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공간/Essay 모음 1

10월 가고 싶은 곳 소래

여강 최재효 2006. 5. 20. 22:10

 

 

 

10월에 가고싶은 곳, 소래포구




                                                                    - 글. 최재효





      오후에 포구의 비릿한 내음과 갈매기 소리의 환청이 들렸다. 점점 뱃사람들의 구릿빛 얼굴과 바다가 불러주는 휘파람소리가 그리웠다. 집에서 쉬고있는 동료를 불러내 소래포구로 한걸음으로 달렸다. 포구는 가뭄이 든 것처럼 바닥이 보였다.


인천시 논현동과 시흥시 월곳동 사이 에 걸쳐 위치해 있는 소래포구, 주말과 휴일에는 수도권에서 밀려드는 행락인파에 몸살을 앓는다. 그래도 수도권에서 갖 잡아 올린 꽃게와 전어, 광어, 우럭, 새우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바다고기들이 볼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300여 횟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물량장에는 수도권에서 몰려든 미식가들의 시선을 잡기위해 소래포구 아줌마들의 뜨거운 손님 유치전이 펼쳐진다. 조용한 산촌에서 살던 사람들은 아마 가까이 오지 못할 듯 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뒷사람에 떠밀려 저절로 움직인다.


광어 한 마리 회를 쳐서 소주 한병을 들고 근처 포구에 앉아 가을바다와 마주했다. 바다갈매기와 바다새들이 머리위로 날며 행락객들의 눈치를 본다. 재수 좋은 녀석은 던져주는 생선 한입을 덥석 물고 춤을 춘다. 횟집에 들어가 맛보는 회보다 즉석에서 떠서 포구방파제에 앉아 가을바다와 갈매기를 친구 삼아 맛보는 것도 일품이다.


포구를 배경으로 가족이나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싱싱한 회와 가을 바다를 맛보는 모습이 한 정겹다. 행동이 빠른 동료는 쉴새없이 회를 입으로 감추고 눈만 껌뻑 거린다. 괘씸한 마음에 자꾸 술을 따라주었다. 소주 한 잔 넘기고 초장에 회 한점 찍어넣으니 사르르 녹는다. “내가, 이맛에 여길 온다니까.” 농촌에서 자라 뒤늦게 회를 알게된 것이 야속했다.


바로 앞에 이곳의 상징인 소래철교가 수채화처럼 그려져 있다. 일제시대 경기도 내륙지방의 양질의 쌀을 인천항으로 공출하기 위해 놓여진 수인선 협궤철도의 산물인 소래철교가 오랜 풍상을 견디며 서있다.


지금은 이곳의 명물이 되어 월곳과 논현동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철교를 걷는 묘미 또한 재미있다. 철교를 걸으며 아래를 내려다 보면 멀리 서해로부터 달려 온 바닷바람이 휙휙 소리를 내며 빠져 나간다.


젓갈을 구입하기 위해 10월과 11월 휴일에는 하루에도 수 천명의 시민들이 소래철교를 이용하여 오고간다. 전에는 이곳을 건너다 바다로 추락사한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지금은 철교위에 보호철망을 깔고 양쪽에 가드레일을 설치하여 안전하게 건널 수 있다.


소주 한병이 바닥났다. 아직 갈매기와 대화가 끝나지 않아 한병을 더 주문했다. 외지에서 구경온 듯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불콰한 얼굴로 즉석에서 장기자랑을 열고 계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어울리지 않는 노랫말과 가수의 모습은 바닷바람에 더 쓸쓸해 보인다. 인고의 세월을 자식들 뒷바라지 하시다 어느새 잔설이 내린 노인들이 괜히 측은하게 보인다.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났다. “좀더 사셨더라면...”



거무튀튀한 속을 내보이던 포구의 바닥이 흙탕물로 채워지자 포구는 젊어지기 시작했다. 멀리 석양의 금빛햇살을 뒤로하고 통통배들이 일정간격을 유지한채 포구로 들어오고 있다. 통통배 위로 일하러 나갔다가 오는 주인을 맞느라 수 십마리 갈매기가 빙빙돌며 환호성을 질러대자 하늘을 날던 새들이 멀찌감치 피해 날아간다.


훅 하고 비릿한 내음이 코를 간질거렸다. 통통배가 포구에 닻을 내리자 펄떡거리는 생선을 담은 상자가 공판장으로 옮겨지고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새우같은 몸집이 작은 것들은 즉석에서 이곳을 찾은 손님들에게 팔려 나간다.


동료의 얼굴이 석양의 빛을 받아 더욱 벌겋게 달아오른다. 포구 인근에 수십만평의 광활한 수도권해양생태공원이 있다. 예전에 전국 최고의 소금산지였던 염전인데 지금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일부를 매입 생태공원을 꾸며 학생들의 현장학습체험장으로 활용을 하고 있다고 한다.


50 여 미터 되는 목교(木橋)를 건너 생태공원에 들어갔다. 이곳 역시 가족단위 행락객들로 붐볐다. 사진작가로 보이는 사람들이 페염전의 가을 정취를 담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코스모스 향기가 비릿한 바다내음이 잔뜩 밴 두 사내들을 파랗게 씻어주었다. 붉은기운이 서럽도록 물든 서녁하늘 아래로 하늘곡선을 기하학 무늬로 절단한 거만한 아파트단지가 신기루처럼 보이고 한떼의 기러기 남녁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