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공간/단편 - 비류, 소래에 서다

비류, 소래에 서다(終)

여강 최재효 2020. 10. 12. 10:03

 

 

                           기원전 19년 가을, 소서노(召西弩)는 두 아들 비류, 온조 그리고 십제(十濟)와

                          어하라국 백성 2만여 명을 이끌고 황해를 건너 인천 남동구 소래 지역에 도착

                          한다. 소서노는 모두 부아악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자 하지만 비류는 소래에

                          나라를 건설하고 싶어 한다. 토착 세력인 기존의 마한(馬韓)은 두 형제의

                          나라 건국을 방해하지만, 결국 형제는 나라를 건설한다. 두 나라 건국 후부터

                          형제간 비극이 시작되는데…….

 

 

 

 

 

 

 

 

 

 

 

                                                   비류, 소래에 서다

 

 

                                                                                                                                  - 여강 최재효

 

                                                       終

 

‘비류 놈의 진영에는 남루한 백성들과 창칼을 든 군사 이삼백 명밖에 없습니다. 창칼을 든 놈들도 비리비리해 보이는 것이 풀죽도 못 먹은 모습이었습니다. 우체모탁국의 용감한 병사 이천 명만 보내면 일각 안으로 비류 놈과 그의 백성들을 단번에 진압할 수 있습니다.’

 

우체모탁국 군 지휘관들은 먼젓번에 비류왕의 진영에 두 번씩이나 다녀온 풍패(豐貝)가 신지(臣智)에게 보고한 내용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전에도 소래에는 거지 떼들이 득실거린다는 풍문이 있던 터라 그들은 비류왕을 전혀 두려워하거나 신경도 쓰지 않았다. 비류왕은 정규군 병사들을 일부러 허름한 옷을 입게 하여 우체모탁국 지도자들의 주의를 흐리게 했다.

 

해루의 인솔하에 육천 명의 미추국 병사들이 소래 남쪽 해안에 도착했다. 인마(人馬) 칠천이 모여있는데도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유구는 척후들이 가져온 정보를 토대로 해루에게 적정(敵情)을 보고하였다.

 

“적의 진영은 대략 오백여 개의 크고 작은 막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한 막사에 너댓 명 정도가 들어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용감한 미추국 군사들이여, 저기 우체모탁국 군의 진영이 있다. 내가 우는 화살을 쏘면 목지국 군대를 휩쓸 듯 단번에 저놈들도 쓸어버려라.”

 

해루의 명령이 떨어지자. 유구 대장이 기마대를 지휘하여 적진 오백 보 앞까지 접근하였고, 부여효, 부여풍, 을지원, 태천 등 각자 군사 일천 오백씩 지휘하여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우체모탁국 군영 가까이 접근하였다. 인시(寅時) 중반이 막 지나고 있었다. 우체모탁국 군 진영에서는 미추국의 군사들이 가까이 접근하여 공격 준비를 하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해루가 우는 화살을 허공을 향해 쏘아 올렸다.

 

“불화살을 쏴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각 군의 대장들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육천 발의 불화살이 우체모탁국 군 진영에 떨어졌다. 이어 군사 한 명당 아홉 발의 불화살을 날렸다. 육만 발 이상의 불화살이 우체모탁국 군의 막사 오백 동(棟)에 분산되어 꽂혔다. 막사 한 동에 120발의 불화살이 떨어진 셈이었다. 소래 남쪽 바닷가에 갑자기 거대한 불 기둥이 솟아올랐다.

 

“돌격!”

“막사에서 나오는 놈들을 모조리 도륙하라.”

 

잠을 자다가 막사에서 빠져나온 우체모탁국 병사들은 진영 밖에 대기 중인 미추국 군사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육천 오백 여 명의 맹수 같은 미추국 군사들에게 이천 명의 우체모탁국 군대는 심심풀이 감에 불과했다. 전투는 너무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전투 중에 우체모탁국 장수와 군관 그리고 병사들 오십 여 명이 잡혀 왔다. 그들 중에는 비류의 진영에 두 번이나 다녀간 풍패도 있었다. 해루가 역시 잡혀 온 자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였다.

