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도(終)
바르도
- 여강 최 재효
終
아버지는 아무것도 넘기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물 한 모금도 어머니가 물수건에
묻혀 짜드리는 상황이었다. 물고기가 모래사장에 잡혀 올라와 땡볕에서 서서히 말라
가는 거나 같았다. 사람의 몸에 에너지 공급원이 중단되는 것이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
아버지의 얼굴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황달증세로 잘 익은 감귤
처럼 변해갔다.
겨우 의식만 남아있는 상태로 하루하루 힘겨운 사투(死鬪)가 지속되었다.
아버지를 고향으로 모셨다. 의사가 정해준 각종 주사약과 바늘등 필요한 약품을
준비해 갔다. 아버지의 눈빛은 평상시의 눈빛이 아니었다. 동공에는 초점이 없었다.
주사바늘에로 통하는 링거선의 강약조절 장치속에 약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이틀후 그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문중의 사람들과 상의 한 결과 큰어머니의
유골함을 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즉시
둘째형과 둘째누이와 함께 서울의 그 분을 찾아뵈러 갔다. 그분을 찾아 갔으나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참으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몇칠전에는 곧 큰어머니
유골함을 내줄 것 같았는데 무엇 때문에 내줄 수 없다고 하는 걸까?' 나는 그분집
문앞에 쪼구려 앉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이
없다.
이대로 돌아가면 영영 아버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누이와 형님은
일단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돌아갈 수 없었다. 아버지의 눈물어린 마른
얼굴이 가슴을 조여왔다. 밤을 새우더라도 그 분을 만나 왜 납골함을 가지고 갈 수
없는지 그 이유와 해결방안을 논의 하고싶었다. 밤 10시쯤 그분의 아들과 마주
쳤다. 예전과 달리 그분은 나를 모르는척 했다. 내가 말을 걸어도 대구가 없었다.
"잠깐이면 됩니다. 어르신을 만나게 해주세요."
그러나 그 아들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아무리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현
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이있어도 큰어머니 납골함을 모셔가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새벽이 넘어서자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그분이 살고 있는 집 현관이 마치 대궐의 문보다더 높아 보였다.
나와 형님은 다시 현관문을 두드리며 만나줄 것을 종용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파출소에서 경찰관이 나왔다. 이상한 사람들이 낮에부터 찾아와 소란을 피운다는 신고를 받았다고했다.
파출소로 연행된 우리 일행의 심정은 참담했다. 경찰관에게 자초지종을 상세히 설명
하자 그분을 오시라고 했다. 새벽 3시가 될 무렵 그분이 아들과 함께 파출소에 나타
났다. 우리일행이 인사를 하여도 모르는체 하였다. 파출소 경찰관이 그 노인분과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더니 우리에게 그분과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그 노인이 문중의 연로한 분들과 논의한 결과 우리가 오십년 가까이 소식이 없었
고 큰어머니가 돌아가실 당시의 그분들 크게 우리 가문을 원망했었다는 것이다. 그
런데 이제와서 유골함을 달라는 것은 너무 뻔뻔스러운 처사라며 절대 내줄 수 없다
는 것이다.
"삼촌, 아버지의 목숨이 지금 경각에 달려있어요. 아버지는 지난 오십년 가까이
어머니 제사를 모셨습니다. 여기 있는 제 남동생들과 현재의 어머니께서도 정성을
다해 제사를 모셔왔습니다.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신후 외할머니를 찾아뵈려고
갔었으나 안계셨고 외삼촌들도 모두 돌아가신 뒤여서 어머니 산소를 찾을 수 없었습
니다. 이제 저희가문을 용서하시고 이제라도 두분이 저승에서라도 함께 계실 수 있
도록 해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
누이는 그분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그 분은 한참동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있는 듯 했다. 누이가 큰어머니 제사를 정성을
다해 모셨왔다는 말과 두분을 함께 있게 해달라고 한 이야기에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 노인은 크게 한숨을 쉬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그동안 누이 제사를 모셨고 아버지를 위하는 뜻이 가상하고 또 조카가
이렇게 울면서 사정을 하니 내일 내가 다시 문중 사람들과 논의를 해보고 연락을 주겠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게."
"아닙니다. 날이 밝아 오고 있으니 저희는 근처식당에서 해장국을 들고 아침 7시쯤 어르신을 뫼시러 댁을 방문 하겠으니 돌아가시면 문중 분들과 논의를 해주세요. 저희는 큰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에게 가야 합니다."
