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20. 3. 4. 13:33

 

 

 

 

 

 

 

                    본 소설은 고구려 제12대 중천태왕의 후궁 관나부인(貫那夫人)의 억울한 죽음을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창작되었습니다. 9부까지 계획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감상 바랍니다.

 

                                                                                                                                      여강 최재효

 

 

 

 

 

 

 

 

 

 

                                                                           

 

 

 

 

 

 

 

 

 

                                                                                         관나부인

 

 

 

                                                                                                                                  - 여강 최재효

 

 


                                                                            7

 

 

 국상 명림어수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 국사(國事)를 돌보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걸주의 고사(古事)를 들먹이며 문병 온 태왕에게 관희를 궁에서 내치라고 하였음에도 태왕은 주저하고 있었다. 태왕은 될 수 있으면 국상을 만나지 않으려 했다. 국사를 논하는 장소에서 두 사람이 마주치면 서먹한 상황이 연출되어 어색한 자리가 되기도 했다. 태왕의 그 같은 태도로 국가의 중대사들이 미뤄지거나 늦춰지는 등 차질을 빚기도 했다.


 중신들 사이에서도 태왕의 미지근한 태도에 불만을 나타내는 자들이 생기면서
조정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명림어수는 태왕비에게 곧 대책을 세우겠다고 큰소리는 쳤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는 고민을 하던 끝에 태왕에게 사냥을 권유하기로 했다. 태왕의 사냥은 한번 나가면 보통 보름 정도 걸리는 큰일이었다.

호위군사, 몰이꾼, 잡부 등 태왕의 사냥에 동원되는 인력만 해도 천여 명에 가까웠다.  


 “짐도 요즘 온몸이 찌뿌듯해서 바람 좀 쐬고 싶었습니다.”
 태왕은 국상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하였다.

 

 태왕이 즉위 초부터 두 아우들의 반란과 국혼(國婚) 등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이 지내고 있던 참이었고 태왕비와 국상의 관희를 궁에서 내치라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중이었다. 사냥 제안이 나온 다음날 태왕과 국상 등 대소신료 수십 명이 평양성에서 삼백여리 떨어진 압록수 상류지역으로 떠나기로 했다. 


 “태왕폐하, 관희입니다. 소첩도 데려가 주셔요. 소첩이 궁성에 남으면 태왕비
께서 소첩을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소첩도 사냥하시는 곳으로 데려가주셔요. 부탁입니다.”


 관희가 턔왕이 막 사냥을 떠나려고 할 때 나타나 함께 떠나고 싶다며 태왕을 잡
고 애면글면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국상과 중신들은 기가 막혔는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관희야, 보름 후면 짐이 돌아올 것이다. 걱정하지 말거라. 태왕비는 그럴 사람
이 아니다. 사냥은 남자들만 갈 수 있단다.”
 “폐하, 소첩은 태왕비가 무섭습니다.”


 관희가 태왕이 탄 말의 고삐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태왕이 관희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고 나서 겨우 궁성을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관희는 태왕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들었다. 태왕이 없는 평양성은 조용했다. 적어도 보름 동안은 궁성이 조용할 것 이다.


 “관희를 불러라.”
 태왕비 연씨(椽氏)가 갑자기 관희를 불러오라고 하였다. 궁인들은 태왕비의 처
사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한 번도 태왕비가 관희를 부른 적이 없었다. 궁인이 관희에게 달려갔다.


 “나는 몸이 아파 움직일 수 없다. 태왕비께 나중에 몸이 좋아지면 찾아뵙겠다
고 전하거라.”
 관희는 칭병하며 태왕비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태왕비는 관희의 응답에 노발대발하며 궁인들을 앞세우고 관희를 찾아왔다. 태왕비는 태왕이 궁성을 비운 틈을 타서 관희를 궁성 밖으로 내보낼 셈이었다. 관희는 태왕비가 온다는 말에 나인을 보내 소비(小妃)에게 구원을 청했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은 같은 관노부 출신인 소비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태왕비께서 어인일로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오셨습니까?”


 같은 궁성 안에 살지만 태왕비가 관희를 일부러 찾아오거나 관희가 태왕비를
찾는 일은 거의 없었다. 관희가 아무리 태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의 입장이라고 하여도 태왕비가 직접 방문한 이상 누워만 있을 수 없었다. 관희는 억지로 일어나 태왕비 에게 고개 숙여 예를 갖췄다. 


 “그동안 네가 천한 몸으로 태왕을 모시느라 고생하였다. 너는 이제 그만 네 고
향으로 돌아가거라.”


