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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설집 - "꽃들의 암투" 서평

여강 최재효 2019. 5. 21. 00:38







   




 




      - 출간 : 2019.5.23일

    - 전국 서점 및 인터넷 구입 가능일 : 2019. 6. 20일 경





   


     [書評]


 

 

       꽃들의 암투 / 서평

        <역사란 고목에 핀 사무치게 서러운 꽃>

 

 

                                                                                                                  - 小說家 : 임하령 




     

1949자동차 도둑이란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William.C. Faulkner)는 현대 미국 문학에서 가장 영향

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시와 소설을 쓰고 때로는 그림도 그렸

. 포크너는 작가 생활을 하는 동안 그리 대접받지 못했지만 노벨상을

수상하고 난 뒤에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윌리엄 포크너 만큼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문자 언어에 쏟아 부은 사람

없다.’라는 미국 작가 유도라 웰티의 말처럼 포크너는 연대기적 서사

속에서도 다양한 시점과 비연속적인 시간 구조를 채택하였다. 소설가가

소설을 써서 명성을 날리려 노력한다면 그는 결코 명성을 얻지 못할 것이

. 소설가는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으면서 소설을 쓴다.


최재효 작가는 인간 심연에 존재하는 고독과 슬픔을 탐미하는 작가다.

작가는 10년 사이에 여러번의 병고(病苦)를 치르면서도 절필(絶筆)하지

않고 창작에 대한 열의(熱意)를 이어왔다.


작가는 이미 여러해 전부터 여러 권의 시집과 수필집을 발표한 중견작가

로서의 노련함이 엿보이는데, 해박한 역사적 지식의 칼날을 벼른 예리한

통찰력으로, 인류사의 거대한 대양을 퍼덕이며 헤엄쳐온 전쟁이란 잔인한

생물, 그 중에서도 한반도를 관통한 역사의 비늘을 훑고 배를 갈라 그 속살

을 한 점씩 저며 독자의 식탁 앞에 제공한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던 날 최재효 작가로 부터 이번에 상재한 꽃들의 암

에 대한 서평을 의뢰 받았을 때 나는 무척 놀랐다. 주변에 소설을 쓰는

작가가 많지만 역사적 사건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소설가는 많지

않다.


역사는 현대사이다라는 말이 있다. 500년 전, 1200년 전 사건을 면밀히

분석하여 현대적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일은 작가의 고혈(膏血)을 소모하는

고단한 작업이다. 씨줄과 날줄로 역사를 구성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 특유의 낮고 조곤한 목소리는 옛이야기를 시리게 문장화시켜, 인간본

성의 어둡고 지밀한 내면을 훑고 간 참혹한 각각의 진실은 어느새 역사란

고목에 핀 사무치게 서러운 꽃인 전설과 신화란 심층적 알레고리를 바탕으

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시간의 퇴적 아래 묻혀놨던 불편한 진실마저 탐미적인 문체로 인해 격상

되어, 희끗하게 색이 바래가던 고어체가 주는 신비로운 느낌으로 치환시키

, 작가는 역사의 벌건 환부조차 몽환적 리얼리즘으로 위무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 제1- <반도의 꽃>

 

반도의 꽃은 고향의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이 멍울진 한 조선인 처녀의

한 많은 일생의 비극을 그린 소설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란 양대 왜란으

로 포로가 된 조선 여인의 기구한 삶을 통해 조선 민초들의 놀람과 공포 그

리고 참람한 분노라는 비극적 삶을 재조명한 소설이다. 정유재란 때 전라도

순천에서 왜군에게 잡혀 포로가 된 소근비의 불행은 로마로 팔려가는 배안

에서 포르투갈 노예상인에게 처참하게 윤간을 당하면서 시작한다.


어쩌다가 조선의 여인들이 처참한 몰골이 돼야 한단 말인가? 그 잘난

나라님과 조정의 대신들은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들은

조선의 숫백성들이 이양인들에게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있는 현실을 알

고나 있는가?’