 

“대인, 나요. 나 풍패요. 나를 잘 알지 않소? 살려주시오. 우린 내일 아침 비류 왕자님을 알현하고 인사를 드리려고 했소. 제발 살려주시오.”

풍패도 한수와 마찬가지로 우체모탁국 장수가 되어있었다. 그는 미추국의 기습을 받고 휘하 병사들이 전멸 당하자 목숨을 구걸하기 바빴다.

 

“이놈, 지난번에도 네놈이 한수와 군사를 이끌고 와 감히 비류 대왕을 겁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군사 이천 명을 끌고 와서 대왕께 인사를 하려 했다고? 네놈의 속을 내가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군사들은 저 풍패 놈을 포박하여 끌고 가고, 나머지 포로들은 참수하라.”

 

미추국 군사들이 본영으로 돌아왔을 때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단풍으로 붉게 물든 소래산이 전투에서 승리한 미추국 군사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비류왕은 친히 소래산 아래까지 내려와 장병들을 맞이했다. 그는 벌써 미추국 군대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비류왕 곁에는 그의 생모인 소서노와 아우 온조 그리고 십제도 있었다. 소서노와 온조는 비류의 급보(急報)를 받고 친히 군사 삼천을 이끌고 왔다. 전승을 축하하는 미추국 군사들과 백성들의 함성으로 소래산이 무너질 것 같았다.

 

“대왕, 승전을 축하하오.”

“형님, 미추국의 첫 전투를 승리로 이끄셨습니다. 경하드립니다.”

 

소서노와 온조가 비류왕의 노고를 위로하였다. 비류왕은 군대를 승리로 이끈 해루와 부여효, 부여풍, 태천, 을지원, 유구 등을 격려하며, 함께 전승을 자축하였다. 비류왕은 소래산에서 내려와 소래로 이동하였다. 소래에는 기존의 토착민 천 명이 살고 있었는데, 소서노와 비류 형제 그리고 이만 명의 어하라 이주민이 처음 소래로 들어오자 소래 사람들은 문을 잠갔다.

 

온조는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소래 백성들을 모두 도륙하자고 건의했으나, 비류와 십제는 온조의 건의를 만류하였다. 한 달쯤 지나자 차차 소래 토착민과 이주 세력이 물물을 교환하면서 교류가 활발해졌다. 이제는 소래 백성들과 어하라 이주 세력들 간에 어느 정도 신뢰가 형성되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형님, 이번 기회에 형님 군대와 저의 군대를 연합하여 우체모탁국을 완전히 정벌하고, 목지국으로 군사를 몰아 목지국의 진왕의 콧대를 꺾어버립시다.”

온조가 비류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이 어미의 생각도 온조와 같습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우체모탁국의 도읍지는 여기서 사십 리 거리에 있습니다. 지금쯤 우체모탁국 신지는 멀리 도망쳤거나 아니면 미추국으로 찾아와 강화하자고 할 것입니다. 강화는 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알아본 결과 우체모탁국의 군대는 모두 삼천 여 명밖에 안 됩니다.

이미 이천 명은 몰살되었으니, 이대로 밀고 내려가 항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목지국을 압박하여 장차 미추국과 온조가 세우려는 나라에 걸림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비류는 즉시 제장(諸將)들을 소집하여, 소서노와 온조의 의견을 반영한 작전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 회의에는 소서노와 온조를 따라갔던 십제도 모두 참석했다. 장시간의 작전 회의가 이어졌다. 십제와 미추국의 장수들은 대체로 소서노와 온조의 제안에 찬성하였다.

 

“어머니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어머니, 아우와 잠시 상의 좀 하겠습니다.”

 

온조가 비류왕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제는 소서노의 제안을 정리하고자 했다. 형제가 상의를 마치고 소서노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형제가 어머니 소서노의 뜻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이었다.

