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06. 5. 20. 22:11

 

 

물들이기




                                                                    - 글. 최재효




    “요년들아, 네 동생 고추 떨어지는 거 보고싶어서 그러니?”

누이들은 어린 남동생 손톱에 빨갛게 물을 들여놓고 좋아서 난리다. 그러다가 엄마한테 혼이 나기도 했다. 남자로서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 나는 옛 추억을 더듬어 보며 속으로 조용히 노래를 불러 보았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

어린 남동생 손톱을 물들여 주던 누이가 보고 싶다. 이미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누이지만...


회사에서 주변 주민들과 여직원들을 위한 ‘봉숭아 물들이기’행사를 가졌다. 7~8월에 봉숭아꽃과 잎을 따서 저장해 놓은 것이란다. 여직원이 손톱에 물을 들이고 있는 틈에 살글살금 다가가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직원에게 부탁을 해 쪄놓은 봉숭아를 조금 얻었다. 두 딸과 아내가 내가 가져온 봉숭아를 보고 기뻐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뿌듯해 온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열 손가락에 봉숭아를 쌓매고 신이난 모습이 흐믓하기만 하다. 남자 아이들도 봉숭아를 쌓맨 손가락을 자랑스럽게 들어보인다. 여름에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 첫눈이 올때 까지 지워지지 않으며 사랑이 이루어 진다는 속설도 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등 형형색색의 메니큐어가 활개를 치는 세상. 울밑에 수줍게 피던 봉숭아 꽃잎으로 손톱을 붉게 물들이는 풍속은 어쩌면 촌스러워 보일 수 도 있겠지만 나는 화려한 서양의 것으로 눈부시게 칠한 손톱보다 은은한 멋이 스며든 봉숭아로 물 들인 손톱이 좋다.


손이 많이 가는 봉숭아 물을 들인 여인이 쉽고 간편하게 칠하는 메니큐어를 칠한 여인보다 더 고고하며 지적으로 보인다. 가끔 차안이나 백화점 같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손톱에 바른 메니큐어가 벗겨진 것을 보면 역겹고 천박스러움이 느껴진다. 시각은 나만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옛날에 화장품이 귀했던 시절 화장품의 대용으로 봉숭아가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이유는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붉은 색깔은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즐겨 사용해왔다. 귀신을 쫓고 삿된 기운을 막는 다고해서 부적의 글자를 붉은 색 물감을 이용하고 신부들의 이마와 뺨에 연지곤지를 찍는다.


퇴근과 동시에 학원에서 돌아온 두 딸들을 불러 내가 직접 열손가락에 봉숭아를 싸매고 비닐랩으로 둘둘 감아 주었다. 곁에서 책을 보던 아내보고 손톱에 물을 들여 보라고 하였지만 싫단다. 나이가 먹더니 정서도 메마른 걸까? 할 수 없이 두 아이들에게만 봉숭아 물을 들여 주었다. 나는 봉숭아를 가져오면서 아이들이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는 것을 싫다고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었다.


욕심 많은 둘째는 두발을 내밀면서 ‘아빠 여기도 해줘’한다. 속으로 흐뭇해 하며 오랜만에 딸의 발을 만져 보았다.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가보면 눈이 혼란 스럽다. 머리카락에 빨강, 노랑, 파랑, 보라, 회색등 언젠가 사진에 서 본마치 전 세계 온갖 인종들이 사는 미국 뉴욕의 어느 거리를 본 듯 하다.



물론 개성시대에 자신들이 좋아서 물 들인 것에 대하여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장과 미용에 문외한(門外漢)인 내가 보아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 물들이기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타인의 시선까지 오염을 시키는 것은 아무리 변명을 해도 이해가 안간다.


우리 전통의 은은한 기품이 서려있는 멋과 맛이 거리에서 느껴볼 수 가 없는 것이 이내 아쉽다. 청소년들이 모이는 장소를 다녀오면 눈이 더 침침해지고 두통이 일어나기도 한다. 자신 나름대로의 패션을 창출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TV나 영화속의 몇몇 잘 나간다고 하는 사람들을 흉내내는 앵무새 수준이 많다.


대중 매체가 전 국민의 패션을 획일화 하거나 몰개성의 개성을 방조하고 있다. ‘개성(個性)’이 아닌 ‘개성(改性)‘을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리라. 그러한 세태속에 나는 오랜만에 마음의 여유로움을 만끽 할 수 있어 너무 기뻤다.


유명 탈렌트 k가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선보이면 다음날부터 전국 패션거리는 k로 북적인다.

다음날 아침 열손가락에 봉숭아 물이 곱게든 두 딸들의 손톱을 보면서 또 걱정을 했다. ‘혹시 저애들이 학교에 가면 선생님한테 야단 맞는거 아닐까?‘


그러나 천박스러운 메니큐어를 덕지덕지 바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생님도 이해를 하시겠지하고 혼자서 위안을 해본다. 무조건 옛 것이 좋다고 하는 것도 물론 잘못이 있다. 옛 것과 현재의 것을 적절히 혼합해서 더 좋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다면 그것이 더욱 바람직 한 모습이 아닐까.


최근 TV에서 남자들이 치마를 입고 거리를 누비는 상품선전을 본 적이 있다. 유니섹스(Unisex) 시대에 걸 맞는 패션이 라고 나는 혼자 속으로 생각해 보았지만 어딘가 좀 거북 스러운 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직은 우리의 정서와 좀 동떨어진 모습 같기도 하다. 무조건 서양의 패션이라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따라하는 앵무새 같은 부류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들에게 조선시대 양반들이 즐겨 입던 도포(道袍)와 갓을 쓰고 곰방대를 입에 물고 뉴욕이나 런던 파리 로마의 번화가를 누벼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의 것을 천시(賤視)하고 남의 것을 숭배하는 잘못된 생각이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 고유의 멋과 맛을 살려내기 어렵다.


두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출근해서 아이들이 쉴 시간을 이용해 전화를 걸어 보았다.

“얘, 너 열 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들여서 선생님 한테 혼나지 않았니?”

“아빠, 우리 선생님도 열 손가락에 봉숭아 물 들였는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