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슬링(1)
싱가폴슬링(1)
- 여강 최재효
눈보라가 지척을 알아볼 수 없도록 기승을 부리는 늦은 밤 동네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주택가 공원벤치에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중년의 한 남자를 발견하고 즉시 관할구청의 협조를 얻어 시립병원으로 후송했다. 이발과 면도를 1년동안 하지 못한 사람 같았다. 아니 히말라랴산속에 산다는 전설속의 설인(雪人) 같았다.
다행히 숨은 붙어있었다. 당직의사들이 응급조치를 하고 입원실로 옮겼다. 의식이
어느정도 회복되자 신상에 대하여 묻자 간신히 몇마디만 대답했다. 자신의 이름은 경태라고 했다. 집도 가족도 모두 자신을 버렸다고 했다. 집을 나온지 이년째 되었으며 닥치는 대로 막일을 해가며 하루하루를 살아왔는데 이제는 병이들어 움직이기 조차 힘들다고 다.
그는 울고있었다. 올해 나이 47세 아직 한창 나이지만 외모는 60세 이상의 노인처럼 보였다. 가끔 그는 손을 파르르 떨기도 하고 기침을 하기시작하면 10분 이상을 하며 각혈을 하곤했다. 의사말로는 폐결핵 말기이며 상당히 쇄약해 있고 위험한 상태라고 했다. 그의 낡은 가방에서 두툼한 수첩 두권이 나왔다.
수첩에는 지난 몇년간의 그의 역사가 깨알처럼 씌여있었다. 처음에는 일기처럼
삼사일에 한번정도 간단한 메모형식으로 여자들의 이름과 괴상한 별칭이 적혀있었다.
어떤 날자에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 적혀있기도 했고 또 어떤날에는
세상을 원망하는 내용이 빼곡히 쓰여있었다.
회사의 간부를 욕하는 내용부터 자신의 부인과 가족 심지어 일가친척들을 원망하는
이야기가 씌여있었다. 이상한 여자들의 이름 옆으로 여자들의 직업과 나이 연락처
그리고 키와 신체의 생김새가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경태는 꿈처럼 흘러간 젊은시절
부터 자신의 발자취를 활동사진 처럼 회상해 보았다. 응급처치를 받은지 삼일후
그는 세상을 버렸다.
여우가 드디어 미끼를 물었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자 경태는 급히 처리
해야 할 업무를 뒤로 한 채 컴퓨터 채팅 사이트에 매달려 도시의 사냥꾼으로 변신해
여우사냥에 골몰하고 있었다. 비만 내리면 그에게는 일종의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이 발작을 했다.
사회인이 되고부터 가정을 꾸미기 전까지는 주로 고향의 불알 친구들이나 주변
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친구 또는 대학친구들과 어울려 주지육림을
탐험하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불혹을 넘기면서부터 그는 추억을
먹고사는 환자로 중증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남달리 외모와 언변이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고, 정치, 경제, 역사, 문학,
종교, 시사상식등 해박한 그의 지식 앞에 웬만한 지식인은 말문을 닫아야 했다.
언젠가 등산길에 목이 말라 발길 닫는대로 가다보니 조그만 암자를 찾게 되었고,
그곳에서 중년의 스님을 만나 불경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님과
멱살잡이를 한 경우도 있었다.
보살(菩薩)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의 해석이 잘못 되었다는 비평
으로 발전하였고 결국 언쟁으로 이어져 멱살 잡이를 하게되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보살은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下化
衆生)의 소임을 지닌 부처님의 말씀을 실현하는 분으로 해석하고 있었는데,
그 스님은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약간 다른 방향으로 해석을 하였던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휴일날 집으로 포교(布敎)활동을 위해 방문한 목사님과 종교의
역할에 대하여 언쟁을 벌이다 이웃들의 신고로 파출소에 연행된 일도 있었다. 종종
각종 모임에서 세상을 비판하고 주관적으로 삐딱하게 분석하는 언행으로 상사
들이나 친구들에게도 욕을 먹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병세가
악화되어 여우사냥을 위한 미끼를 놓는 일에 열을 올렸다.
