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08. 9. 9. 02:30

 

 

 



 




 

 

 

                   

 

 

 

 

 

 

 

 

 

   홀로 아리랑(5)

 

 

                                                                                                                                           - 여강 최재효

 

 

 

 

 이 삼일 지나면 들어오겠거니 생각했던 형욱은 십여 일이 지나도

에 들어오지 않았다. 형욱이 집을 나갔을 때 H는 남편에 대한 증오와

원망으로 가득했지만 오래도록 연락을 끊고 형욱이 들어오지 자 점

차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집 나간 남편을 기다 리다 지친 H는 자신온 것을 뻔히 알면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시누이가 섭섭하였지만 지금 상황에서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 할 상대는 그래도 시누이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H는 시누이를 찾아 갔다.

 

 “올케, 오랜만이네. 왔다는 소식은 어제 풍문으로 들었어. 그래, 아

주 살러 왔다고?”
 “네에. 그런데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뭐를?”
 “다 알고 계시잖아요? 그동안 애 아빠하고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셨

텐데요?”
 “아니, 올케 내가 뭘 다 안다고 그러는 거야?”
 
 “정말로 모르셨어요?”
 “그래,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올케는 너무 이기적이야. 내 판단

데 이제는 형욱이를 놔줘. 올케한테는 할 말이 아니지만, 그애, 다시

올케를 안 볼 거야. 이제는 두 사람이 갈 길을 가는 게 현명할 것 같

다고 생각해.”


 “고모까지 저를 미워하세요?”
 “미워하는 수준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내 집에서 올케를 내쫓고

싶어.”
 “고모!”
 
 ‘아아, 온 가족들과 친인척까지도 나를 마치 철천지원수로 생각하고

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 것일까?’
 H는 머리가 아프고 현기증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대로 허무하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H는 자신이 점점 깊은 나락으로 빠져

들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고모, 고모도 여자니까 아실 거 아니에요? 제가 뭘 잘못한 거죠?”
 시누이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십 분이 지나

도 시누이는 속으로 무엇을 삭히는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

었다. 그렇게 여러 번을 반복하면서 시누이는 숨을 고른 다음 입을 열었

다.

 

 “올케, 형욱이는 어려서 내가 키우다시피 한 애야. 개미 한 마리 죽이

지 못하는 마음이 여린 녀석이야. 어머니가 우리 남매만 남기고 일찍 돌

아가시는 바람에 동생은 내손으로 키웠어. 아버지는 전국을 돌아다니는

장돌뱅이였고.


 나는 어머니 대신 그 애를 키웠고 대학까지 보내야겠다고 결심하고 식

모살이, 식당일, 공사장 잡부, 노점상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어. 그애 하나

성공시켜 집안을 일으키고 싶었던 거야.

 

 그 애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체에 취직하여 올케를 만나 가정을 꾸

렸어. 올케는 정말로 너무 똑똑하고 어디 한군데 비집고 들어간 빈틈이

전혀 없는 여자야. 처음엔 나도 올케의 그런 억척스러움과 빈틈없는 행

동이 마음에 들었었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형욱이에게서 사대다운 기백과 당당함이 없어졌다

는 것을 알게 되었어. 나는 너무 가슴이 아프고 참을 수가 없었어. 아무

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어. 그런데 그 애가 이

곳으로 오고난 뒤부터 예전의 모습을 보았지. 올케 무슨 뜻인지 알겠

어?“

 

 “형님 말씀은 그이가 말 수가 적어지고 샌님처럼 변한 것이 모두 제

이라는 것이군요.”
 “그래. 맞았어. 궁합이 안 맞는 사람들이 만난 것이지. 아마 어머님이

아 계셨다면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난 그 애가 제

대로 숨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시든 가을꽃이 된 것이 너무나 원통하고

억울해.”

 

 형욱의 누이가 쏟아내는 한마디 한마디는 서릿발 보다 차갑고 냉랭했

다. H는 같은 여자의 처지에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 주고 남편을 부적절

한 처신을 나무랄 줄 알았다. 그러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형님, 저도요. 형욱씨를 성공시키고 싶었고 두 아이들도 남부럽지 않

게 키우고 싶었어요. 저는 지금까지 제가 의도한 대로 착착 진행되어 가

고 있는 줄 알았다고요.”


 H는 갑자기 눈물을 쏟으며 낯선 땅에서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사

람이 한명도 없다는 사실에 서러움과 육십 평생을 산 자신이 얼마나 바

였는지를 깨닫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올케, 미안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학업이 안 끝났으니까 그냥 여기 놔

두고 두 사람은 한국에 들어가 서로의 입장을 정리를 했으면 좋겠어. 그

길만이 서로가 사는 현명한 방법같어.”