 

“소자는 어머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천추의 한을 남길 수 있습니다. 마한의 맹주를 자처하는 목지국은 군대 규모가 일만 정도입니다. 우리는 정규군 오천과 비정규군 모두 합쳐 이만의 대군(大軍)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제 공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소서노의 발언에 여기저기서 ‘옳습니다’, ‘좋습니다’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밤의 승기(勝氣)를 살려 마한에서 새롭게 탄생할 두 나라가 절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마한 연맹에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소서노의 말에 십제와 다른 신료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나는 소래를 미추국의 도읍지로 삼고, 군사를 일으켜 우체모탁국을 정벌하고, 남쪽으로 내려가 목지국을 압박하려 합니다. 하늘이 주신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듯싶습니다. 중신들과 제장(諸將)은 어머님과 우리 형제의 깊은 뜻을 따라 주리라 믿습니다. 아침을 먹고 반나절 정도 쉬었다가 출격합니다.”

 

비류왕의 선전포고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즉시 작전 본부가 꾸려져 비류왕이 연합국 총사령관이 되고, 온조가 부사령관이 되었으며, 미추국의 사령관은 해루, 온조 군의 사령관은 전섭(全攝)이 임명되었다. 기마대는 유구와 십제의 범창(笵昌)이 공동으로 지휘하였다. 온조는 부아악으로 전서구(傳書鳩)를 날려 부아악과 욱리하 주변 곳곳에 대기 중인 있는 자신의 휘하 정규 및 비정규군 오천 명을 우체모탁국의 도읍지로 출격하게 했다.

 

우체모탁국 신지가 대비를 하기 전에 공격은 전격적으로 진행돼야 했다. 비류왕은 소래에 최소 인원만 남겨두고 정규 및 비정규군 구천 명을 출격시켰다. 소리 쪽에서 온조의 군대 삼천을 합쳐 일만 이천의 대군이 우체모탁국으로 진격하고, 부아악에서도 오천 명의 군대가 출격하였다.

 

“신지 대인, 정체를 알 수 없는 군대가 성밖에 집결해 있습니다. 빨리 나가보십시오.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뭐라, 수상한 군대?”

 

하루 해가 중천을 넘어 서쪽으로 달려갈 무렵 비류와 온조의 군대가 우체모탁국 도성을 포위하였다. 우체모탁국의 도성(都城)은 약 오백 호(戶)가 거주하는 읍성(邑城)이었다. 아직 나라의 체제가 갖추어진 상태가 아닌 성읍국가(城邑國家) 형태로 신지와 그의 수하들이 우체모탁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신지는 아침에 소래로 파견한 군대가 전멸 당했다는 소식을 받고 급히 사신을 목지국으로 보낸 바 있었다. 그는 온종일 좌불안석이 되어 신하들과 대책 회의를 거듭 열었으나 뾰족한 방안이 없었다. 신지는 도성을 굳게 지키고 목지국의 지원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아, 비류와 온조가 온 모양이구나. 이 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 우체모탁국이 결국 저들에게 멸망하는구나. 내가 지난밤에 큰 실수를 했다. 풍패의 말만 듣다가 호랑이와 늑대를 불러들였다. 저들은 대륙에서 한나라와 고구려 등을 상대로 자주 전투를 하여 싸움에 이골이 난 족속들이다. 소서노라는 여인은 신궁(神弓)이며, 그의 두 아들도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들었다. 더구나 그들의 군대는 소수이나 용감하다고 소문이 났다. 풍패의 말만 듣다가 우체모탁국의 사직을 닫게 되었구나.’

 

신지는 읍성 밖에 진용을 갖추고 있는 비류와 온조의 군대를 보고 가슴을 치며 탄식하였다. 곁에 있던 그의 신하들이 신지의 눈치를 보며 숨을 죽였다. 신지는 신하들에게 항복할 뜻을 비쳤다.

