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19. 11. 12. 16:30

 

 

 

 

 

 

 

            - 본 작품은 고구려 제6대왕인 태조왕의 어머니 부여태후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부여 출신 여인으로 고구려 왕자 재사(再思)와 혼인하여 아들 궁(宮)을

              낳습니다. 그녀는 7살의 궁을 고구려 태왕의 지위에 앉히는 여장부 입니다. 

              또한 고구려가 주변의 약소국을 정벌하여 대제국으로 발전하는데 기틀을 마련한

              여걸이기도 합니다. 그럼, 천천히 감상하세요. ....... 여강 최재효 -

 

 

 

 

 

 

 

 

                                                                        

 

 

 

 

 

                                                 여풍

 

                                                                                                                                                                                    - 여강 최재효

 

 

                                         2

 

 

 

 

 해우 태왕의 기이하고 잔학한 행동으로 인하여 5부 연맹도 상당한 부담을 떠안

아야 했다. 자신들이 뽑은 태왕이었기에 순진한 숫백성들의 지청구도 고스란히

 5부 연맹의 원로들이 받아야 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가뭄과 기근으로 민심은 이

미 해우 태왕과 특히 소노부 수장과 장자들에게  욕설과 원망으로 돌아갔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후한(後漢)이나 부여 또는 백제와 사로국이 국경을 넘으면

대책이 없을 것 같았다. 부여부인은 아들 궁(宮)을 고구려의 태왕에 앉히는 것 보

다 고구려의 존속이 불투명해질까 걱정이 태산 같았다.


 5부 연맹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은연중 태왕에 대한 반역(反逆)의 조짐이 서

서히 일고 있었다. 그미는 대월단의 구성이 완료되자 부단장으로 좌보대인을 임

명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에 돌입하게 했다. 그미는 대월단에 명령하여 해우 태왕

의 경호를 맡은 두로의 뒤를 조사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계루부를 포함하여 조정의 주요 인사들과 지방장관들의 비리를 캐

도록 지시하였다. 대부분 그미가 가지고 있는 살생부에 이름이 적혀 있는 인사들

이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찾은 그미는 계루부 소속 장자들을 초대하였다.

그미의 초대를 받은 장자가 스무 명 쯤 되었다. 


 “우리 고구려는 신실하지 못한 태왕으로 인하여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각자의 일로 바빠 신경을 쓰지 못할 때 혼군(昏君) 해우 태

왕의 마구발방으로 백성들만 죽어나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한나라와 주변국에서 호시탐탐 우리 고구려를 노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몇몇 소국들이 우리 고구려를 뜨개질하며 국경을 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왕은 엉뚱한데 신경을 쓰며 나라의 안위를 모르쇠하고 있습니다. 이대

로 가다가는 선대 태왕들의 피땀이 어린 국토가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 계루부가 어찌해야 합니까? 수수방관하고 있어야 합니까? 여러분들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곁에 지아비 재사가 앉아 있었지만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지어미 부여부인의 이

야기를 듣고 있었다. 


 “대부인, 지금의 태왕을 폐위시켜야 우리 고구려가 살 수 있습니다. 조속히 태왕

을 끌어내립시다.”


 계루부 소속이면서 조정에 출사하고 있는 사자(使者)가 그미에게 고했다. 그는

불같은 성정이지만 오래전부터 재사와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그의 제안에

장자들은 잠시 귓속말을 나누었다.


 “사자의 말씀은 좋지만 우리 계루부의 힘만으로는 지금의 해우 태왕을 폐위시

키기 어렵습니다. 소노부를 제외한 절노부(絶奴部), 관노부, 순노부(順奴部)와 조속히 밀약을 맺고 함께 행동해야 승산이 있습니다. 이점을 중점 토의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미가 다른 방안을 주문하였다.


 “관노부에는 기마병이 오천 명이나 있습니다. 반드시 관노부의 수장과 타협을

봐야 합니다. 기마병 한명은 보병 열 명의 몫을 합니다. 우리 계루부도 기마병 오

천 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와 관노부만 단단히 결속이 된다면 소노부와 관병

(官兵)은 크게 두려워할 상대가 아닙니다. 또한 절노부와 순노부의 병사들이 전

투 경험이 많아 그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당장 태왕을 끌어내릴 수 있습

니다.”