아침부터 먹이감들이 달려들어 입질을 몇 번 하다가 실패 하기를 여러번 끝에
아주 신비스러운 사냥감이 미끼를 물었다. 낚시줄을 최대한 풀어 주었다가
당기고 다시 풀어주었다가 당기는 인내심을 요하는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낚시바늘을 물었으니 쉽사리 도망가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최대한의 맛있는
미끼를 계속 던지고 있었다. 결국 그 먹이감은 항복을 하였다. 자신의 직업과
외모 가정의 자질구레한 일 까지 털어 놓았다. 흐뭇한 미소를 지어가며 경태는
조만간 정복자가 될 상상에 빠졌다.
사이버라는 거대한 공간에 먹이감은 얼마던지 널려있었다. 시간과 건강과
돈이 문제였지 사냥하는 쏨씨는 날이 갈수록 세련되고 먹이감의 질도 점차 상향
조정 해가고 있었다. 전업주부에서 커리어우먼 전문직종사자 교수 또는 기업
운영자로 점차 먹이감을 업그레이드 시켜가고 있었다.
그가 비오는 날이면 여우사냥에 혈안이 된 동기는 혈기 왕성했던 청년시절
일련의 실연(失戀)에 기인한다.
군대를 제대를 사개월 정도 앞두고 동료들은 사회 진출하여 가꿔 갈 자신의
미래에 대한 설계에 부풀어 있었고, 경태 또한 대학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입대를 하였에 복학을 위해 녹슨 머리를 재정비 하느라 시간 날 때 마다 책과
씨름을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 하기 까지는 1학기의 공백기간이 있었다.
군대동기중 한 명이 군입대전에 서울 P호텔 바(Bar)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시간 날 때마다 바에서 일 할 때 일어났던 환상적인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다. 그는 제대후 별로 할 일 없이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다람쥐 같은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 때 군대시절 자신에게 꿈같은
이야기를 해주던 그 친구를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제복을 입고 일하는 그 친구가 너무 멋져보였다. 그 친구의 소개로 관광
서비스를 속성으로 가리키는 전문학원을 이수하였고 바로 취직이 되어 관광
호텔에 취직을 하게되었다. 복학까지는 돈을 벌어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
드리겠다고 결심을 했다.
저녁 7시 영등포신세계 백화점 1층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여우는 사라
졌다. 서울 S대학교에 시간강사로 뛰고 있다는 30중반의 먹이 감이 확실하게
걸려들었다. 저녁에 만나면 우선 근처 한식집으로 가서 식사를 한후 여우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다면 2차로 근처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으로 가서 제3의
행동을 위한 작업을 펼칠 계획이었다.
대개 결혼한 여자들은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공개된 장소보다 은밀하고 공간이
제한된 밀폐된 장소를 선호하는 습성이 있다. 물론 유부녀가 외간남자를 만나는
장면이 아는 사람들에게 목격되거나, 요즘처럼 도시의 곳곳에 복병처럼 도사
리고 있는 몰래카메리에 포착이 될 경우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
이다.
도시가 현대화 되고 반비례로 인간의 심성이 포악해지거나, 비인간화 되가는
과정에서 더욱 인간이 만든 비밀병기에 의해 인간 스스로 감시의 대상으로 전략
되어가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일이기는 하지만 이같은 상황은
시대가 첨단화 되 갈수록 점점더 심해질 것은 뻔한 일이 될 것이다.
여의도에서 영등포역 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며, 택시를 탄다면
5분내로 당도할 수 있는 거리다. 경태는 회사 스카이라운지에서 멀리 희뿌옇게
보이는 영등포역사를 바라보았다.
90년대 중반 일반대중에게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컴퓨터, 이제는 남녀노소
최소한 아이디(ID)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대화가 통하며, 또한 닉네임
역시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일반인들은 글줄이나 쓸 줄
아는 사람들 끼리모여 서로 호(號)를 지어주고, 부르는 것이 무척이나 부러워
했고, 그것이 마치 특권층이나 누릴 수 있는 혜택처럼 비쳐지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고귀한 이름대신 호를 불러주는 것이 예의
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시대인 현재는 호보다 닉(Nick)이라 불리는 애칭을
사용한다. 조만간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면 이름앞에 별칭을 붙여서 출생신고를
해야하는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를 일이다.
낮 동안 내린비로 백화점건물은 갓 목욕한 젊은여인처럼 싱싱해 보였다.