신음을 토해 내며 누워있는 여인들 중에는 이제 갓 열 살을 넘긴 듯 한

어린 소녀들도 있었다. 소녀들은 강간의 충격으로 싸늘한 바닥에 누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소녀들의 하체에서 흘러나온 선혈로 치마는 붉

게 물들어 있었다. 고향에 있는 동생보다 더 어린 조선의 꽃 같은 소녀

들이었다. (본문 중)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랄까. 소근비는 왜인 니시하라유키나가(西原行長)

에 의해 다른 나라로 팔려가기 직전 구조된다. 왜인과 부부가 되어 자식 둘

을 낳고 편안한 삶이 보장되지만 고향산천과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은 수

구초심의 질긴 뿌리가 되어 소근비의 영혼에 얽혀든다. 양대 왜란 후, 조선

에서 건너온 사명대사가 조선인 포로 송환을 위해 쇄환사로 오자 소근비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남편에게 조선으로 보내 달라고 하지만 그녀의 부

탁을 거절하고 집안에서는 소근비의 동태를 감시한다. 깊은 밤 소근비는

집을 탈출한다.

 

조선반도는 오래전부터 열도에 온갖 은혜를 베풀어왔습니다. 그런

부모와도 같은 조선 땅에 아버님은 야수와 같은 병사들을 이끌고 침범

하여 무고한 조선의 백성을 수도 없이 무참히 살육하였습니다. 저 또

한 아버님 같은 왜병의 손에 의해 생면부지의 왜 땅에 포로로 잡혀 왔

고요. 이 땅의 사람들은 그것도 모자라 조선 백성의 귀와 코를 베어와

이곳 교토에 코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비록 기모노를 걸치고 살았지만 제 몸속에는 엄연히 조선의 피가 흐

르고 있습니다. 자식이 어버이를 그리워하고 찾아가는 일이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이리도 매정하게 대하십니까? 저는 니시하라 가문에 들

어와 저 두 아이를 낳고 정성을 다해 키웠습니다. 저를 진정으로 며느

리라고 여기신다면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본문 중)

 

솔숲에 이는 바람과 대숲에 이는 바람조차 그 곡조가 다른데 어찌 사람이

제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으랴. 소근비의 불행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잔인한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삶의 한가운데서도 유

일하게 자신이 선택한 외침으로 인해 다시금 타살되어진 회귀의 본능이었

기에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한다. 한 국가나 사회에 균열이 생길 때 가장 무

력에 취약한 집단은 아이들과 여성들이다.


용사가 뒷걸음칠 때 무방비로 노출된 조선의 처자가 겪어야만 했던 가장

잔혹한 운명의 굴레 속에서, 소근비의 수구초심은 주권이 박탈당한 결과의

절망을 예시한다. 타의에 의해 고향을 박탈당한 소근비의 나약한 반항은

비극적 용기와 고귀함으로 역사에 검은 문신을 남김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심장에 상흔으로 박힌다. 용사는 지켜야 한다. 떠도는 자 돌아오게

하라. 독자의 뒷덜미에서 슬픔이 호통 친다.

 

 

 - 제2- <모말>

 

떠도는 자에 대한 부채는 -2- ‘모말로 이어진다. 삼국시대 신라 지배

층의 윤리와 가치는 군신유의(君臣有義)와 애국(愛國) 사상이라 할 수 있

는데, ‘모말이란 소설의 주제는 신라인 박제상의 기백과 눌지왕과의 정

치적 갈등과 해소를 다루고 있다.


모말이란 이름의 박제상은 역사의 표피적인 지식만으로도 우리에게 친근

하지만, 작가는 박제상의 활약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련의 임무 즉, 눌지왕

의 두 동생을 구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 그의 충절을 재조명한다. 당시 신라

내물왕이 죽자 사위인 실성왕이 왕권을 잡고 내물왕의 두 아들 복호와 미사흔

을 고구려와 왜에 인질로 보내 정치적 안정을 꾀하려 한다. 후일 고구려의 지

원을 받은 눌지왕이 즉위를 하자 동서인 박제상에게 동생들인 복호와 미사흔

을 구해 올 것을 명하는데,

 

경들도 알다시피 과인의 두 동생들이 고구려와 대화국에 볼모로 가

있습니다. 미사흔은 왜에 간지 십칠 년이나 되었고 복호는 고구려에

칠 년간이나 머물고 있습니다. 그들을 방치하는 것은 윤상(倫常)

도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또한 척령지회(鶺鴒之懷)라 했습니다.