 조정에 출사하고 있는 선인(先人)도 침을 튀겼다. 그미는 장자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경청하며 속으로 계산하기 바빴다. 지아비 재사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면

벽 수도하는 스님 같았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회의장 안에 흐르고 있었다. 사내

들의 헛기침, 침 넘기는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그때 계루부 출신 우태(于台)가 그미의 눈치를 한번 보고 입을 열었다. 그는 전

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인물이며, 병법에도 능해 그미와 통하는 바가 많았다.

그의 굵직한 목소리가 멍청히 앉아 있던 장자들을 호통 치는 듯 실내를 쩌렁쩌렁

울렸다.

 

* 우태 - 고구려 초기 족장에 버금가는 관직

 

 “우리 계루부가 관노부 등 나른 노부(奴部)와 연계하는 것도 좋지만 소신은 소

노부와 관군을 정면으로 맞서는 것 보다 비전투 작전을 제안합니다. 즉, 전투를

하지 않고 이기는 방법입니다. 일찍이 *손무(孫武)가 말하기를 지피지기(知彼知

己)면 백전백태(百戰百殆)고, 부지피지기(不知彼知己)면 일승일부(一勝一負)며, 부지피부지기(不知彼不知己)면 매전필패(每戰必敗)라 했습니다. 


 즉,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상태에서 싸운다면 백전백승할 수 있고, 상대를 모

르고 나만 아는 상태에서 싸우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며, 상대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싸우면 싸울 때마다 패한다.’ 는 뜻입니다. 우리가 과연 소노부

를 얼마나 알고 우리 계루부의 상태를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지가 싸움의 관건

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태의 말에 장자들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 볼 뿐이었다.

 

* 손무 - 고대 중국 춘추시대 전략가.  손자(孫子)는 그의 경칭이며, 손자병법을 지었다.

 

 “우태님의 말씀이 백번 지당합니다. 또한 손무는 모공편(謨功編)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상병벌모(上兵伐謀), 기차벌교(其次伐交), 기차벌병(其次伐

兵), 기하공성(其下攻城) 즉, 최상의 전법은 상대의 모략을 깨뜨리는 것이며, 그

다음이 상대의 외교를 끊어 놓는 것이며, 그 다음이 상대의 군대를 치는 것이며,

최하의 방법은 상대의 성(城)을 공격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상의 네 가

지를 놓고 볼 때 역시 상대의 모략을 깨는 방법이 최우선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지원에 힘입어 계루부를 가장 강력한 조직으로 만들고자 노력하

고 있습니다. 정면으로 상대의 병력을 친다거나 본거지를 공략하는 방법은 우리

에게도 상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책략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전략을 탐

지하여 그에 따른 맞대응 전략을 구사하거나 또는 상대방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

게 움직여 숨통을 조이는 방안을 토의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이 점을 감안하시

어 전략을 짜보세요.”


 그미의 말에 장자들은 정신이 번쩍 드는지 자세를 바르게 하고 진지한 자세로

회의에 임했다. 회의가 길어질 조짐을 보이자 그미는 하인들에게 술과 안주를 들

이게 했다. 아무래도 경직된 분위기에서는 자유롭게 속내를 털어놓기가 어려울

듯 했다.

 

 그미는 술 몇잔에도 경직된 분위기가 좀 처럼 풀어지지 않자 회의장 옆에 주석

(酒席)을 준비하고 장자들에게 자리를 옮기도록 안내했다. 그미가 장자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르며 독려하였다. 장자들은 그미가 술을 따를 때 너무 황송하여

몸둘 바를 몰랐다.


 “대부인, 고맙습니다.”
 “대부인, 영광입니다.”


 “대부인,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대부인,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그미가 장내에 있는 장자들에게 술을 따르고 나서 건배를 제의하고 자유로운 분

위기를 유도하였다. 장자들은 그미의 대쪽 같은 성정을 잘 알고 있는지라 구지레

하거나 삿된 언행을 경계하였다. 술이 서너 순배 돌고나서 그미가 손뼉을 치자,

미인(美人)들이 장자들 곁에 앉아 술시중을 들었다. 그미가 계루부의 실질적인

실력자가 된 뒤로 장자들의 회의방식을 과감하게 바꿔버렸다.