 

“여봐라, 모든 신하는 나를 따르라. 우리는 이미 수족을 모두 잃었다. 저들에게 항거하다가 모두 죽는다. 항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우체모탁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신지의 결단에 반대하는 신하는 없었다. 그의 신하들도 성 밖에 포진하고 있는 비류와 온조 연합군의 위용을 보고 이미 항복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신지는 비류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항복의 뜻을 전하고 수하들과 항복을 하기 위해 성 밖으로 이동하였다. 성문이 열리고 우체모탁국 통치자들이 성 밖으로 나와 비류 일행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신지 이하 그의 신하 삼십 여 명은 모두 맨발에 흰 옷을 입고 머리를 산발한 상태였다.

 

“우체모탁국 신지 기자철(箕子哲)이 대왕께 항복하며, 자비를 청하옵나이다. 부디, 어리석은 이 몸을 벌하여 주시고 백성들을 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소서노는 두 아들을 불렀다.

 

“대왕, 어찌하시려오?”

그녀가 큰아들 비류의 의견을 물었다. 비류는 잠시 대보와 좌보 그리고 우보 등과 상의하고 나서 어머니 소서노의 물음에 답하기로 했다. 비류왕은 우체모탁국의 신지를 포함하여 통치 세력을 모두 처단하고 싶었지만, 목지국과의 결전을 앞둔 입장에서 우체모탁국의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 우체모탁국의 신지 이하 제신들을 용서하고 항복을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우체모탁국의 땅이 크니 아우와 반분하여 접수하고자 하오니 승낙하여 주십시오.”

비류왕이 소서노에게 처분을 일임하였다.

 

“대왕, 잘 생각하셨습니다. 마땅히 그리하셔야지요.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나가면 오히려 우체모탁국 백성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럼, 우체모탁국의 동북쪽 지역을 온조의 땅으로 하고, 서남쪽 지역은 대왕이 접수하여 다스리세요. 우체모탁국을 접수하셨으니 이 길로 바로 목지국으로 가세요. 지금쯤 목지국의 진왕도 자신의 군대가 전멸된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잠시의 틈도 주면 안 됩니다. 목지국의 도읍지인 *금마(金馬)까지는 너무 먼 거리이니 목지국의 최북단 국경을 침범하여 일정 지역을 확보하면 목지국 진왕이 협상하자고 할 것입니다. 온조도 이미 철갑으로 중무장한 기마대 천여 기를 확보했으니, 미추국의 철갑 기병대와 한 부대를 꾸려 곧장 목지국으로 보내세요. 속전속결로 뜻한 바를 이루셔야 합니다.”

소서노는 아들 비류에게 깍듯이 존대하며, 아들의 품격을 높였다.

 

“소자, 어머니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소서노의 처결은 명쾌했다. 그녀는 아직 대륙의 번한(番韓) 땅에 있는 어하라의 여제(女帝)이며,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처결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 그녀의 말이 곧 법이었다. 비류는 온조와 상의하여 철기 일천오백을 목지국으로 급파하기로 결론을 보았다. 이어 두 나라의 보병 일만 오천 오백의 대군이 뒤따르기로 했다. 이 원정(遠征)에는 소서노와 비류, 온조 그리고 십제와 양국 장수들이 모두 참가하였다. 연합군은 우체모탁국의 지도부 중에서 신지 기자철 및 중요 인물들을 전투에 참여시켰다.

 

* 금마 – 지금의 전북 익산

 

“전군은 지금부터 목지국으로 향한다.”

 

기마대가 먼저 남쪽으로 내달리고 보병 일만 오천오백을 삼군으로 편성하여 남쪽으로 빠른 속도로 행군하였다. 제1군은 해루, 제2군은 전섭, 제3군은 태천이 지휘를 맡았다. 연합군의 행보는 번개 같았다. 하루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내일 새벽이면 보병이 목지국 국경 지역에 도착할 것이고 정오 무렵이면 보병도 합류할 것이었다.