과인이 어떻게 해야 삼상(參商)의 고통을 덜 방법이 있는지 말씀해보

세요.” (본문 중)

 

떠도는 자 돌아오게 하라는 여기서도 주제가 되겠지만, 과연 그 목적은

정의로운 것인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독자는 어렵지 않게 짐작하

는 바가 있으니, 눌지왕은 내심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직계혈손인 박

제상을 향한 견제의 수단으로 또 다른 떠도는 자를 계획하는 냉혹한 왕조

체제의 내면을 짐작할 수 있다.

 

눌지왕이 나를 두고 고민이 많은 듯 하구나. 단순히 대화국에 가서

미사흔 왕자를 데려오라고 한 것이 아니다. 야마토 정권과 우리 신라

는 견원지간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나는 대화국에 가면 살아 돌아올

수가 없을 것이다. 박씨 왕조를 재건하기에는 나를 지지하는 세력도

많지 않고 기회를 잃고 말았다. 나는 왜국에 가서 미사흔 왕자만 빼돌

리고 영원히 신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진정으로 눌지가 바라는

것이 동생 미사흔을 원하는 게 아니고 나의 불귀(不歸)를 원하고 있는

것이야.” (본문 중)

 

고구려에서 복호를 귀환시킨 박제상은 눌지왕의 또 다른 부탁으로 다시

왜의 야마토로 건너간다. 눌지왕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에도 박

제상은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비장한 각오로 왜국으로 향한 단심은 무엇

일까? 그것은 신라 정신을 지탱했던 군신유의(君臣有義)와 애국(愛國)

상일 것이다. 또한 인간이란 종()의 기저에 면면히 흐르는 떠도는 자

에 대한 연민이며, 자신의 희생을 통해 더 큰 정의를 이룩하려함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연민과 희생은 박제상이란 존재의 가치를 역사적으로

입증하게 되어 인간승리의 명백한 기록이 된다.

 

박제상은 왜국 병사들에게 술을 먹이고 미사흔을 신라로 탈출시

키는데 성공한다. 그는 체포되어 신공황후에게 끌려온다. 신공황

후는 박제상의 마음을 회유하려고 했지만 박제상은 황후의 제안

을 거절하고 부하들과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떠도는 자를 돌아오게 한 용사는 정작 자신은 불귀의 객이 되고 자신과 가

족은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되어 애통하기 그지없지만, 절대 권력아래서도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대해서는 자신만이 주권자임을 천명한 박제상의 용

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아린 가슴에 큰 귀감으로 남는다. 용사는

가슴에 명예의 칼을 먼저 새기고 손에 칼을 잡아야 한다는 교훈이리라.

 

박제상의 부인이 지아비의 죽음을 알고 두 딸들은 치술령에 올라 투신

하자 나라에서는 사당을 세워 그녀들의 영혼을 달래준다.

 

아무리 많은 꽃으로 장식해도 무덤은 늘 허망하다. 역사의 고목에 처연히

피어났다 별리의 고통에 분분히 낙화한 꽃들은 참람한 혀를 열어 가장 깊숙

한 아픔을 허망한 부조리의 표상, 망부석으로 기록한다.

 

    

 

- 제3- <꽃들의 암투>

 

역사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여인들의 암투는 말초혈관까지 긴장시켜 묘

한 흥분을 유발하는데, 그것은 남성이라는 강한 권력에 기생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뒤틀리고 음습한 여인권력의 속성 때문이리라. 소설 꽃들

의 암투는 고구려 유리태왕의 두 황후 화희송후라는 두 황후 간의

목숨을 건 싸움을 그린 소설로 작가는 억울하게 죽은 해명태자의 정치적

입지 및 왕실들 간의 암투를 조명한다.

 

翩翩黃鳥(편편황조) 雌雄相依(자웅상의)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念我之獨(염아지독) 誰其與歸(수기여귀)

외로운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고구려의 유리태왕은 가장 오래된 가사노랫말 황조가(黃鳥歌)’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유리태왕의 사랑스런 꾀꼬리는 한족 출신 왕후 치희(雉姬)였고,

이 사랑스런 꾀꼬리를 내 쫓은 자는 또 다른 황후 화희(禾姬)였다. 살아 별리의

고통은 생초목에도 불을 붙는다는데, 한 나라의 왕좌에 앉아서도 타의에 의해

자신의 애정이 좌절된 무력함은 극도의 분노로 배출되어 필연적인 보복을 불러

오니, 소설은 역사적 바탕으로 전개되는 왕실의 음모와 술수 그리고 타락한 권력

이 흔히 부르는 반인륜적 패륜으로 치닫는다.

