榮順), 어머니는 김시눌(金時訥)의 딸이다.


1751년(영조 27) 경기도 장단에서 태어난 조정철(趙貞喆)은 1775년(영조 51)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 올랐다. 1777년(정조 1) 별감 재직 중에 강용휘(姜龍輝) 등이

정조를 시해하려한 사건에 연루되어 참형에 처해질 뻔했으나 전 우의정 조태채(趙泰采)

의 증손자임이 참작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제주도에서 장기간 유배 생활을 하고 이후 정의현, 추자도, 광양현, 토산현으로 유배지

를 옮겨 다닌 끝에 1805년(순조 5) 유배 28년 만에 풀려나 복권되었다. 1809년 사간원

정언을 거쳐 1811년 제주목사겸전라도방어사로 유배지였던 제주도로 부임하였다.

제주목사로 있으면서 제주성을 개축하고 감귤 제배를 권장하는 한편 육지에서 들어와

노비가 된 자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부역의 부담을 줄였다.

1812년 동래부사로 전임하고, 1813년 충청감사가 되어
충청감영이 있는 공주로 부임해

활동했다. 1816년 이조참의, 1822년 이조참판, 성균관대사성, 1824년 형조판서, 예조

판서, 1826년 형조판서, 의정부좌참찬, 1827년 대사간, 1828년 형조판서, 1830년 대사

헌을 역임하고, 1831년(순조 31) 지중추부사로 있다가 8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저서로 제주도 유배지에서 지은 시를 조정철 자신이 직접 편집하여 1824년 간행한 『
정헌영해처감록(靜軒瀛海處坎錄)』 4권 2책이 있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다.


















孤臣血淚泣君恩 외로운 신하 임금 은혜에 피눈물 흘리며,

萬事南荒一戒存 남쪽 변방 온갖 일 한결같이 경계했네.

昨日狂風大樹 어제는 미친 바람 큰 나무에 불어서는

殘花嫰葉落紛紛 시든 꽃 부드런 잎 어지럽게 떨어졌네.

 


毒楚如鋒事不根 근거도 없이 칼끝 같은 독한 매질했으나,

爾言破竹息紛紜 너의 말은 똑 부러져 시끄러움 잠재웠네.

猶將密啓成吾案 오히려 밀계로 나의 죄안 이루었으니

生死如今在聖君 생사가 현재에는 성군에게 달렸다네.

 

 

洪娘[名允愛]毒楚之下氣絶, 而口猶稱寃. 禍色尤急, 雉懸而死. 金蓍耈乃欲文過遂非, 密啓上聞云題此.

홍랑[이름은 윤애이다]이 모진 고문을 겪어 기절하면서도 입으로는 오히려 원통하다 말을 했다. 앙화의

기색이 점점 다급해지자 목을 매고 자진했다. 김시구는 자기 허물을 문식하여 나쁜 짓을 완수하려고

밀계를 상감께 올렸다 하므로 이 시를 쓴다.)

 




橘柚城南三尺墳 성 남쪽 귤, 유자 우거진 곳 석자의 무덤

芳魂千載至寃存 천년 동안 꽃다운 넋 지극한 한 남으리라.

椒漿桂酒誰能奠 초장(椒漿)과 계주(桂酒)를 누가 능히 올릴까?

一曲悲歌自淚痕 한 곡조 슬픈 노래에 절로 눈물 자국 생기네.

 

 

 

六月二日曉聞薤露聲, 問是洪娘發靷也. 由我而死, 不覺可憐慘怛, 起書一絶.(62일 새벽에 상여

소리 듣고서 물어보니 홍랑의 발인이었다. 나 때문에 죽었으니 나도 모르게 가련하고 참담하여

일어나서 절구 한수를 짓는다.)

 





天時已變一炎凉 계절은 이미 한 번 더위, 추위로 바뀌었는데,

寃淚淫淫拭欲瘡 원통한 눈물 줄줄 흘러 닦아 내다 부스럼 됐네.

世事于今人按劒 지금 세상일은 사람을 원수처럼 대하고,

讒言從古舌如簧 옛날부터 참언은 혓바닥이 피리와 같네.

 

飢窮徹骨猶疑飽 굶주림, 곤궁이 뼈에 사무쳐도 오히려 배부르다 의심하고,

憂病纏身反謂康 근심과 병이 몸에 얽혔어도 도리어 건강하다 말하네.

可識吾生難久視 알겠노라. 나의 삶이 오래 살기 어려워

靑山歸去一眠長 청산에 돌아가서 길게 한 번 잠들 것을

 

— 「獄中 炎凉已變 漫吟





一入圓扉淹九旬 한 번 옥문에 들어서서 90일 머물렀으니,

餘生不死値玆辰 남은 인생 죽지 않고 오늘이 되었다네.

