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06. 9. 11. 20:27

 

 

  - 驪江  최재효 신작 중편소설 -

                                      

 

 

 

           

 

 

 

 

 

 

 

 

 

 

     천년 비(1)

 

 

                                                                                                                                           - 여강 최재효

 

 

 

 

 

  “숙부, 전 이제 숙부 없으면 단 하루도 못살 것 같아요. 영원히 아니

망각의 강을 건너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저는 숙부를 잊을 수 없어요.”
  “공주.”


  보름달이 서라벌을 하얀 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을 즈음 황룡사 뒤 켠

으스름한 곳에서 남녀가 하나의 정물화가 된 채 마치 억겁을 버텨온 바

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황룡사 본전에서는 주지스님이 왕과 비빈 그리

고 수많은 귀족들 앞에서 인왕경(仁王經)을 설법하고 있었다.

 

  왕은 법당 가운데 불상과 보살상과 나한상을 각각 백 개씩 모시도록 하

고, 서라벌의 각 사찰에서 초빙 되 온 법사 100명과 황실 사람들과 귀족

등을 초빙하여 주지스님의 인왕경을 경청하도록 했다. 백 개의 사자고좌

(獅子高座) 앞에 등을 켜고 백 개의 향을 사르고, 백 가지 꽃으로 삼보(三

寶)에 공양하도록 하였다. 병색(病色)이 완연해 보이는 왕은 반쯤 누운

상태로 고승들의 강좌를 듣고 있었다.



  아버지 경문왕(景文王) 대부터 조정의 기강은 해이해 졌고, 전국에서

반란이 끝임 없이 일어났다. 병약한 왕이었던 형, 헌강왕(憲康王)은 왕다

운 왕이 못 되었다. 형의 왕위를 물려받은 경문왕의 둘째 아들, 김황(金晃)

역시 즉위 초부터 건강이 좋지않아 제대로 정사를 돌보지 못했다. 전국

적으로 요원을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반란은 언제 서라벌로 그 불똥이

튈지 몰라 왕은 늘 전전긍긍하며 밤잠을 설쳐야 했다.


  “우리 신라는 혁거세대왕 이래로 880년 넘겨 사직(社稷)을 지켜 왔습

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전국 각지에서 초적(草賊)들의 들고 일어나 국기

를 뒤 흔들고 있어 심히 우려되는 바 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라는 부처님

의 지혜와 선조들의 영민함으로 삼국을 통일하였습니다.

 

   우리 신라는 이제 다시 한번 대왕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힘차게 도약

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우리들의 간절한 염원을 들으시고 이곳 서라

벌에 나투시어 도우실거라 소승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설법하는 스님의 목소리에 힘이 예전과 같지 않은 듯 맥이 빠져 있었

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왕은 합장한 채 속으로 끝없이 부처를 찾았다. 
  “부처님, 우리 신라에 다시 한번 영광을 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빈들과  귀족들 역시 찬란했던 옛 시절을 떠 올리며 부처에게 빌고

빌었다.


  “공주, 이제 법당 안으로 드시지요. 많은 이목(耳目)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사옵니다.


  “흥, 볼 테면 보라지요. 우리가 뭐 이상한 짓이라도 했나요?”
  “그, 그게 아니라.”


  숙부인, 상대등(上大等) 김 위홍(金 魏弘)은 조카이자 정부(情婦)인 왕

여동생 김만(金曼)에게 쩔쩔매고 있었다. 공주는 주변에서 보기 드물

훤칠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기품을 지니고 있었고 꽃들도 질투할

만큼 빼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잘 발달된 육감적인 몸매는 늘

위홍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공주의 터질듯한 젖가슴과 엉덩이를 쓰다

듬는 위홍의 손에 힘이들어가 있었다. 


