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소나타(마지막)
달빛 소나타(마지막)
- 여강 최재효
아내와 아이들은 나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지만 나는 나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밤이면 불면증에 시달렸다. 병원에 입원한 뒤로 단
하루도 편안하게 잠을 자지 못했다. 낮이면 소문으로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들은, 평소 나와 인연이 있는 지인들과 친인척들이 한두 명씩 찾아왔다.
그들은 내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에게는 쾌차하라는
말을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곧 일어나야지 하는 말로 응수를 하곤 했지만 뱃속에서는 계속해
서 통증이 전해 졌다. 늘 이름을 알 수 없는 약들이 혈관을 통해 내 몸속으로 들어
갔지만 그 약들이 떨어지면 곧 통증이 엄습했다. 나는 이제 나의 긴 여정(旅程)을
정리 할 때가 왔음을 감지하고 가까이 사는 막내 남동생을 불렀다.
“얘야, 잘 들어라. 이게 신체기증서약서란다.”
“형님,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죽으면 나를 이 병원소속 의과대학에 기증하려고 한다.”
“형님......”
“여보…….”
내가 병상에서 간신히 일어나 병원에 비치 된 신체기증서약서에 나의 정보들을
또박 또박 써 나갔다. 아내와 동생은 눈물을 훔치며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이야, 만약을 위해서 작성한 것이니까 당신은 이것을 병원 측에 전달해 줘
요. 그리고 막내야, 너 하루 정도 시간 좀 내 줄 수 있겠니?“
“언제요?”
“내일 도 좋고 모레도 좋은 데 가급적 빠르면 좋겠구나.”
“어디 가시게요?”
“어젯밤 꿈에 아버지가 보이더구나. 돌아가실 때 보다 더 여위신 것 같더라. 아버
님이 나에게 손을 흔들며 웃으시더구나.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무슨 말씀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아버님을 만나야 겠다.“
“형님, 내일 제가 시간을 내 볼게요.”
“그래, 고맙구나.“
다음 날 오후 나는 병원측에 알리지 않고 팔에 링거 주사바늘을 꽂은 채 차를 타
고 아내와 동생 부부를 데리고 고향 여주로 내려갔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잎사귀가 모두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살이 모두 빠져 버린 나의 팔과 다리 같았다.
“얘야, 어머니에게는 알리지 마라. 괜히 내가 아버지 산소에 간다는 소식을 들으
시면 노인네가 산소에 오실지 모르니, 고향사람들 모르게 다녀오고 싶구나.”
아내는 뒷좌석에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나를 위하여 차가 여주에 도착 할 때 까지
쉬지 않고 기도를 올렸다. 아내의 기도소리가 내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고 나는 마음
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여보, 저기, 주막거리에서 아버님께 올릴 약주술하고 안주 좀 사와요.”
나를 태운 차가 50년 넘게 다니 던 선산, 청마루에 도착 했다. 청마루에는 고조할
아버지와 할머니 내외분을 합장 한 산소와 할머님 그리고 1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
지 산소가 있었다.
“애야, 나 좀 부축해줘라.”
나와 일행은 눈이 소복이 쌓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소에 절을 한 뒤 아버지 산
소에 엎드렸다.
“아버지, 이 못 난 자식 왔습니다. 이 어리석은 놈이 죽을 때가 다 돼서 아버지를
찾아 왔습니다. 아버지,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제가 생전에 지은 죄가 많아
이렇게 되었나 봅니다. 흑-.“
나는 아버지 묘소에 엎드려 폭포처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여보오……”
“형님……”
아내와 동생이 너무 울면 안 좋으니 그만 울라고 했지만 나는 복 받쳐 오는 서러
움을 참을 수 없었다.
“아버지이……. 이놈이 죽일 놈입니다. 이 놈이 너무 어리석어 아버지가 물려주
신 모든 재산을 그만 이름도 모르는 자들 손에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이-.”
“형님, 그만 일어나세요. 병원으로 돌아가셔야지요.”
“여보, 이제 어서 일어나요. 나중에 당신 상태가 좋은 면 다시 와서 인사드리면
되잖아요.”
‘나중에? 지금 돌아가면 나는 영영 아버지를 뵐 수 없는데, 나중에 언제?’
“나, 이대로 내버려 두어. 여기서 죽더라도 이대로 그냥 놔둬.”
“여보오......”
대낮에 아버지 산소 앞은 나로 인하여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멀리 기러기
한 쌍이 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여강쪽으로 날아가고 초승달이 동녘에 살며시 얼
굴을 내밀었다. 언젠가 밤에 아버님 산소에 왔을 때 둥근 달이 떠오르면서 햇살
보다 더 눈부신 은색의 달빛이 아버지 선산을 비추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
지의 산소는 소복하게 쌓인 은빛으로 하얗게 물들어 나는 그 신기한 모습에 한참
을 앉아서 일어날 줄 몰랐었다.
‘그때의 둥근달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한 많은 청상(靑孀)의 눈썹보다 가느다
란 초승달이 나를 맞이하고 있구나. 달님도 내 심정을 알고 있는 것일까?’
