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소나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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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소나타(1)
- 여강 최재효
“여보, 여보, 정신 좀 차려 봐요.“
“형님, 형님......”
“아빠, 아빠......”
200평정도 되는 부천S병원중환자실 여기저기서 곧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형님은 간신히 숨을 몰아쉬면서 형수와 조카들의 아타까움을 더해갔다. 창가에 위치한 형님의 침대는 별빛이 쏟아지는 전망이 좋은 곳 이
었다. 한쪽 귀퉁이가 이지러진 희미한 하현달이 엷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지만 병실
의 두터운 유리창을 투과하지 못했다.
오후 들어 상태가 급속히 나빠진 형님은 전문의 판단에 따라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간신히 가족들 면회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 지옥과 천국이 따로 있지 않았다. 중환
자실 안이 지옥이고 문밖이 바로 천국이었다. 담당 간호사는 다른 환자들에게 방해
가 될 까봐 자꾸 내가 서있는 쪽 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오전에만 해도 형님은 간신히 일어나 앉아 있기도 하고 휠체어를 타고 병원
우측에 있는 성모마리아상 앞에 까지 갔었다. 그런데 저녁 8시경 휴대폰이 진동 하
면서 다급한 형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방님, 형님 상태가 안 좋아요.”
나는 저녁을 들다말고 병원으로 달렸다. 병실에는 이미 조카들이 달려와 형님의
병상 앞에 모여 있었다.
“작은 아빠, 아빠가 정신을 놓으신것 같고 숨도 몰아 쉬세요.”
회사 다니는 큰 조카가 눈이 퉁퉁 부어서 나에게 조그마한 소리로 형님의 상태를
알렸고 형수는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의사가 뭐라고 해요 형수님?”
“중환자실로 옮겨야 할 것 같대요.”
점점 더 상태가 좋지 않자 형님은 바로 통제가 심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일주일 전 나는 형님의 지난 3년간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오후에
형수로부터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
“서방님, 이분들이 제천세무서에서 나오 신 분들이래요.”
“안녕하세요? 환자의 동생 됩니다.”
40대 중반과 30대 중반의 두 남자는 형님과 대화를 나누다 내가 들어가자
정색을 했다. 형수는 두 세리(稅吏)들이 가져 온 고지서를 보여 주면서 한숨을
쉬었다. 나는 고지서를 보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소득세납부고지서에는 분명히 2억
4천
만 원이 좀 넘는 액수가 박혀 있었다. 나는 갑자기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
를 질렀다.
“지금, 이 돈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형님보고 내라는 겁니까?”
“그, 그게 아니고. 우리는 전달할 의무가 있고. 또 최 사장님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공무원이 나와 형수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희도 최 사장님을 찾기 위하여 전국의 모든 관공서에 협조 공문까지 보냈
지만 알 수 없었는데 최근 저희 관내로 전입신고가 되었더군요. 전입지 주소를
찾아 갔으나 최 사장님을 만날 수 가 없었습니다.“
거의 1년 이상을 주소지 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형님은 지난해 10월 병원을 찾았을 때 이미 간암 말기에 접어 들었다는 의사의 사형선고 같은 판정을 받았으나 바로 입원하지 못했다. 동사무소에 주소가 직권으로 말소가 되어 버려 의료보험카드를 발
급받을 수 없는 상태 였다.
할 수 없이 의료헤택을 보기 위하여 형님의 옛 친구가 살고 있던 제천으로
주소지를 옮겼었는데 전입신고가 되자마자 행정전상망에 형님이 노출되어 바로 세
무서의 추적을 당한 것이었다. 형님은 간신히 그간의 사정과 세금을 체납할 수밖에
없는 심정을 피를 토해가며 설명했다. 세리들이 형님의 사정을 듣고 돌아 간 뒤 형
님은 나에게 지난 3년간의 겪었던 사정을 이야기 간신히 했다.
“형님, 조 영진입니다. 저녁에 시간 나시면 대포라도 한 잔 하시지요.”
