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인간형
제4인간형(型)
- 여강 최재효
갈수록 수선화는 더 많이 피어나고 있다. 나도 어쩌면 한 송이 수선화 일 수
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하여 조용히 생각해본다. 비정상이 정상처럼, 또는
정상은 비정상의 형태를 지녀야 정상인 것처럼 되어버린 요즘, 자주 나 자신
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우문우답(愚問愚答)으로 자족(自足)한다.
기존의 고정관념은 최소한 나에게는 이미 상처 투성이가 되어 있다.
녀석은 내가 보기에 식물이었다. 동물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혼자서
하루세끼
해결하고, 혼자 자며, 혼자 생각하고, 혼자만의 성(城)을 쌓고, 마치 옛날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흉내라도 내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내 시력(視力)도
예전과 다르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는 특이 체질도 아니고 눈이 한 개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지만, 나는 그에게 제4인간형 이라는 거창한 칭호
를 붙였다.
사람들은 평생 살아가는 동안 남-여, 남-남, 여-여 등 3가지 형태로
미완
인생을 완성시키 보려는 시도를 한다. 문헌(文獻)상 몇몇 기인(奇人)이나
종교인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그렇게 생을 꾸려간다. 현재의 내 모습도 그렇고
부모형제도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우리의 오랜 전통적 모습이
서서히 그 어떤 변형을 추구하면서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준비하거나 권태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For oft, when on my couch
I lie / In vacant or in pensive mood,
They flash upon that inward eye /
Which is the bliss of solitude;
And then my heart with pleasure fills, / And
dances with the daffodils
[ 지금도 가끔 긴 의자에 누워
/ 마음을 비우거나 생각에 잠길 때면 고독의
축복이랄 수 있는 마음의 눈에 / 그 수선화들 문득 스쳐가곤 하네.
그러면
내 가슴 기쁨으로 가득 차 / 수선화들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춘다네 ]
위 시는 자연의 장엄함을 노래했던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 1770-1850)의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맸네“라는 시로, 수선화(Daffodils)의 고고하면서도 외로운 모습에
시인 자신을 투영시켜 노래했고, 시의 마지막 연(聯)에서 시인은 꽃들과 어울려
춤을 추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미소년 나르시스(Narcissus)는 물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사랑하여 그리워하다 물에 빠져 수선화(水仙花)로 다시 피어난다. 나는
워즈워드와 나르시스 역시 제4인간형으로 분류한다.
나는 비가 몹시 내리거나 눈이 내리는 밤이면 홀로 집 근처 칵테일코너를
찾는다. 으레 내가 즐기는 위스키샤워(Whisky Sour)나 마티니(Martini)를 주문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 마시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여뿐 바텐 아가씨가 만들어 주는 술이라야 제 맛이 난다. 이런 날은 대개
주점 안에는 둘 또는 그 이상의 나와 취향이 비슷한 손님들로 테이블이 점령
된다. 술 잔들고 있는 거울 속 중년은 영락없는 수선화 모습이다. 차분하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감미로운 음악이 홀 안의 틈마다 채워지면 나는 눈을 감는다.
술 잔을 들고 앉아 있으면 바텐 아가씨는 내가 실연(失戀)한 줄로 착각하고
위로를 하려 한다. 나는 대답대신 좋아하는 싯귀를 응얼거리면 아가씨는 고개
를 갸우뚱거리며 이상한 시선을 보낸다.
남-여 또는 여-남의 대화가 싫어, 자신과 대화를 하는 도중 방해를
받으면
그 자리를 뜨거나, 더욱 깊이 내 자신에 몰두 한다. 어느 정도 여정(旅程)을
밟아 본 나로서는 익숙해진 자아상(自我像)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초년생이거나 가정을 꾸린 사람으로서는 건전하지 못한 태도라고 볼 수도 있다. 최근들어 나는 아이들이나 아내보다
컴퓨터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이버 세상은 대량의 제4인간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초등학교 학생 때부터 부모 형제나 친구들이 아닌
자신과 대화를 하는 어린이가 점점 늘어간다는데 있다.
큰 딸아이도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오면 아빠, 엄마를 찾기보다 컴퓨터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컴퓨터가 부모자식간 대화단절을 부추기는 주범(主犯)이
라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친구는 이혼 한 뒤부터 말을 잃었다. 직장
에서 퇴근하면 집에 들어앉아 거의 새벽까지 사이버 세계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불러내어 둘만의 성채(城砦)를 만들고 있는 듯 했다. 내가 전화를 하면
늘 컴퓨터로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며, 내가 밖으로 나와 술잔을 마주
치자고 할 까봐 두려워 미리 연막을 친다.
제4인간형 역시 파경(破鏡)의 객관적 원인이 될 수 있다. 하늘이 맺어 준
남-여 또는 여-남의 개념이 아닌,
자신-컴퓨터, 자신-자신의 변태(變態)로
전이(轉移)되어 홀로 수선화를 가꾸고 있기 때문이다. 별을 볼 수 없는 배우자는 당연히 마음
고생을 하거나 또는 자유부인이나 돈 쥬앙을 꿈꾸기도 하고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한 명의 제4인간형이 또 다른 제4인간
형을 만들고 있다. 많은 제4인간형들은 스스로 만든 파국의 길을 걷고 있거나
유사형태의 상황을 즐긴다. 나 밖에 모르는 그들로 인하여 결혼을 하지않으려
하고 결혼을 하였어도 사회성원 생산에 소극적이거나 회피하고 있다.
복잡한 사회,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태도,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고 그
기계에 순응해야하는 로봇트화 된 인간, 점점 늘어만 가는 가면(假面), 욕망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이동통신수단의 발달 등으로 인하여 상심(傷心)한 많은
가슴들이 제4인간형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언젠가 친구녀석이 술
좌석에서 나에게 한 말이 기억난다.
“사람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때, 나는 차라리 하늘의 별로
살아가던지,
청산의 고고한 학으로 살아가겠다.“
우월주의, 황금만능주의가 평등주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더 용기를 얻게 된다면, 이는 보통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자신도 시나브로 제4인간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은
변형 된 신인류(新人類)가 탄생되는 이상한 사회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지만 수많은 억압의 수단들이 이 순간에도 생겨 나고 있다.
오늘은 예고없이 친구녀석을 방문하여, 옛날옛적 이야기를 해봐야
겠다.
2006. 7. 8. 오후 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