 “안돼요. 제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 평생을 바쳐가며 기다려왔는지

아세요?”
 “그건 올케 자신의 영달을 위한 거 아니었어?”


 “저만을 위한 영달이라고요?”

 “그러면 왜 그동안 형욱이가 하는 일에 대하여 사사건건 반대를 하고

마치 어린아이 다루 듯 했느냐고?”
 “아니에요. 전 그이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어요.”


 “그건 올케가 올케의 잣대로 형욱이를 본거야. 남자들에게는 여자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본능적인 감각이라는 것이 있어. 여자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거나 한 방향만을 고려하지만 남자들은 전반적인 상황을 따져가

며 매사를 보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 물론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계를 일구는 것은 남자야.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일지 모르

지만 잘난 아내는 아니야. 아내와 남편은 철길 같아야 해. 멀지도 가깝

도 않은 거리를 두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끝까지 함께 해야 하는

길 말이야. 그런데 그 철길이 어느 곳에서 엑스자로 꼬이거나 한쪽이

탈하면 부부는 바로 남남이 되는 거야.

 

 남남도 그런 남남이 없지. 마치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비참

결말에 이르게 된다고. 그런데 올케와 형욱이는 처음부터 꼬이기 시

어. 그애에게는 참으로 지루하고 참기 어려운 세월이었을 거야.”
 H는 형욱의 누이 이야기를 들으며, 지나간 세월을 잠시 반추해 보았다.

 

 ‘그래. 시누이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내 눈에 그이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불안했어. 내가 손수 챙겨주거나 뒷바라지 해 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어. 그런 그를 단단히 잡아주고 격려한 것이 그이를 망

게 했다니, 정말 그랬던 것일까?

 

 아니야, 이건 남매가 짜고 나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기 위한 궤변

일거야. 분명히 난 그이를 잘 되도록 뒷받침 한 죄 밖에 없어. 아니 죄가

아니지. 내조지. 확고한 내조. 아마 그이가 좀 더 내 말을 잘 들었으면 지

금 쯤 사회 어느 분야에서 신화같은 존재로 성공해 있었을 거야.’


 H는 냉수 한잔을 마시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얀 뭉게구름이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구름이 자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올케. 형욱이를 부를 테니 두 아이들과 함께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봐.

서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면 서로에게 미련 가질 필요 없어. 이

제라도 밟아보지 않은 길을 밟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

해. 올케도 알다시피 나도 브라운하고 이혼하고 내 하고 싶은 일 하며

지내잖아.”

 

 “형님, 전 지금 빈털터리에요. 제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요. 제

나이 육십이 되어 무엇을 한단 말이에요? 전 너무 억울해요. 이대로 물

러날 수 없어요.”
 “육십이면 얼마든지 새출발할 수 있어."

 

 “전 애 아빠하고 수진가 뭔가하는 여자를 간통죄로 고소할 거 에요.”
 “이런 참으로 딱하기도 하네. 여긴 한국이 아니야. 그리고 간통죄는 이

혼을 전제로 해야 하고 증거가 있어야 해. 무슨 증거로 이혼할 거야?”
 
 “저와 애 아빠는 아직 한국인이에요. 서울 가서 간통죄로 고소하고 위

자료도 받아낼 거예요.”
 “올케, 평생 교사롤 지낸 거 맞아?”

 

 “한국 법원은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아무 물증도 없이 무슨 고소

한다는 거야. 괜히 혼자 우습게 되지 말고  형욱이랑 두 아이들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서 결정을 짓도록 해. 아이들도 다 컸어. 사리 분

별을 정확히 하는 아이들이라고. 


 내가 10년 이상 데리고 있으면서 보아 온 아이들은 이곳 사람들의 사

고방식을 지니고 있어. 그 아이들을 마음대로 해보겠다던가 한국적 사

고방식에 의해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을 무리일거야.”



 시누이에게 갔다가 혹만 더 붙여 온 H는 집에 오자 남편이 애지중지


하는 고급 양주의 병마개를 땄다.



  ‘내 인생의 막장이 이렇게 허무하게 마무리되는 것인가? 내가 지금

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H는 독한 술을 연거푸 마셔댔다. 금방 취기가 오르면서 세상이 빙글

글 돌았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을 잊으려 H는 계속 독주를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내 인생이 이렇게 비참하게 끝났단 말이야? 흥, 안 되지. 연놈들이

복하게 살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절대로.’

 H는 지금 누가 자신의 지나온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다고 생각했

다.