영등포역사의 L백화점과 함께 영등포의 패션을 주도하는 신세계백화점은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경태는 주차장옆에 있다는 ‘클릭’ 이라는 커피숍을 찾아
봤다. 빨간색으로 치장된 유럽풍의 아담한 커피숍이 눈에 들어왔다.
1층에 들어서자 혼자앉아 있는 여성은 보이지 않았다.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어 올라가보니 창가에 베이지색 투피스 차림의 한 여성이 앉아있다가 경태를
보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직감적으로 그 여인이 자신의 낚시에 걸려든 여인임을
직감하고 다가갔다. 채팅할 때 알려준 인상착의가 정확히 맞았다. 그녀의 닉은
‘솜사탕’이었다.
1시간 동안 경태는 마치 범죄혐의가 있는 사람을 취조하는 수사관처럼 솜사탕의
관한 여러가지 질문공세를 폈고, 솜사탕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태는 온라인에서
유혹한 여인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제일먼저 그녀의 남편이 무엇하는 사람인지
묻는다.
간혹 남편이 없는 사별하거나 이혼 또는 별거중인 여인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플레이보이들이 유부녀를 선호하는 이유는 다소
위험요소는 있지만 아무래도 혼자인 경우보다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여인들은 우선 마음이 안정되어 있으며, 설령 선을 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서로의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상당히 주의를 하기 때문이다.
혼자사는 여인들은 남자를 피곤케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혼자 이거나
딸린 가족이 없다보니 내연의 상대방 남자의 상황을 헤아리지 않고 자기 중심적
으로 남자를 지배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경태와 마주 앉아있는 여인 또한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여인
이며, 남편은 치과의사로 경제적으로 윤택한 경우이다. 10년 이상을 다람쥐 처럼
살다보니, 부부사이에 신비감도 사라지고 밤 생활도 그냥 의무방어전으로 흐르고
생활이 무미건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경태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파트너를 만나
성찬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속으로 환호했다.
칵테일-바 부지배인이 되고 3개월쯤 흘렀을 때였다. 사장이 운영하는 직영
코너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속칭 ‘빠순이’들 중에 30대중반의 A라는 미모를 자랑
하는 빠순이가 있었다. A는 싱가폴슬링을 아주 좋아하여 매일밤 서너잔을 마시곤
했는데 경태가 만들어 준것 이외에는 마시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경태를 은근히 눈여겨 봐 온 여자였다. 대개 빠순이들은
영업이 끝나는 새벽 5시쯤 끼리끼리 모여 밤새 주정뱅이 들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인근의 다른 바(Bar)나 포장마차로 몰려가 날이 훤하게 밝아 올때 까지
술을 마시곤 한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억수로 내린 늦봄의 새벽이었다. A는 초저녁에 경태에게
‘영업이 끝나면 같이 한 잔하자’는 쪽지를 보내고 강한 어필을 위해 어려가지를 요구했다.
영업시간에 경태가 하는 일은 직영코너에 칵테일을 주문하는 손님이 있을 경우
빠순이들을 도와 손님의 주문에 응해주는 일이 주업무였다. 손님중 반은 외국손님들
인데 용산에 거주하고 있는 GI와 동남아인들이고, 반은 내국인들이다. 새벽 5시
업무가 끝나자 A와 경태는 인근의 포장마차를 찾았다. 주인 아주머니와 눈인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A가 자주 들리는 곳 같았다.
A는 1년전 이혼한 여자였다. 전 남편과 사이에 다행히 아이들이 없어서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했다. 밤에 일하고 낮에 잠자는 일반인과 정반대의 생활이 자신에게
잘 어울린다고 하며 그런생활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군대에서 갓 제대한 아직
사회에 오염이 안된 순진한 경태는 아직 여자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여자의 분냄새를 맡아본 것은 군입대전날 친구들의 격려에 힘입어 영등포역전
근처의 거리의 여인에게 동정을 바친 것이 분냄새를 맡아본 전부였다.
