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20. 7. 14. 23:41

 

 

 

                          본 역사 단편소설은 고려 인종(仁宗) 때 척신 이자겸의 난(亂)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주(지금의 인천) 이씨 가문의 이자겸이 어떻게 출세하여 왕씨의 나라 고려를 이씨의

                     나라로 만들려고 하는지 감상해 보세요.

                                                                                          - 여강 최재효 拜

 

 

 

 

 

                                                굴비

 

                                                                                                                                      - 여강 최재효

 

                                                 

 

최사전(崔思全)은 의원 가문 출신으로 전라도 *탐진(耽津) 사람이었다. 그는 호족의 후예도 아니고 문벌귀족 가문 출신도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최정(崔靖)은 의술이 뛰어나 어의(御醫)가 되었다. 최사전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개경에서 살며 의술을 익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성품이 꾸밈이 없고 충성스러우며 정의로웠다. 지혜와 꾀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나이 15세 되던 해에 선종(宣宗) 임금이 궁궐로 불러 어의로 임명하고 사전(思全)이란 이름도 하사했다.

 

* 탐진 – 전라도 강진

 

그는 예종 임금의 태의(太醫)였는데 임금의 등에 난 종기를 작은 병으로 치부했다가 종기가 악화하였다. 이로 인하여 예종이 붕어하자 고명대신이며 중신인 한안인은 최사전이 선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죄를 물어 그를 처벌하자고 했다.

 

이때 인종 임금이 최사전을 보호해주어 2년의 유배형으로 겨우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때 최사전은 자신을 지켜 준 임금에 대한 충성심이 배가되었고 임금을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최사전은 자신을 처단해야 한다고 주청한 한안인을 증오하였는데, 이자겸이 선대왕 때의 고명대신들을 축출할 때 이자겸을 지지하며 한안인을 죽게 했다. 복권되어 현재는 그는 임금의 최측근으로 임금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시위(侍衛)했다.

 

인종 임금은 이자겸의 집에서 정사를 보면서도 늘 불안해했다. 최사전은 임금이 이자겸과 척준경의 위세에 눌려 서원에 유폐되다시피 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임금에게 지금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묘안을 건의했다.

 

 

“폐하, 이자겸이 함부로 날뛰는 것은 척준경 때문입니다. 만약 척준경을 설득하여 충성을 끌어낼 수 있다면 이자겸은 고립무원의 처지가 될 것입니다.”

임금은 최사전의 계략이 마음에 들기는 했으나 주저하는 눈치였다.

 

 

“경의 뜻은 알겠으나 척준경은 이자겸의 동지로 서로 사돈지간입니다. 또한, 지난번에 그의 아우 척준신과 그의 아들 척순(拓純)이 관병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그가 짐의 뜻을 받들지 의문입니다.”

 

임금이 한숨만 푹푹 내쉬자 최사전이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임금에게 속삭였다. 대궐이 아닌 탓에 이자겸의 집에는 벽에도 귀가 있었다.

 

“폐하, 소신이 개경에서 유명한 점쟁이에게 점을 쳐 보았는데, 이자겸의 권세가 다했다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소신이 척준경과 오래전부터 교유(交遊)가 있었습니다. 폐하께서 윤허하시면 소신이 반드시 뜻을 이루겠습니다.”

 

하지만 임금은 최사전의 점괘를 반기기보다 침착하게 주변의 상황을 고려하며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야 했다. 임금이 최사전의 말을 듣고 잠시 골몰하였다.

 

‘만약 최사전이 척준경을 회유하지 못하면 짐은 더욱 곤란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 척준경이 우직한 면은 있으나 이자겸과 사돈지간이니 그들의 속을 알 수가 없다. 척준경의 마음을 돌려 충성을 유도할 수 있다면 짐은 이 지옥 같은 집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좋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최사전의 세 치 혀를 믿어보자. 지금 짐이 믿을 사람은 최사전뿐이다.’

임금은 헛기침을 서너 번 하고 나서 최사전에게 가까이 오라고 했다.

