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19. 11. 5. 00:15










    - 본 중편 역사 소설은 신라 진흥왕과 백제 성왕의 딸인 후궁 부여소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6세기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습니다. 그때 백제와 신라는 나제

  동맹을 맺고 고구려의 남침을 막아냈습니다. 그런데 신라 진흥왕이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을 죽

  이면서 두 나라는 백여 년간 원수의 관계가 됩니다. 그럼, 재미있게 감상하세요. -


                                                                                                   2019. 11. 5.



                                                                                                    여강 최재효












                                                                         








                                  부여비



                                                                                                                                                                                                                                              - 여강 최재효



                                                                                            終


 

 백제왕이 신라군 장수 김무력 휘하의 도도(都刀)에게 참수되고 며칠 후에 전개

된 신라와 백제 연합군 간의 치열한 전투는 보름 정도 계속되었다. 일진일퇴를 거

듭하던 신라와 백제의 전투는 결국 백제 연합군의 전략 부재(不在)와 백제왕의 피

살 그리고 일사불란하지 못한 군 지휘체계의 문제로 인하여 백제 연합군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백제 연합군은 왕의 피살로 심적으로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 백제 연합군 총사

령관인 백제의 태자 부여창은 부왕의 죽음으로 일시적으로 사기가 충전한 병사들

의 신라군을 향한 적개심과 분노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개전 초기부터 여의치 않

았다. 


 관산성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고 처절했던지, 백제와 신라군의 피가 시냇물처럼

흘러서 방패가 핏물 위에 떠다녔다. 전투에 참여했던 백제군, 왜의 야마토(大和),

아라가야의 병사 삼만여 명은 전쟁의 달인 김무력이 이끄는 신라군의 매복과 신출

몰하는 전술에 말려 그만 전멸당하다시피 했다.


 이때 신라군에는 노련한 장수인 거칠부(居柒夫), 구진(仇珍), 비태(比台), 비서

(非西), 노부(奴夫), 서력부(西力夫), 비차부(比次夫) 등이 전투에 참여하여 신라

군 총사령관인 김무력과 호흡을 맞췄다.


 백제군은 부여창과 일부 군 수뇌부만 탈출하였을 뿐, 이만구천육백여 명의 삼국

연합군은 관산성과 주변 벌판에서 몰살당했다. 부여창은 신라군에게 포위당했지

만, 신궁(神弓)인 왜군 장수 츠쿠시노쿠니노미야츠(筑紫國造)와 그의 부하 죽사(竹

沙), 물부(勿部), 막기위사기(莫奇委沙奇) 덕분에 간신히 신라군의 포위를 뚫고 탈

출할 수 있었다. 자칫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신라군에 잡혀 참수당하는 처참한

상황이 일어날 뻔했다.


 “부여창 태자가 너무 성급했스므니다. 부왕이 *시라기(信露貴) 병사들한테 사로

잡혀 참수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았고, 사기가 땅에 떨어진 연합군 병사들을 출전시

켰스므니다. 전투 결과는 뻔하였스므니다.”


 왜군 장수 유지신(有至臣), 물부막기무련(物部莫奇武連)과 츠쿠시노쿠니노미야

츠(筑紫國造)는 전쟁의 패전책임을 부여창에게 전가하기 바빴고, 가야군 장수 역

시 발뺌하기 급급했다.


 사비성으로 돌아온 부여창 이하 연합군 패장(敗將)들은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묵새기다가 각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부여창은 부왕의 죽음과 신라와의 전투

에서 철저하게 패전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며 자책하였다.


* 시라기 - 신라(新羅)를 왜국의 발음표기로 부르는 경우에 ‘시라기’라 부른다.
 
 관산성 전투 결과는 삼국의 정세 흐름을 바꿔놓았다. 관산성 전투에서 승리한 신

라는 반도 남부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백제 편을 들었던 대가야는 전

쟁에 패함으로써 완전히 소멸되었다. 마찬가지로 백제와 연합했던 왜의 세력도 반

도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백제 조정은 전쟁터에서 목 없이 돌아온 백제왕의 시신

을 임시로 매장하였다. 왕의 목을 찾아오면 장례를 치를 예정이었다. 


 “오라버니, 안됩니다.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시겠다니요?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전쟁에 패한 것이 어찌 전적으로 오라버니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늘이

잠시 백제를 돕지 않았을 뿐입니다.