 태왕비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관희는 눈앞이 캄캄했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
었지만 태왕이 사냥터로 향하자마자 태왕비가 찾아올 줄 몰랐다. 관희는 기가 막혔다.


 “태왕비님, 소첩은 태왕 폐하의 명령이외에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깊이 혜량하여주셔요.”


 관희가 두 눈을 크게 뜨고 태왕비를 노려보며 저항하였다. 태왕비는 관희가 제
발로 궁성을 나가기 전에는 강제로 끌어낼 수는 없었다. 관희가 보통 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태왕비는 관희의 반응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강하게 반발하자 겁박의 수위를 높였다.


 “네년은 관노부의 천하디 천한 신분으로 신분에 맞지 않는 호사를 누려왔다.
네가 태왕의 총애만 믿고 함부로 날뛰고 있지만 그 총애가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 내가 좋은 말로 할 때 나가면 너는 네 자식과 목숨만은 구할 수 있을 것이야. 그러나 네가 고집을 부린다면 조만간 너와 네 자식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다. 잘 생각하여라.”


 태왕비는 관희에게 마치 자비를 베풀 듯 했다. 궁인들이 두 여인의 언쟁을 숨죽
이며 지켜보았다.  


 “저는 절대 못 나갑니다. 태왕 폐하의 명령이 있기 전에는 죽어도 나갈 수 없습
니다.”


 “나의 명령은 곧 폐하의 명이나 같다. 궁궐내 궁인이나 후궁들 문제는 태왕비의
소관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 네가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어디 너의 오만방자함이 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겠다.”


 태왕비가 한바탕 풍파를 일으켜놓고 물러갔을 때 소비가 관희의 처소로 찾아
왔다. 그녀는 태왕비와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태왕비의 처사를 듣고 소비는 노발대발하였지만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었다. 두 여인은 한참 동안 태왕비를 성토(聲討)하면서 자신들의 배경인 관노부의 미약함을 탓했다. 태왕비가 태왕이 없는 틈을 타서 관희를 노골적으로 핍박하는 것도 관희를 후원하는 관노부의 세력이 나약하기 때문이었다.


 “여아야, 너는 즉시 저잣거리에서 쇠가죽을 구입해서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부
대를 만들거라.”
 “왕후님, 갑자기 웬 가죽부대입니까?”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관희는 소비와 태왕비를 곤경에 빠트릴 묘수를 찾다가 가죽부대를 만들어 음
모(陰謀)를 꾸미기로 하였다. 여아는 궁인들과 저자거리를 다니며 쇠가죽을 구입하여 관희의 지시대로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가죽부대를 만들었다. 궁인들은 가죽부대를 만들면서 의아해 했지만 도무지 관희의 속마음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태왕비님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신이 속히 지시를 수행하겠습니다.”


 연나부 소속 주부(主簿)가 태왕비가 건네는 밀지(密旨)를 받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태왕비의 사적인 일을 도맡아 처리해 온 심복이었다. 그는 태왕비가 불속이라도 들어가라면 주저없이 들어갈 사람이었다. 


 “이 일은 나와 국상, 주부 그리고 변방의 장수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일만 잘
되면 내가 그대의 장래를 보장하겠습니다. 만일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나와 상관없는 일로 처리되어야 합니다. 명심하세요.”
 “소신, 목숨 바쳐 성사시키겠습니다.”


 주부는 즉시 위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요서 지역으로 달려갔다. 그곳의
수비를 책임지고 있는 장수는 연나부 소속으로 태왕비와 가까운 인척이었다. 


 ‘관희, 네년이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태왕비는 주부가 나가고 나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태왕을 수행하는 신료들은 모두 계루부와 연나부 소속이었다. 
그들은 태왕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경쟁을 하였다. 노루가 멧돼지가 나타나면 몰이꾼들과 합심하여 태왕 앞으로 사냥감을 몰았다. 몰이꾼들은 두 편으로 나누어 징과 꽹과리를 치며 이산 저산을 누볐다.

 

 태왕은 사냥 첫날과 둘째 날 사슴과 노루를 잡아 신하들에게 하사하였다. 태왕은 명궁은 아니었지만 어려서부터 활을 잡았던 터라 사냥에 자신이 있었다. 셋째 날도 태왕은 중신들과 산하를 누비며 화살을 날렸다.


 “태왕 폐하, 역시, *추모태왕의 신기(神技)가 폐하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
하루에만 사슴을 열 마리나 잡으셨습니다.”


 명림어수가 태왕에게 고하자 중신들이 뒤를 이어 입을 열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태왕의 칭찬 한마디였다.