 이전까지 지아비 재사가 이끄는 계루부 장자회의는 딱딱하고 지루하여 회의에

참석한 장자들이 하품을 해대거나 졸기 일쑤였다. 그미가 지아비 대신 계루부의

주요 안건을 다루는 장자회의 진행을 맡으면서 분위기를 확 바꾸었다.

 

 회의가 길어지거나 지루하다고 판단되면 그미는 음주가무를 곁들여 회의를 흥

겹고 자유분방하게 만들어 장자들의 환심을 사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였다. 미

희(美姬)의 시중을 받으며 마시는 술로 사내들의 경계심과 이기심은 간데없고 그

미에게 칭찬을 하느라 왁자했다.


 그미가 또 한 번 손뼉을 치자 이번에는 반라 차림의 무희(舞姬)들과 악사들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백설처럼 고운 미희들이 풍악에 맞춰 나비처럼 훨훨

날며 다양한 춤을 선사했다. 그녀들은 속살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흰색 비단 날

개옷을 입었는데, 현란한 율동을 연출할 때마다 풍만한 젖가슴과 늦가을 박처럼

탐스러운 둔부(臀部)가 무척 자극적이어서 장자들은 말초신경을 다스리느라 안

간힘을 써야 했다.

 

 주연이 겸해지는  회의는 보통 이틀 정도 진행되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술에 취하고 미희들에게 반한 장자들은 어깨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했

다.


 “과연 대부인께서는 사내들의 마음을 알아주시는 분입니다.”
 “암요. 두 말하면 잔소리지요. 고구려 최고의 여걸입니다.”


 “우태대인, 오늘밤도 코피를 쏟게 되셨습니다 그려. 시중드는 미인의  육덕이 기

가 막힙니다.”


 이틀 간 진행되는 회의에 참석한 장자들은 술시중 드는 미희와 동침하는 것을

불문율로 여기고 있었다. 모든 것이 미인계(美人計)를 적절히 구사하는 그미의

전략의 일환이었다. 내부 결속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전략이라 할

지라도 소용이 없었다.

 

 주연이 끝날 때까지 그미는 지아비 고추가 재사(再思)와 함께 자리를 지켰다.

재사는 계루부 장자들을 고도의 전술로 자신의 심복처럼 부리는 지어미 부여부

인의 묘수에 탄복하였다. 


 “부인, 오늘 장자회의에서 몇몇 쓸 만한 안건이 나왔습니다만, 부인이 구상하는

또 다른 방책이 있는 것입니까?”


 재사가 술잔을 비우고 그미의 눈치를 살폈다. 재사는 그미가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것을 처음에는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단시일 내에 계루부의 모든 장자들과 주요 인사들을 휘어잡는 능력을 보고 기가 막혔다. 이제는 계루부 뿐만 아니라 다른 노부(奴部)의 수장들도 재사보다 그미를 더 신뢰하고 두려워했다.


 “소노부를 포함한 노부들을 우리 계루부가 장악할 묘책이 필요합니다. 제가 생

각하는 방안이 우태가 말한 바와 같습니다. 우선 5부소속 장자들의 비리와 불법,

탈법 사항을 조사하도록 대월단에 지시해놓았습니다. 오늘 장자회의는 새로운 방책을 도출하기 보다는 장자들을 위무하고 고추가의 지시를 잘 따르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대월단의 보고를 받는 즉시 좌보대인과 우태대인을 불러 향후 대책을 논의해 보

려고 합니다. 고추가께서는 계루부의 움직임이 태왕이나 소노부에 포착되지 않도록 적극 힘써 주셔요.”


 그미가 지아비의 잔에 술을 따르며 은근한 눈길을 주었다. 재사는 그미의 붉은

입술과 통찰력 깊은 언변을 좋아했다. 


 “나는 부인만 믿습니다. 부인은 문무를 겸한 장수입니다. 나는 왕궁에서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하여 한 세월 눈치만 보며 살았습니다. 부인도 아시다시피 아버

님 유리태왕은 의심이 많고 변덕이 심한 분이었습니다.