 백제의 만백성은 지금 오라버니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서 권좌(權座)에 오르시

어 만백성의 침체된 마음을 다독여야 합니다. 또한, 신라 서라벌에 있는 언니를 생

각해서라도 속히 마음을 다잡고 백제를 중흥시켜야 합니다.”


 부여창은 곡기를 끊고 궁에서 출가하여 불제자가 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

다. 이에 그의 누이동생 매형공주(妹兄公主)가 부여창을 잡고 설득하였지만, 그는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나 말고 동생 부여계(扶餘季)와 임성(琳聖)이 있다. 그 두 아우가 다음 백제왕

의 위(位)를 잇는 게 현명하다.”


 “오라버니, 안됩니다. 두 오라버니는 유약합니다. 신라와 고구려의 침입을 막아

낼 분은 오로지 오라버니밖에 없습니다. 비명에 가신 아버님과 오백 년 백제의 사

직(社稷)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매형공주는 부여창에게 속히 백제 왕위를 이어받으라고 재우쳤다. 그뿐만 아니

라 대소신료들도 부여창을 찾아와 대권 승계를 독촉하며 애면글면하였다. 둘째 왕

자 부여계는 부여창에 비해 문무(文武)를 겸하지 못했다.


 또한, 그는 괴팍한 성정으로 말미암아 중신들의 환심을 사지 못하고, 왕실 주변

을 베돌고 있었다. 막내 왕자 임성은 문예(文藝)에는 재질을 지니고 있으나, 전쟁

과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태자님, 지금 백제의 금상(今上)이 공석으로 있습니다. 신라가 호시탐탐 우리 백

제를 노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도 남하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

고 있습니다. 속히, 선대왕의 위업을 계승하시어 백제를 만세반석에 올려주소서.”


 “태자님, 백제의 만백성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속히 권좌에 오르시어 만백성

이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소서.”


 “소신들은 태자님 한 분만 믿고 있사옵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상태에 놓여 있

습니다. 속히 왕위에 오르소서.”
 부여창은 더는 고집을 부릴 수 없는 처지였다.


 자신의 불찰로 부왕이 죽고 신라와의 전투에서도 패하였다는 자책감을 속히 떨

쳐버려야 했다. 그는 만조백관의 하례를 받으며 백제의 제27대 왕위에 올랐다. 그

는 왕위에 오르자 신라를 공격할 계획에 골몰했다. 


 백제왕이 피살된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신라왕은 그미의 처소를 찾아가 위로하

거나 지아비로서 신실한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차마 지어미를 볼 면목이 없어서

그 럴 수 있었겠지만, 그의 행동은 누가 봐도 한 나라의 군왕으로서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그미가 참고 참다가 대전으로 달려가 지아비를 대면하였다. 왕은 그미를

보고 헛기침을 해대며 마지못해 아는 체했다. 


 “소비가 대전까지 어인 일입니까?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병 주고 약 주는 그의 언동에 그미는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왕, 이럴 수는 없습니다. 소첩의 부왕은 대왕의 장인이 아닙니까? 아버님을 처

참하게 죽인 것도 모자라 아버님의 목을 북창(北倉) 계단에 묻어 신라 백성들이 밟

고 다니게 한다니요? 어찌 그리도 잔인하고 신망스런 명령을 내리십니까? 속히 아

버님의 머리를 사비성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대왕, 소첩이 이렇게 청합니다. 소첩

의 간청을 들어주세요.”
 그미가 울며 왕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그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묵묵부답이었다. 중신들은 울며불며 지아비에게

매달리는 그미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누구 한 사람 그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

거나 두둔하는 자가 없었다. 그저 멀뚱히 서로의 얼굴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소비, 과인이 소비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과인이 신라왕으로서 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오히려 소비가 과인의 마음을 헤아려줘야 합니다. 한 나라의 왕은 때로

는 중신들과 백성들의 눈치를 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이 그러한 때입니다. 조

만간 과인이 특단의 조치를 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과인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대왕, 소첩의 태중에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습니까? 속히 아버님의

머리를 사비성으로 보내주세요. 소첩은 백제의 공주이자, 대왕의 지어미입니다.

딸이 되어 어찌 아비의 머리가 백성들에게 짓밟히는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

입니까?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라는 말이 있듯이 부왕께서 돌아가신 일은 어쩔

수  없다지만, 돌아가신 분의 신체 일부를 탈취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왕의 명령은 백제의 만백성에게 악감정을 심어주고 원한만 살 뿐입니다. 대왕,

소첩의 간절한 소원을 한 번만 들어주셔요. 이렇게 빌겠습니다.”