누이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형님과 누이를 데리고 슈퍼에 들려 과일과 술 떡등 간단한 제수용품을 구입했다. 그 노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이 잘되었다고 했다. 노인을 모시고 B읍으로 달렸다. 한양조씨 선영에 양지바른 곳에 원형의 봉분형태로 된 납골묘 안에 큰어머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었다. 누이는 큰어머니의 유골함을 끌어 안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어머님, 불효막심한 년을 용서하세요. 그동안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우셨어요.”
누이는 통곡을 했다.
“얘야, 이제 그만 울거라. 누님도 너를 만나 기쁠거다. 이제는 외롭고 쓸쓸하지 않
게 되었으니 다행이구나.”
노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누이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우리는 간단히 준비해간 제수음식을 차려놓고 인사를 드렸다. 큰어머니의 납골함
을 고향으로 모셔왔다. 물론 형제들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눈만
뜬 상태에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읍내에서 의사를 불러 아버지의 상태를 살피
도록 하였다.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와 형제들의 가슴은 철렁 내려 앉았다. 어머니는 사랑방으로 가셔서 소리없이 우
셨다. 갑자기 집안은 무거운 침묵속으로 가라앉고 숨소리 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버지 곁에는 형제들이 번갈아 가며 아버지의 상태를 살폈다. 큰형님은 장의사를
통해 지관(地官)을 대동하고 증조할아버지가 영면(永眠)하고 있는 선영으로가 아버
지의 유택(幽宅) 장소를 물색하였고, 나와 작은 형님은 부고장 초안과 일가친척 및
아버지, 어머지 그리고 형제들의 지인(知人)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챙겼다.
아버지의 임종이 임박하자 누이들과 매형 여동생과 매제 그리고 사촌 형님들이 달려왔다. 아버지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큰형님이 깃털을 수시로 아버지의 콧끝에 대고 조심스럽게 살폈다. 저녁 때 내가 사랑방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어머님이 달려 오셨다. 빨리 아버지에게 가보라는 하였다. 아버지는 힘들게 눈을 뜨셨지만 초점이 없었다. 아버지가 좀 전에 어머니에게 뭐라고 말씀을 하시려는 듯 입술을 움직이셨다고 한다. 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버지 귓가에 대고 소리쳤다.
“아버지, 막내에요. 무슨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해보세요.”
그러자 아버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다시한번 큰소리로 같은 말을 하였지만 입술만 약간 움직일 뿐이었다. 내가 아버지를 병원에서 간병 하는 날 나에게 큰어머니의 행방을 알고 싶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나는 아버지의 귀에 가까이 가서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큰어머니를 찾아서 모셔왔어요. 아버지하고 함께있게 해드리려고요.”
나는 같은 말을 큰소리로 반복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내가 아버지의 손을 쥐자 아
버지는 손에 약하게 힘을 주며 반응을 보였다. 초점이 없이 맑갛게 떠있는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냈다. 의식은 없었지만 아버지는 분명히 내가 한 말을 모두 알아들은 것이 확실했다.
어쩌면 지금 큰어머니의 혼령이 이 집안에 머물면서 아버지 곁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 마지막으로 이승의 미련을 남김없이 청산
하고 싶어 하셨다. 오랜세월 동안 가슴속 깊이 간직해 오던 큰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연민 그리고 큰 어머니에게 잘 해주지 못한 미안한 감정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이별을 앞두고 어떻게든 마무리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어머니와 누이들은 아버지 곁에 앉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둘째 누이가 울면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아버지, 오랜 여정을 걸어온 한 선한양이 아버지의 곁으로 가고자 합니다.
이제 그의 고단한 생을 거두어 주시고 편히 쉴 수 있도록 받아주시옵소서. 음침한 악의 소굴이 아닌 늘 햇빛이 비치고 복음이 시냇물처럼 흐르는 곳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아버지 곁으로 간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 아멘”
누이의 기도가 끝나자 흐느껴 울던 셋째누이와 어머니의 기도가 가늘게 이어졌다. 어머니의 애끓는 기도가 끝났지만 아버지 눈은 촉촉했다. 나는 방에서 나와 사랑방으로 가서 혼자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부처님이시여, 이제 삼세중 이세(二世)를 살다가 가시는 아버지를 삼세에서는 당신의 불력으로 극락왕생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아버지의 불심이 깊지 않았다면 똑같은 인간세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이제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승의 모든 일들을 잊고 미련없이 가시도록 도와 주소서.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나는 같은 말로 기도를 반복했다.