 

 

“태조와 역대 임금의 신령이 하늘에 계십니다. 이자겸은 짐의 외조부이면서 장인이 됩니다. 하지만 후궁의 세력에 등을 대고 있을 뿐 신의란 찾아볼 수 없는 자입니다. 그의 위엄이 짐을 넘어 나라를 뒤흔들고 짐을 고립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자겸은 붕당(朋黨)을 점차 확대하여 화가 어디까지 미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대궐에 함부로 침입하여 궁전과 부고(府庫)에 불을 질러 남김없이 태워버렸습니다. 짐을 좌우에서 호위하던 군사들을 교살하거나 혹은 귀양을 보내는 등 흉악한 행동을 끝없이 하였고 또 무슨 변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차마 선대 임금들을 뵐 면목이 없게 되었습니다.

 

경의 가문이 대대로 일편단심으로 나라를 받들고 있음을 가상히 여기고 있습니다. 척준경을 이자겸으로부터 분리하여 짐의 고통을 한시바삐 줄일 수 있도록 하세요.”

 

드디어 임금이 최사전에게 밀지를 건네고 밀명을 내렸다.

 

“소신, 목숨을 아끼지 않고 폐하의 권위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그길로 이자겸의 저택을 빠져나온 최사전은 척준경의 집으로 향했다. 척준경은 아우와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져 주지(酒池)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최사전이 척준경의 집에 도착했을 때도 그는 대취한 상태였다. 최사전은 척준경을 찾아가는 도중에 주점에 들러 술 세 동이를 샀다.

 

“이게 누구신가? 최소감(崔少監)께서 어인 일로 내 집엘 다 오셨는가? 참으로 희한한 일이 다 있구먼그래.”

 

“척장군과 술 한잔 나눌까 해서 예고도 없이 들렀습니다.”

“두주불사인 나의 속을 알아주는 자는 역시 최소감밖에 없습니다그려.”

 

두 사람은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사람이 술을 부르고, 술이 술을 부르더니 마침내 술이 사람을 부르는 지경이 되었다. 척준경은 곡산(谷山)의 전원에서 자란 탓에 우직한 성격이었다. 그는 성격은 급한 편이었으나 의리가 있는 사내로 한번 사람을 믿으면 끝까지 신의를 지켰다. 술 세 동이가 모두 바닥을 보이자 최사전이 벌떡 일어나 머리를 산발하더니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이보게 최소감. 갑자기 왜 그러시는가?”

척준경은 비몽사몽 간에 최사전의 행동을 보다가 화들짝 놀라 술이 깨고 말았다.

 

“숙종 임금을 모시면서 고려 왕실에 충성을 맹세하신 장군입니다. 하지만 장군께서 역적과 손을 잡으셨습니다. 내가 어젯밤에 천문을 살펴보니 북두칠성의 일곱 개 별 중에서 네 번째 별인 문곡성(文曲星)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장군은 문곡성의 정기를 타고 태어났다 들었습니다.

 

문곡성은 하늘의 저울추인 천권성(天權星)으로 무도한 세력을 징벌하는 존재입니다. 문곡성이 빛을 잃게 되면 고려 왕실에 오얏이 자라게 되면서 강산은 핏빛으로 물들게 됩니다. 장군께서 숙종 임금을 모실 때처럼 초심(初心)을 되찾으셔야 합니다. 고려 왕조의 흥망성쇠가 장군에게 달렸습니다.”

 

 

최사전이 말한 오얏은 다름 아닌 이자겸이었다. 척준경은 시골 촌뜨기에서 계림공의 호위무사 노릇을 하면서 고려 왕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계림공이 숙종 임금이 되면서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척준경이 최사전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출세를 위해 이자겸과 사돈까지 맺고 함께 역적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더구나 최사전이 예의를 갖추고 울면서 말하자 척준경도 대충 넘길 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이제야 척준경이 길고 긴 악몽에서 깨어나는 듯 했다.

 

 

“오, 그래요? 내가 지금껏 그 같은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척준경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 상당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군은 예전부터 고려의 기둥이셨습니다. 폐하께서 공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디, 폐하의 바람을 모른 체하지 마십시오.”

 

최사전은 울음을 그치고 품 안에서 서찰 한 통을 꺼내 척준경에게 건넸다. 서찰이 황금색이었다. 고려에서 임금만 사용할 수 있는 색깔이었다.

 

“그게 무엇이오?”

“장군, 폐하의 밀지(密旨)입니다.”

