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07. 11. 27. 23:01

 

 






 

               

 

 




                                두번 우는 새(2)

 

 

                                                                                                                                                                        - 여강 최재효

 

 

 

 


 “대감, 술좌석에는 어린 아이들보다야 소첩이 제격 아니겠습니까?”
 “허허. 내 언제 너를 첩으로 두었더냐? 너는 내 종이니라. 그러니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고 어서 물러가거라. 너나 네 딸들은 내 말 한마디에 죽고

사는 처지라는 것을 명심해야하느니. 오늘은 네 두 딸 년들과 함께 할 것이

니 그리 알고 물러가거라.“


 “대감-, 너무하세요. 소첩과 제 두 딸들이 아무리 대감의 하인이 되었다

고 하나 한때 똑같은 양반의 신분 아니었는지요? 천지개벽하였더라도 소

첩과 두 딸아이 몸에는 양반의 피가 흐르고 있나이다. 이제 막 초경을 끝난

딸 같은 아이들에게 수청을 들게 하시다니요? 정말 너무하세요.“


 “허-. 고얀. 너는 나라에 대역죄를 지은 가문의 여자로서 이제는 옛날의 사

대부가 며느리가 아니니라. 아직도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로구나.

망신당하기 전에 어서 썩 물러가라.“



 “대감-, 너무 야박하세요.”
 “…….”


 내은비는 더 이상 버텨봐야 주인대감에게 미움을 살 것이고 곧 두 딸에게

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하고 사랑채에서 물러났다. 방에서 나올 때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 채 두려움에 떨던 두 딸들이 애처로웠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서럽기만 했다.


 “에헴. 고령군 대감, 왼쪽에 있은 아이가 죽은 절재 대감의 손녀고 오른쪽

에 있는 아이도 그 자의 손녀지만 첩실의 몸에서 나온 아이라오. 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실컷 마시고 주무시구려. 또 내일은 우리 집에서 조정의 중신들

을 초대하여 큰 잔치를 열 예정이라오. 당연히 고령군 대감도 참석하셔야

하오.“


 “고맙습니다. 오늘밤은 정말로 오랜만에 회포를 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젊은 사내는 박장대소를 하며 내은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젊은 사내는

분명 내은금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에는 내은금의 할

아버지 그림자도 감히 밟지 못했던 사내였다.


 ‘호, 고년. 제법 반반하게 생겼구나. 그러나 저 어린 계집보다 저년의 어미

가 더 호감이 가는데 어쩌지?‘
 “아니, 고령군 대감. 얼굴이 편치 못한 듯하오?”


 “아니올시다.”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시오?”
 “아니, 그게 저…….”


 “주저하지 마시고 말씀해 보구려. 우리 사이에 무에 못할 말이 있으시오?”

 “대감, 실은 저 아이보다 방금 나간 저 아이 어미가 더 호감이 가서요.”
 ‘흠-, 그놈. 계집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허허, 그럼 진작 말씀하시지요?”
 “송구해서요.”
 “별게 다 송구하시다고 하시는구려. 그럼, 저년들 어미를 부르지요.”


 “한금이는 그만 별채로 돌아가서 네 어미를 들라하라.”
 “아니 대감, 내은금이라는 아이를 보내지 않고요?”


 “내 저 아이에게 오늘 밤 수청을 들게 하려고요. 자자, 저 얘 어미가 올 때

까지 우선 술이나 한잔 치시구려. 너는 무엇하느냐. 어서 대감에게 술 따라

올리지 않고.“


 권문세가의 여인으로 고게 자란 내은금은 아직 한 번도 누구에게 술을

따라 본적이 없었다. 어쭙잖은 자세로  잔에 술을 따랐다. 섬섬옥수가 바들

바들 떨렸다. 술을 처음 따르다 보니 그만 젊은 사내의 잔이 넘치고 말았

다.