평소 나를 친형 이상으로 따르면서 종종 대폿잔을 함께 나누게 된 조 영진은
내가 교도관 근무시절부터 알게 된 사이인데 나보다 두 살 아래였다. 다부진
체구와 선이 굵어 보이는 그는 약간의 보스 기질을 지니고 있는데 시장에서 포목점
을 하고 있었다.
“고맙네, 저녁 7시에 거기서 보자고, 그럼.”
늘 가던 대폿집에 도착하자 조 영진을 비롯한 조 영진의 친구 두 명이 술판을 벌
이고 있었다.
“하이고, 최 선생님, 어서 오세요. 저희 집과는 인연을 끊은 줄 알았어요.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어떻게 한번도 안 오세요? 밖엔 아직도 눈이 내리나 봅니다. 자 수건
으로 얼굴 좀 닦으세요.“
40초반의 얼굴이 반반한 주점 주인아주머니가 수건을 건네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19공탄 연탄이 벌겋게 화력을 자랑하고 석쇠에서 삼겹살이 노릿노릿 익어 가고 있
었다. 조 영진은 얼굴이 불콰한 것으로 보아 이미 꽤 마신 듯 했다.
“형님, 이 녀석은 군대 동기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 동철 이라고 합니다. 큰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잘 부탁드
립니다.”
“형님, 이쪽은 제 불알친구입니다.”
“인사 올립니다. 윤 병수라고 합니다.”
조 영진은 호쾌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를 큰 형으로 모시겠다며 오버 액션까지 취
해가며 호들갑을 떨었다.
“반갑습니다. 월급쟁이에게 이렇게 훌륭한 동생들을 두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내가 주전자를 들어 동생들에게 텁텁한 막걸리를 한 잔씩 돌리자 황송해하는 눈
치였다. 조 영진을 알게 된 것은 작년 봄 사회친구의 소개로부터 시작 된다. 식당을
하는 정 사장이 평소 내 이야기를 친구들 앞에서 하자 그중 조 영진이 한번 뵙고 싶
다고 하면서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평소 정 사장한테서 형님에 대하여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뵈니
정말로 인품이 있고 참으로 인자해 보이십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 사장의 소개로 나는 그날 저녁 조 영진과 의형제가 되었다.
“형님, 공무원생활 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한 20년 좀 넘었지.”
“그럼, 더 늦기 전에 다른 거 해보시죠? 퇴직금도 꽤 되실텐데요?”
“다른 거?”
“형님 연세가 마흔여덟이면 더 늦기 전에 평소 꿈꾸었던 사업이 있으시면 해보시
는 것도 괜찮지요.“
“사업은 무슨 사업, 이대로 정년까지 가야지.”
조 영진은 그날 자신도 회사를 다니다가 10년 전 그만 두고 시장에서 포목점을 열
었는데 생각 보다 괜찮다면서 적성에 안 맞는 직장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는 편이 좋다며 열을 올렸다.
“나도 15년 전에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식당하길 잘 했지 만약 안 그랬다면
먼저 IMF 때 감원 대상이 되었을 거야. 아무튼 때가 왔다고 판단되면 판단을 신속
하게 해야 돼 이 친구 말도 일리는 있어.“
곁에 앉아 있던 정 사장이 조 영진을 거들고 나섰다.
“요즘 같은 때는 그저 국으로 월급이나 타 먹는 게 제일이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의 직업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하긴 내가 이 직업이 좋아서 다니는 것은 아니지. 새끼들 먹여 살리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거지.‘
“자, 영진이 아우님, 술 좀 채워 봐.”
내가 잔을 내밀자 조 영진이 얼른 술잔에 막걸리를 채웠다.
“형님, 이제는 옆에 여우같은 년들 앉혀 놓고 호박색깔 양주를 드시면서 세상을
음미할 때도 되신 것 같은데......“
조 영진이 싱긋 웃으면서 내 눈치를 보았다.
“어이쿠, 이 사람아 공무원이 무슨 수로 여시들을 곁에 앉히고 양주를 마시나?