 그미가 대성통곡하며 왕에게 통사정하였으나 통하지 않았다. 왕은 당장 그미의

청을 들어줄 수도 없었다. 그의 애매모호한 답변이 그미를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대전에 있던 다른 중신들도 그미의 애절한 울음소리를 듣고 눈만 껌뻑거리며 헛

기침만 해댔다. 그미는 뇌꼴스러운 대신들의 얼굴을 후려갈기고 싶었다.       

    
 “소비, 그만 처소로 돌아가시오. 체통을 지키셔야지요. 과인이 조만간 소비 처소

를 방문할 테니, 그만 물러가 있으세요.”
 그미는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것만 같았다.


 대전을 나온 그미가 퉁퉁 부은 얼굴로 처소로 돌아왔는데 모랑이 그미를 기다리

고 있었다. 모랑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허청거리는 그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

었다.


 “왕후님, 소신이 문후 여쭙습니다.”


 그미는 열없어하는 모랑을 빤히 쳐다보았다. 모랑이 진정으로 자신에게 충성하

는 것인지, 아니면 말로만 충정을 보이는 것인지 이제는 의심만 갈 뿐이었다. 

 
 “풍월주님, 왕후님께서 몸이 편치 않으십니다. 요즘 아무것도 들지 못하여 건강

이 말이 아닙니다. 다음에 오셔요.”
 영란이 모랑에게 눈치를 주었다.


 “왕후님, 백제의 태자 부여창님께서 백제의 왕위에 오르셨습니다. 또한 백제조정

에서 훙서하신 대왕을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사비성 근처 능산리 언덕에 임시

로 매장했다고 합니다. 동시에 대왕에게 성왕(聖王)이란 시호를 추증하였다고 합

니다. 이제는 옥체를 추스르고 더는 신라가 백제를 침범하지 못하게 신라왕을 움

직이셔야 합니다.”


 ‘심맥부를 움직여 백제를 침범하지 못하게 한다?’
 그미는 다시 한번 모랑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백제를 위하는 그대의 마음을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대의 마음이 항상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왕후님, 소신은, 소신은 백제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랑이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그미는 부왕을 시해하려는 지아비의 음모를 풍

월주의 위치에 있는 모랑이 충분히 알 수도 있었을 거라고 판단했다. 어쩌면 모랑

이 자신을 감시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모랑이

물러가고 그미는 영란을 내실로 불렀다.  


 “내가 먼젓번에 알아보라고 하던 일은 어찌 되었느냐?”
 살 거리가 투실한 영란이 비치적대며,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그미의 시선이 무

척 따가웠는지, 그녀가 겨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어, 그게, 그것이…….”
 “그것이 무에 어찌 되었다는 거야?”
 그미가 영란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왕후님, 혹시, 혹시, 태중의 아기씨를 떼려고 하신다면, 한약재를 구입해서 달여

복용하시면 됩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면 이년을 죽여주소서.”


 “네가, 이미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구나. 지금 즉시 저자로 나가 그 약재를 사오

너라. 절대로 궁에서 나왔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미는 영란에게 돈을 건네고 자리에 누웠다. 신라왕손을 일부러 낙태시키려는

그미의 계획이 외부에 알려지면, 그미의 목숨은 위험에 처하게 될 수 있었다. 지아

비에게는 사도 왕비 사이에 태어난 동륜(銅輪), 금륜(金輪) 등 두 왕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미는 아버지를 죽인 지아비의 자식을 낳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저자에

나갔던 영란이 두 시진이 지나 *축시(亥時)쯤 돌아왔다. 그녀는 친정아버지가 비참

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밤낮 통곡하고 있는 그미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다.

그미가 일전에 독초(毒草)를 알아보라고 했을 때, 그녀는 그미가 태중의 아이를

떼려고 마음먹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었다. 


 나중에라도 그미가 정말로 태중의 왕손을 독약을 써 낙태한 사실이 밝혀지면 그

약을 궁중에 반입한 자신도 무사하지 못하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도 백제

왕이 신라왕의 간계에 빠져 피살된 사실을 알고 분노하고 있었다. 그녀도 백제인

이기에 백제왕의 죽음을 원통해 했다.