  

 김 위홍은 형 경문왕, 응렴(膺廉)의 명을 받고 자신의 총감독하에 지어

진 황룡사의 음침한 곳에서 질녀의 육신을 주무르면서 형을 생각했다. 형

에게 좀더 강하게 왕위 승계를 요구했더라면 지금의 조카 자리를 자신이

차지 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조카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위홍은

왕권에 대한 야망을 포기하는 대신 형으로부터 절대 권력을 보장 받았다.  

 


  “숙부, 우리 언제까지 남의 눈을 피해 다니며 이렇게 지내야 해요?

이제 지겨워 죽겠어요. 남들이 없는 어디 먼 산속이나 어촌으로 도망가요.

녜? 숙부.”


  “공주.”
  “숙부, 나는 밤마다 숙부만 생각하고 있단 말이 예요. 이제 그 곰 같은 부

호부인(鳧好夫人)에게 억지 웃음 짓는 일도 죽기보다 싫다고요.


  “공주, 조금만 기다려 주소서. 곧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나이다.”
  “특단의 대책?”


  “네, 공주.”
  비록 밤이면 밤마다 몸을 섞는 숙부와 조카 사이지만 조카의 날카로운

질문에  세상을 주물러 온 상대등 등에는 식은 땀이 송알송알 맺혔다.



  “좋아요, 숙부. 나는 숙부만 믿겠어요.”
  “공주, 소신을 믿으소서.”

  "숙부 제가 오라버니에게 부탁 한 가지 하려고요."

  "부탁이요?"


  "네에, 기대해 보셔요."
  상대등은 공주의 말에 의아하면서 즉위 초부터 각종 병으로 제대로

정사를 돌보지 못한 둘째 조카인 현재의 왕이 오래 가지 않아 최악의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대로 밀어붙여서 내가 왕위를 물려받을까? 아냐, 내가 강제로 왕위

를 찬탈하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 테지.’


 

  왕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형인 경문왕 때부터 신라의 국사(國事)

를 요리해 온 위홍은 차마 조카들을 내쫓고 왕위를 차지할 수 없었다.

뜻은 컸지만 만약 자신이 연약한 조카들은 버리고 왕위를 찬탈할 경우

두고두고 사가(史家)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 두려웠고 또한 왕위를 두

고 치열한 쟁탈전이 끝없이 재연 될수 있음이 걱정되었다.


  두 사람이 황룡사 안으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두

사람에게 꽂혔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런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다정한

연인처럼 손을 잡고 들어섰다.


  “상대등, 여기 앉으세요.”
  “공주께서 앉으세요, 소신은 다른 곳에 앉겠습니다.”


  왕도 두 사람의 행동을 은근히 눈여겨 보고 있으면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왕은 어린 시절부터 숙부를 무척 따르고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 할 때마다 삼촌인 위홍을 찾아 의논하곤 했다. 그런

삼촌이 언제부터인가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 만(曼)과 보통 사이가 아니

라는 소문을 익히 듣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체 했다.


  초 저녁 부터 시작 된 백좌강회(百座講會)는 인왕반야바라밀경(仁王般

若波羅密經)중 일부분을 강독하는 것으로 끝났다. 임금은 스님들의 노고

를 치하하기 위하여 황룡사 앞 넓은 마당에 준비 된 공양장소로 이동하였

다. 한 장소에 백여 명이 들어가 앉을 수 있는 흰색의 대형 천막 여러 동

이 설치되었다.

 

 각각의 천막 안에는 길게 탁자가 놓여지고 탁자 위에 육류(肉類)를 제외

한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지고 뒤로 새롭게 지어진 가사와 장삼등 스님들

에게 내릴 왕의 공양품이 준비 되어 있었다. 왕은 비빈들과 귀족 그리고

고승들과 가장 화려하게 치장 된 천막 안으로 들었다. 간신히 자리에 앉은

왕은 음식공양에 앞서 스님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짐은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올시다. 오늘 여러 황실 사람들과 고승대

덕을 모시고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부디 차린 것은 변변치 않으나 많이 드시고 앞으로도 이 나라가 천년만년

유지될 수 있도록 지극정성으로 호국(護國)과 백성들의 안위를 위하여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긴 시간 설법과 경청을 하느라 스님들은 몹시 시장한 듯 했다. 스님들 옆

으로  비빈과 귀족들의 음식공양도 준비 되어 있었다.