A가 그런 경태에게 눈독을 들인 이유는 순진한 총각을 자신의 쾌락의 제물로
가꾸어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날이 훤히 밝아왔다.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영업을
마칠 시간이라며 은근히 어서 일어나라는 눈길을 보냈다. A는 대취했다. 아니
어쩌면 대취한 척 하면서 경태의 선택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자신을 버리고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사나이 답게 자신의 집까지 택시로
태워다 줄 것인지를 속으로 점치며 연극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경태는 그녀가 살고있는 반포 아파트까지 에스코트 하기로 했다. 택시
뒷좌석에 함께 타고 A의 집까지 가는 동안 A는 경태의 무릅을 베고 거의 누운
자세로 유지했다.
마치 자신의 안방에 있는 착각을 하고 있던 듯했다. 겨우 차에서 내려 희뿌연
새벽을 헤치며 A가 사는 아파트 현관앞 까지 바래다 주고 갈 생각을 했던 경태는
자신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을 했는지 깨닫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근처 한식당에서 소등심으로 저녁을 해결한 경태와 솜사탕을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 빈 소주병이 테이블에 진열되었다. 경태는 다음 갈곳을 정하지 못하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노래방, 비디오방, 나이트클럽, 호프집 머릿속에서 2차로 갈
장소만 뱅뱅 돌기만 할 뿐이었다.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은 처음 만나서 차마 말할 수 없었지만 강열한 욕구가
포만감으로 찬 배속으로부터 올라왔다. 솜사탕은 탈렌트 김창숙 같은 스타일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실제 김창숙보다 미모면에서 약간 떨어져 보였다.
세상물정 잘 아는 여인을 유혹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어느정도 가슴을 열
정도의 친분을 쌓기위해 치열한 두뇌 싸움에서 승리해야 함은 물론이며, 지속적
으로 쇼킹요법을 가미해야 한다.
스스로 한 사람에게 끌리는 야릇한 마력이 발휘 될 때 까지 살얼음을 걷는
일보다 어려운 상황이 지속된다. 어느순간 상대가 다른 상대의 포로가 되면서부터
이성이 마비되기 시작하고, 약간은 넋이 빠진 사람처럼 되기도 한다.
상대방은 포로가 된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아침에는 사탕 세 개를 저녁
에는 더 달콤한 사탕 네 개를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한다. 그 사탕은 사이버공간의
최대한의 활용이면 충분하다. 예쁜 시를 보내거나 노래를 보내준다면 상당히
좋아할 것이다.
집안에서 가사에 전념하는 여자의 경우 전선을 타고 오는 미지의 이성이
보내주는 메일 한통이 울고 웃는다. 10년을 넘게 살아도 남편에게 편지 한통
받아보지 못하는 여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심리를 잘 이용할 줄 아는 남자는
늘 주변에 꽃들이 만발하다.
경태의 제안으로 노래방을 2차 장소로 결정하고 시설좋은 곳을 물색 했다.
노래방도 약간 시설이 좋거나 룸싸롱형식의 노래방이면 여인들이 가장 선호한다.
투명 또는 반투명 유리로 된 노래방은 자주 외부를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먼저 경태가 나훈아의 ‘공’을 부르자 솜사탕은 살며시 곁으로 와서 경태의
허리를 감고 리듬에 맞춰 하반신을 좌우로 흔들었다. 이어 솜사탕이 김수희의
‘남행열차’를 불렀다. 함께 마신 소주가 서서히 오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솜사탕이 카운터로 가서 캔맥주를 가져왔다.
경태가 부르스풍의 노래를 부르면 솜사탕은 발랄한 노래로 분위기를 살렸다.
부르스풍의 노래가 나올 때 마다 솜사탕은 경태의 허리를 감고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무리 좋은 분위기의 노래방이라도 장시간 놀다보며 답답한 느낌이들게
마련이다.
솜사탕이 약간 피로한 기색을 보였다. 경태는 다시 어디로 갈까 골몰했다.
우선 밖으로 나가기로했다. 원색의 간판이 춤추는 도시의 밤공기는 질척하다 못해
수렁에 같아 보였다. 수 천의 불빛이 자신에게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이제
솜사탕은 자연스럽게 팔장을 꼈다.