해가 대포산으로 넘어가자 한기(寒氣)로 몸이 으슬으슬 떨려 왔다. 나는 다시 한
번 아버지에게 큰 절을 올렸다.
“아버지, 이 불효자식 저승에서 올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형님, 어서 가세요 상태가 더 악화 되면 안돼요.”
막내 동생은 내가 걱정이 되는지 차에 탈 것을 재촉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 못난 손자를 꾸짖어 주세요.”
나는 병원으로 돌아오면서 심한 통증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큰 딸이 내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애야, 지금이 몇 시니?”
“아빠, 깨셨어요?”
“그래, 집에 들어가 자지 않고?”
“새벽 5시에요.”
“오늘이 며칠이니?”
“2월 10일이에요.”
“애야, 내일 네 작은 아빠 좀 불러줄래?”
팔에 꽂힌 링거바늘을 타고 노란액체가 한방 한 방울 떨어졌다. 약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약이 다하면 나의 생명도 다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정신은 맑았
으나 통증은 약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전해 졌다.
‘아, 이렇게 내 53년의 인생이 마감하는 구나.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어떻게 저
승으로 떠난단 말이냐? 어떻게?‘
이제는 눈물도 메말랐는지 나오지 않았다. 오늘의 이 현실이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죽음을 앞 둔 내 병든 영혼을 빨리 저승으로 데리
고 가려고 할 뿐, 세상 모든 사람과 신들은 나에게 등을 돌렸다. 다음 날 오후 막내
동생이 병실을 찾아왔다.
“형님, 저녁에 찾아오려고 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나 좀 휠체어에 태우고 이 건물 뒷동에 좀 가자.”
“뒷동이요?”
“그래. 어서 일으켜다오.”
동생이 미는 휠체어에 앉아 병원 뒤편에 있는 장례예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곳 관계자와 장례절차에 다하여 이것저것 꼼꼼하게 물어보고 장례예식장
을 두루 살펴보았다.
조만간 나의 영정사진이 안치 될 장소를 가리키며 동생에게 꽃이 너무 많아도 문
상객들에게 욕을 먹는다며 장례식을 검소하게 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나의 말
을 듣고 동생은 놀란 얼굴을 하고 연신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쳤다.
장례예식장앞에 나목(裸木)이 된 은행나무는 겨울의 하늘을 배경으로 을씨년스
럽게 서있고 찬 바람아 휘감고 가도 잎사귀가 없는 은행나무는 멀뚱히 하늘만 쳐
다 볼 뿐이었다. 나는 서서히 한 그릇 나목이 되어가고 있었다.
비록 나무처럼 가을까지 화려하고 원숙한 삶을 살다가지 못하지만 피우다만 나뭇
잎을 떼어버리고 스스로 겨울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마음을 비우고 나의 장례식
때는 너무 요란스럽지 않게 하라고 주문까지 하고 있으니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1남3녀를 두었다. 그 어린 것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 애들의
미래를 생각하다가 울컥 욕지기가 나왔다.
‘저 어린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 배에서 나온 형제는 은행나무 앞에서 이승과 저승의 서로 다른 갈 길을 눈앞
에 두고 착잡한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나처럼 자신의 장례준비 챙기고 이승을 떠
나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동생아, 내가 죽거든 이 곳에 빈소를 마련해야 한다.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고
꼭 이곳에 빈소를 차리거라. 그리고 나는 네가 알다시피 의학발전을 위하여 내 신체
를 기증하기로 했다.
절대로 매장하
지 말고 내 소원대로 해 주렴. 내가 세상에 나와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내 신체를 의학발전을 위해 기증하는 것이란다. 내 결심을 존중해 다오.
이제는 모든 것을 비웠다.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단다.“
“형님, 어떻게 그놈들을 용서할 수 있어요? 어떻게요?”
“아니야, 모든 것이 나의 욕심에서 비롯되었어. 이제 마음을 비우고 나니까 한결
기분이 좋구나. 행여, 나 죽은 뒤에 절대로 그 사람들을 찾아 복수하려 하거나 무모
한 행동은 하지 말거라.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야. 내 말, 명심하거라.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네가 잘 돌봐 주고. 나는 이제 나목(裸木)이 되었구나.“
오전부터 저녁 때 까지 형님은 어렵게 말을 이어가면서 그간의 사정을 나에게 이
야기했다. 그러나 나는 형님이 진짜 가슴속에 담아 둔 이야기를 알고 싶었으나 형님
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결자해지(結者解之)를 강조하며 조카들과 친척들에게 혹
시 해가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중환자 실로 옮겨진 형님은 다음 날 저
녁인 2005년 2월 22일 오후 9시20분 53세의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뒤로 하고 조
용히 눈을 감았다.
형님의 시신은 형님의 유언대로 부천소재 S병원에 기증을 하였고 평소 다니던
남동구 만수동 성당의 주임신부님의 집전으로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성도(聖徒)들
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례미사를 올렸다.
2006. 8. 14.
- 拙稿를 큰형님의 靈前에 바칩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동생 최재효 拜
긴 글을 읽어 주신 님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형통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