 

밤이슬을 맞으며 비류왕과 온조의 군대는 남행을 감행하였다. 대군이 진군하는 길에 방해하는 세력이 없었다. 달빛이 산하를 비추니 오곡이 들녘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진하는 군사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소서노와 비류왕 그리고 온조의 명령에 복종할 뿐이었다.

 

“뭐라, 그게 정말이더냐? 나의 군대가 비류 놈의 오합지졸에게 전멸당했다고?”

 

전령을 통해 청천벽력 같은 급보를 받은 목지국의 진왕은 눈앞이 캄캄했다. 소서노의 집단을 대륙에서 도망 나온 어중이떠중이로 판단한 진왕은 무릎을 쳤다. 진왕은 자신이 얼마나 잘못 판단했는지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는 조정 중신과 군부 인사를 소집하여 긴급 대책 회의를 개최하였다.

 

도성인 금마를 철통같이 수비하고 군대를 북쪽에 있는 *환성(歡城)으로 보기(步騎) 오천을 급파했다. 환성은 목지국의 제2의 도읍지와 같은 곳이었다. 환성이 함락되면 이곳에서 금마까지 기마대는 하루면 직행할 수 있는 거리였다. 진왕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비류와 온조의 남하를 막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진왕의 있는 금마에서 환성까지의 거리는 소래에서 환성까지 가는 거리의 두 배가 되었다.

 

 

시간은 비류와 온조의 편에 있었다. 곧 먼동이 터 올 것 같았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기마대는 뽀얀 흙먼지를 피우며 남으로 내달렸다. 그들이 달리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예상보다 빨리 환성에 도착하였다.

 

“저기 환성이 보인다.”

“맞다. 목지국의 제2 도읍지라고 하는 곳이다.”

 

연합군 기마대 선두를 달리던 철기(鐵騎)들이 소리쳤다. 희뿌연 안개 속에 환성이 보였다. 오리(五里) 앞에 성채가 보이고 망루가 드문드문 서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성 위나 망루에는 초병(哨兵)도 보이지 않았다. 유구와 범창은 일단 이천 오백의 철기를 그 자리에 세우고 전열(戰列)을 정비하였다. 이백 리가 넘는 밤길을 달려왔지만, 기마대는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유구와 범창은 철기의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말 서너 마리가 절뚝거리는 것 이외에는 특이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 환성 –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으로 비정됨

 

“저 앞에 목지국의 환성이 있다. 저들은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지금 저곳을 지키는 병사들은 대략 이천 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우리가 일천 오백 명이니, 오백은 동쪽으로 돌아가서 남문을 공격하고 성내로 진입하라. 남쪽은 석성(石城)이나 토성(土城)이 아니고 목책으로 되어있다. 나머지 병력은 나와 북문을 격파한다. 성에 접근하면 일 인당 열 발씩 불 화살을 쏴라. 성채에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말의 재갈을 풀지 마라.”

 

기마전에 능한 유구의 전술에 따라 범창이 철기 오백을 이끌고 환성의 동문 쪽으로 달려갔다. 유구는 천여 명의 철기를 지휘하여 북문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화전을 쏴라.”

“불화살을 쏴라.”

 

유구와 범창의 명령이 떨어지자 만 오천 발의 화전이 불을 뿜으며 환성 안으로 날아들었다. 전각과 막사에 불이 붙자 성안은 아비규환이었다. 범창이 이끄는 오백 명의 철기들이 목책을 뛰어넘어 성안으로 진입하였고 곧이어 북문이 열렸다. 잠을 자고 있던 목지국 군사들은 화살 한번 쏴보지 못하고 도륙 당하거나 도망치기 바빴다. 일부 목지국 군사들이 철기를 향해 화살을 날렸지만, 철갑(鐵甲)을 맞고 튕겨 나갔다.