내가 비리를 저질러 공금을 수억 원이라도 빼내 쓴다면 몰라도......“
나의 말에 조영진이 특유의 오버액션을 취해가며 호탕하게 웃었다.
첫날 조 영진과 헤어진 후로 조 영진은 나에게 수시로 전화를 하면서 문안인사
를 하였고 나는 참으로 괜찮은 동생을 두었다고 생각했다. 지난 달 진급심사에서 물
을 먹은 뒤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늦게 시작한 교도관생활에 회의마저 들었다. 또래
의 친구 서너 명은 대기업 중견 간부나 정부기관에서 관리자로서 큰 소리를 치며
어깨를 피고 있었고 반대로 나는 점점 더 사회생활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15년 전
우연히 주식에 손을 댔다가 수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되었고 결국 집을 팔아 반쯤 갚
았다.
어린 4남매를 데리고 전셋집을 전전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봉급쟁이 신
세로서 만족하며 안분지족하며 살았어야 하는데 한 때의 욕심이 10년 이상의 긴 세
월은 암울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 올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7남매의 장남으
로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에게 하루 빨리 자수성가하여 떵떵거리며 사는 큰 아들
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한 바람은 정 반대의 결과를 낳았고 지금은 지옥 같았던 지난 15년 세월이 아
득한 꿈 이야기처럼 뇌리에 박혀 있다. 이 땅에서 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세상
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많은 장남들이 뼈저리게 느끼면서 침묵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위로 두 누이들 아래로 올망졸망한 동생들 또 아직 온상에서 한참 자양분을 섭취
해야 할 4남매 내 얼굴만 바라보며 하 세월 살아가는 아내, 고향에서 어렵게 살아가
시는 노부모의 애처로운 모습, 어느 한 가지도 나를 편하게 해 주지 못했다.
내가 내 욕심만 차리는 망난이같은 자식으로 살아간다고 하여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다만 내가 손가락질을 받을 뿐이지만. 그러나 지금의 진퇴양난에서 나
는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조 영진의 말대로 나는 몇 년 전부터 또 다른 나의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보고싶
었다. 나는 조 영진에게 내 속내를 들켜 버린 것 같아 처음에 그가 나에게 새로운 인
생 운운 할 때 속이 뜨끔했었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이 하필 이 때에 내 앞에 나타
난 것은 또 다른 인연의 고리이며 내가 다른 인생을 준비하는 과정에 활력소가 되어 주기 위한 신의 전령사처럼 보이기조차 했다. 그런 나의 심정을 조 영진은 마치 마
법사처럼 기가 막히게 훤히 들여다보고 있은 듯 했다.
아래로 있는 남동생 둘 모두 국가를 위하여 일을 하고 있지만 각자 직장과 가정에 얽매여 형제간 우애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년에 설날이나 추석 또는 부모님 생신
때나 서로의 얼굴을 보는 처지로서 나 또한 맏형으로 크게 할말은 없었다. 그동안
내가 주식에 손을 대고 크게 손실을 입은 후 늙으신 부모님에게 큰 짐을 지어 준 것
은 나로서도 크게 후회 하는 일이지만 늦게라도 그 짐을 벗어 드리고 싶었다.
내가 앞으로의 내 진로를 놓고 고심하고 있을 때 조영진은 용케도 알고 나에게 자
주 전화를 하면서 접촉을 갖고자 했다. 그때마다 나는 조 영진이 구원의 천사처럼
보이기도 했고 천군만마를 가진 든든한 후원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접니다. 오늘 비도 오고하는데 저녁에 약주나 한 잔 하시지요?”
“그럴까?” 진대포집에는 조 영진과 박 동철 윤 병수가 앉아 있었다. 내가 대폿집
으로 들어 서자 셋은 일어나 정색을 하며 깍듯하게 허리를 굽혔다.
“형님, 그동안 무탈 하셨지요?” 박 동철 점잔을 빼며 예를 갖추었고 윤 병수도 내
눈치를
살살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생들, 그동안 잘 있었어? 오늘 비도 내리고 하는데 술 맛이 좀 날 것 같은데
오늘은 실컷 마셔 보자고.“
주점 주인아주머니는 내 앞에 풋고추와 된장을 가져다 놓으며 눈웃음을 쳤다.