 

척준경은 깜짝 놀라며 얼른 무릎을 꿇었다. 그가 아무리 권세를 잡고 이자겸과 전횡을 일삼는다고 하여도 임금에게는 일개 신하에 불과했다. 척준경은 지난번 이자겸과 궁중에 난입하여 궁궐을 불태운 일에 대하여 크게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임금은 척준경에게 궁성을 불태운 일에 대하여 아무 조처를 내리지 않았다.

 

궁성을 불태운 일은 대역죄에 해당했다. 신료들은 틈만 나면 임금에게 척준경의 죄를 물어야 한다고 간언하였다. 이자겸과 연대하여 권력을 쥐었다고는 하나 그 권력은 언제 손아귀에서 빠져나갈지 몰라 불안하기만 했다. 척준경은 떨리는 손으로 밀지를 받았다.

 

 

            짐이 현명하지 못해 흉악한 무리가 함부로 날뛰게 만듦으로써

            대소신료들에게 걱정을 안겼으니 모두 짐의 죄로다. 짐은 몸소 반성

            하고 지난날 잘못을 뉘우칠 것을 하늘에 맹세하며, 신민들과 함께

            덕을 일신(日新)할 것을 바라고 있다. 경은 더욱 수신(修身)에 힘쓰

            고 옛일은 염두에 두지 말 것이며, 성심을 다해 짐을 보좌함으로써

            나라의 근심을 없애도록 하라.

 

 

“폐하, 신, 목숨을 바쳐 나라의 근심을 없애는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신의 불충을 용서하소서.”

 

척준경은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는 그제야 최사전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았다. 그로서는 임금이 자신을 믿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며, 어쩌면 지난 잘못을 씻을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최근 들어서 날로 횡포해 가는 이자겸의 언동이 불안했다.

 

또한, 조정 중신들이 이자겸과 자신을 보면 외면하거나 뒤에서 쑥덕거리는 것을 알고 머지않아 자신에게 불운이 닥칠 거라고 예감하고 있던 터였다. 인종 임금의 밀지를 받은 척준경은 그동안의 불충을 용서해달라며 엎드려 통곡하였다.

 

 

“장군, 폐하께서는 여전히 장군을 믿고 계십니다. 이번에 나라의 근심을 없애고 폐하와 고려 왕실이 부흥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척씨 가문이 천대 만대 빛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최소감, 폐하께서 내린 밀지를 받들겠다고 전해주시오.”

 

 

사흘 전에 이자겸의 셋째 아들 이지언(李之彦)의 종과 척준경의 종이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너의 주인이 무도하게도 저위(宁位)에 활을 쏘고 궁궐을 불태웠으니 그 죄는 대역죄에 해당하여 죽어 마땅하다. 네놈도 관노(官奴)가 돼야하는데 어찌 나에게 함부로 대하느냐?”

 

“네놈이 지금 한 말을 우리 주인 척장군께 고할 테다. 각오해라.”

 

척준경의 종은 그길로 집으로 달려가 이지언의 종이 한 말을 고했다. 척준경은 그 말을 듣고 대노하여 이자겸의 집으로 달려가 옷과 관을 벗어 던지고 소리쳤다.

 

“내 죄가 크니 관아에 나가 밝히겠소.”

“척장군, 종놈들이 한 말을 가슴에 담지 마시구려.”

 

 

이자겸이 그러한 말을 한 종을 불러 매를 치면서 척준경을 달랬으나 척준경은 뒤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이자겸이 장남 이지미(李之美)와 차남 이공의(李公儀)를 보내 척준경을 위로했으나 화가 단단히 난 척준경은 거칠게 반응했다.

 

“그 당시 난리는 너희들이 한 짓인데 어찌하여 나만 죽어 마땅하다고 하느냐? 나는 국공과 인연을 끊고 고향에 돌아가 여생을 보낼 것이다.”

 

“척장군님, 종놈들이 속없이 한 말입니다. 제발 고정하십시오.”

척준경이 끝까지 화를 풀지 않자 이자겸의 두 아들은 그냥 돌아가고 말았다.

 

 

이자겸은 척준경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여섯 번째 아들이 척준경의 사위이기 때문에 차마 절연은 하지 못하리라 판단했다.

