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20. 8. 19. 00:38

 

 

 

                       본 역사소설은 백제 제18대 전지왕(腆支王)의 부인이며, 제19대 구이신왕(久爾辛王)의

                      생모인 팔수부인(八須夫人)과 그의 간부(姦夫)인 목만치(木滿致)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

                      습니다. 팔수부인은 왜국 응신왕의 딸로 전지왕이 붕어한 뒤에 목만치와 더불어 백제의 정치를

                      농단하여 백제를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합니다. 1600여 년 전에 백제 한성(漢城)에서 일어난

                      희대의 사건을 소설로 엮었습니다. 많은 감상 부탁드립니다.

 

                                                                                                                               _()_ 여강 최재효 拜

 

 

 

 

 

 

                                            팔수부인

 

                                                                                                                                            - 여강 최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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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왕 부여전이 재위 16년 만에 향년 31세로 붕어하자 그의 장자 구이신이 즉위하였다. 백제 조정에서는 부여전을 전지왕(腆支王)이라 했다. 그는 아신왕의 맏아들이었으며, 왕비는 왜나라 오진왕(應神王)의 딸 팔수(八須)였다.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부여전이 아신왕의 명령에 따라 왜국 오진왕의 숙위(宿衛)를 위해 왜국에 머물 때였다. 태자 부여전은 왜국에 머물던 중 아버지 아신왕의 부음을 듣고 환국 길에 올랐다.

그런데 아신왕의 아우 부여설례(扶餘碟禮)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하자 부여전은 잠시 해도(海島)에 머물렀다. 설례는 오랫동안 조정에 불만이 많은 진씨 가문의 지원을 받아 태자 부여전이 백제에 들어오기 전에 잠시 섭정하던 형 부여훈해(扶餘訓解)를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 해씨 세력들이 겨우 설례 세력을 진압하고 나서야 부여전 일행은 한성(漢城)에 들어올 수 있었다.

 

고구려 담덕 태왕이 *계림국을 지원하며 백제를 압박하자, 백제는 왜, 가야 등과 동맹을 맺고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백제는 해씨(解氏)들의 세상이었다. 온조가 나라를 건국했을 때 고구려에서부터 자신을 보위해 온 해루(解婁)를 우보(右輔)에 제수하면서 해씨들이 백제의 주요 집권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고이왕이 집권하면서 진씨(眞氏)들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아신왕 때까지 무려 160여 년간이나 백제 조정을 좌지우지했다. 해씨들은 진씨들의 전횡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진씨들은 망국 마한에서 넘어온 사람들로 고이왕 이후 백제 조정의 중추 세력이었으나, 아신왕에게 견제를 받으면서 부터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태자 부여전은 해씨들의 지지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즉위 후에는 그 보답으로 해충을 *달솔(達率), 해수(解須)를 내법*좌평, 해구(解丘)를 병관좌평에 제수했다. 얼마 뒤에 전지왕은 후궁도 해씨 집안 여인을 들였다.

 

* 계림국 – 신라 초기에 부르던 국호(國號)

* 달솔(達率) – 백제 16관등 중 두 번째 높은 벼슬

* 좌평(佐平) - 백제 16관등 중 가장 높은 제1품 벼슬이다. 고이왕 때 6좌평제가 정착되었다.

 

“어머니, 소자는 이제 겨우 열여섯 살입니다. 정치에 대해서는 소자보다 어머니께서 잘 아시니 당분간은 소자를 대신해 수렴청정해주세요.”

 

갑작스러운 부왕의 붕어로 왕위에 앉은 소년 부여구이신(扶餘久尒辛)은 품성이 유약하고, 어머니 팔수부인의 말이라면 죽는시늉까지 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그는 백제의 풍속을 배우기보다는 팔수부인에게 왜국의 생활양식을 배우며 성장한 탓에 왜인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라하(於羅瑕)께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정의 일은 이 목만치(木滿致)가 태후와 알아서 할 터이니 어라하께서는 책을 가까이하고 아랫것들과 말을 타거나 사냥놀이를 하세요. 내가 조정의 일은 잘 알고 있답니다.”

 

목만치는 거만한 태도로 팔수부인 곁에 앉아 소년 왕을 마치 하인 대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나 팔수부인은 목만치의 거드럭거리는 행동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목만치가 말할 때마다 맞장구를 치며 그를 거들었다.

 

“어라하, 목총관님의 말씀이 지당해요. 이제부터 우리 모자는 목총관님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마음 편하게 지내면 되는 겁니다. 목총관님은 *임나(任那)에서 왜나라와 무역을 하는 백제와 가야 상인들뿐만 아니라 그 지역을 무리 없이 다스려온 실력자랍니다. 대왕이 총관님을 아버지처럼 따르면 더 좋고요.”