新尤天地難容士 새 허물은 천지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선비이고,

舊痛缾罍有恥人 옛 아픔은 작은 병과 큰 병에 부끄러움 있는 사람이네.

休咎自知焉用策 화복을 스스로 아니, 어찌 계책을 쓰랴.

薰蕕無辨已爲薪 향초와 구린 풀 분별없이 이미 땔감 되었네.

聖恩若許歸田早 성은으로 만일 일찍 전원에 돌아감 허락한다면

一曲滄浪鷗鷺隣 창랑가 한 곡조를 부르며 갈매기, 해오라기와 이웃하리.

 

 

獄中十月十四夜 不勝悲寃 復用前韻口吟 是日乃余讐日也(옥중에서 1014일날 밤에 슬프고

원통함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앞선 운자를 사용하여 입으로 읊다. 이날이 바로 부모님의 기일이다)

 





一日猶難况十旬 하루도 오히려 어려운데 하물며 100일이야

枷頭黙數閱來辰 머리에 칼 쓰고 묵묵히 겪어온 때 세어 보네.

五年已作長流客 오 년을 이미 긴 유배객이 되었는데

三月還成係緤人 삼 개월 도리어 끈에 매인 사람 되었네.

歲晏芷蘭猶變節 해가 평온하여도 지난은 오히려 절개를 바꾼다지만,

天寒松柏詎爲薪 하늘이 춥다고 소나무 잣나무가 어찌 땔감이 되겠는가?

餘生造次皆寃恨 남은 생 짧은 시간 모두 원한이니,

愁聽晨鷄動四隣 근심 속에 새벽 닭이 사방에 우는 소리 듣노라.

 

 

十月二十三日 囚獄洽滿十旬 每誦坡翁詩 竊以百日爲期 今便來奇漠然 曉枕復用前韻 吟此以道

鬱悶之懷(1023일 감옥에 갇힌 지 꼭 100일인데 매번 소동파의 시를 외우면서 백일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번 인편에 기별이 오는 것도 막연하다. 새벽 잠자리에서 다시 앞선 운자를 써서 이

시를 읊어 답답하고 걱정되는 마음을 말하였다.)

 

















아래는 아드님이신 조진충의 묘































                                               

                                                제주 애월읍 유수암리에 소재한 홍윤애 묘










                                  제주에서 정헌 조정철에게 부치다




                                                                                                                                                       - 여강 최재효





           홍화(紅花)가 피었다고 병이 난 것이 아닙니다
           벌써, 이백 사십여 봄날이 무심히 지난걸요
           하지만 꽃밭에 벌 나비가 날아 다니면
           곱게 단장(丹粧)하고 동구 밖을 내다본답니다


           임이 손수 세우신 무덤 앞 비석에는
           하얀 석화(石花)가 수북하게 피어났습니다
           그 돌꽃들이 시들어 떨어져 가루가 되더라도
           애가(哀歌)는 절대로 멈출 수 없습니다


           임께서 영해(瀛海)에 오시어 적거(謫居)하심은
           이미 전세(前世)에 정해진 일 아니었던가요
           맑은 날 뱃사공 노랫가락 들려오는 날이면
           행여 하는 마음에 화북포구로 달려간답니다


           새벽마다 관헌의 눈을 피해 임을 뵐 때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지요
           초막(草幕)의 짧은 춘몽은 내 생애 단꿈이었으며
           섬 소녀, 비바리 생(生)의 전부였습니다


           임은 천리 머나먼 충주 박석고개에 계시니
           하룻밤 사이에 다녀 올만 한 곳이 아니어서
           북녘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만 기다리며
           정한수 앞에 놓고 밤새워 빌고 또 빈답니다


                           

                        - 창작일 : 2018.4.23. [13:15]
                                     제주 애월읍 유수암리 홍윤애 묘에서  

 











                     [주]1) 홍윤애는 1777년 8월 정조임금시해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된 정헌 조정철(趙貞喆)을 사랑한 여인이다. 
                     둘 사이에 딸이 있으며, 유배인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제주
                     목사로부터 거짓 자백을 강요하는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1781년 5월에 죽음으로써 연인 정헌을 구명하였다. 
                     1811년 유배에서 풀려난 정헌이 복직되고 제주목사로 부임
                     하자 그녀의 무덤을 찾아 통곡하고 무덤을 단장하여 묘비를 
                     세우고 헌시(獻詩)하였다. 조정철의 묘는 충주 수안보 박석
                     고개에 있고 그녀의 무덤은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다.
                     2) 영해 - 제주도
                     3) 적거 - 유배인이 거주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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