 

주몽의 아들 유리는 고구려 2대 태왕에 오르자 국도(國都)를 졸본에서 국내

성으로 옮긴다. 그러나 해명태자는 졸본성에 남아 군사를 조련한다. 이에 불

안을 느낀 황룡국에서 해명에게 활을 선물로 보내 그를 제거하고자 한다.

 

태왕은 송후(松后)의 말만 듣고 해명태자를 폐하고 무휼을 태자로 앉히려 한다.

해명은 황룡국에서 선물한 활을 부러트린다. 태왕은 해명의 무례한 행동에 크게

화를 낸다. 태왕은 황룡국왕에게 해명태자를 죽이라 부탁한다. 해명은 황룡국왕

의 초대를 받고 황룡국으로 향한다. 송후는 황룡국 모란공주를 태왕에게 소개하고

동침하도록 한다. 해명은 황룡국에서 후한 대접을 받는다. 황룡국 선우왕은 해명

의 인품에 반해 죽일 생각을 접고 그에게 둘째딸 월희공주와 인연을 맺게 한다.


해명이 황룡국에서 무사히 귀국하자 태왕은 노발대발한다. 부왕이 해명태자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태자의 생모 화희는 무휼을 제거할 음모를 꾸민

. 태왕은 모란공주를 멀리하자 그녀는 가슴을 친다. 송후는 역으로 화희를 음

모에 빠트리기 위하여 화희의 측근들을 모란공주를 이용하여 함정에 빠트린다.

꽃이 화려해도 봄밤은 짧기만 한 것을…….


비극은 뇌성과 우박으로 쏟아져 하늘은 원망과 탄식 밖에 거두어 갈 것이 없었

으니, 고구려 건국 초기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은 왕실 여인네들의 암투는 가장

비극적 결말로 막을 내려 독자로 하여금 한동안 안타까운 침묵에 휩싸이게 한다.

 

    

 

- 제4- <일지랑>

 

일지랑은 이 소설집 중에서 가장 화려한 몽환적 리얼리즘을 구현한다. 중편소

설의 녹녹치 않은 분량을 엮는 광범위한 전개는 주제를 이루는 역사성과 더불어

작가 자신의 불교학에 대한 심도 깊은 내공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삼라는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인연에 의해서 소멸한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처럼 지극한 진리를 망각한 채

콩 심어 놓고 팥이 나오기를 바라는 기원이 있어 세상에 고민이 있다. 호불

(好不好)는 집착을 동반하게 되는데 대개 신구(身口)를 통해 일이 야기된

. 모든 존재와 조건들은 연에 따라 잠깐 나타난 것일 뿐 실체로 정해진 것

은 아무것도 없다. 호연(好緣)은 반드시 잡아야 하고 악연은 버려야 한다는

위험이 주변에 도사리고 있기에 인간사가 더더욱 혼란스럽게 전개되고 있

.(본문 중)

 

시공간을 가로질러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는 역시 사랑이 아닐까?

 ‘일지랑은 한 여자를 향한 남자의 일편단심과 이룰 수 없는 사랑, 그리고 삼각

관계에서 파생된 뒤틀린 음모를 현란한 터치로 그려내는데, 작가의 붓끝을 쫓아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사랑의 얼개는 남녀 간의 생물학적 사랑에서

출발하여 보다 높은 차원인 종교로 승화되니, 너와 나에서 우리, 그리고 모든 인

간에 대한 사랑으로 점진적으로 거듭나는 사랑의 변환은 인간 둥지를 박차고 아

라한의 세계로 비상한다.


일지는 신라 고승인 의상대사(義湘大師)의 아호인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라의 대표적 고승인 의상대사의 출가 전 자연인으로서의 사랑과 출가 후,

교와 국가관을 다룬 과정을 통해 나약한 인간의 좌절과 소망이 흥미진진하게 어

우러지며 소설적 재미를 드러낸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시대

적 운명을 타고 나니, 한 남자가 좌절된 사랑을 극복하고 어떻게 시대를 극복하는

큰 스승으로 우뚝 설 수 있었을까?