 “허, 네 이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술을 넘치도록 따르다니.”
 주인의 호통에 그만 내은금을 찔금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대감마님, 소녀를 용서하세요. 술을 처음 따라보느라 그만 실수를…….”
  내은금은 바들바들 떨면서 어찌할 줄 몰랐다.


 “대감, 야단치지 마세요. 사대부가의 곱디고운 여식이 언제 남정네들에게

술을 따라 보았겠습니까?“
 내음비가 다시 사랑채로 들었을 때 이 광경을 보고 그만 울컥하고 치미는

것이 있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아-, 내가 이런 꼴을 보고 살아있어야 한단 말이냐?’
 내은비는 눈물을 삼키고 다시 두 남자 앞에 앉았다.


 “고령군 대감께서 너를 찾으셨다. 오늘 밤 너는 대감을 모시는데 약간의 실

수도 있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알겠느냐?“


 “네에, 소첩 정성을 다해 대감을 모시겠나이다.“
 자시(子時)에 시작된 두 사내의 술타령은 갈수록 도를 지나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정의 대소사와 상감에 대한 평을 하더니 시문을 주고받았다. 주

인 대감이 노래를 부를 때 내은비는 능숙한 가야금 연주로 장단을 맞춰주었

고 젊은 사내는 그런 내은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너는 무얼 하느냐? 네 어미가 가야금을 연주하고 주인 대감께서 노래를 하

는데 춤이라도 춰야지.“
 젊은 사내가 곁에 다소곳이 앉아 어색한 분위기에 주눅이 든 내은금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할아버지 절재 대감과 아버지 앞에서 몇 번 추본 적은 있으나 외간

남자들이 보는 앞에서 춤을 춰본 적이 없는 내은금은 어머니 내은비의 눈치

만 살피고 있었다. 사내의 귓속말 내용을 눈치 챈 내은비는 딸에게 눈짓을

하며 춤을 추라고 하였다. 어색한 동작으로 내은금이 춤을 추자 노래를 부

르던 늙은 사내는 더욱 신이 난 듯 목청을 높였다.


   가시리 가시리 잇고 바리고 가시리 잇고
  날러 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 잇고…….


  늙은 사내의 노래와 아침 이슬 머금은 한 떨기 백합 같은 내은금이 춤

그리고 시냇물 흐르듯 탄주 하는 내은비의 가금 소리가 어우러져 사랑채

안은 금방 기방(妓房)처럼 변하고 말았다. 화초가 그려진 여덟폭 병풍속

새들과 환하게 제 몸을 불사르는 황촉불만 조용히 가슴 아픈 장면을 훔

쳐보고 있었다.


 주인 대감의 노래에 이어 젊은 사내가 미성(美聲)을 내어 노래를 부르

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늙은 사내는 춤추던 내은금을 자신의 곁에 앉히더

니 허리를 껴안았다. 가야금을  연주하던 내은비는 눈을 가야금 열두 줄

에 고정 시켰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젊은 사내가 여인네 가슴에 불을 지피고도 남을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이어가자 가야금을 연주하던 내은비는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예전에 남편 앞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였고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연주

하며 흥얼거렸던 고려시대 청춘 남녀의 사랑을 읊는 노래였다.


  사내의 노래가 8절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술이 불콰해진 늙은 사

내는 내은금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내은금의 은밀한 부위를 지

거렸다. 어머니 앞에서 사내의 거친 숨소리와 우악스런 손길에 당황

한 내은금은 어쩔 줄 몰라했다.


 ‘아, 어찌해야 하나. 어머니가 앞에 계신데…….’
 “이년, 가만히 있거라.”


 사내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번에는 늙은 사내의 술에 전 입술이 봄 햇살

에 막 피어난 해당화 같은 내은금의 입술을 빨아댔다. 사내의 한 손이 내은

금의 여리디 여린 속살을 헤집으며 지분댔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내은

금은 어머니 내은비의 눈치를 보았지만 내은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가야금

연주에 몰두해 있었다.