  “숙부, 많이 드세요. 시장하셨지요?”
  “공주도 많이 드세요.”

  "숙부, 그런데 술이 없어서 좀."
  공주는 위홍 옆에 앉아서 소곤거렸다. 다른 비빈들과 귀족들 그리고 위홍

의 처 부호부인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의 질투를 느꼈지만 아무 말 못하

고 음식공양에만 열중했다.


  “오라버니, 뭘 좀 드셔야지요.”
  “오오, 그래. 만이 너도 많이 들어라 시장하겠구나.”


  만이 임금 곁으로 다가가 속삭이자 평소 여동생을 아끼는 왕은 빙그레 웃

으며 만의 풍덕한 몸매를 훑어보았다. 왕은 여동생을 볼 때마다 호쾌하고

당당한 자세가 보기 좋았다. 자신도 여동생처럼 활기찼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만아”
  “네에, 폐하.”
  “상대등하고 사이가 좋아 보이는 구나. 그러나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하면 혹

너를 비방하는 무리가 있을까 걱정이 되는 구나.”


  “오라버니, 아니 폐하.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조카가 숙부를 따르는데 누

가 뭐라고 하겠어요?”
  만은 약간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


  “이 오라비는 너에 관한 나쁜 이야기라도 들릴까봐 그런다.”
  “알았어요. 오라버니, 조심할게요.”
  “미안하다. 만아. 너는 하나 밖에 없는 내 누이동생이다. 너를 지켜줘야

하는데.”


  “오라버니, 고마워요 그리 말씀해 주시니. 그런데 폐하, 한 가지 부탁 드

려도 되요?”
  “응? 무슨 부탁인데?”
  “며칠간 불국사에 들어가 상대등과 오라버니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드리

고 싶어요.”


  “나의 쾌유를 위한 기도를?”
  “네에, 오라버니.”


  임금은 가뜩이나 조정 안팎에서 여동생과 상대등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

이 돌고 있는 터라 선뜻 답하지 못했다. 만약 승낙을 한다면 조정과 왕실에

서 일대 파란(波瀾)이 일게 뻔하기 때문이다.


  “왜요, 오라버니?”
  “…….


  “남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까 그러시죠?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명분이 좋

잖아요. 호국과 오라버니의 쾌유를 빌기 위한 행사라고 하면 되니까요.”
  숙부 김위홍과 여동생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왕은 고민하기 시작

했다.


  “오라버니, 허락해주셔요. 네에?”
  “생각 좀 해보자. 환궁해서 다시 논하면 않되겠니?”
  “아이, 오라버니도. 뭐가 걱정이 되서 그래요? 정당한 이유가 있는 일인

데요? 다른 신하들 눈치 볼 일이 뭐있어요?”


  “그, 그렇긴 하지만…….
  여동생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는 왕은 가만히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 경문대왕은 슬하에 여러 자녀를 두었다. 아버지와 형은 이

미 고인(故人)이 되었고 여동생 만(曼)은 낙천적이면서도 행동에는 남자 못

지않은 직선적이면서도 밀어 붙이는 성정을 지니고 있어 늘 불안했다.

 

  특히 요즘 들어 부쩍 숙부 인 상대등 위홍과 염문을 뿌리면서 세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자 임금 또한 두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예의 주시하고 있

지만 방관하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었다. 숙부의 절대적인 지지가 없으면

자신의 왕권이 지탱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만아, 그럼 딱 사흘만 다녀 오거라.”
  “오라버니, 아니 폐하, 이왕이면 엿새 정도 허락해 주시와요. 네에?”
  “만아, 너도 알다시피 요즘 국내외로 시끄럽잖니? 이런 때 상대등을 너무

오래 외부에 있게 하면 말들이 많을 것이야. 그러니 이번에는 네가 양보해

다오.”