그런데 그 소설의 구성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온 소설의 방향하고 전혀 다른 이상한 소설을 쓰고 있어서 H 자신

도 헷갈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바보 같은 놈, 네가 뭔데 남의 역사를 왜곡하는 거야? 네가 뭔데?”
 H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삿대질을 해댔다. 현실이 왜곡될 때 사람들

대항하거나 체념하지만 H의 경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우여서

 H자신도 뭐가 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엄마, 엄마. 정신 차리세요.”
 H가 눈을 뜬 것은 이틀 후 병원이었다. 술은 잘 마시지 못하는 H는

주를 많이 마신 탓에 혼수상태로 발견 되어 큰딸에 의해 병원에 실

려 온 것이었다. 이틀을 자고 난 H는 머리가 띵하고 전신이 얻어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지, 지영아,. 여기가 어디니?”
 “병원이에요.”
 “병원?”
 “네에.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어요.”


 곁에는 밤새 한잠도 못 잤는지 형욱이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H와 눈이 마주치자 형욱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H는 자신이 집에

서 혼자 술 마시던 일을 생각해냈다.


 ‘그럼, 내가 술 마시다 까무러쳐서 이곳에 실려 왔단 말인가?’

 천천히 그날의 상황을 생각해 내려고 했지만 머릿속이 텅 빈 백지 같

다. 아무리 생각해내려고 해도 처음 혼자서 술 마시던 일 말고는 아

무것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지영아, 내가 여기 얼마나 어떤 상태로 누워있었니?”
 “.
 “괜찮아 말해봐.”

 옆에서 모녀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형욱이 헛기침을 하며 입원실에서

나가 버렸다.


 “지영아, 아빠도 없으니 말해봐.”
 둘째 딸 지영이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엄마.”
 “그래, 말해봐 어서.”
 “엄마가 집에서 술에 취해 혼수상태에 빠진 것을 언니가 구급차를 불

이곳으로 후송해 왔어요. 병원에 도착해서 위세척을 하였어도 깨어

나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어요.”



 “그랬니?”


 “그리고 엄마는 자꾸만 경기를 하면서 아빠 이름을 부르면서 욕을 해

대셨어요.”

 “내가 아빠에게 욕을 ?”
 “네에.”


 “뭐라고 욕했니? 혹시 아빠가 내가 욕하는 것을 들었니?”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아빠는 엄마가 욕할 때 뭐라고 하시던?”



 “아무말씀 없으셨어요.”
 “그랬어?”

 큰딸과 달리 지영이는 엄마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듯 초

췌한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는 H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지영아, 울지 마.”
 “엄마, 죄송해요.”
 “네가 왜 죄송하다고 그러니?”
 “차라리 우리가 한국에 있었으면 엄마의 이런 모습을 안 봐도 되는 건

데.”
 H는 둘째 딸의 말을 듣고 목이 메었다.

 

 ‘아아, 이 엄마가 잘못했다. 엄마가 철이 없었어. 지영아, 선영아, 정말

로 미하구나. 이 엄마를 용서해다오.’
 H는 자신이 한 때의 판단 착오가 불행의 씨앗을 키웠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 슬픔을 느꼈다.



 H는 복받치는 설움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다행히 1인 병실

이어서 누가 보는 사람이 없었다. 지영이도 H를 붙잡고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한참 동안 모녀는 대성통곡 하며 그간의 서러움을 녹이고 있

었다.



 “지영아, 울지 마라. 이 엄마가 잘못했다.”

 “아니에요. 엄마 잘못이 아니에요. 아빠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어요.

딸들의 유학을 엄마의 의지대로 하게 방관한 아빠에게도 책임이 있

어요.”


 ‘아빠에게도?’
 H는 새롭게 사태의 근본을 바라보는 둘째 딸 지영이 고마웠다.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실컷 울고 난 모녀는 진정하고 서로의 손

을 꼭 잡았다.

 

 “지영아.”
 “네에?”
 “우리 서울로 돌아가 살래? 너의 꿈이 교사였었지?”


 “.
 “아빠하고 언니는 이곳에서 살라고 하고 너는 나와 한국에 들어가 살

자. 어때?”


 “전 아직 학업을 끝마치지 못했어요. 물론 이곳보다 한국에서 살고 싶

생각은 있어요.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려면 이년은 남았어요. 엄마,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한국에 가서 다시 시작하면 안 되겠니?”
 “.
 “그래 그럼. 졸업하고 가자.”


 “미안해요.”
 “아냐. 아빠는 이미 엄마에게서 마음이 떠났어. 언니도 그런 것 같고.

는 이 엄마를 이해해 주는 구나. 고맙다.”
 
  이틀 후 H는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 있는 며칠 동안 마치 저승

라도 다녀온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차분해졌다. 몸도 개운하고 마음도 맑

호수처럼 맑고 개운했다.