 아-. 자신의 몸에서 난, 아직 꽃망울이 덜 핀 딸이 늙은 사내의 거친 몸짓

에 짓눌리는 광경 내은비는 입술을 깨물었다. 갑자기 내은금의 가야금 연주

의 속도가 빨라졌다. 한참 만에 젊은 사내의 길고 긴 노래가 끝나자 주인 대

감은 잔을 들었다.


 “대감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감칠맛이 있소이다. 한양에 내로라하는 기생

들은 모두 대감의 손길이 머물렀다 하는데 과연 그럴 만도 하외다.“


 “원, 대감도. 과찬이세요. 전 오늘 제 앞에 앉아있는 내은비 밖에 눈에 들어

오지 않소이다.“


 “대감이 내은비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려.”
 “…….”


 젊은 사내는 미모가 출중한 내은비가 마음에 쏙 들었다. 예전에는 궁궐의

상궁 나인들도 자주 대궐에 드나들던 내은비의 미모를 흠모하였었다. 그런

명문대가의 며느리가 노비의 신분이 되었지만 미모 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새벽이 훨씬 넘도록 주연은 계속되었지만 나이를 속일 수 없는 늙은 사내

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내은금을 껴안고 억지로 술잔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대감, 옛날의 그 두주불사가 다 어디로 가셨습니까?”
 아직 두 눈이 반짝거리며 광채를 내고 있고 있는 젊은 사내가 늙은 사내를

조롱하였다.


 “나는 낮부터 마신 술로 이제 몸을 못 가누겠소이다. 오늘은 이만 하고

내일 다시 한잔 하십시다.“
 “그러시지요. 저도 대취하였습니다.”


 “고령군 대감, 이 사랑채에는 바로 옆에 방이 하나 더 있소. 나는 그 곳으

로 이 아이와 갈 테니 대감은 여기에 계시구려.“
 “아, 아닙니다. 어찌 손님이 주인을 몰아낼 수 있습니까? 대감께서 여기서

주무세요. 제가 그리로 갈 테니.“


 “아닙니다. 대감은 손님인데 손님 대접을 소홀히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

러니 대감께서 여기서 주무시구려.“
 “아니래도요. 대감께서 여기서 주무세요.”


 “옆방은 좁고 누추해서 손님에게 내드리기가 좀 뭐해서 그래요. 그럼 할

수 없구려. 고령군 대감께서 내은비를 데리고 옆방으로 가서 하룻밤 지새

시구려. “
 “대감, 고맙소이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라고 할 것 까지야……."
 늙은 사내는 자신의 애첩으로 여기고 있던 내은비를 젊은 사내에게 성욕의

제물로 내줌으로서 자신의 조정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고 싶어 했다. 주인의

말 대로 옆방은 자주 사용하지 않아 습기가 차고 누추했지만 하룻밤 묵기는

충분했다.


  아랫목에 비단 금침이 깔려 있었다. 술에 만취한 사내는 방에 들자 내은

비를 껴안고 이불위로 쓰러졌다. 강제로 내은비의 치마 저고리를 벗기려고

하였지만 내은비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대감, 체통을 차리시어요. 아무리 급하셔도 그렇지요."
 "체통은 무슨 체통……."
 "소첩, 이러시면 대감의 수청을 들지 않겠나이다."


 "뭐라고? 수청을 들지않겠다고?"
 "소첩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신분으로 전락했지만 한때는 양가집 며느리

였사옵니다. 소첩을 강제로 욕보이려 하신다면 힘든 밤이 되겠지만, 소첩

에게 약조 하나만 해주신다면 대감은 극락의 밤을 보낼 실겁니다."