 

 

‘지금이 내가 이자겸에게서 벗어날 때다. 그자와 한통속으로 있다가는 내가 언제 저들과 함께 도륙을 당할지 알 수 없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척준경은 이자겸과 인연을 끊기로 하였다. 오랫동안 척준경은 이자겸의 동지로서 군권을 장악하고 이자겸과 더불어 조정을 농단했다. 그러나 임금이 요즘 들어 이자겸에게 등을 돌리고 민심도 좋지 않았다.

 

권력의 원천은 임금에게 있었다. 이자겸은 임금의 외조부이면서 장인이었기 때문에 임금이 변심하면 이자겸의 권세도 끝나게 되어 있었다. 척준경은 임금이 이자겸을 외면한 상황에서 그가 더는 권력을 유지하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

 

 

세간의 이목이 따가워지자 이자겸은 임금의 거처를 *연경궁(延慶宮)으로 옮기게 했다. 이자겸도 연경궁의 남쪽에 거처를 마련하고 기거하면서 궁궐에 있는 군기고 안에 있던 병장기들을 자신의 집에 보관하게 했다. 이자겸은 십팔자득국이라는 도참설을 믿고 또다시 반역을 도모했다.

 

 

그는 아랫사람을 시켜 임금의 수라에 오르는 떡 속에 독을 넣었다. 그러나 그의 막내딸이며 왕비인 복창원주(福昌院主) 이씨가 알고 임금에게 알려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이자겸은 이에 그치지 않고 탕약에 독을 넣어 왕비를 시켜 임금에게 바치게 했다. 이때에도 복창원주는 아버지의 음모를 눈치채고 약사발을 손수 들고 가다가 일부러 넘어지면서 약사발을 엎어버리고 말았다.

 

 

* 연경궁 - 임금이 거처하며 집무를 보던 고려의 정궁(正宮)으로 개경 송악산(松岳山) 아래에 있었다. 건덕전, 중광전, 천복전 등이 있었다.

 

임금을 독살하려는 시도가 뜻대로 되지 않자 이자겸은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일으키려 했다. 그는 시중 잡배 수백 명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며칠간 조련을 하면서 때를 보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딸들은 아버지의 반역에 가슴앓이해야 했다.

 

복창원주가 하루는 친정에 왔다가 아버지 이자겸이 집에서 잡병(雜兵)을 훈련시키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머니 변한국대부인에게서 이자겸이 거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폐하, 아버님이 모월 모일을 기해 거사를 일으키려 합니다. 속히 조치를 취하셔야 합니다.”

“원주,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으리다.”

 

복창원주는 임금에게 막내 이모이면서 후궁이었다. 그녀는 언니들과 생각하는 방향이 달랐다. 인주 이씨의 가문과 아버지 이자겸의 영달보다는 남편인 임금의 안위를 더 걱정했다. 임금은 이자겸의 협박과 위세에 눌려 할 수 없이 셋째와 넷째 이모와 혼인을 했지만 두 자매에게 애정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임금은 넷째 이모이면서 후궁인 복창원주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었고 두 사람 사이는 상당히 화기애애했다. 최사전을 통해서 척준경의 마음을 알게 된 인종 임금은 환관 조의(趙毅)에게 척준경에게 보내는 밀지를 건넸고 조의는 즉시 척준경에게 달려갔다. 마침 척준경은 병부에서 무관을 선발하고 있었다.

 

 

“장군, 폐하의 밀지입니다.”

척준경이 얼른 그것을 받아들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마침 집무실에 병부상서 김향(金珦)이 들어 있었다.

 

 

                오늘 모시(某時)에 이자겸의 숭덕부(崇德府) 사병들이 연경궁의

                북쪽 문을 통해 짐의 처소를 침범하려 한다. 짐이 만일 해를 입

                는다면 이는 진실로 부덕의 탓이다. 만약 다른 성씨가 임금

                이 된다면 이는 짐 혼자만의 죄일 뿐 아니라 재상과 대신들에

                게도 큰 수치가 되는 일이다. 경은 이 점을 잘 생각하라.

 

척준경이 임금의 밀지를 읽고 곁에 있던 김향에게 보이자, 김향이 그 밀지를 읽고 나서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 척준경과 김향은 고려의 군부를 움직이는 실세였고 두 사람은 오랫동안 좋은 사이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폐하의 뜻이 이와 같으니 군신의 도리상 마땅히 죽음으로써 섬겨야 하거늘 어찌 우리가 편안할 수 있겠는가?”