비몽사몽간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의 일들이 영상처럼 보였다. 아내는 두눈을 부릅뜬채 전방을 응시하고 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듯 했다. 반대 차선에서 서울로 향하는 차량들의 안개등이 들어와 있다. 은근히 걱정이 되기사작했다. 어머니와 형수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때 내 휴대폰벨이 울렸다.
“얘야, 어디쯤 오고 있니?”
어머님의 전화 였다. 휴대폰 디지털시계는 오후 4시20분을 가리키고 있다. 5시 안으로 고향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에게 좀 더 속력을 내보라고 시켰다. 아버님은 무의식 상태에서 하루를 더 계셨다. 어머니와 형제들은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야했다. 마치 모든 장례식 준비가 완벽히 끝난 상태에서 아버님의 임종만을 기다리는 분위기 였다. 나는 속으로 모두가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의 의식이 있을 때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 앞에서 기도를 드리기로 마음
먹었다. 기도를 할 때 주변에 아무도 방에 들어오지 않도록 어머니에게 당부를 했다.
아버지가 겉으로 보기에 의식이 없게 된 날로부터 이틀째 되는 늦은 밤이었다. 나는 미리 준비한 기도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아, 저에게 육체를 주신 아버지시여, 이제부터 이 아들이 드리는 말씀을 잘 들어
보세요. 아버지께서는 생전의 업장으로 인하여 지금쯤 육체이탈의 상태에서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시며 저를 바라보고 계실 것입니다. 이전까지 이 자식은
수시로, 당신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마음을 다해 성자들에게 경배를 드리고
부탁을 했지만 혹시 아직도 당신께서 인도 받지 못하셨거나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제 곧 당신께서 이승의 모든 인연을 정리하시고 다른 세계로 들어 가실
것입니다.
혹시 천계(天界)에 태어 나시게 된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당신의 새로운 후생을 위해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해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당신께서
이승에 두고 온 것에 대하여 집착을 끊지 못하시고 윤회의 자궁(子宮)앞에 계시다면
평소에 하시던 대로 자비의 신에게 기도하세요. 당신께서는 지금 어쩌면 이미 사후세계에 계실 것입니다. 모든 나약함을 버리십시오. 당신의 아들 딸들 또는 두고 온 친척들에 대한 애착을 끊으세요. 그들은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습니다. 이승의 인연들은 당신의 후생에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될 뿐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득한 옛날부터 무수히 많은 세월 동안 윤회의 늪속을 방황해 왔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육체를 주신 분이십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효도가 있다면 그것은 당신을 후생에서 좋은 곳과 인연을 맺도록 해드리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천상에 나시거나 좋은 다른 곳에 환생 하시거든 큰어머니의 눈물을 닦아 주십시오. 그분은 당신을 만나 행복한 부부의 정을 모르고 한을 품고 이승을 떴습니다. 당신께서 그분을 만나 이승에서 다 나누지 못한 부부의 정을 누리세요.“
나는 자식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정성을 다해 기도했다. 아버지는 누워있는
상태에서 얼굴이 온화해 보였다. 아버지는 새벽녘에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원히 이승과 작별을 하였다. 장례를 치르면서 큰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있도록 해드렸다. 어머니와 누이들은 아버지가 하나님 곁으로 가셨을 것이라며 환하게 웃으셨고 나는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 한 동안 죽음에 대하여 깊은 사색과 함께 정신적 공황에 빠져있었다.
“여보, 다왔어요. 어서 짐 내려요. 어머님과 형님들이 뭐라고 하시겠어.”
아내의 목소리에 눈을 뜨니 아직도 아버지의 명패가 걸려있는 기와지붕의 사랑채가 눈에 들어왔고, 잔설이 머리위에 잔뜩 내린 홀어머니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시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두 어머니에게 속죄하는 내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 끝 -
이 글을 1953년 유명을 달리하신 큰어머니(조유덕 : 趙有德)와 1995년 돌아가신
아버지(崔明燮)에게 바칩니다. 두분 왕생극락 하시옵소서.
_()_ 나무관세음보살
_()_ 나무아미타불
※ 바르도(Bardo)란 티벳 불교 용어로 사람이 죽어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이승의 미련들은
정리하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