때는 신라 선덕여왕(660~670)년대 의상대사(일지랑)의 출가와 영주 부석사

창건비화 등을 통해 풀어내는 줄거리는 사뭇 흥미진진하다. 진안갈문왕이 딸

승만 공주의 배필을 찾기 위하여 무술대회를 개최한다. ‘일지랑이 최고상을

받자 승만 공주는 그를 배우자감으로 점찍는다. 그러나 일지랑은 이미 장래

를 약속한 여인 묘화가 있었다. 진안갈문왕은 김한신 장군을 만나 일지랑

사위로 삼고 싶다고 한다. ‘일지랑이 거절하자 승만 공주는 여왕에게 묘화를

당나라 공녀로 보내라고 한다. 결국 묘화는 당나라 공녀로 보내지고 당나라

등주에 도착할 즈음 바다에 투신한다.


묘화, 어머니, 여동생, 이모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일지랑은 불가에 귀의

하고, 의상(義湘)이란 법명으로 불제자가 된다. 승만 공주는 덕만 여왕이 죽

자 신라의 여왕이 된다. 그러나 그녀는 일지랑을 잊지 못하고 스님이 된 그

를 계속 감시한다. 구도에 정진한 일지랑은 화엄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의상 스님은 원효 스님과 당나라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도중에 원효 스님은

대오하여 서라벌로 돌아오고 의상 스님 혼자 당나라로 떠난다. 당나라 등주

에서 의상은 불법 밀입국으로 체포되고 유지인의 집으로 오게 된다. 그에게

는 신라 출신 수양딸이 있었다. 의상은 유지인의 수양딸이 10년 전 당나라 공

녀로 가다 투신한 묘화라는 것을 알고 서로 부둥켜안고 오열한다. 의상은 묘

화에게 선묘화란 법명을 지어주고 장안 지상사로 떠난다.


의상은 지엄 대사에게 화엄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는다. 선묘화는 의상에게

 공부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내준다. 의상은 신라로 돌아가는 길에 선묘화를

 만나기 위하여 유지인을 찾아 갔으나 배 시간 때문에 의상은 선묘화를 만나

보지 못하고 신라로 떠난다. 소식을 들은 선묘화가 떠나가는 의상을 보며

통곡하고 그녀는 바다로 투신하는데…….

 

선묘화가 낭떠러지에서 반쯤 내려왔을 때 갑자기 뇌성벽력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천지의 모든 유정들은 그 뇌성을 듣고 납작 엎드렸다. 오색

구름이 바다위로 자욱하게 깔리면서 하늘에서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만다라화, 우담바라, 만수화가 눈처럼 내렸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면서

연꽃에 앉아 있는 거대한 황금색 관세음보살의 여여한 모습이 보였다.

관세음보살 주변에 수만 명의 무리들이 합장을 한 채 한 목소리로 게송

을 염불하고 있었다.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표시하고 있는 부처의 찬란

한 빛이 얼마나 영롱하고 눈이 부신지 뭍의 유정들은 감히 눈을 뜰 수

가 없었다. 관세음보살의 거룩한 불갈음(不竭音)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선묘화여, 갸륵하도다. 너의 지극한 정성과 치성이 나를 감복케 하였

도다. 너를 호법신룡으로 변화시켜 세세생생 의상 곁에서 너의 서원(

)을 수행토록 하겠다. 너의 바람대로 불법을 수호하는 신룡이 되어 의상

이 신라를 불국토로 만드는데 헌신하도록 하여라. 너희 두 사람의 고결

하고 지극한 사랑이 정토(淨土)에 계신 부처님들을 탄복케 하였구나.

훗날 너희 두 사람은 정토에 들게 될 것이다.’


부처의 거룩한 사자후(獅子吼)는 선묘화와 의상에게 동시에 전달되었다.

묘음이 끝나자 허공에서 수만 명이 동시에 읊는 성불(成佛)을 찬탄하는 게

(偈頌)이 한 식경 쯤 천지에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해안가는 다시 평온

해졌고 주인을 잃은 난희의 애끓는 울음소리와 갈매기 우는 소리만 가득

하였다. (본문 중)

 

역사와 설화가 휘감아 도는 이 구절은 불교문학의 진수(眞髓)를 보여 준다.

나약한 인간이 타락의 바다를 건너 순수한 의지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자기

초월의 세계가 몽환적 리얼리즘의 극치로 그려지는데, 소설 속 두 남녀는 구도

자의 자세로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두 손을 모은다. 우리가 예전으로 돌아가

육욕(肉慾)의 늪에 빠져 음락(淫樂)에 심취한들 그 순간이 얼마나 가겠어요.

