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05. 3. 31. 16:05





- 최재효




"얘야, 나중에 우리애들 좀 잘 부탁한다."
엄동설한에 형은 그 한마디 나에게 남기고 한 많은 세상을 버렸다.
올망졸망한 어린 네 남매를 두고 영원한 이별을 고해야 하는 형은 눈을 감지 못했다.
내가 세 번 네 번 눈을 감겨드린 후에야 겨우 영면에 드셨다. 삼일 전 형님의 사십구재일 이었다.


사십구재는 불교의 영가천도를 위한 의식행사다. 요즘은 카톨릭에서도 사십구재미사를 올린다. 이는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이기도 하고 이제 우리나라 고유의 민족의식으로 자리잡아 생명존중과 조상공경의 의식으로 발전되 가고있다.


사람이 명계(冥界)에 들면 이승을 떠난 후, 칠일간격으로 지하세계의 시왕(十王)들에게 생전의 일을 문초를 받고 업의 경중에 따라 상벌을 받는다고 한다. 사후 49일 되는 날 염라대왕 앞에 평가를 받는데, 이때 지옥으로 갈지 아니면 새로운 생명을 받을지가 결정된다고 하는데 망자가 생전에 업에 따라 다양한 새 생명을 받게된다고 한다.


선인선과악인악과(善因善果惡因惡果)라는 철저한 법칙이 적용된다고 한다.
생전에 선업(善業)을 많이 쌓았다면 왕후장상이나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날 것이고,
악업(惡業)을 쌓았다면 아귀나 축생으로 태어나리라. 돌아가신 분이 생전의 업이 어떻든 간에 이 날은 새로운 생명을 점지 받는 날이기에 후손들은 저승에 있는 분이 좋은 생을 받도록 지성을 다한다. 불자들은 자신의 사후(死後),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해 살아생전 절에 다니며 지극정성으로 예수재(豫修齋)를 올린다. 모두가 끈 때문이다.


나라는 한 사람은 수천, 수백년전부터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있다.
족보를 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 해주최씨좌랑공파 제28대손, 고려중기에 살던 해주최씨 시조(始祖)부터 현재의 나에 이르고 있으며, 이 끈은 앞으로도 계속 직계나 방계로 흐를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나는 이미 전생에 다른 사람이나 짐승으로 살았던 적이 있고, 내가 전생의 선업이나 그 후손들의 지극정성으로 인하여 인간으로 환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전생에는 김해 김씨나, 밀양 박씨, 에드워드, 엘리자벳 또는 축생으로 있다가 인간으로 태어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이 이쯤 되면 등골이 오싹해지고 지나 온 내 뒤안길을 곰곰히 되뇌어 본다. 우리는 종교를 가지고있던, 그렇지않던간에 나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늘 선업(善業)만을 쌓도록 가만히 두지 않는다.


세상은 자꾸만 나를 악연이나 악업으로 몰고가려한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는 늘 양심과 싸우게 되고 급기야 마음의 병을 얻기도 한다. 누구나 다 아는 구한말 을사오적들의 후손은 그들 조상들의 업으로 인하여 이 땅에서 대대로 역적의 씨앗으로 오명을 뒤집어쓰고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개중에는 뻔뻔스러운 자들도 있지만. 역시 끈의 질긴 생명력 때문이다. 한 순간 안락을 위해 악업을 쌓다보면 나는 물론이고, 내 후손들 또한 그 악의 끈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일생 수백 수천의 끈을 맺고, 자르며 희노애락을 함께 한다. 지연, 혈연, 학연 모두가 이 세상을 살면서 자의타의로 이어진 끈들이다. 누구도 그 끈의 늪에서 헤어 날 수 없다. 죽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끈을 잘 잊고 맺어야 하지 않을까. 악연을 맺어 고생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끈을 함부로 맺기 때문이다. 이혼이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싶다. 남녀가 만나 아이를 낳고 살다가 헤어지면, 그들의 분신인 아이들 평생 악연의 멍에를 쓰고 살아가야 한다. 이혼하는 부모는 그 아이들의 그런 멍에를 외면한다.


지금쯤 형님은 어떠한 새 생명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생전의 돈과 허욕으로 부터 자유롭지 멋한 삶을 살다가 짧은 생을 마친 경험으로 말미암아 만약 인간으로 환생한다면 돈과 별로 관련이 없는 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엄습한다. 생전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지은 모든 업이 그대로 나의 업적이 되어 저승에 가서 심판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상응하는 상벌을 받는다는 생각에 이르면 함부로 살아 온 지난날의 업적을 상쇄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역시 끈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려본다.끈으로 이룬 일을 끈으로 풀어야 하지않을까.


요즘들어 40평생 이어 온 모든 끈을 자를 것은 자르고, 더 단단하게 얽혀놓을 것은 기름을 부어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서서히 가슴을 짓누른다. 흔히 우리사회에서 통용되는 금언(金言)중에 '줄을 잘 서야 한다'라는 가슴아픈 말이 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 말을 실감나게 받아드리리라.


그러나 일회성의 얄팍한 상술 같은 그런 말은 어딘가 천박스러워 보인다. 천년바위처럼 누가 뭐라고 하던 지간에 마음변치않고 묵묵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끈과 인연을 맺어야 행복과 번영과 만사형통으로 이어지리라. 아침에 만나 저녁에 헤어지는 지금의 작태는 결코 좋은 인연의 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번뇌만 가중시킬 뿐이고 악업만 쌓을 뿐이다.


저녁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잘못 된 끈으로 인한 여 패가망신하거나 일신을 망치는 보도를 접할 대 마다 마음아 아프다. 누군들 처음부터 그런 결과가 있으리라고 끈을 맺었겠는가마는 기자들의 후레쉬를 받으며 고개를 푹숙인 당당했던 정치인들, 선량한 우리 이웃들의 체념한 얼굴에서 이리 저리 얽히고 설킨 끈의 흔적들을 본다. 한정된 포용을 넘어 맺은 끈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자승자박 당한 모습이다. 함부로 맺은 끈이 결국 자신을 옥죄는 끈이 되었다.


"청실홍실 엮어서..."
큰형수가 최씨 가문에 시집온 날 부른 노래가사다. 그러나 그 청실홍실은 끊어지고 말았다. 겨우 26년만에 참담하게 끊어졌다. 나는 그 끈이 끊어진 여유를 누구 때문이 아닌 바로 큰형님과 형수, 그분들 자신의 업으로 말미암아 그리된 것으로 해석해 본다. 그러나 나는 형과 그 분실들과 끊을 수 없는 줄로 이어져 있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맺고 끊는 끈, 나는 주위에서 착한일을 한 사람들 보면 신(神)께 기도를 드린다. 그들 에게는 썩은 끈이 아닌 방금 베어낸 왕골이나 짚으로 꼬은 단단하고 싱싱한 끈을 선물하여 그들의 선연(善緣)이 생사의 경계를 넘어 이어졌으면 하고 ...



2005. 3. 12.



_()_ 다우님, 복된 주말 맞이하시고, 건강하세요.
날씨가 쌀쌀합니다. 감기조심 하세요



최재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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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茶사랑
글쓴이 : 징키스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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