 

* 어라하 – 왕을 부르는 백제 고유의 호칭

* 임나 – 금관가야의 낙동강 하류 지역으로 왜국이나 6가야 등과 교역이 활발했던 지역. 대마도를 임나라 보기도 함.

 

목만치는 백제의 장수 목라근자(木羅斤資)의 아들이었다. 목라근자는 백제 *대성팔족 중 하나인 목씨 가문 출신이며, 마한 연맹체의 맹주였던 목지국 진왕(辰王)의 후손이기도 했다. 그의 조상은 백제 남부 지역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여 백제의 주요 기관을 장악하기도 했다. 목라근자는 근초고왕과 근구수왕 재위 시에 백제의 장수가 되어 가야의 동남부 지역을 정벌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가야를 복속시키고 계림국까지 공격하자 이에 놀란 계림국 이사금은 목라근자를 달래기 위해 왕실의 딸을 시집보냈다. 목만치의 외가는 계림국 왕실이 되는 셈이다. 백제 왕은 목라근자가 정벌한 지역을 임나라 부르며, 대대로 그의 집안사람들이 임나 지역을 통치하도록 배려했다.

 

* 대성팔족(大姓八族) - 백제의 주류 사회를 이루던 여덟 성씨로 해씨, 진씨, 사씨(沙氏) 또는 사택씨(沙宅氏), 목씨(木氏) 또는 목례씨(木刕氏) 혹은 목협씨(木劦氏), 백씨(苩氏), 연씨(燕氏) 또는 연비씨(燕比氏), 국씨(國氏), 예씨(禰氏) 등이다.

 

목라근자는 백제왕의 명을 받아 임나에 머물면서 왜국을 오가며 양국 사이에 주요한 외교적인 일을 도맡다시피 했다. 목라근자는 왜왕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양국 관계를 원만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가 왜국을 드나들 때 아들 목만치는 목라근자를 따라 자연스럽게 왜국을 드나들었고, 그 와중에 왜국의 공주였던 팔수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그런데 백제국의 태자 부여전이 왜국에 건너가 오진왕의 딸인 팔수와 혼인하는 바람에 목만치는 실연을 당하고 말았다. 목만치에게 연적(戀敵)이었던 전지왕이 붕어하자 팔수부인은 즉시 임나의 총관을 지내고 있던 목만치를 한성의 왕궁으로 불러들였다.

 

“어머님 말씀대로 소자도 목총관님을 아버님처럼 받들겠습니다.”

 

“암, 그래야지요. 이 어미도 목총관님을 돌아가신 어라하를 대하듯 정성을 다해 예의와 정도(正道)로 모실 것입니다. 우리 모자가 백제를 이끌어가는데 목총관님께서 헌신적으로 도와주실 겁니다. 그렇지요. 목총관님?”

 

모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목만치의 입이 저절로 벌어지면서 기고만장한 태도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임나에서 왕이나 다름없었다. 목만치의 말 한마디면 임나 지역에서 안 될 일이 없었다. 임나는 국제무역이 허용되고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는 남삼한의 최대 상업지구였다.

 

백제, 가야 6국, 계림국, 왜국 등 수많은 상인과 상단들은 무역하기 위해서는 목만치의 승인이 필요했다. 그에게 밉보이거나 눈 밖에 난 상인이나 상단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상당한 금액의 통관세(通關稅)를 내야 했다.

 

목만치는 남삼한 최고의 거부(巨富)가 되어 백제와 계림국 그리고 가야와 왜국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넓혔다. 아버지는 백제의 권세 있는 장군이고, 어머니는 계림국 왕실의 딸이었던 미묘한 관계를 목만치는 잘도 활용하였다.

 

그는 매년 명절이 되면 백제, 계림국, 왜국, 6가야 등의 왕과 고위 관리들에게 값비싼 물건을 보내 호감을 샀다. 특히 왕이나 왕비 또는 태자의 탄생일에는 그가 직접 수만금을 축하금으로 전달하여 그들로부터 신뢰를 얻기도 했다.

 

“목만치가 물 만난 고기처럼 함부로 날뛴다고 합니다.”

 

“전지어라하께서 붕어하였으니 한창 물이 오른 팔수부인이 옛 정인(情人)을 끌어들인 것이지요. 팔수는 이십 년 가까이 백제에서 살았지만, 아직도 왜국의 말을 쓰고,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비단으로 만든 기모노(着物)를 입으며, 왜국 음식을 먹는다고 합니다.”