 

목지국 군관들과 병사들은 비호처럼 달려드는 연합군의 기세에 놀라 도망가기 급급했다. 전투가 시작되고 한 *시진쯤 지나자 성내는 말 울음소리와 목지국 병사들의 비명만 가득했다. 일방적인 승리였다. 전투가 끝나자 그제야 도착한 연합군의 보병 일만 오천 명이 성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소서노와 비류, 온조도 철기와 합류하였다. 비류는 전황을 파악한 뒤에 소서노에게 고했다.

 

“어머니, 환성을 지키던 목지국 병사 이천 명 중 일천 칠백이 도륙되었고, 일백 명이 생포되었으며, 나머지 이백 명은 도주했습니다.”

 

“어하라의 백성들이 이제야 진가를 발휘하는구나. 잘 싸웠다. 전사한 목지국 병사들은 잘 묻어주고, 생포 된 자 중에 부상자는 치료해 주어라. 그리고 목지국 군관들은 모두 참수하여 목을 성벽에 내걸도록 해라. 아마도 지금쯤 진왕이 보낸 지원군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환성으로 통하는 길목이 세 군데라고 들었다. 그 세 곳에 아군 각 이천 명씩 매복시키고 나머지 군사와 기마대는 출격 대기시켜라.”

 

* 시진 - 한 시진(時辰)은 두 시간 정도임

 

소서노는 환성 인근 지역이 그려진 지도를 살피며 두 아들과 여러 장수에게 작전을 지시하였다. 환성으로 달려오던 목지국 지원군은 환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말머리를 돌려 금마로 향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서 진왕이 사자를 보내 강화협상(講和協商)을 하자고 제안해 왔다. 소서노는 즉시 작전 회의를 열고 강화 조건을 수렴하였다. 그녀의 양국 신하들이 내놓은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목지국은 미추국과 장차 온조가 건국할 나라에 대하여 간섭하지 않는다. 둘째 목지국은 미추국이 정벌한 우체모탁국과 관련하여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셋째 목지국은 미추국과 온조가 건국할 나라와 상호 불가침 규약을 제정한다. 단서 조항으로 위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받아들여 지지 않을 시에는 강화 협상은 없던 것으로 한다.

 

소서노는 세 가지 조건과 단서 조항을 적어 협상 대표인 해루에게 건넸다. 연합군 측에서 대표로 해루와 전섭이 선정되어 목지국 사자와 만났다. 양측 대표들은 환성 밖 십 리에 설치된 임시 막사에서 협상하기로 했다. 협상 장 주변은 연합군과 목지국 군사 수백 여 명이 대치하였다. 만약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 즉각 전투가 벌어질 상황이었다.

 

“나는 목지국 왕을 대신하여 나온 선우연(鮮宇衍)이라 하오.”

선우연은 부관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나는 미추국의 대표 해루입니다.”

“이 사람은 온조 왕자를 대신하여 온 전섭이라 하오.”

 

서로의 소개 인사가 끝나자마자 해루가 연합군 측의 조건을 기록한 문서를 건넸다. 선우연은 그 조건이 적힌 문서를 보자 이맛살을 찡그렸다. 그러나 그는 어떡한 일이 있어도 강화 협상에서 환성을 되찾아야 했다.

 

선우연은 환성에 파견되기 전에 진왕으로부터 일정 지분을 연합군 측에 넘기더라도 환성을 반드시 되찾으라는 밀명을 받았다. 밀고 당기는 강화 협상이 한나절 이어졌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성질 급한 전섭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이보시오. 우리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판 벌입시다. 이 강화 협상이 결렬되면 우리는 전군을 동원하여 금마로 곧장 진격할 것이오. 지금쯤 대륙에 있던 어하라의 천하무적 해군(海軍) 삼만이 소래에 당도하였을 것이오. 금일 중 그들에게 강화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우리 해군은 바닷길을 통해 남진하여 금마로 향할 것이오. 목지국이 우리의 협공을 막아 낼 수 있겠소이까?”