 

 큰형님 도절태자(都切太子), 둘째형님 해명태자(解明太子)는 아버님의 의심병

으로 자결하셨고, 셋째 대무신 태왕 무휼(無恤) 형님과 다섯째 민중 태왕 해색주

형님은 고구려 태왕의 지위에 있었지만, 결코 순탄한 삶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해우 태왕은 무휼 형님의 아들이면서 나에게는 조카입니다. 조카가 지금

조정 중신들과 백성들로부터 욕을 먹고는 있습니다만, 태왕의 지위를 내려놓을

만큼 타락하거나 정신 나간 상태는 아니라고 봅니다. 부인께서는 5부의 수장과

조정 중신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나는 지아비로서 부인의 일에 왈가왈부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일이든 정도에

벗어났다고 판단되면 한 마디 할 겁니다. 나는 나이도 있고 건강도 여러모로 좋지

않아 태왕의 위(位)에는 미련이 없습니다. 나는 두 번이나 태왕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하늘이 나를 원치 않는 게 분명합니다.”


 그미는 지아비 재사의 말에 크게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미의 속내에는 아

궁(宮)이 있었다. 궁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영민하고 신체도 튼튼하여 그미

에게 대권(大權)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게 했다. 물론 민중 태왕 해색주에게도

아들이 있었지만, 5부 연맹 회의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해우에게 태왕의 자

리를 넘겨줘야 했다.

 

 이제는 해우 태왕의 생모도 없는 상태라 그를 든든하게 받쳐줄 후원 세력이 없

었다. 태왕이 소노부 출신이지만 소노부 장자들은 태왕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

변해 줄 사람에게 기대고 있는 추세였다. 


 해우 태왕은 권좌에 앉자마자 그의 아들 익(翊)을 태자에 봉했다. 해우 태왕은

숙부인 재사가 건재하고 조카 궁까지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유고시 아들 해익에

게 태왕의 지위가 계승되야 하는 보장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의 왕비는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호화로운 생활에 길들여진 왕

비는 고관대작들의 부인을 초빙하여 연회를 열고 사치를 일삼았다. 아들 해익이

태자에 봉해지자 왕비는 할 일이 없었다.


 고구려가 건국되고 나서 지금까지 태왕이 실덕(失德)하거나 실정(失政)으로 부

하에게 피살된 적이 없었다. 다음 태왕은 당연히 태자 해익이 계승할거란 확고한

믿음이 그녀를 방탕과 허욕으로 내몰았다. 새벽이 되자 주연은 파하고 장자들은

술시중을 들던 미희의 부축을 받아 이미 배정된 방으로 향했다.

 

 재사와 그미가 좌보대인과 우태대인을 은밀히 불렀다. 두 사람 모두 부부의 지

극한 후원을 받고 있는지라, 두 사람을 신뢰하고 존경하였다.


 “고추가 대인, 대부인, 소인 좌보 들었습니다.”
 “우태가 두 분을 뵙습니다.”


 좌보대인과 우태대인이 재사 부부가 거주하는 내실로 들었다. 시비들이 새로

주안상을 들였다. 그미는 장자들의 의견을 듣고 지아비와 두 대인을 불러 구체

적이고도 세밀한 방책을 확정하고 싶었다.


 “잘 오셨습니다. 늦은 밤 우리 네 사람이 간밤에 장자들이 쏟아낸 묘안들을 구

체화 시키고자 오시라 했습니다. 혹시, 내가 두 분의 잠자리를 방해 했다면 깊이

이해하세요. 미인은 얼마든지 있답니다.”


 그미가 두 대인의 눈치를 살폈다. 좌보대인과 우태대인은 잠자리에 들려다 말

고 그미의 부름을 받았다. 좌보대인은 미희를 끼고 밤새 열락의 시간을 보낼 생

각에 달떠 있었고, 우태대인 역시 오랜만에 가인(佳人)의 체취를 흠뻑 맛보고 싶

어 했다.


 “대부인, 어제 대월단원들이 보고한 대략적인 사안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소노

부 소속 고추가와 우보 그리고 장자 세 명의 비리가 포착되어 그들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소노부 고추가와 우보는 타인의 농지를 헐값을 주고 강탈

하다시피 빼앗았습니다.