 

“허-, 이런. 그러니 그 어미에 그 자식이 나오지요. 구이신은 나이가 열여섯이지만 행동은 젖을 떼지 못한 어린애와 같다고 합니다. 큰일입니다. 한 나라의 군주가 그리 허약해서 장차 어찌 이 제국을 이끌어 간단 말입니까?”

 

“문제는 목만치입니다. 그자는 팔수부인이 전지어라하와 혼인하기 전부터 사귀던 사이며, 소문에는 둘 사이에 아이까지 있었다고 합디다. 그녀는 이제 태후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백제의 조정을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할 것입니다. 팔수부인이 그 권력을 목만치에게 위임하는 날이면 우리 백제의 앞날은 캄캄해질 것입니다.”

 

해구와 해충 그리고 해수가 해구의 집에 모여 새로 즉위한 구이신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팔수부인이 계림국과도 연결이 되는 목만치와 손을 잡고 조정을 농단할까 우려하였다. 계림국과 잦은 국경 분쟁으로 양국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목만치가 조정을 좌지우지한다면 백제에는 큰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속단할 수 없지만 조금만 더 두고 봅시다. 두 연놈이 무얼 어찌하겠습니까? 나라 상태가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구이신어라하는 왜녀(倭女)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몰라도 너무 왜색 풍습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잠자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병관좌평 해구(解丘)가 한마디 하였다. 그의 입에서 대안(代案)이라는 말을 꺼내자 해씨들은 크게 긴장하는 얼굴이었다. 해구는 백제 조정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는 인사 중 한 명이었다.

 

“병관좌평께서 대안이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해수가 해구의 말뜻을 알고는 있었지만, 행여 자신이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게 아닌지 해서 물었다.

 

“허허-, 내법좌평은 그리도 눈치가 없으십니까? 누군 누구겠습니까? 우리 해씨 집안에서 전지어라하의 후궁으로 들어간 해씨 부인의 아들 부여비유(扶餘毗有)를 말하는 것이지요. 비유 공자가 이복형인 부여구이신 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올되고 모든 면에서 형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온화한 성품이며 칠칠하고 훤칠한 풍신(風神)은 전지어라하를 오롯이 빼닮았습니다.”

 

“말씀이 좀 지나친 거 아닙니까? 부여구이신이 이제 막 권좌에 앉았는데, 대안을 입에 올리다니요? 상좌평 어른이 알면 경을 칠 것입니다. 입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어른이 있으니 부여씨들이 어느 정도 통제가 되는 겁니다.”

 

“그자는 오로지 제 일만 할 줄 아는 우직한 일꾼입니다. 한심한 인간이기도 하지요. 보위(寶位)에는 전혀 마음이 없는 자이기도 합니다.”

 

해씨들은 구이신의 무능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해구(解丘)는 전지왕의 외척으로 병관좌평을 맡으면서 백제 조정의 실세가 되었다. 동시에 해구와 더불어 달솔 해충(解忠)과 내법좌평 해수(解須) 등도 백제 조정의 실세로 부상하여 세도를 부렸다. 전지왕이 그들을 중용한 이유는 지난 150년 넘게 조정을 쥐락펴락하던 진씨(眞氏) 세력을 억누르려는 조치였다. 그러나 시나브로 해씨들이 너무 비대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기에 왕실에서조차 그들의 세력을 견제하는 상황이 되었다.

 

“상좌평 어르신, 지금의 백제 정치 상황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어찌 생각하다니요? 뭐가 잘못되어가고 있습니까?”

 

부여신(扶餘信)은 아신왕의 서자로 전지왕의 아우이기도 했다. 그는 전지왕이 등극하면서 상좌평(上佐平)이 되어 국정 전반을 챙기는 전형적인 관료였지만, 정치에 대한 야망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형 전지왕의 붕어 이후에도 큰 조카이며 태자인 부여구이신을 보위에 앉히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제는 소년 왕이 빨리 정치를 몸이 익히도록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었다.

 

만약 부여신이 정치에 뜻이 있었다면, 그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결집하여 전지왕이 붕어한 직후에 정권을 잡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직한 황소처럼 일만 하는 그에게 해씨들은 뒤에서 그를 비웃으며 조롱하였다.