* 해시 - 밤 9시부터 11시 사이


 “그 약을 즉시 달여서 올리거라.”
 “왕후님, 이 탕약을 정말로 드실 겁니까? 뒷감당을 어찌하시게요?”

 “너에게는 해가 가지 않도록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왕후님,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셔요. 태중의 아기씨가 이제 겨우 넉 달 지났는

데, 너무 불쌍해요. 비명에 가신 대왕님께서도 외손(外孫)의 비명횡사는 절대로

원치 않으실 겁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습니다. 왕후님, 제발, 다시 한번 생

각하셔요.”


 영란은 울면서 그미를 설득하였으나 그미의 결단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미는 죽

음을 각오했다. 


 “아가야, 어미의 심정을 알아다오. 네가 부모를 잘못 만나 세상에 나와 보지도 못

하고 *천경(泉坰)에 드는구나. 설령 세상에 나와도 너는 친가와 외가의 틈바구니에

서 한평생 괴로워할 것이다. 그럴 바에는 세상에 나오지 않는 게 현명할 수도 있겠

구나. 외할아버지를 처참하게 죽인 비정한 아비에게 네가 배울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어미는 네가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곧바로 피안(彼岸)으로 들게 했으니, 그

죄값을 세세생생(世世生生) 달게 받으마, 미안하고 또 미안하구나. 부디, 이 어미

를 용서하지 말거라.”
 영란이 할 수 없이 탕약을 그릇에 가득 담아 올렸다.


* 천경 - 저승.


 “왕후님, 제발,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하셔요. 어찌 산목숨을 끊으려 하십니까? 아

무리 지아비가 미워도 아기씨는 미워하지 마시어요. 아기씨가 무슨 죄가 있겠습

니까?”
 탕약을 올리고서도 영란은 울며 그미에게 애걸복걸하였다.      


 ‘아, 내가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는구나. 아가야, 너도 나로 인하여 생명을

얻었지만, 이 어미도 너의 외할아버지로 인하여 생명을 받았단다. 미안하구나. 정

말로 미안하구나.’
 그미는 탕약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아-, 왕후님, 왕후님-,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영란은 대성통곡하며,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태중의 생명을 안타까워

했다.


 그미는 탕약을 한 사발 더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아기를 낙태하는 탕약을 마셨지

만 속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만, 쓴 물이 올라올 뿐이었다. 그미가 탕약을 마시고

약 기운을 이기지 못하는지 배를 쓸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영란은 마치 죽은 듯

잠든 그미의 곁에서 탄식하며 눈물을 찍어 냈다.


 ‘얘야, 아비는 이미 저승에 들었지만, 외손이 무슨 죄가 있어 그리했냐? 그 아이

가 태어났더라면 장차 신라와 백제의 원한을 풀고 화평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

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당장 어의를 불러 마신 약을 토해내거라. 어서, 아비

의 말을 듣거라. 그 아기는 신라의 왕자란다. 과인의 외손자란다. 어서, 약을 토해

내거라.’


 ‘아버님, 소녀는 그리할 수 없습니다. 아버님을 비명에 돌아가게 한 지아비를 용

서할 수 없습니다. 아버님을 돌아가시게 한 것도 모자라 아버님의 머리를 신라 만

백성이 밟고 다니게 한 짐승 같은 신라왕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 아기는 아버님

의 외손자이자 비정하고 잔인한 신라왕 심맥부의 씨앗입니다. 이 아이를 지워서

아버님의 복수를 하렵니다. 아버님은 모르는 체하셔요.’


 ‘얘야, 안 된다. 생명을 강제로 버리면 안 된다.’         
 그미는 몽중(夢中)에서 죽은 부왕과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부녀(父女)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잠을 자면서도 그미는 혼잣말로 중절거렸

다. 영란은 땀을 흘리며, 중얼거리는 그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미는 잠을 자

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 왕후님,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까지 오게 되었나요?”


 영란은 그미가 잠을 자면서도 자주 배를 움켜쥐며 경련을 일으키자 겁이 덜컥 났

다. 태중의 아기를 지우기 위하여 낙태약을 복용한 상태라 함부로 어의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 다시 그미가 편안한 얼굴로 깊은 잠에 빠진 듯 했다.


 부왕이 전장에서 비명에 간 뒤로 그미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 탓에 한숨도 단잠

을 자지 못한 상태였다. 그미가 가늘게 코까지 골며, 깊은 잠에 빠지자 영란은 일

단 안도하였다. 그녀도 그미와 같이 요즘 들어 단잠을 자지 못해 몸이 천근만근이

었다. 