 

 또한, 그들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양민들이 제때에 *도지((賭只)를 내지 못하

자, 그들의 딸들을 강제로 빼앗아 첩실로 삼고 있습니다. 첩실의 숫자가 무려 스

무 명에 이릅니다. 


 또한, 장자 세 명도 대동소이 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소노부 소속 백성들의 원

성이 하늘을 찌를 정도입니다. 그밖에도 절노부와 관노부의 일부 장자들이 엄청

난 비리를 저지르고 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대략 서른 명의 5

부 연맹 소속 인사들의 비리가 드러났는데, 늦어도 닷새 안으로 비리의 전모가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기대하십시오.”


 “좌보대인의 노고를 내가 충분히 보상할 것입니다. 비리를 철저하고 세밀하게

파악하여야 뒤탈이 없습니다.”


 좌보대인은 흥분하여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기도 했다. 좌보대인의 보고를 받은

그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도지 - 풍년이나 흉년에 관계없이 해마다 일정한 금액으로 정하여진 소작료.

 

 “그밖의 건들에 대해서는 조만간 총괄적으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좌보 대인이 그미에게 보고를 마치고 술잔을 비웠다.


 “우태대인, 어떤 계략을 가지고 계신 듯한데, 회의석상에서 차마 말 할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는 우리 네 사람뿐이니 안심하세요.”


 재사가 우태대인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음험하게 생긴 우태 대인은 오래전

부터 재사의 수족 역할을 해왔다. 재사에게 사소한 일이라도 일어나면 그는 마치

자신의 일 인양 발 벗고 나서서 일을 해결하였다. 그 역시 재사가 두 번이나 태왕

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을 가슴 아파했다. 그는 재사나 그미의 명

령이라면 곧장 불속이라도 뛰어들 만큼 믿음직스러운 충복이었다.


 “고추가 대인, 아니 왕자님, 일벌백계의 시범이 필요합니다.”
 “우태대인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그미가 우태대인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이미 비리가 파악된 자들 중에서 중요인물 두 사람을 처단하여 국내성을 비롯

한 주요 대성(大城)에 그들의 비리를 자세히 적은 벽서(壁書)를 붙이는 겁니다.

그리되면 비리가 있는 자들은 몸을 사리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왕자님과 대부인께서 비리에 연루된 자들을 개별적으로 은밀히 불

러 경고를 하거나 제3자를 통해 경고하면, 그들은 자신의 비리가 드러날 것을 염

려한 나머지 두 분에게 달라붙어 살려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때 두 분은 그들에게 충성 서약서를 받아내십시오. 그 서약서는 그들을 옭아

매는 장치가 되어 두 분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수행할 것입니다.”


 “좋아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재사가 흡족한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습니다. 좌보 대인은 소노부의 고추가를 제외한 장자 중에서 한 명을 고르

고, 관노부에서도 한 사람 골라 조속히 시행하세요. 두 사람을 처벌한 주체가 누

구인지 절대로 드러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대월단에게 다시 명령하여 해우 태왕

을 지근에서 경호하는 두로의 뒤를 철저히 캐라고 하세요. 욕심 많은 그자를 털

면 먼지가 엄청날 것입니다.”  


 “존명, 대부인의 명을 받잡겠습니다.”
 두 사람이 물러나자 재사의 저택은 고요하였다.

 

 이따금 저택의 외부에 있는 객사(客舍)에서 남녀의 용쓰는 소리나 코고는 소리

가 들렸다. 객사 밖에는 계루부의 병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객사에

는 계루부를 대표하는 장자들이 숙면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잡인의 근접은 엄격

하게 차단되었다. 객사에 든 장자들 중에 제법 나이가 어린 인사들은 밤잠을 설

쳐가며 시침(侍寢)드는 미녀를 끌어안고 열락을 향해 달려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떤 객실에서는 여인의 교성과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밤새 흘러나왔고 또 나

이든 장자가 든 객실에서는 여인의 투덜대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기도 했다. 밖

에서 경계를 보는 병사들은 소리가 나는 객실 문 앞에 서서 객실 안에서 진행되

고 있을 요지경을 그리며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그미가 가끔 소집하는 계루부

장자회의에 빠지는 장자는 몸이 심하게 아픈 경우를 빼고는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