 

“목만치가 팔수부인과 놀아나고 있습니다. 방금 들은 바에 의하면 구이신어라하를 대신하여 수렴청정하겠다던 팔수가 자신의 모든 권한을 목만치에게 부여했다고 합니다. 대리에 또 대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정치를 하는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리에 대리라니요? 백제의 앞날이 어찌 될지 불 보듯 뻔합니다. 그런데도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이신 상좌평께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시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저잣거리 백성들은 목만치가 왜나라와 짜고 백제를 차지할 것이라는 소문이 왜자합니다. 무슨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나라의 고관대작을 지낸 원로들이 부여신의 집을 찾았다. 부여신은 도성 가까이 살면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가 전지왕의 아우임에도 매관매직을 일삼거나 지위를 이용해 백성들의 땅이나 재물을 빼앗는 짓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을 보면 곳간을 풀어 그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백성들은 그런 부여신을 존경하며, 나라의 큰 어른으로 대접하였다.

 

“나도 그런 소문은 듣고 있습니다. 소문은 소문일 뿐입니다. 백제 조정에는 아직도 정의롭고 강직한 중신들이 꽤 있습니다.”

 

부여신의 뜨뜻미지근한 답변에 원로들은 가슴을 쳐댔다. 원로들은 상좌평의 입에서 팔수부인과 목만치를 당장 어찌하겠다는 답변을 원했으나 부여신의 반응은 그렇지 못했다.

 

“상좌평, 그리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닙니다. 우리 백제는 지금 나날이 국력이 팽창해 가고 있는 *사로국(斯盧國)이나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나라에 위기가 닥칠 수 있습니다. 백제 말도 못 하는 왜녀와 그녀의 간부(姦夫) 목만치에게 나라를 맡겼다가는 백제는 거덜 납니다. 조속히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맞습니다. 상좌평도 잘 아시다시피 목라근자는 사로국 왕실녀를 취해 목만치를 낳았습니다. 어쩌면 그자가 사로국의 첩자일 수도 있습니다. 백제 조정에 사로국의 첩자가 권력을 잡는다면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나는 요즘 밤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목만치가 백제 목라근자 장군의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그는 백제보다 왜국에 더 가깝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자는 현재의 왜왕인 *인교(允恭)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 합니다. 그런 까닭에 팔수부인과 목만치가 대낮에도 사사로이 한방에서 있으면서 오쟁이를 지고 있다고 하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상좌평께서 작금의 상황을 ‘소 닭 쳐다보듯 하신다면 조만간 큰일이 터지고 말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원로들은 부여신에게 거의 협박에 가까운 말을 쏟아냈다.

 

 

* 사로국 – 신라는 초기에 사로국, 계림국, 서라벌, 서나벌, 신라 등 여러 국호로 불렸다.

* 인교 – 서기 412~ 453년 간 재위하면서 야마토를 통치했다

 

‘음-, 이거 가만히 있다가 무슨 일이 터지면 내가 모든 것을 뒤집어쓰게 생겼구나. 그러나,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아들 구이신어라하를 대신해 수렴청정하겠다는데 내가 무슨 명분으로 야지랑스러운 팔수부인을 막을까? 그리고 예로부터 백제뿐만 아니라 사로국이나 고구려에서도 왕이 죽으면 왕비는 다른 남자들과 공공연히 사통하거나 은밀히 정분을 나누기도 하지 않았는가?

 

문제는 목만치다. 원로들 말대로 그자는 왜국과 사로국 두 나라의 간자(間者)일 수도 있고, 야심이 많아 장차 우리 백제를 어찌해볼 심산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자의 시커멓고 음흉하게 생긴 얼굴만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상좌평 부여신은 당장 원로들에게 어떻게 조처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 없지만 무슨 확실한 언질이라도 줘야 했다. 그렇지않으면 나중에 자신의 처지가 상당히 곤란에 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 원로님의 말씀을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곧 중신들과 대책을 논의해보겠습니다.”

 

“상좌평께서 이제야 우리 늙은이들의 말뜻을 알아들은 모양이구려. 중신들과 무슨 대책을 세우는지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입니다. 대책이 미지근하면 우리 늙은이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들고 일어나 조라떨 것 입니다.”

 

“맞습니다. 상좌평, 분명하고 강력한 대책이어야 합니다. 두고 볼 것입니다.”

“우린 전지어라하의 아우이신 상좌평만 믿습니다.”

 

팔수부인과 목만치의 정치적 밀착은 많은 조정 중신들과 백성들의 우려로 나타났다. 목만치는 마치 왕이라도 된 것처럼 수렴청정하는 팔수부인의 곁에 앉아서 일일이 정사에 관여했다. 중신들이 *조회(朝會)를 하는 자리에서는 왕의 뒤에 주렴(珠簾)을 내리고 팔수부인이 앉는데, 그때도 그녀의 옆에 목만치가 앉아 만조백관들의 인사를 받았다. 구이신 왕이 국사에 대하여 운을 떼면 백제 말이 어눌한 팔수부인 대신 목만치가 우렁찬 목소리로 대신하여 말을 하거나 신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 조회 – 모든 조정의 대소신료가 대전에서 임금을 뵙는 일

 

“다음은 고구려 군사들의 국경 침범 사안입니다.”