 "극락의 밤? 그래, 원하는 게 무엇이냐?"
 "대감은 제가 마음에 드십니까? 소첩은 늙은 주인대감 마님보다 젊고

미남자이신 대감에게 더 호감이 가옵니다. 대감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이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본론을 말해보라. 본론을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대감, 저를 이집에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뭐라고? 이집에서 도망을 치겠다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도망해서 대감께 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

겠습니까? 제 두 딸을 데리고 대감께 가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 된다. 너를 도주케하여 내가 너희 세모녀를 거둔다면 곧 탄로가 날

터. 그리하면 나는 천하에 지조 없고 야비한 인간이 된다. 절대 그럴 수 없다."


 '흥, 한때는 폐위 된 상감의 중전까지 넘보던 놈이 뭐가 어째?'
 "대감, 저희 세 모녀를 대감만 아는 어디 한적한 곳에 기거하게 하고 대감

께서 심심하실 때 찾으면 저희 세 모녀는 모든 것을 바쳐 대감을 모실 것

입니다."


 내은비의 감언에 사내는 잠시 깊은 생각에 빠진 듯 잠시 두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 생전에 이렇게 마음에 꼭 드는 계집을 평생 끼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

꼬. 거기다 이 계집의 두 딸까지…….'
 "대감, 무슨 생각을 그리하셔요?"


 "좋다. 내 너와 네 두 딸을 모주시킬 것이니 혹 네가 무슨 계획이라도 가

지고 있느냐?"


 내은비는 내일 잔치가 끝나고 집안 사람들의 경계가 느슨한 틈을 타서

도망갈 계획을 사내에게 모두 털어 놓았다. 


  "과연 기가 막힌 계획이로구나. 그렇다면 내 시간에 맞춰 가마 세 개를

담장 밖에 준비할 터이니 너는 조심해서 네 두 딸과 야반도주하여야 한다."


 "대감, 이 계획은 저와 두 달의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절대로 비밀로 해

주셔야 하옵니다. 만약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하여도 소첩 무덤에 들어

갈 때 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것입니다."


 "좋다. 네가 나를 믿고 네 속내를 모두 털어놓았으니 나 또한 너를 믿을

것이니라."
 "대감, 고, 고맙사옵니다."


 '흥, 내가 이집을 탈출하는 날 우리 모녀는 멀리 멀리 남녘으로 도망갈

것이야. 어딘가 숨어있을 내 아들을 찾아서 함께 사는 거야.'
 "이제 약조를 하였으니 너는 내 소망을 들어줘야 한다."


 내은비는 일어서서 스스로 치마와 저고리, 속곳까지 벗었다. 아름답고 미

끈한 육신에 촛불에 아른 거렸다. 비록 아이를 낳은 육신이지만 처녀의 몸

매와 다를 것이 없었다. 풍만하고 하얀 엉덩이가 사내의 정신을 몽롱하게

했다.


 '아. 과연 소문대로 절세미인이로다. 이런 계집을 끼고 살던 그놈은 비

록 구천의 원귀가 되었지만 행복한 놈이로다. 오늘 밤은 내 극락의 밤을

보내야 겠어. 흠, 정말 기가 막힌 육신이로다. 한양의 기방 문턱을 문지방이

닳도록 넘어 다녔지만 사대부의 규방에 이런 보물이 있었다니 믿기지

않을 일이로다. 늙은 대감보다 젊은 내가 이 계집을 꿰차고 한 세월 사는

것이 훨씬 좋을 터. 흠-'


 젊은 사내는 촛불을 끄기 무섭게 내은비에게 덤벼들었다. 사내의 긴 혀

가 내은비의 혀를 간지럽협다. 터질 것 같은 젖가슴을 사내는 주물러 터트

릴 듯 거칠게 행동했다. 사내의 혀가 내은비의 목덜미와 젖가슴을 가질였

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거리란 말이더냐? 어미와 딸이 벽 하나 두고 욕정

에 눈먼 사내들에게 유린당하다니…….'

  내은비는 소리없이 흐느낐다.