그때 경태의 눈에 비디오감상실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주 재미있는 곳을 구경시켜주겠다고 솜사탕을 유혹했다. 솜사탕이 그런 곳에
가본적이 없기 때문에 주저하는 눈치였다. 매스컴에 가끔 오르내리는 퇴폐적인
비디오감상실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해낸 솜사탕은 계속 주저하며 커피숍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다큰 어른들이 그런곳 보다는 두 사람만이 편하게 대화 할수 있는 공간의
효과에 대하여 침을 튀기며 설득한 결과 어렵게 솜사탕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A는 말짱했다. 술이 다 깨었다며 이왕 자신의 집앞 까지
왔으니 커피라도 마시고 가라며 들어가자고 했다. 혈기왕성한 총각이 성적으로
무르익은 농염한 여인과 밀폐된 공간이 함께 있는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되는
일이아닐 수 없다.
집안에 들어서자 마자 A는 얇은 핑크색 나이트가운으로 갈아 입었는데
가슴의 윤곽이 경태의 눈을 자꾸 다른곳으로 돌리게 했다. 노브레이져 차림
이었다. 빨리 커피를 마시고 이 집에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A는 묶은 퍼머
머리까지 풀어헤치고 커피를 가져왔다. 향긋한 커피향이 코를 자극했고 A의
요염한 자태가 시선을 자극했다.
작은 아파트지만 여자 혼자 살기에는 넓어 보였다. 밤에 술집에 출근하는 여자
치고 상당히 집안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경태는 커피를 다 마시고 나가려고
일어서자, A는 좀 더 있다가라고 팔을 잡았다. 피곤하기도 하고 잠이 온다며 빨리
나가야하겠다고 해도 A는 막무가내였다.
잠이 오면 자신의 침대에서 자고가라는 호의까지 보였다. 갑자기 경태의 호흡이
가빠졌다. 농익은 여자 혼자 잠을 자는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결국 전쟁을
의미한다. 만약 A의 제의를 받아들인다면 상당히 격렬한 전투가 될것이다.
경태는 고민을 했다.
물론 주인이 자신의 침대를 내어주며 자고가라는 호의를 무시한다는 것도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로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 수도 있지만, 전쟁의 경험이 풍부
하지 못한 경태로서는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방문이 반쯤 열려있었다.
은색의 이불이 깔려있는 침대가 보였다.
방광의 압력에 못이겨 화장실에 들어갔다. A 혼자만 사용하는 좌변기에 총각의
오줌발이 폭포처럼 떨어졌다. 폭포소리가 문밖으로 나갈까 조심해서 좌변기안
옆으로 떨어지게했다. 이집에 이런 남자의 시원스런 배설의 소리가 연주되는 것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화장실에 벽에는 하얀색의 플라스틱 케이스가 걸려있는데 그 안에는 화장품과
오밀조밀한 색상의 여성들이 사용하는 물건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묘한 생각이
들어 만져보고 싶었지만 차마 만져보지 못했다. A는 총각이 만들어내는 폭포소리에
강한 욕정을 느꼈다.
어떻게 해서든지 경태를 자신의 성의 노예로 만들고 싶어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자 은근히 짜증이 났다. A는 웬만한 남자라면 이 집안에 들어오자 마자 자신을
안아보기 위해 별수단을 다써가며 유혹을 할 텐데 경태가 아직 덜익어서 아니면
성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경태는 화장실을 나오자 마자 집을 나섰다. A의 아쉬워 하는 눈길을 뒤로하고
나오면 자신이 여우소굴에서 빠져나온 토끼라고 생각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쾌적한 비디오감상실이었다. 등받이가 있는 푹신한
쇼파에 엉덩이가 깊게 빠졌다. 앞에는 다리를 올려놓을 수 있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푹신한 발걸이 의자가 있었다.
경태는 비디오방에 들어 올 때 솜사탕에게 액션물이나 보며 잠시 쉬자고 했다.
그러나 카운터에서 음흉한 눈빛의 총각에게 ‘가장 섹시한 것’을 틀어달라고 주문
했다. 처음부터 대형스크린에 벌거벗은 남여의 노골적인 성교장면이 나왔다. 밀폐 된
공간에서 처음 만난남.여가 적나라한 성행위 장면을 감상한다는 것 그 자체가
솜사탕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차마 나가겠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솜사탕은 눈을 감아버렸다. 오로지
남.여의 열락의 신음소리만 방안에 홍수를 이루었다. 화면의 처음부터 포르노영화
수준의 장면이 두 사람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솜사탕은 눈을 감았지만 중간중간
실눈을 뜨고 보았다.