왕이 운을 떼자 팔수부인이 입을 열었다.

 

“그 문제도 목만치 국사(國師)님께서 처결하시겠습니다.”

 

팔수부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목만치가 자리에 벌떡 일어나더니 주렴 밖으로 걸어 나와 구이신 왕 옆에 섰다. 풍신이 늠름하고 장대하며, 호남아 풍으로 생긴 목만치였다, 그의 옆에 앉아 있는 구이신왕은 고목에 붙은 매미 같았다. 구이신왕과 팔수부인은 목만치에게 관등에 없는 국사라는 직책을 새로 만들어 제수하였다.

 

국사는 왕의 스승이라는 뜻에서 조정의 전권(全權)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자리였다. 조정 중신들은 왕이 목만치에게 제수한 직책에 대하여 불만이 많았으나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고구려는 *거련(巨連)이 태왕이 되면서 남진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백제는 고구려의 침범으로 많은 영토를 잃고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때마다 나의 외가인 사로국의 여러 *이사금(尼斯今)들이 군대를 보내 백제를 도왔습니다. 내가 백제의 국사로 있는 한 사로국의 전폭적인 지원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번 고구려의 파렴치한 작태에 대하여 분노를 느낍니다. 이에 나는 사로국을 포함한 가야연맹, 왜국 등과 더욱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여 고구려의 거련 태왕의 야욕에 당당하게 대처할 것입니다.

내일 중으로 고관 중 한 사람을 뽑아 이번 사태를 항의하는 국서(國書)를 가지고 국내성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나와 팔수태후가 조정에 있는 한 앞으로 고구려는 절대로 우리 백제를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중신들도 나를 믿고 국정 수행에 온 힘을 다해주실 것을 주문합니다. 또한, 요즘 가뭄이 심해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농사를 책임지는 기관에서는 전국의 현령들에게 지시하여 농민들의 일손을 돕고 물길을 찾아 해갈할 수 있도록 조처하시기 바랍니다.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라 했습니다. 농사를 망치면 나라의 양식이 줄어들어 거지가 들끓게 됩니다. 나의 말은 곧 구이신어라하의 말이니 그리 알고 기민하게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소임을 다하지 않는 자는 그 책임을 물어 엄히 다스릴 것입니다. 명심. 또 명심하기 바랍니다.”

 

 

* 거련 – 고구려 제20대 태왕으로 사후에 장수왕으로 시호 추증

* 이사금 - 신라 초기의 왕호로 3대 유리왕 때부터 18대 실성왕 때까지 사용

 

조정의 만조백관들은 목만치의 청산유수 같은 말에 반쯤 정신이 나간 듯 한동안 직수굿하게 앉아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구이신 왕과 팔수부인은 목만치의 달변에 손뼉을 쳐대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고 목만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신료들을 노려보았다. 목만치의 기고만장한 언행에 백관들은 속으로 통탄했다. 어떤 중신은 할 말을 잊은 듯 멍하니 서서 천정만 바라보았고, 또 어떤 중신은 킁킁거리며 자발없이 발로 바닥을 콱콱 두드리며 울분을 삭이는 듯 했다.

 

‘빌어먹은 도대체 이 나라의 왕이 누구야?’

‘이제 백제는 부여씨의 나라가 아니고 목씨의 나라가 되었구나.’

 

‘저놈이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관등도 없던 놈이 팔수의 총애를 입더니 안하무인이 되었구나.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로다. 돌아가신 전지어라하가 이 작태를 보시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실까?’

 

‘말세로다. 말세야. 저놈은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냐?’

‘저놈이 밤마다 팔수의 감투거리 맛을 보더니 간덩이가 단단히 부었구나.’

‘참말로 두 연놈의 짓거리를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조회를 마치고 대전 밖으로 나온 신료들은 저마다 입을 굳게 다문 채 조금 전 조회에서 받은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조회를 마치자 해구(解丘)를 중심으로 해씨들이 은밀하게 병부(兵部)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성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목만치가 팔수부인에게 국정 전반에 대하여 상담을 해주거나 조언을 해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해구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계속-

 

 

 

 

 

 

                % 오탈자는 최종 탈고 때 수정 보완할 예정이오니 이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