 

‘뭐라, 어하라의 수군이라고? 오만의 대군이 금마로 몰려온다면 목지국은 끝장이다. 이자의 말이 허풍이라고 하여도 환성에 주둔하고 있는 이만 명의 군사들이 금마로 진격한다면 큰일이다.’

 

전섭의 협박에 선우연은 얼굴이 하얗게 변하면서 몸을 떨었다. 그는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좋소이다. 그대들이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을 전적으로 수용하리다. 그러니, 어서 군사를 돌려 물러가시오.”

 

강화 협상 역시 연합군 측의 일방적 승리로 귀결되었다. 소서노와 두 아들 그리고 연합군은 환성에서 철수하였다. 온조는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부아악으로 돌아갔고, 비류왕은 어머니 소서노와 소래로 돌아갔다. 이제 두 형제의 앞길을 방해하는 걸림돌은 아무것도 없었다.

 

“보름 후에 미추국의 건국을 선포할 것이다. 제신들은 준비하라.”

 

비류왕의 하명에 따라 소래 일대는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비류왕은 소래에서 가장 큰 건물을 매입하여 임시 집무실로 사용하였고, 도로를 정비하였다. 마한 연맹의 모든 국가에 사신을 파견하여 미추국의 개국을 알리고 왕이나 신지, 견지, 부례, 읍차 등 군장들을 초대했다.

 

우체모탁국의 반을 접수한 미추국 조정은 전국에 방문(榜文)을 붙여 백성들에게 나라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알리고, 나라 이름, 국왕의 이름, 조정 중신들의 이름, 열 가지 정도로 간추린 율령을 동시에 공포하였다. 미추국은 막대한 자금으로 욱리하 지역으로 진출하여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까지 사들였다.

 

 

미추국은 영토는 동서로 이백 리 남북으로 일백 리에 이르는 영역을 소유하게 되었다. 마한의 소국의 왕과 통치자들은 혜성처럼 등장한 미추국의 막강한 군사력에 굴복하여 무엇이든 응해야 했다. 소서노는 소래에 머물면서 미추국의 건국 준비 과정에 깊이 관여하였다.

 

그녀는 소래 백성들을 만나 미추국의 건국에 대한 홍보에 진력했다. 그녀의 달변에 소래 백성들은 환호하였고, 그 응답으로 소서노는 그들에게 은전을 베풀었다. 개국 이틀 전부터 마한 전역에서 왕후장상들이 대거 소래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비류왕에게 금은보화나 진귀한 특산품을 선물하였다.

 

개국 선포일 전날 온조가 십제와 장수들을 대동하고 소래에 나타났다. 소래 전역은 벌써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마한 전역 뿐만 아니라 변한과 진한 그리고 멀리 한나라, 고구려, 부여, 옥저, 숙신 등지에서 상인들이 소문을 듣고 온갖 진귀한 물건들을 가져와 사고파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류왕은 소래에 임시 가설 천막과 막사 수백 동(棟)을 설치하게 했고, 외지에서 오는 귀빈들의 대접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고 신하들에게 주문했다. 드디어 개국을 선포하는 날이 밝았다. 소래 항구 앞에 대형 가설물이 설치되었고, 그 주위는 병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오백 여 평 정도 되는 단(壇) 위에 비류와 소서노 그리고 온조가 앉고 그들 좌우로 내외 귀빈이 자리했다. 대략 그 수자가 이백 명쯤 되었다. 단 위에 대형 오색 깃발 수백 개가 바람에 펄럭였다. 붉은 비단이 덮인 단 가운데 제단이 올려지고 제단 위에는 황소 세 마리가 통째로 구워져 올려졌고, 술과 각종 산해진미가 올려졌다. 황금빛 도포를 입고 머리에 면류관을 쓴 비류왕이 향을 피우고 축문(祝文)을 읽었다.