남편과 자주 즐기는 후배위체위가 나오자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당당하게
보기로 했다. 비록 곁에 남편이 아닌 외간남자가 끈적한 눈길을 보내오고
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본능은 활화산 보다 강렬했다. 결국 두 사람은 인내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경태의 끈적한 타액이 A의 상-중-하의 은밀한 지역에 집중공격으로 무너진
부위에 칠해졌다. 폭풍우는 핵폭탄급이었다.
솜사탕은 오랜만에 폭우를 맞고 대뇌의 정상활동을 잠시 멈추고 본능에
의지해야 했다. 스크린에서는 여전히 집요한 숫컷의 공격이 이어졌다. 암컷은
수컷의 연주에 몸을 맡긴채 산 송장처럼 흐느적댔다. 먹이를 절대 놓친적이 없는
경태는 반라로 헐떡대는 솜사탕에게 메가톤급의 결정적인 핵탄두가 작열했다.
혹시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않나 걱정이 되자 스크린을 껐다. 컴컴한 골방에
창문을 통해 푸른 불빛이 밀려들어왔다. 또 하나의 쾌거를 이룬 경태의 뇌리에
솜사탕의 피부의 촉감이 기록되었다.
쥐가 처음으로 굴을 파고 보금자리를 마련할 때 까지는 힘든 노동을 해야하지만,
일단 개통된후 부터는 언제라도 출입이 가능하게 마련이다.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가 없지만 솜사탕은 거친전쟁후 밀려오는 달콤함에 긴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생전 처음 만난 남자에게 순식간에 정복을 당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다. 이제 앞으로 무슨일이 전개 될 것인지 불안하기만 했다.
며칠 동안 A는 아무말이 없었다. 평소에 잘 만들어 달라고 하던 싱가폴슬링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도 없었다. 상당히 자존심이 상한 듯 했다. 경태와 눈이 마주쳐도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몇칠 가지못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손님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지배인이 오늘은 일찍 영업을 마치겠다고 했다. 평소보다 2시간
정도 일찍 영업을 끝냈다.
지배인은 오랜만에 영업장 분위기 분위기 쇄신을 위해 자신이 한잔 쏘겠다고
하며, 직영코너 여자들만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나 A의 강력한 요구에 힘입어
경태도 함께하게 되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억수로 내렸다.
인도를 다니는 사람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가끔 술에 취한 여자들이
피부가 검은사람들에게 부축되어져 어디론가 걸어가는 장면이 몇 번 목격되었을
뿐이다. 지배인은 인근의 카페로 모두를 데리고 갔다.
그 카페의 젊은 지배인이 나와 깍듯하게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친분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확 트인 홀에는 원탁으로 된 테이블이 10개쯤
있었고 집잃은 천사들이 술에 취해 해롱거리며 외제 담배를 꼬나물고 자신들이
마치 공주인양 떠들어댔다. 자연히 욕이 나올만 해보였다.
A의 집요한 유혹이 다시 시작되었다. 경태곁에 엉덩이를 바싹붙여 앉아 의도적
으로 자신이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동료들에게 은근히 과시하고
있었다. 독한 양주가 몇 순배 돌자 A의 유혹은 도가 세어지기 시작했다. 지배인이
수고한다며 경태에게 술을 따라주자 술잔이 꼬리를 물고 전해졌다.
A는 자신의 순정을 몰라준다며 주위의 눈치를 보아가며 소곤댔다. 경태가 마음에
든다는 말을 여러번 하며 경태의 눈치를 살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손님을 대하다보면 자연히 술을 마시게 마련이다.
지배인이 영업시작전 항상 손님과 대작하지 말라고 교육을 시키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손님들이 내미는 술잔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경태와 눈이 맞주 칠 때마다
A는 눈웃음을 쳤다. 그러면서 자꾸 어깨를 마주치기 위해 바싹다가와 앉았다.
술자리가 파했다. 눈치빠른 지배인이 A를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고 가라며
택시비를 주었다. 비는 내리고 있지만 동녘에서부터 푸르게 새벽이 물러가고 있었다.
지배인의 명령이라 어쩔수 없이 A이가 살고있는 반포동으로 향했다.