  “알았어요. 오라버니. 고마워요.”
  “넌 내 여동생이야, 나중에 내 뒤를 이을......”
  “네에? 오라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으응, 아니다. 그냥 해본 말이야.”
   

    임금은 날로 악화 돼가는 자신의 병세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잠시

호전 되는가 싶더니 이제는 일어나 앉아있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아침에도

왕은 잠시 정신을 놓아  대소신료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었다. 보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만약 갑자기 큰일이라도 당한다면 왕위를 물려 줄 사

람이 없었다. 형의 아들이 있었지만 너무 어렸다. 왕은 곰곰히 생각한 끝에

왕은 옛날일을 생각해 냈다.

 

  그 옛날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처럼 여자가 왕위를 물려받은 전력이 있어

긴급한 상황이 벌어질 경우 자신의 왕위를 여동생 만(曼)에게 물려주리라

고 다짐했다. 물론 대신들의 반대가 있을지 모르지만 숙부인 상대등, 위홍

의 막강한 힘이 뒤를 밀어준다면 불가능 한 일도 아니라고 왕은 판단했다.


  “폐하, 이제 환궁할 시간이 옵니다. 날씨도 차가운데 어서 환궁하시지요?”
  “오오, 숙부. 많이 드셨어요?”
  “많이 들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아무 공양을 드시지 못하신 듯 합니다.”
  “속이 안 좋아서요. 환궁해서 들지요. 참, 상대등.”


  “네에, 폐하.”
  “만이가 숙부하고 불국사에서 국가의 안녕과 짐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하

겠다고 하여 짐이 사흘만 다녀오라고 윤허하였어요. 만이를 잘 돌봐주세요.

상대등.”


  “망극하옵니다. 폐하.”

  "숙부도 잘 알다시피 그애는 나에게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입니다. 나는

요즘 그애가 있어 덜 외롭고 많은 위안을 얻습니다.  숙부께서 많이 위해 주

세요."

  "황공하옵니다. 폐하."


  “아닙니다. 만이의 청이 있어 짐은 승낙만 했을 뿐입니다.”
  “남의 이목이 있으니 지나친 행동은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망극하옵니다. 폐하. 소신, 알아서 폐하와 왕실에 폐가 되지 않도록 하겠

나이다.”


  “고맙습니다. 숙부.”
  “황공하옵니다.”
  

  언제 세상을 뜰지도 모를 병든 왕을 모시고 반월성(半月城)으로 환궁하

는 도중에 위홍은 불국사보다 강양군(江陽郡)에 있는 북궁해인수(北宮海印

藪)를 생각했다. 그곳에는 정강왕 때 자신이 사재를 들여 봉헌(奉獻)한 한쌍

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있었고 무엇보다 세인들의 눈에서 멀어서

서라벌에 있는 불국사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곳에 나와 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염원이 있지."

  위홍은 두 불상을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환궁하자마자 위

홍은 공주의 처소를 찾았다


  “숙부, 심심하셨죠?”
  “아닙니다. 공주가 곁에 계셨는데 소신이 어찌 심심하겠습니까?”

  “여긴 저와 둘이잖아요. 그냥, 만이라고 불러주세요.”


  “아닙니다. 공주.”
  “아이, 괜찮다니까요, 숙부?”


  “그, 그래도.”

  "내일 불국사 갈 때 무얼 입고 갈지 비빈들은 몇명이나 데리고 가야할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공주?"

 

  "네에, 숙부?"

  "소신의 의견으로는 불국사보다 강양군에 있는 북궁해인수가 더 좋을

듯 한데요?"