 “폐하, 과연 명궁이십니다.”
 “폐하, 소신들은 추모태왕께서 현신하신 줄 알았습니다.”   


 “과연 폐하십니다. 오늘 잡은 사슴과 노루로 안주거리를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실컷 드시고 즐기십시오.”

 

 * 추모왕(鄒牟王) - 주몽

 

 중신들의 뇌꼴스러운 아부가 줄을 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태왕은 술을 내리고 사냥한 고기를 굽도록 명했다. 매일 사냥한 노루, 사슴, 여우 등이 술안주로 제공되었다. 보통 초저녁에 시작된 술잔치는 밤늦게까지 이어지곤 했다. 술자리가 끝나면 태왕은 명림어수와 다시 술잔을 들었다. 독대하는 자리에서 두 사람간의 주요 안건은 관희에 관한 것들이었다.


 “폐하, 소신이 저자거리를 자주 나가 백성들의 반응을 살피곤 하는데 차마 듣
기 거북한 말들이 돌고 있사옵니다.”
 “듣기 거북한 말이라뇨?”


 태왕은 대취한 상태에서도 명림어수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명림어수는
관희와 태왕의 은밀한 사생활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궁성 밖에 돌고 있다는 것과 관희가 태왕비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내용을 전했다. 국상의 말을 들은 태왕은 마치 관희와 즐기던 기기묘묘한 행태의 방사(房事)가 백성들에게 공개된 것 같아 얼굴을 붉혔다.  


 ‘짐의 사생활이 어떻게 백성들 귀애까지 들어간단 말인가? 궁인들이 소문을 내
고 있음이 틀림없다. 환궁하면 궁인들을 문초하여 입단속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짐이 더 큰 망신을 당할 수도 있겠어. 그리고 관희가 태왕비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관희는 관노부 출신이고 태왕비는 연나부 출신 아닌가? 관노부는 연나부에게 적수가 되지 못하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단 말인가? 아무튼 짐이 회궁하면 별도로 알아봐야 겠어. 국상의 말만 믿고 함부로 속단할 수 없다.’


 태왕이 고개를 푹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명
림어수는 한 번 더 태왕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는 태왕을 모시고 궁성에서 멀리 떠나 있는 상태에서 관희에 대한 일을 확실하게 매듭지을 참이었다. 


 “폐하, 환궁하시면 관희를 냉궁에 거주하게 하시던지 아니면 궁에서 내치셔야
합니다. 지금 상태로는 오부연맹의 결속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正)을 두고부(副)를 가까이 두심은 만백성이 바라는 바가 아니옵니다.”
 “고민해보겠습니다.”

 

 태왕은 국상의 거듭되는 관희 처결 문제를 계속 묵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태왕이 즉위 하자마자 일어난 친 아우 예물(預勿) 등의 반란을 순식간에 진압한 명림어수였다. 동천태왕이 위나라 관구검의 공격을 받고 환도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할 때도 앞장서서 도운 세력이 국상과 연나부였다. 태왕 혼자서 대제국의 살림을 꾸려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폐하, 요즘 위나라의 대장군 사마사(司馬師)와 그 측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같이 위중한 때 폐하께서 한 여인의 치맛자락을 잡고 계실 때가 아니옵니다. 오부연맹의 단합을 꾀하고자 하신다면 먼저 관희를 내치셔야 합니다.

 

 관희는 출신성분도 미천할 뿐만 아니라. 오부연맹의 단결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게다가 이상한 행동으로 폐하의 옥체를 상하게 하고 성총까지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소신의 충언을 간과하지 마소서. 한 여인으로 인하여 자칫 수습할 수 없는 국난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명림어수의 말이 도를 넘고 있었다. 하지만 태왕은 그의 말에 불편한 감정 표현
을 할 수 없었다. 태왕은 꺽져 보이는 국상을 볼 때마다 명림답부를 떠올렸다. 


 “짐을 위하는 국상의 충언을 명심하겠습니다.”   


 태왕이 압록수가 있는 지역으로 사냥을 나간지도 열흘째 접어들고 있었다. 매
일 반복되는 사냥과 밤마다 이어지는 주연에 태왕의 심신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아무리 기골이 장대하고 강건한 무사라고 하여도 열흘 이상 지속되는 강행군에는 견디기 어려웠다. 중신들이 태왕을 위하여 준비한 술자리도 태왕의 적적한 심신을 달래지 못했다. 


 “폐하, 소녀는 압록수 근처 큰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입니다.  국상 어른의 부
름을 받고 감히 폐하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국상의 부름?’