“형님, 형님 고향이 경기도 여주라고 들었는데 맞죠?”
박 동철이 하얀 눈자위를 굴려가며 눈을 껌뻑 거렸다.
“아니, 언제 내 뒷조사를 다 해보았는감? 어이쿠, 이제 보니 무서운 사람들이구먼, 응?”
“에이, 형님, 뒷조사는 어떻게 감히......”
조 영진이 눈을 살짝 내리 깔면서 술잔을 들었다.
“맞네, 내 고향은 물 좋고, 인심 좋고, 쌀 좋고, 미인 많고, 고구마 팍신팍신하게
맛 좋은
여주가 맞다네. 그 뿐 아니라, 내가 태어난 곳이 명성황후가 태어난 동네 라네. 요즘
은 잘 단장되어 국민 관광지가 되었지.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으로 자네들 지
갑 속에 계시는 세종대왕님의 영릉(英陵)과 조선 17대 임금이며 청나라 북벌(北伐)
을 준비했다가 실천에 옮기기 전에 승하하신 효종대왕의 영릉(寧陵)이 있고 유명
한 남한강변에 그 유명한 신륵사가 있지.
최근에는 신륵사 입구에 상설 여주도자기전시장이 세워져 있지. 또 뭐가 있더라?
아 맞아. 신륵사에서 원주 방향으로 차로 10분 거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박물관
이 있어. 목아(木芽) 박찬수 선생이 건립했는데 목각과 철, 석재를 이용한 불상과
목각인형등 수천 점의 작품들이
일년 내내 전시되어 있지.“
“히야, 형님, 공무(公務)에만 열심이신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향토사학자시네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윤 병수가 입에 침을 튀겼다.
“언제 형님네 고향을 한번 다녀오고 싶네요. 그렇게 살기 좋은 고장이라면 땅값도 만만치 않겠는데요?“
조 영진이 느닷없이 땅값을 들고 나왔다.
“에이, 이사람. 여주의 요지는 이미 외지인들이 알을 박아놨지. 아마 찾아보면 혹시 모르지 괜찮은 땅이 좀 있을지......“
“형님네도 여주에서 대대로 살아 오셨으면 땅이 꽤 많겠습니다?”
“수 만평 되지.”
술이 어량해진 나는 고향이야기가 나오자 과대포장을 하여 이야기 했다. 그때 세
사람은 눈망울이 또랑또랑하여 내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무척 애쓰는
눈치였다.
“그럼, 형님. 퇴직 후에 고향에 내려가 농사지으실 생각이신가요?”
“에이, 내가 평생 펜대만 잡던 몸이 어떻게 농사일을 하나? 농사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녀. 만만히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치지.“
세 사람은 나의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해 가며 경청했다.
“형님, 그러지 마시고 땅 장사나 해보시지요?”
“땅 장사?”
“여주의 좋은 땅을 찾아내어 눈 먼 작자들에게 팔던지 아니면 개발 된다고 그럴
듯 하게 포장해서 허풍을 떨면 몇몇은 넘어 갈 텐데요?“ 박 동철이 잔을 비우고 나
서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
“예끼, 이 사람아. 나보고 사기꾼이 되라는 말인가?”
‘하긴, 요즘 세상에 사기꾼이 못되면 내가 사기꾼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지.’
갑자기 박 동철의 말에 나는 현기증이 일어 날 것 같았다. 최근 들어 다른 사업 아
이템을 찾던 나는 방금 박 동철이 한 이야기처럼 땅 장사를 하는 구상도 몇 번 해
보았기 때문이다.
“자자, 그런 이야기는 천천히 하고 오늘은 내가 쏘는 거니 많이들 드시게.”
창밖에는 빗줄기가 더 굵어져 있었고, 텁텁한 막걸리를 곁들여 갓김치에 싸서 먹
는 삼겹살 또한 일품이
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