  "숙부, 거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잖아요? 저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틋

한 사랑이야기가 깃든 불국사가 좋은걸요. 웬지 불국사에 애착이 가요.

북궁해인수는 다음에 가시기로 하고 내일은 그냥 불국사로 가요, 숙부." 

  "할수 없지요, 공주마마께서 그리 원하시니."


  "고마워요, 숙부." 

   “여봐라, 여기 주안상 좀 준비하라. 상대등 어른께서 즐겨드시는 인삼

찜과 천로주(天露酒)를 준비하거라.”


   상대등 위홍은 공주가 처녀시절부터 공주궁을 자신의 안방 드나들듯 했

지만 누구도 제지하거나 눈총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임금이 있는

대전(大殿)보다 공주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고 궁녀들이나

시비(侍婢)들도 당연시 하고 있었다.


  “숙부, 제 잔 받으셔요.”
  “고맙습니다. 드를 때 마다 소신이 좋아하는 인삼 찜과 천로주를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숙부, 술과 안주는 얼마든지 있으니 괘념치 마세요.”


  “공주마마, 그런데 내일부터 소신과 불국사에서 기도를 드리게 되면

많은 이목들이 집중 될 터인데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마마와 소신의 일

거수일투족에 서라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 될 것입니다. ”


  “흥, 그까짓 참새들이 아무리 짖어본들 눈썹하나 까딱할 줄 아세요?

전 그런 거 신경 안 쓰기로 했어요. 전 숙부와 함께 있으면 아무 바랄

것이 없어요.”
  “공주”


  위홍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주 옆으로 앉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

는 두 사람이 탁자를 가운데 놓고 잔을 마주치다가 위홍이 공주 곁으로

다가가 살며시 안아 주거나 붙어 앉아 공주의 섬섬옥수를 살며시 잡아보

곤 했다. 위홍이 공주의 곁으로 다가가면 시녀들은 비단 장막을 내리고 조

용히 물러갔다.

 

  황룡사 헛간에서 부터 참아왔던 욕정이 봇물처럼 터져버리자 두사람은

다시 하나의 정물화속의 석고상이 되어갔다. 달콤하고 뜨거운 만의 긴혀가

숙부 위홍의 입속으로 밀고 들어가자 위홍은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조카의

풍덕한 육신을 더듬었다.  향긋한 여인의 체취가 위홍의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하였고 위홍은 참을 수 없는 열정에 부르르 떨었다.

 

  "아아, 숙부."

  "공주."

  "사랑해요, 숙부."

 

  당나라에서 수입 된 푸른 유리잔에 황금색의 천로주가 탁자위에서

찰랑 거렸다. 몇번의 출산(出産)이 있는 공주였지만 풍만한 여체에서

풍기는 은은한 체취는 처이자 공주의 유모인 부호부인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고상한 방향(芳香) 이었다.


  긴 입맞춤과 깊은 애무로 뜨겁게 달구어진 육신이 공주의 내실을 달

구었다. 밖에서 대기하던 시녀들이 몰래 안을 들여다 보면서 침을 삼켰

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두사람의 모습도 덩달아 흔들리면서 남녀의

촉촉한 모습을 장막에 그려놓았다. 끈적한 운우의 개운한 맛이 두 사람

의 전신에 퍼져 노곤함과 안락함을 만끽했다.


  “숙부, 주무시고 가실 거죠? 밤이 너무 깊은데......”
  “오늘은 그냥 갔으면 하는데요. 내일 아침 일직 등청해야 합니다.”
  “그럼, 조금만 쉬었다 가세요.”
  “공주”


  공주가 위홍의 목덜미를 껴안고 다시 침상위로 쓰러지자 시비들은

조용히 들어와 촛불을 껐다.

 

  


                                                                          - 계속 -

   
 

 

 

  



[주] 1. 강양군 - 지금의 경남 합천

        2. 북궁해인수 - 지금의 해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