김향이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하였다. 척준경은 김향의 임금을 향한 충성심을 알게 되었다.

 

 

“김상서, 우리가 역적을 죽여서 폐하의 걱정을 없애 드리세.”

 

척준경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는 웬만해서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척준경이 임금에게 하사받은 황금빛 갑옷을 입고 언월도(偃月刀)를 들고 나섰다. 무장한 그의 풍채는 십만 대군을 호령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두 사람이 군관 서너 명과 관노 이십여 명을 인솔하여 궁문을 나왔다. 그들은 병장기가 없자 궁성 밖에 있던 책목(柵木)을 뜯어 몽둥이로 삼아 남쪽 다리를 거쳐 다시 궁궐로 들어가니 조의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장군, 사태가 심각합니다. 빨리 안으로 들어오세요.”

순검도령 정유황이 군사 백여 명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그들은 급히 연경궁으로 향하였다. 척준경이 천복전 앞에 있던 임금을 호위하여 밖으로 나왔다. 천복전 주변에는 이미 이자겸이 이끄는 사병 이백여 명이 깔려 있었다.

 

 

“폐하를 모셔라.”

이자겸이 소리쳤다.

 

“저기 임금이 있다. 잡아라.”

이자겸의 사병(私兵)들이 무례하게도 임금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이놈들, 감히 폐하께 화살을 쏘다니 죽으려고 환장하였구나. 활을 쏘고 병장기를 든 놈들은 끝까지 색출하여 삼족(三族)을 멸할 것이다.”

 

척준경이 이자겸의 사병들에게 호통을 쳤다. 겁을 집어먹은 이자겸의 사병들이 척준경의 말에 주춤거렸다. 척준경은 고려 최고의 무장(武將)이었다. 그의 눈 밖에 난 병사는 살아남지 못했다. 사병들은 이자겸보다 척준경을 더 두려워했다. 이번에는 김향이 이자겸의 무리에게 소리쳤다.

 

“무기를 버려라. 투항하는 자는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저항하는 자는 나중에 참수를 당할 것이다. 역적 이자겸을 비호하면 너희들도 역적이 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너희들 처자식들도 모두 역적이 되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지금쯤 궁성 밖에 폐하를 구하기 위해서 개경 근처에 주둔하고 있는 관군들이 모여들고 있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어서 투항하라.”

 

김향의 호통에 이자겸의 사병들은 더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며 웅성거렸다. 관군들이 오고 있다는 김향의 말에 이자겸의 사병들은 겁을 집어먹고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거짓말이다. 어서 척준경 무리를 죽이고 폐하를 모셔오너라.”

 

이자겸이 수하와 사병들에게 소리쳤다. 임금을 두고 이자겸의 사병과 척준경이 이끄는 군사들이 대치하였다. 그러나 척준경은 일당백의 무공을 가지고 있는 고려 최고의 맹장(猛將)이었다. 이자겸의 사병들은 척준경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오합지졸들이 태반이었다. 사병들은 척준경이 어떤 사람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척준경이 칼을 한번 휘두르면 순식간에 십 수명의 목이 떨어지고 활을 한번 쏘면 화살 하나에 대여섯 명이 나가떨어진다고 믿고 있었다. 척준경이 화려한 갑옷을 입고 어른 키보다 큰 언월도를 들고 나타나자 이자겸의 무리는 그만 기가 죽어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는 하늘에서 하강한 신장(神將)의 모습이었다.

 

“척준경을 생포하라.”

 

이자겸이 척준경을 명령을 내리자 사병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척준경이 언월도를 휘두르자 순식간에 이자겸의 사병 수십여 명의 목이 날아갔다. 사병들은 눈을 뜨고도 척준경의 귀신같은 무공을 믿을 수 없었다. 이자겸의 사병 중 제법 검술에 능하다는 자들이 한꺼번에 척준경을 향해 돌진하였으나 그들도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오오, 관운장이 현신하셨도다.”

“이보게, 난 *소성후(邵城候)를 위해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네.”

“나도 그렇다네. 역적을 위해 죽을 수는 없어. 우리 투항하세.”

 

 

“나중을 생각해보게. 임금을 향해 화살을 날렸으니, 이는 명백한 대역죄에 해당하네. 또한, 임금이 죽더라도 나중에 다른 자가 임금이 되면 우리를 살려두지 않을 걸세. 더 늦기 전에 투항하세.”