 "아니, 갑자기 왜 흐느끼느냐?"
 "대감처럼 젊고 잘 생긴 남자와 이렇듯 열락의 밤을 보내고 있노라니 이년

너무 행복해서 그렇사옵니다. 고맙습니다. 대감."
 "흠-, 별걸 다가지고 그러는구나."


 사내의 뜨거운 혀가 내은비의 은밀한 곳에 이르자 내은비는 몸을 뒤틀었다.

그럴수록 사내는 더욱 몸을 밀착 시켜 자신의 사내다움을 과시하려고 하였다.

사내는 내은비을 엎드리게 하고 뒤에서 혀를 놀려댔다.


 아 -. 어미의 열락으로 치닫는 신음소리가 옆방에 전해졌다. 내은금 역시

늙은 사내에 의해 발가벗겨진 채 끈적끈적한 혀에 온몸을 내맡기고 늙은 사내

의지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사내의 혀가 아직 미완의 여인을 지분거렸다. 사내의 숨소리가 내은금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윽고 사내의 뜨거운 혀가 은밀한 곳에 다다르자 내

은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여자다루는데 입신의 경지에

오른 사내였다. 초경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는 내은금은 통증과 묘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흑 -. 가냘픈 여인의 흐느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늙은 사내는 어린 여인의

샘물을 퍼 올리는 데정성을 쏟았다.


 '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벽 하나 두고 어미와 딸이 서로 신음

을 토해 내다니.' 
 두 방의 열기는 밤새 이어지며 초겨울의 냉기를 녹이고 있었다. 


  새벽이 가깝도록 사랑채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는 아랫것 들의 단잠

을 깨우고 있었다.  아침부터 하인들의 발걸음과 몸동작이 빨라지기 시작

하였다. 수양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데 목숨을 걸고 도와 공신(功臣)의

반열에 올라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를 자랑하는 공신들이 모여드는 ]

날이었다.


 칠삭둥이 한명회, 한확, 박종우, 이사철,이계전, 홍달손, 권람, 양정, 유수,

홍윤성, 신숙주, 유자광, 구치관, 안경손 등 모두가 수양의 오른팔을 자처하

는 자들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주인은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다동(茶洞) 기생들과 악사들을 불렀다. 공

신들의 극에 달한 사치와 비행은 백성들에게 지탄을 받았으나, 상감은 애써

모르는 체 하였고, 상감의 이 같은 처사는 공신들을 더욱 안하무인으로 만

들었다. 상감이 하사한 사육신의 재물과 여인들이 성에 차지 않아 길을 가

다가도 얼굴이 반반한 여인이면 유부녀라도 강제로 납치하여 욕을 보이거

나 폭행을 일삼아도 감히 누구도 가로막는 자가 없었다. 


 눈발이 날리다가 그쳤다. 두 사내의 폭풍 같은 몸짓에 사랑채에서 뜬눈으

로 밤을 지새우다 시피 한 내은비 모녀는 첫 닭이 울자 후둘 거리는 걸음으

로 간신히 별채로 돌아왔다. 모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별채

에 들자 곧 두 모녀는 긴장감이 풀어지고 피곤이 엄습해 잠에 빠져 들었다.


 내은금은 은밀한 부위에 통증을 느끼면서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하고 이

내 잠이 들고 말았다. 내은비도 두 딸을 데리고 야반도주하여 고령군 대감

이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 가기로 했던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잠들면 안 되는데…….’
 내은비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천근만근 쏟아져 내리는 졸음을 이겨내

지 못했다. 


 “한금아, 점심때가 되면 나를 깨워다오.”
 “네에. 어머니. 염려하지 마시고 주무세요. 소녀가 곁을 지켜 드리겠습니

다.” 


 오후가 되자 행랑채 앞에는 말울음 소리와 하인들의 예를 갖추는 소리,

구경 나온 동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제일 먼저 수

양이 권좌에 오르는데 목숨을 걸고 도왔던 이조참판 구치관이 수행원 두

명을 거느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대문으로 들어섰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색의 청색 비단으로 지은 도포에 붉은색 허리끈

을 길게 맨 구치관은 한껏 멋을 냈다. 곧 칠삭둥이 한명회가 특유의 걸음걸

이로 대문으로 들어섰다.