택시기사는 음흉한 눈빛으로 뒷좌석에 앉은 두 남녀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방금전 까지 두 남녀가 치루었을 정사를 나름대로 상상하고 있다. 반포동 A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밤이 완전히 물러갔다.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번만큼은 경태가 술을 마신만큼 확실히 유혹해서
자신의 노예로 삼겠다고 마음먹었다. 택시에 내리자마자 A는 일부러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남자의 동정심을 유발하여 자신의 집까지 에스코트를 받으려는 치밀한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다.
A의 혼자사는 아파트는 전번보다 깨끗해 보였다. 달콤한 냄새가 집안 곳곳에 배어
있는 듯 했다. 집에 들어서자 A는 완전히 다름사람으로 돌변했다. 경태를 껴안고
키스세례를 퍼부었다. 몽롱한 의식상태로 변하자 경태는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A의 두팔이 경태의 목을 껴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목이 마르니 물 좀 달라고
하여도 막무가내였다. 그 사이 경태가 먼저번처럼 달아날까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또 다시 낚시질이 시작되었다. 30대중반의 초등학교 교사라고 했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자들의 사고방식이 어떤지 몹시 궁금했다. 남편과 주말 부부라고
했다. 남편은 충청도지역에서 파견근무를 한다고 했다. 그 이상의 내용은 알려
주지 않았다.
경태는 초등학교시절 산수시간에 셈을 잘 하지 못한다고 담임선생님에게 회초리를
맞았던 기억을 떠올랐다. 중학교때 여자 음악교사에게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고
몇 번을 창피를 당한 기억도 떠올랐다.
30년전 스승에게 당한 원한을 같은 직업을 가진 여선생에게 갚아보는 것도 꽤
묘미가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쉽사리 미끼를 물지 않았다. 제법 신중해 보였다.
이번에는 메일과 채팅을 동시에 사용하였다.
경태가 유명시인이 쓴 시를 카페에서 복사해 보내자 이내 반응이 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글이라고 하면서 실연을 내용으로 한 노래를 배경으로 한 편지를 보내왔다.
분명 가슴이 휑한 여자임에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경태는 교사의 경우 약간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강한 반응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건드려보기로 했다. 먼저 요즘 교사들은 촌지를 받느냐고 하자 가을바람이란 닉은
가진 교사는 불쾌함을 나타냈다.
요즘 교사들은 촌지라는 것을 잊은지 오래다. 촌지라는 것을 받지 않기 위하여
스승의 날은 휴교로 하여 동료들끼리 조촐한 파티를 벌이거나 체육대회를 개최
하여 하루를 보낸다고 하면서 예전의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주문을 해왔다.
촌지로 비롯된 교사들에대한 국민들의 시선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잘못 자존심을 건드리다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창밖에는 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 가을바람에게 이렇게 비오는 날은
퇴근후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고 묻자, 동료교사나 친구들과 어울려 저녁을
함께 하거나 영화를 본다고 했다.
오늘저녁은 만약에 영화배우 장동건 처럼 잘생긴 남자가 데이트 신청을 하면
받아줄 수 있느냐고 하자, 그런일은 아마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인생에 가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하자 가을바람은 웃어넘겼다.
오늘저녁 분명히 장동건보다 멋진 남자를 만나 함께 저녁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하자 가을바람은 황당한 소리를 한다면 일축했다. 쉽게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요즘 혼자 저녁을 들어야 하는 처지라서 약간은 비가오는 날이면 쓸쓸한 기분이
든다고 슬쩍 운을 떼자 가을바람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왔다.
아내가 회사일로 매일 바쁘다보니 밤늦게 들어오고 자신은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데 그것도 이제는 실증이 난다고 했다. 오늘저녁도 집에가면 혼자서 밥을
시켜먹던지 아니면 술 한 잔하며 허전함을 달래야 할 것 같다고 하며 동정심을
이끌어 내려는 말을했다.
그리고 서로 배우자가 없이 저녁을 먹어야 하는 처지끼리 만나 식사를 하자고
추파를 던지자 가을바람이 약간 주저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냥 간단한 메뉴로
적녁을 하고 간단히 술이나 한잔 하자고 유혹을 해보았지만 역시 반응이 없었다.
경태는 가을바람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판단하고 어떻게 하면 오늘저녁에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골몰했다. 김종환의 ?백년의 약속?을 배경음악으로 하고
정식데이트를 신청하오니 응해주시면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이메일을 띄웠다.