 

“척장군의 맹호 같은 모습만 봐도 살이 떨리네. 나는 살고 싶으이.”

“우리 모두 투항하세. 곧 관군들이 들이닥치면 우린 꼼짝없이 어육이 되고 말걸세. 우선 목숨이라도 건지고 봐야 하네.”

 

이자겸의 사병들은 각 하급 관서에 소속된 관노와 사복(私僕)들이 대부분이었다. 전투해본 경험이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들도 사리 판단은 할 줄 알았다.

 

* 소성후 – 이자겸은 두 딸을 인종 임금에게 시집보낸 뒤에 수태사중서령소성후(守太師中書令邵城侯)에 책봉되었다. 소성은 인주, 즉 지금의 인천의 신라 시대 지명 이다.

 

“이놈들, 척준경 무리를 죽이고 폐하를 모셔오너라.”

 

이자겸이 동원한 사병들이 주저하며 더는 이자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 틈을 타 척준경과 김향은 임금을 군기감으로 안전하게 모셨다. 이자겸이 사병들을 향해 공격 명령을 내려도 사병들은 못들은 체 했다. 이자겸 일파는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리 병사가 많아도 명령이 먹혀들지 않으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국공, 대세는 척준경 쪽으로 기울었나 봅니다. 자칫 잘못하면 국공뿐만 아니라 출병한 사병들 모두 주살 당하게 생겼습니다. 국공의 자제들을 생각해서라도 이쯤에서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이자겸의 최측근인 장군 강호(康好)가 이자겸에게 말했다.

 

“국공, 강장군의 말이 맞습니다. 두 왕후와 인주 이씨의 가문을 보전해야 합니다. 하늘이 임금을 보우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사병들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임금에게 거짓 눈물이라도 보이십시오.”

이번에는 장군 고진수가 이자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버님, 두 장군의 말이 지당합니다. *왕해(王楷)에게 두 누이가 후비(后妃)로 있으니 그가 아버님을 어쩌지는 못할 것입니다.”

 

부처에게 귀의한 이자겸의 막내아들 의장도 두 장군의 의견에 동조하였다. 지금 상태에서 척준경 측과 대적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자겸은 이를 갈았다.

 

‘척준경이 나를 배신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동안 나에게 받은 은공이 태산과 같거늘 지금같이 결정적인 시기에 내 등에 비수를 꽂다니, 세상에 믿을 놈이 없구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이자겸은 가슴을 쳐댔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대세가 기운 상황에서 자신이 고집을 피워봐야 이로울 것이 없었다. 여섯 명의 아들이 조정에 출사하고 세 명의 딸이 모두 왕실에 출가한 상태에서 이자겸은 백기를 들 수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측근들의 말대로 인종 임금의 노여움을 진정시키지 못하면 자신을 비롯한 열 명의 아들딸들이 졸지에 목이 떨어질 수도 있는 중차대한 순간이었다. 이자겸이 장시간 움직이지도 않고 투항도 하지 않자 척준경은 승선 강후현을 보내 투항을 권유하게 했다.

 

* 왕해 – 고려 인종의 휘(諱), 즉 이름

 

“국공, 임금은 국공의 외손이자 사위입니다. 국공을 임금이 감히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니 사태가 악화하기 전에 투항하십시오. 가문을 살리고 자식들을 살리며 세 왕후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아버님, 강승선의 말이 맞습니다.”

이자겸은 분루(憤淚)를 삼키며 지난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십팔자득국설을 너무 과신한 탓이다. 쓸데없이 도참설을 맹신하다가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었구나. 임금에게 엎드려 투항한다고 해도 조정 중신들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주 이씨 가문을 살리고, 자식들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임금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수밖에 없다. 아, 나의 운명이 여기까지인가 보다.’

 

“임금에게 갈 것이다.”

 

이자겸은 머리를 산발하고 소복 차림으로 임금을 찾아갔다. 기세등등했던 권세와 권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힘없고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늙은이에 불과했다. 수십 년간 권력을 유지하느라 밤잠을 못 잔 탓인지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고 머리에는 백설이 쌓여 있었다. 뼈만 앙상한 이자겸이 절룩거리며 임금에게 다가오자 임금은 얼른 일어나 이자겸에게 달려갔다.