 ‘더러운 인간 같으니.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미련 없이 떠나주지. 그

데 빈손으로 어떻게 서울로 돌아간다?’
 H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 보세요.
   인생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한 사람이 전혀 다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을 만나 부부가 되어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요. 당신은 천년만년 이곳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이제 당

   신의 진심을 알았으니 내가 깨끗이 물러나지요. 조건이 있어요. 선영

   이는 당신이 맡고, 지영이는 내가 맡고 싶어요. 그리고 내가 송금한 내

   퇴직금을  돌려주세요. 나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빠른 시일 내에

   답변 주세요.                                                   
                                        

                                                                      당신의 처 H

 

 편지를 쓰는 H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쉬었다 쓰기를 몇 번 반복하면

간신히 편지 쓰기를 마쳤다. 형욱은 H의 편지를 받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예상외로 아내가 자신에게 항거하지 않고 일찍 포기하는 것에

대하여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가슴 한편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울컥하고 치미는 것 같았다. 그 동안의

지루하고 무미건조했던 세월들이 영상처럼 스쳐지나갔다. 형욱은 처음

에 아내를 무척 사랑했었다.
 
 그런 아내가 20년이 지난 지금 원수보다 더한 사이가 된 것에 대하여

형욱도 일말의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었다. 대범하게 그냥 웃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기분 나쁘거나 마음에 상처 받는 일이 발생하였다면 아내에게 자신이

남편이면서 가장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상기시켜 주면 될 일이었다.
 
 남편이 대가 센 사람이라면 웬만한 여자는 남편의 의도나 계획에 따라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인생을 살았을 것이지만 반대로 남자가 유약해

이거나 하는 일이 어린아이처럼 보인다면 아내들은 환경에 스스로 적

하기 위하여 억척스러운 여자로 변하기 일쑤다.


 어쩌면 H가 그렇게 변한 것도 형욱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일조한 것이

다름없었다. 엄마 아빠의 관계가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 두 딸

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하여 진지한 토론을 벌렸다.  

 

 “난, 엄마가 싫어. 그러니 엄마의 뜻대로 너는 엄마하고 서울로 돌아

가. 서울서 네가 하던 공부를 하면 되잖아. 난, 여기서 살 거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한국에 가서 우리민족 문화와 관련된 미술 창작을 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바뀌었어.


 내년에 졸업하면 결혼할거고. 너도 알잖아 제임스. 그는 이곳에서 잘

가는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어. 나도 이곳에서 직장을 잡고 이곳에

뿌리를 내릴 거야. 엄마 아빠가 이혼하는 게 싫어. 하지만 아빠가 저리

강력하게 나오는데 어찌하겠니? 우린 아빠의 의사를 존중해줘야 해.”
 
 “언니, 난 2년은 더 있어야 공부가 끝나. 서울에도 내가 배우고 있는

공을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학이 있겠지만 난 지금 다니는 대학에서

공부를 마칠 거야. 그리고 한국에 가서 교육관련 일을 하고 싶어. 엄마

를 일단 서울로 가시라고 하고  난 2년 후 한국에 들어가면 되겠지.


 아빠에게 엄마가 한국에 돌아가서 살 수 있을 만큼 위자료를 드리라

할 거야. 만약 아버지가 지금 만나는 수지 아줌마랑 결혼한다면 우

리는 졸지에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겠지. 아빠 엄마가 평생 피땀흘

려 모은 재산은 모두 그 여자 몫이 될 것이고.”

 

 “지영아, 어차피 너나 나나 조만간 각자 배우자를 만나면 헤어지게

어 있어. 네가 그리 마음을 써 주니 고맙다. 내 판단에 아버지는 엄

마하고 같이 살기는 다 틀린 것같다. 우리가 나서서 더 이상 일이 확

대되는 것을 막아보자.


 아빠는 금방 그 여자하고 결혼하기는 힘들어. 그 아줌마도 두 아이를

데리고 유학 온 이상 그 아이들이 공부를 마칠 때 까지 어떻게 할 수

을 거야. 한국에 있는 남편하고도 부부관계를 정리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래서 내 가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낸 건데. 아빠 엄마가 이혼하

않은 상태에서 별거 하도록 하는 거야. 별거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중에라도 두 분이 재결합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는

거야.”

 

 “그래 언니. 그렇게 하면 되겠다. 우리 엄마 아빠에게 우리의 생각을

전하자. 그러면 일단 가정의 해체는 막을 수 있을 거야.”

 

 두 딸은 형욱과 H에게 자신들의 의사를 전하였고, 형욱은 처음에 딸

들의 의사를 수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가 나중에 생각을 고쳐 딸들의

요구를 들어 주기로 하였다. 아내가 자신의 퇴직금만 요구하는 게 다

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의 전 재산의 반을 위자료로 요구하였으면 부부간 법정

다툼이 장기간 진행될 수 있고 딸들은 정신적 충격으로 심한 우울증

을 앓으자신에게 혐오를 느끼고 부녀지간 관계를 끊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