곧 반응이 왔다. 자신이 사이버공간 어떤 남자를 만난적이 없지만 간곡한 청을
저버릴 수 없어 저녁만 함께하겠다고 했다. 6시정각 노량진 전철역 2층 전철
티켓매표소앞에서 기다릴테니 그곳으로 나오라고 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라 못 만날 수도 있다. 얼굴을 알 수 없으니 만약을
위해서 휴대폰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자 자신은 휴대폰이 없다고 한다. 자신은
비가 계속 내린 경우 붉은색 우산을 쓰고 나갈것이라고 했다.
키가 165센티 정도이며 단발머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경태는 왼손에 붉은 장미
한송이를 가지고 있는 검정색 싱글정장을 한 남자를 찾아보라고 하고 채팅을 끝냈다.
밤새 마신 술이 아직도 뱃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지 A의 목구멍으로부터 다양한
술 냄새가 전해졌다. 촉촉한 여인의 입술을 대해본지 얼마만인지 기억이 아득했다.
집요한 키스세례에 경태는 점점 이상야릇한 분위기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냥 A가 원하는 대로 이집에서 함께 잠을 자고 출근을 할까? 아니면 뜨거운
입술을 뿌리치고 도망을 갈까 ? 번민에 휩쌓였다. A는 점점 뜨겁게 몸이 달아
오르고 있었고, 두 팔에 점점 힘을 주어 경태를 마치 먹이감을 칭칭감아 숨통을
조이는 비단뱀 같았다.
그때 경태의 뇌리에 어머니의 걱정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이순간에 정한수 떠놓으시고 기도를 드리고 있을 어머니의 가련한 얼굴이었다.
뻣뻣해 있던 아랫도리에 힘이 빠지고 자신을 칭칭감고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있는 A가 징그럽게 느껴졌다.
오줌이 마렵다고 핑계를 대고 경우 A의 품을 벗어날 수 있었다. 먼저번 처럼
여자가 혼자 사용하는 변기에 오줌방울이 튀지않도록 조심했다. 열린 문틈으로
거실을 내다보았다. A는 보이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방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혀가 아파왔다.
흡인력이 강한 A에게 혀의 뿌리까지 뽑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얼른 이집에서 도망가지 않으면 A의 제물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화장실을
나와 신을 들고 살짝 집을 빠져나왔다. A가 당황해 하는 얼굴을 상상해 보면서
경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왜 하필이면 자신에게 집요하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려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영업시작시간전에 지배인이 전 종업원들을 집합시키고 간단히 교육을 시켰다.
손님들에게 맥주보다는 칵테일 또는 양주를 권하고 안주도 비싼 것으로 유도하여
매상에 적극 힘써달라는 내용과 손님들과 언쟁을 피하고 영업시간중에 손님의
요청에 의해 밖에 나가는 개인적인 행동은 절대 하지 말라는 지시였다.
교육시간 내내 A는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 경태와 눈이 마주치면 인사을
써가며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초저녁부터 GI들 세명이 들이닥치더니 A의
코너에 앉았다. 영어가 서툰 A는 바디랭귀지를 사용해 가며 그들을 대했다. 경태는
그런 그녀가 은근히 씬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새벽에 그녀와 불편했던 일이 있었지만 영업장내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입장에서
모른척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A는 돈 않쓰기로 유명한 그들에게 수단 좋게 국내산
양주 한병을 주문받고 중저가의 안주를 주문했다.
A가 경태를 호출했다. 자신에게 싱가폴슬링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그레나딘시럽을 약간 많이 넣어 달라고 했다. 아침에 불미스러운 일에
대하여 미안해 하던참에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싱가폴슬링을
만들어 주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노량진역사 2층에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어보였다. 비 때문에 사람들이 선뜻 가지못하고 비가 약해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경태가 전철티켓매표소앞에 조심스럽게 다가갔지만 붉은색 우산을 쥐고 있는
165센티 키에 단발머리를 한 여성은 눈에 띄지 않았다. 혹시 바람을 맞은 것이 아닌가 아니면 비가 많이 내려 시간이 지연되는게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전철에서 내린 수 백명의 사람들이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신경은 곤두세우고 붉은색 우산을 가지고 있는 여자를 찾아 봤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