 

 

모년 모월 모일 모시에 미추국 왕 비류는 천지신명께 고하나이다. 해모수 할아버님께서 웅심산(熊心山) 아래 옛 조선의 맥을 이어 *북부여를 개국한 지 어언 220년이 지났습니다. 오늘 할아버님의 뜻을 이어 소손(小孫)이 남삼한의 마한 땅 소래산 아래에 미추국(彌鄒國)을 세우고 건국을 선포하오니, 이 나라가 대대손손 무탈하고 크게 번영하여 천년 제국으로 발전하도록 도우소서. 우리 부여족은 환인, 환웅, 단군(檀君)의 혈통을 이어왔나이다. 지금도 대륙에는 여러 부여국이 실존해 있으며, 장차 남삼한에도 부여족의 나라들이 세워져 고귀한 혈통을 이을 것을 확신합니다.

자미원(紫微垣)의 천제께서도 미추국의 출발을 어여삐 여기실 것이며, 태미원(太微垣)의 제신(諸臣)들과 천시원(天市垣)의 하늘 백성들도 역시 미추국의 출발을 흔쾌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미추국은 장차 백성을 하늘과 같이 여기며, 민심이 곧 천심(天心)이라는 것을 위정자들은 항시 가슴에 새길 것입니다. 또한, 소손은 다물(多勿) 정신을 계승하여 옛 배달국과 조선의 영토인 대륙과 열도(列島)를 모두 수복할 것이며, 더는 부여족이 환란을 피해 이리저리 떠도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오늘 미추국의 출발을 축하하기 위해 마한, 진한, 변한 및 열방(列邦)에서 사신단이 도래하였습니다.

 

소손은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나라와는 손을 잡고 함께 번영을 추구할 것이며, 무도한 주변의 제후들에게는 사정없이 철퇴를 내릴 것입니다. 바야흐로 부여족이 흥하고 영화를 누릴 시기가 도래하였습니다. 천지신명과 해모수 할아버님은 소손이 험난한 길을 가는데 지혜와 신기(神氣)를 주시어 무난하게 나라를 영도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또한, 곧이어 개국할 온조 아우의 나라도 무탈하게 건국의 신화를 쓸 수 있도록 도우소서. 비록 소찬이지만 즐거이 흠향(歆饗)하시고 즐기시기 바랍니다.

 

 

비류왕이 천지신명과 해모수에게 미추국의 건국을 선포하는 동안에 어머니 소서노와 온조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소서노는 고구려 주몽왕에게 배신당하고 두 아들과 졸본 부여의 무리를 이끌고 쫓기듯 번한 땅으로 이주하여 온갖 고생을 감내해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었지만, 오늘은 아들 비류가 미추국의 건국을 선포하는 날이었기에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어야 했다. 천제(天祭)와 선포식이 끝나고 비류왕은 행사장에 구름처럼 몰려들어 환호하는 미추국 백성들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하였다.

 

* 북부여 – 서기전 239년에 해모수(解慕漱)가 건국함.

 

“미추국, 만세!”

“비류 대왕, 만세!”

“소서노 어하라, 만세!”

 

소래는 한 달 가까이 축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번개처럼 생겨난 주막과 주루(酒樓)에서는 외지에서 온 손님들에게 술을 반값에 팔고, 어시장에서는 각종 물고기와 해산물을 평소의 반값도 안 되는 헐값에 팔았다. 비류왕의 미추국은 만방의 축하 속에 출발하였지만 해결해야 할 일들이 태산 같았다. 건국과 동시에 비류왕은 소래 출신 처녀를 왕비로 맞이하였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건국하고 최소한 백여 년은 지나 봐야 알 수 있다. 미추국의 출발은 순조로웠지만,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끝-

 

 

 

 

 

 

 

 

 

 

 

 

 

아래는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에 소재한 소래에서

2000년전 소서노와 비류, 온조의 소래 도착를 기념하는 거리 퍼레이드 장면

 

 

              

 

 

 

 

 

 

 

                 _()_  끝까지 감상하여 주신 임에게 고개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곧 다른 작품으로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