 “아이고, 자준 대감, 어서 오시오. 누추한 곳에 왕림하시다고 우리 가문에

큰 광영이로소이다.“
 “대감의 저택이 경복궁의 위세와 다를 바 없소이다.”
 “무슨 그런 말씀을요. 자자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에헴. 그럽시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조선의 세도가들이 줄줄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하이고, 대감들 어서 오시구려. 누추한 집에 경사가 났구려. 고맙소이다.

이렇게 어려운 발걸음 하셨으니 오늘 질탕하게 놀아봅시다.“
 “험- 대감, 집이 너무 근사하외다.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소이다?”


 “허허. 대감도 원. 대감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한명회에 이어 한확, 이사철, 박종우, 이계전, 홍달손, 권람, 양정, 유수, 홍

윤성 등 조선을 호령하는 조정의 고위 관리들이 모여들었다. 몇몇은 상감

으로부터 하사받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충신들의 딸과 첩실을 대동하고

오기도 하였다.


 잔치가 시작되기 전에 악사들이 연주하는 피리소리 대금소리 장구와 북소

리가 담장을 넘어 동네로 퍼져나갔고, 담장과 대문 앞에는 조선의 내로라하

는 권세들의 질탕하게 펼치려는 잔치를 구경하려고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

다. 


 “개똥어멈, 오늘은 우리들도 원님 덕분에 나발 좀 불수 있는 거유?”
 “글쎄, 대갓집 잔치에 우리처럼 하찮은 것들이 낄 수 있을까 모르겠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이집에 새로 들어 온 첩실이 조선 최고의 미색이라

고 하던데?”


 “첩실이 아니라 한때 조정을 쥐락펴락 했던 절재대감의 며느리인데 이 집

에 종으로 들어왔다고 하던데?“
 “맞아, 종은 종인데 보통 종이 아니래. 그 여인이 함께 데리고 온 두 딸들도 자

색이 엄청 고와서 이집 대감이 매일 밤 번갈아 가면서 수청을 들게 한대.“


 “늙은 대감이 쌍코피 터지겠구먼.”
 담장에서 안의 광경을 엿보던 아낙네들이 수다를 떨면서 오늘 어떤 구경거리

가 펼쳐질지 기대하는 눈치였다. 안채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에 내은비는 눈을

떴다.


 “어머니, 더 주무시지 않고요?”
 곁에서 꼼짝 않고 앉아서 내은비가 일어나기만 기다리던 한금이 걱정스러운

모습을 지어보였다.

 “한금아, 지금이 어느 때 쯤이니?”


 “해가 서쪽으로 한참 기울었습니다. 이제 곧 잔치가 시작되려나 봐요.”
 “얘야, 너 오늘 밤 야반도주한 계획 잊지 않았지?”
 “네에. 어머니.”


 내은비는 일어나서 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잠을 푹 잔 탓에 얼굴이 매끈거

렸다. 입술과 볼 그리고 눈썹에 최대한의 정성을 다해 치장하였다. 종이 되기

전 평소에 즐겨 입던 남색 삼작 저고리와 황색 치마로 입고 머리를 올리고

노리개를 찼다.


  은비녀로 곱게 빗은 머리를 지르고 큰머리를 얹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에

내은비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위세 당당한 사대부가의 며느리 모습

이었다. 


 “언니도 이제 깨워라. 단장 하고 있어야 한다. 혹시 대감이 우리 모녀를 부

를지도 몰라. 너도 최대한 예쁘게 단장을 하고 있어라.“
 “네에. 어머니.”


 “난, 먼저 사랑채에 나가 볼 테니. 너는 은금이 언니 일어나거든 단장 시키

별채에서 조신하게 기다리고 있어라.“
 “네에. 어머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