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 쇄
- 글.최재효
“아빠, 어디야? 왜 안 들어와? 얼른와.”
중학교생인 둘째 딸이 당돌하게 전화를 한다. 갑자기 소주잔에 남이 있던 술이 많아 보이기 시작한다. 술맛도 약간 이상해졌다. 그때까지
동료와 코주부가 되도록 상사를 안줏감으로 박장대소하던 내가 불현듯 한 가정의 가장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며 자주 시계를 보게 된다.
해가 갈수록 자꾸 족쇄(足鎖)가 늘어만 간다. 우리들의 삶을 풍족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利器)가 오히려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이기(異器)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가끔 200년 전쯤 우리조상들의 삶을 상상해본다.
남도(南道)에 사는
아낙이 돈벌러 한양에 간 서방님을 잊지 못해 눈물 자욱이 점점이 찍힌, 곱게 쓴 편지를 한양 가는 인편(人便)으로 보낸다. 달포쯤 지나면 수시로
동구 밖을 내다보며 보고 싶은 낭군으로부터 올 답장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린다.
대략 한달쯤 걸려 받아보는 그리운 이의 애절한
사연은 아낙의 베개를 흔건히 적시고, 마음의 안정을 얻은 아낙은 한 동안 그 편지를 수백 수천 번 읽고 또 읽으며 그리움을 달랬으리라. 당시의
연락수단이 소 걸음 같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다 녹였고, 기다리다 지쳐 망부석이 되었다거나, 그 자리에 쓰러져 꽃으로 피었다는 등
소통수단의 느림으로 탄생 된 많은 전설들이 전해진다.
“영식이 엄마, 전화왔어유. 얼릉와서 받어유.”
내가 유년시절
동네의 대소사나 급히 알려야 할 사항은 이장(里長)이 스피커를 통해 동네방네 알렸다. 마을에는 전화는 이장댁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박서방네
군대간 큰아들의 소식이나 건넛마을 윤주사의 생일이 언제이며, 윗마을 홍서방네가 저녁에 제사가 있다는 소소한 일까지 전 동민(洞民)이 훤히 알고
있다.
마을에 갑자기 큰 일이 터지면 너 남즉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내 일 인양 달라붙어 도왔다. 동네일에 너와 나의
구분이 모호하기도 했다. 아버님은 생신 날 아침, 이장은 스피커를 이용해 ‘**아버님, 생신이니 아침 들러 오라’는 방송을 하곤 했다. 불과
30년 전 일이다. 지금도 눈을 감아보면 밥짓는 연기가 자욱하고 멍멍이들이 짓어대는 마을의 아담한 정경이 눈에 들어오기도하고 이미 바람과 함께
사라진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두 딸 나 그리고 아내, 4명의 휴대폰과 집 전화 사용료로 다달이 지불하는 통신요금이
이십만 원이 넘는다. 가정경제의 규모로 볼 때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런데 요금을 납부 할 때 마다 마음이 상하는 것은 족쇄를 찬값을
억울하게 내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휴대폰은 우리의 삶을 편리를 위하여 만들어 졌다. 그 문명의 이기가 도리어 사람을 구속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약간의 돈만 들여 장비를 마련하면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남편이나 아내가 지금 어느 동네 어느 골목에 있는지 알 수 가 있다.
우리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사업상 거래처 사람들이나, 대학동창들 또는 고향친구들을 만날 때 마다 아내나
남편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별로 흥미가 안 난다. 부부간에도 비밀이 있는 법이다.
아내가
퇴근한 남편의 휴대폰을 달라고 하여 통화 내역을 꼬치꼬치 물어보거나, 반대로 남편이 개인 볼일을 보고 어쩌다 늦게 들어온 아내의 휴대폰 통화
내역을 일일이 물어 본다면 어찌 될까. 물론 어떤 이해심 많은 잉꼬 부부들은 그렇게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 휴대폰을 배우자의 손에 건네지는
일은 썩 유쾌하지는 않다.
물론 건전하지 못한 통화내역이 들어있기에 아내나 남편이 알면 곤란한 경우가 있어서가 아니다.
남편의 하루 동안의 일거수일투족을 아내가 유리구슬 속을 들여다보듯 한다면 얼마나 많은 남편들이 좋아할까. 최근 유명 연예인 부부 몇 쌍이 거울을
깬 적이 있다. 파경의 주범은 상당수가 휴대폰이다. 아무생각없이 이성동료에게 보낸 메시지를 배우자가 보거나 의심을 품으면서 파혼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하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자기야, 사랑해. 지금 얼른 올래?”
몇 년 전 이상한 문자 메시지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아내는 누구냐며 꼬치꼬치 물어오고 아무리 해명을 해도 믿으려 들지 않았다. 아내는 그 여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는 등, 이상한 메시지로 인하여 몇달간 냉전을 치렀다. 요즘도 0*0으로 시작하는 특정 번호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무차별로 전송하는
요상한 내용의 문자 메시지 때문에 골머리가 아프다.
그것들은 문명의 이기가 아닌 흉기가 되어 버렸다. 나는 퇴근하면
휴대폰을 꺼놓는 버릇이 생겼다. 괜한 오해나 이상한 전화나 메시지로 집안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리고 저녁을 들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면 인근에 사는 친구나 회사동료들의 술자리 초대 전화에 시달릴 수 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휴일날
오랜만에 가족들과 외식이나 가까운 산에 등산을 하는 중에 지인의 전화를 받고 병원이나, 상갓집을 찾아가거나 혹은 회사에 비상이 걸려 즉시
달려가야 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날 모처럼 만에 가장의 역할을 하려다 도리어 가족들에게 원성(怨聲)의 대상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그럴 땐 휴대폰이 편리를 위한 이기가 아니라 애물단지로 보인다. 아니 예쁜 족쇄다. 또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진동으로 지정해
전화를 받지 못했을 경우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루 24시간 켜놔야 하는, 아니 없어서는 안 되는 스스로 만든 족쇄에 우리는 만족해한다.
내가 일하는 부서에 갓 결혼한 사원 두 명이 있다. 하루에 상당한 시간을 낭군과 신부에게 문안인사를 여쭙느라고 소비하고
있다. 이어폰까지 끼고 속삭이듯 하여, 옆 사원이 눈총을 줘도 막무가내다. 어차피 퇴근하여 집에 가면 볼 텐데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도 많은지
한심해 보이기 까지 한다.
‘간밤에 잠 안자고 무슨 사연을 그리 많이 만들었기에…….’
우리사회에 족쇄는
휴대전화뿐만이 아니다. 자동차 역시 족쇄의 반열에 든다. 퇴근 후 동료들과 술 한 잔 하려면 자동차가 문제다. 다음날 아침 택시나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권하는 술좌석도 결국 마다하게 되고, 점점 스스로 자물쇠를 채운다. 한번 두 번 그렇게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동료들로부터 저만치 떨어져있다. 마치 낙락장송처럼. 편리를 위한 도구가 우리에게 가족과 친구를 오히려 멀리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곧 또 무슨 이상한 이름을 달고 새로운 족쇄가 나타날지 걱정이 된다. 편리를 가장(假裝)한
신무기가 나타날 때마다 부부간, 자녀관, 친 구간, 이웃간 비밀은 많아지고 신뢰는 없어져간다.
“네, 이놈 ! 도깨비 같은
족쇄야, 어서 사라지지 못할까?”
2005. 3. 18.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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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님들, 즐거운 금요일 저녁 되시고
건강하소서
인천서 최재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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