 “영란아, 영란아-.”
 “왕후님, 왜 그러셔요?”


 인시(寅時) 중반쯤 그미가 갑자기 배를 움켜잡으며 영란을 불렀다. 그미가 입으

로 선홍빛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비단 금침(衾枕)은 핏빛으로 벌겋게 물들고 그

미의 침복(寢服)도 피로 붉게 물들었다. 동시에 그미는 하문(下門)으로 피를 쏟아

냈다. 영란은 피로 범벅이 된 그미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왕후님, 왕후님-.”
 “영란아, 속에 불이 난 것 같구나. 내가, 만약에 내가 죽으면 대왕에게 절대로 탕

약을 복용했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아, 알았지.”
 “왕후님, 그게 무슨 말씀이어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영란은 가슴이 떨리고 팔다리가 후둘 거려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간신히 일어나 수직하고 있는 어의(御醫)에게 달려갔다.


 “뭐라, 부여비 왕후님이 피를 토한다고? 어서, 어서 가보자.”
 영란은 어의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어의가 그미의 처소로 들어 피로 범벅이 된 채 고통스러워하는 그미를 보고 충격

을 받았다. 그는 벌벌 떨면서 그미의 맥을 짚었다. 진맥하면서도 그는 고개를 갸우

뚱거렸다.


 그미는 탕약을 복용하면 아기만 사산(死産)되는 줄 알았다. 어의가 들자 그미의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왕비나 왕후의 처소에 어의가 들면 진료나

진맥한 결과를 왕에게 고해야 했다.


 “어의, 부탁이 있습니다.”
 그미가 사색(死色)이 되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왕후님, 하명하소서.”
 “내가 열흘 정도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또한, 사흘 전에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잠시 하혈이 있었습니다. 넘어질 때 태중의 아기에게 영향이 있었던 듯 합니다. 어

의께서는 나의 말대로 대왕에게 고해주셔요. 어의께서 사실대로 고하면 여러 사람

이 죽고, 내 말대로 고하면 한 사람만 죽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어의의 아비는 고구려계통 사람으로 신라 왕실에 귀의해 중간 관등(官等)의 벼슬

을 지낸 바 있었다. 어의는 최근 그미의 생부인 백제왕이 피살되고 그의 목이 북청

계단에 묻혀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 이 일을 어찌하나? 왕후의 부탁을 뿌리칠 수도 없으니. 한 사람은 태중에 있

는 왕의 씨앗일 테고, 여러 사람이라면 왕후와 주변 사람이 텐데. 한 사람만 죽는

다면 만사가 조용할 테고, 여러 사람이 피의자로 몰리면 왕궁에 피바람이 불 수 있

을 것이다.


 왕후가 하혈하고 피를 토한 정황과 진맥으로 볼 때 분명히 낙태약을 복용한 것

이 틀림없다. 내 입에 여러 사람의 목숨이 달렸구나. 아, 하필이면 내가 수직(守直)

하는 날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어의는 속으로 탄식하였다.           

            
 “진맥을 해보니 왕후님의 낙상으로 인해 태아가 위험에 처한 게 틀림없습니다.

대왕께 그리 고하겠습니다. 어쩌면 태아가 세상을 볼 수 없을 수도 있사옵니다. 마

음 단단히 잡수시기 바랍니다.”


 어의는 응급처치하고 즉시 대전으로 달려가 내관에게 그미의 상태를 알렸다. 왕

이 왕비와 곤히 잠들어 있는 시각이라 깨울 수도 없었다. 어의는 다시 그미의 처소

로 달려가 그미 곁에서 꼼짝 않고 앉아서 그미의 상태를 살폈다.


 그미는 배를 움켜쥐고 몸부림쳤다. 그미의 비명이 담장을 넘으면서 궁인들이 웅

성거렸다. 날이 밝을 때쯤 그미는 하문(下門)에서 어린아이 주먹만 한 핏덩이를 배출한 뒤에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내관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왕이 그미의 처소로

달려왔다. 혼절한 그미를 바라보던 왕은 정신이 아득했다. 왕은 그미를 안고 눈물

을 훔쳤다.


 “소비, 소비, 정신 차려보구려.”
 그러나 그미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숨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소비께서, 소비께서 그만 태중의 아기를 잃으셨습니다.”
 “뭐라? 그게 사실이냐?”