 태왕이 중신들과 주연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 무렵 예쁘게 단장한 한 처녀가 태
왕의 침소가 있는 막사로 들었다. 소녀는 국상이 태왕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들여보낸 여인이었다. 태왕은 여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상당한 미색을 갖춘 미녀였다.

 

 늘씬한 키에 풍만한 둔부, 가늘고 야들야들해 보이는 허리, 미소 지을 때마다 움푹 파인 보조개, 단순호치(丹脣皓齒),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까만 머리칼이 무척이나 관능적이었다. 태왕은 그녀를 끌어안고 침상에서 운우지락을 즐기고 싶었지만 입술을 깨물었다.


 “짐은 혼자 있는 것이 좋다.”
 태왕은 시침(侍寢)을 들기 위하여 막사에 든 여인을 내보내고 깊은 생각에 빠졌
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육덕이 풍덕한 관희를 안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멀리 사냥터에 나와 있으니 관희의 생각이 간절하였다.                                   


 ‘또 다른 관희를 만들 수 없다. 짐과 지내면 압록수 처녀를 환궁할 때 동행해야
한다. 지금도 태왕비와 관희가 싸움을 하고 있지 않은가? 짐이 사냥터에서 여인을 취하여 돌아가면 백성들이 비난을 할 것이야. 국상이 엉뚱한 일을 벌였구나.’


 만약 궁성에서 국상 명림어수가 미녀를 소개했더라면 태왕은 기꺼이 미녀를 맞
이했을 것이었다. 태왕은 막사 밖으로 내보낸 미녀가 아쉬웠다. 그렇다고 다시 들라고 하기에는 체면이 서질 않았다. 태왕은 관희의 농염한 모습을 떠올리며 억지잠을 청해야 했다. 사방에서 이름 모를 산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태왕이 잠이 들고 새벽이 지나 동이 틀 무렵이었다. 두 명의 전령(傳令)이 태왕과 사냥꾼들이 주둔하고 있는 야영지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경계병들과 먼저 명림어수와 대면하고 긴급한 사안을 알렸다.


 “뭐라, 양맥(梁貊)에 위나라 군사들로 보이는 대군이 집결하고 있다고? 틀림없
으렷다?”
 “국상, 사실입니다. 이 전령통지를 보십시오.”


 국상은 태왕과 사냥을 떠나기 전에 태왕비와 모종의 계획을 꾸몄다. 태왕의 마
음을 움직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외세의 침략을 가장하여 긴급한 상태를 만드는 일이었다. 국상은 얼굴이 백짓장처럼 변해 전령이 넘겨준 통지문을 들고 태왕에게 달려갔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태왕은 국상의 보고를 받고 기침하였다. 


 “국상, 양맥이라면 선대왕 때 위나라 관구검의 군사를 대파한곳이 아니오? 그
곳에 위나라 군사가 쳐들어왔단 말이오?”


 태왕은 명림어수의 보고를 받고 지금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갔다.
간밤에 과음한 상태라 아직도 취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태왕은 냉수를 한 사발 들이켜고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썼다.


 “폐하, 동천태왕 때 우리 고구려 군사가 관구검의 군사 육천여명의 목을 벤 곳
이 맞사옵니다. 그러나 나중에 동천태왕께서 너무 군사력을 과신한 나머지 우리 군사 일만 팔천 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때 패전으로 환도성이 불타고 선대 태왕은 옥저까지 피신하셨습니다.”

 


 국상 명림어수의 말에 태왕은 6년 전 악몽 같은 사태를 상기시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이 지금 궁성을 떠나 사냥을 나와 있는 상태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태왕은 정신이 아득하였다. 지금 상태에서 믿을 사람은 명림어수 밖에 없었다. 한동안 멍청한 상태로 앉아있던 태왕이 정신을 수습하였다. 


 “구, 국상, 이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명림어수는 짐짓 놀라는 안색을 하고 태왕을 안심시키려 했다.

 

 명림어수와 태왕비의 목표는 태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사태를 지나치게 키울 경우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 자신과 태왕비가 짜고 벌이는 것이 탄로 날 경우 아무리 국상의 신분이라 하더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본인이 양맥으로 달려가 미리 구상한 대로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야 했다.  


 “소신이 이 길로 즉시 양맥으로 달려가 위나라 군사를 쫓아 보내겠습니다. 소
신을 보내주소서.”


 태왕은 후둘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나 막사 밖으로 나왔다. 소식을 접한 군
사들과 몰이꾼들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태왕은 군사에 관한 전권(全權)을 명림어수에게 위임하고 즉시 군사들을 거느리고 양맥으로 달려가도록 하였다. 태왕은 사냥꾼들과 서둘러 궁성이 있는 평양으로 향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