 

“폐하, 소신 이자겸이옵니다.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폐하를 해칠까 두려워 소신이 폐하를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잠시 가병(家兵)을 이끌고 궁궐에 들었을 뿐입니다. 소신의 무례를 용서하소서.”

“국공, 잘 오셨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인종 임금의 목숨을 노리던 역신 이자겸이었다. 늙고 추레한 모습의 외할아버지를 보는 순간 품성이 착한 임금은 동정심이 발동하였다. 임금이 이자겸의 두 손을 잡고 단 위로 오르려 하자 중신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자겸을 당장 처벌하라고 했다.

 

“폐하, 이자겸은 근거도 없는 도참설을 믿고 역성(易姓)하려던 자입니다. 지금 당장 효수하시어 국법의 지엄함을 보이셔야 하옵니다.”

병부상서 김향이 피를 토하듯 왕에게 고했다.

 

“폐하, 이자겸은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던 가문의 자제로서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고 역모를 꾀했던 자입니다. 서둘러 징계하시어 일벌백계로 다스리소서.”

 

“폐하, 이자겸은 방자하여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국가의 기강을 흔들었음은 물론 나라의 주인을 바꾸려 했습니다. 이자겸과 그의 일족들을 엄하게 다스려 국기(國基)를 바로 잡으소서.”

 

“이자겸뿐만 아니라 그의 자식들도 아비와 한통속이었습니다. 모두 참수하시어 그들의 목을 성벽에 내걸어 국법의 지엄함을 보이소서.”

 

이자겸 일족을 처단하라는 중신들의 주청(奏請)은 끝이 없었다. 임금은 일단 이자겸과 그 자식들을 *팔관보(八關寶)에 가두고 그를 따르던 조정과 군부 인사들을 모두 잡아들이도록 조치했다. 어명에 의해 이자겸의 잔당들이 모두 잡혀 와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중에서 이자겸의 주구(走狗) 노릇을 한 장군 강호와 고진수가 본보기로 효수되었다. 또한, 수백 명이 그들의 죄상에 따라 처형되거나 멀리 유배 가는 등 개경은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다.

 

 

이자겸은 그의 처 최씨와 다섯째 아들 이지윤 등과 함께 전라도 영광에 유배되었다. 이자겸 장남 이지미는 협주로, 차남 이공의는 진도로, 삼남 이지언은 거제로 각각 유배되었으며 그의 측근 삼십여 명과 사노비 구십여 명도 각지에 유배되었다.

 

임금의 후궁인 이자겸의 셋째, 넷째 딸들도 폐비(廢妃)가 되어 궁궐에서 쫓겨나는 불운을 당해야 했다. 임금이 금상(今上)이 된 지 5년째 되는 해 음력 5월은 고려 왕실이나 이자겸의 가문에는 잔인한 달이었다.

 

* 팔관보 – 고려 시대 팔관회의 의식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 돈이나 곡식을 빌려 주고 그 이자를 경비로 사용하였다.

 

“폐하, 소신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비굴하게 살지도 않을 것입니다. 소신이 이곳에 오니 이곳 법성포 바다에서 잡히는 조기 맛이 일품이옵니다. 소금에 절여 이삼 년이 지나도 맛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이 물고기의 맛은 곧 소신의 폐하를 향한 충심(忠心)입니다. 굴비를 궁궐로 보내오니 잡수실 때마다 소신을 생각하소서.

 

소신은 폐하를 다시 모시게 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절대 세파에 굴복하여 뜻을 굽히지(屈) 않을 것입니다(非). 이 조기처럼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폐하를 다시 가까이서 보필할 것을 믿으며 꿋꿋하게 지낼 것입니다.”

 

 

그해 음력 12월 이자겸은 등창이 악화하여 사망하였다. 영광 법성포 앞 칠산 바다에서는 매년 봄, 특히 곡우 때 알이 차고 맛 좋은 조기가 잡히는데 이자겸은 귀양을 와서도 하루 세끼 식사때마다 조기를 굴비(屈非)라 부르며 반찬으로 삼았다. 이자겸이 귀양지에서 죽자 임금은 척준경을 위사공신(衛士功臣)으로 삼고 중서문하평장사에 임명했다. 고려는 이제 척준경의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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