 왕이 어의의 설명을 듣고 탄식하며 가슴을 쳤다. 왕에게는 이미 두 왕자가 있었

지만, 할머니 지소태후(只召太后)의 슬하에서 큰 탓으로 응석받이로 자라 왕의 심

기를 불편하게 했다. 왕은 그미의 임신 소식에 은근히 왕자를 기대하고 있었다. 청

천 벽력같은 소식에 왕은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아아, 장인이 혼령이 되어 나에게 앙갚음을 하는구나.’
 신라왕궁은 부여비의 낙태 소식에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어수선했다.


 중신들은 모이면 그미의 불미스러운 일을 입에 올리면서 백제왕이 신라 왕실에

저주를 내렸다고 했고, 나인들은 사도 왕비와 다른 후궁들이 그미의 미모를 시기

하고 질투한 결과라며, 소문을 내고 다녔다.


 저잣거리에는 백제공주 부여비의 몸에 비명횡사한 백제왕의 혼령이 붙어 신라왕

의 씨앗을 단죄했다는 괴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근거 없는 소문은 금방 수그

러들었다. 그미의 낙태 소식은 사택랑에 의해 사비성에 전해지고, 백제왕 부여창

과 그미의 동생 매형공주는 울며 가슴을 쳐댔다.   


 그미가 태중의 아기를 낙태하고 어렵게 몸을 추슬렀다. 지아비는 그미의 낙태를

문제 삼지 않고 조용히 수습되기를 바랐다. 또한, 그미의 낙태와 관련하여 그 어

떤 기록도 남기지 않도록 했다. 관산성 전투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본 부여창은 전

열을 정비하고 부왕의 머리를 찾기 위하여 신라를 수시로 공격하였다. 


 가을에 고구려의 침입이 있었지만, 백제는 이를 막아내고 틈만 나면 신라를 공격

하였다. 백제의 공격은 신라군에게 피살된 왕의 머리를 찾기 위한 명분이었다. 신

라왕은 끊임없이 신라의 국경을 넘어오는 백제군의 침입에 시달리자 북창 계단

아래 묻혀 있던 백제왕의 머리를 수습하여 관에 넣고 백제로 보내려 하였다.


 하지만 백제에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던 일부 중신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계속해

서 백제왕의 머리를 서라벌에 둘 경우 성난 백제인들이 일치단결하여 신라와 전면

전(全面戰)을 불사할 것만 같았다.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라왕은 사신단

을 꾸려 백제왕의 머리를 백제로 돌려보냈다. 


 백제왕의 머리가 신라군에게 탈취된 지 5개월 만인 12월에 백제 사비성에 돌아

왔다. 백제조정에서는 임시매장된 왕의 시신을 꺼내 머리와 몸체를 붙이고 염습(殮

襲)을 한 뒤에 다시 관에 넣었다. 그는 사비성 인근의 능산리 언덕에 마련된 유택

에 들어 영면을 취했다. 


 “대왕, 소첩은 백제로 돌아가 부처님께 귀의하여 돌아가신 아버님과 햇빛을 보

지 못한 아기의 명복을 빌고 싶습니다.”
 “백제는 아니 되오. 서라벌에도 *가람이 있습니다.”


 “대왕, 소첩을 인질로 삼으려고 하시나요?”
 “과인으로 인해 소비가 크게 상처를 받았으니, 소비를 과인 곁에 두고 평생 속죄

를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 가람 - 사찰, 절.


 신라왕은 그미의 귀향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자유롭게 서라벌에 있는

가람에 나가 부처를 만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햇빛을 받아 파랗게 빛나는 그미

의 빡빡 깎은 머리를 가리기 위해 영란은 늘 고깔을 준비하고 뒤를 따랐다.


 왕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람으로 향하는 그미의 편의를 위하여 특별히 2인승

마차를 마련해 주었고, 호위 군사를 붙였다. 그미의 불심에 감동한 왕은 점차 부처

님을 만나기 위하여 그미와 함께 가람을 찾는 일이 빈번하였다.


                                                

                 
                                                                                              -끝-







                      _()_  끝까지 읽어주신 귀하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2019.11.05.
                                               인천 구월동 여강재에서 최재효 三拜







* 노후에 신라왕 김심맥부는 출가하여 불제자가 되었다. 그의 법명은 법운(法雲)이다.

  왕이 죽은 뒤에 나라에서 그에게 진흥(眞興)이란 시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