삼보에 귀의하여 정토(淨土)에 들어 영겁(永劫)을 함께 삽시다하던 의상의 숭

고한 바람대로 그들이 정토에 들었기를…….

 

 

- 제5- <정난주 마리아>

 

모든 평범한 사람은 시대를 극복하지 못함이 숙명이라. ‘정난주 마리아

는 이 소설 속 주인공의 삶도 참혹한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종교적 박해

로 모성이란 인간의 숭고한 의무를 다하지 못했던 한 여인의 애끓는 그리움이

 주제인 이 소설은 국가의 폭력으로 박탈된, 개인들의 숭고한 삶의 가치가

산산이 부서지는 인권 유린의 역사를 보여준다. 시대적으로 대치상황을 이루

던 국법과 종교라는 양자택일의 선택권은 당파싸움의 부패한 정치권력에게

이용된 너무나 악랄한 명분이다.


정적 제거의 도구가 된 종교박해는 여인에게 자식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게 된

너무나 참혹한 시련이었으니, 마치 생살을 뜯어내는 고통으로 자식과의 이별

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의 대가로 치르며 또 그 종교에서 위안을 받으며 살다간

한 여인의 슬픈 자취를 따라가 보자.

 

때는 1801년 정순왕후 대왕대비 김 씨가 어린 순조의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벽파는 남인 시파의 세력을 꺾기 위하여 대왕대비를 움직여 시파

와 종교적 신서파(信西派)에 대하여 일대 정치적 공세를 취하게 되었다.

벽파는 천주교를 무부무군(無父無君)의 멸륜지교(滅倫之敎)로 몰아붙여

탄압을 가하였다. 또한 그의 배후 정치세력을 일소하고자 대왕대비 언

(諺敎)로 박해령을 선포, 전국의 천주교도를 수색하였다.

 

`지아비 황사영의 백서사건으로 죄인이 된 정난주는 2살배기 아들 황경한

을 안고 제주도 유배 길에 오른다. 그녀는 아들을 평생 죄인으로 사는 것이

안타까워 제주도 가는 도중에 배가 풍랑을 만나 하추자도에 잠시 정박 중일

때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핑계를 댄다. 다행히 그녀의 아들 황경한은

하추자도 예초리 주민 오상선에 의해 발견되고. 정난주가 죽음에 임박하자

아들 황경한을 찾게 된다. 황경한은 어머니가 보내온 편지를 읽고 자신의 정

체를 알게 된다. 그는 오열하며 어머니 정난주를 그리워하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마치 귓가에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듯 느껴짐은 소설의

초안이 올라올 때 작가가 제주도에 잠시 체류 중이었던 것을 앎에 있어 교

감됨일 것이다. 고단한 심신을 휴양하러 간 제주에서조차 섬세한 촉수를

뻗어 민간설화의 편린을 모아 소설로 엮어내는 작가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제6- <을 불>


  

을불은 고구려 제15대 미천왕(美川王)으로 호양왕(好壤王)이라고도 부른

. 그의 이름은 을불(乙弗) 또는 우불(憂弗)이다. 그는 고구려 제13대 서천

왕의 손자이다. 봉상왕이 그의 숙부인 안국군 달가(達賈)를 죽이고 그의 동

생 돌고(咄固)를 죽이자 돌고의 아들이며 태자의 신분이었던 을불은 고구려

전역을 돌며 머슴과 소금장수로 숨어 지낸다. 서기 300년 실정을 거듭하던

왕을 국상 창조리(倉助利) 등이 폐하고 을불을 왕으로 옹립했다.


을불은 고구려왕이 되어 작중(作中) 그의 주장처럼 영토 확장에 힘을 기울

여 현도군(玄菟郡)과 서안평(西安平)을 점령했다. 또한 낙랑군(樂浪郡)

대방군(帶方郡)을 정벌하였다. 을불은 고구려의 위대한 정복군주였다.

(後趙)에 사신을 파견하여 중원세력과의 연결을 통해 모용부를 견제하기도

했다.


추모왕이나 대무신왕, 태조왕 등 여러 태왕들께서 밤잠을 못 주무시고

말 잔등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시며, 동벌서정하시어 지금과 같은 대제

국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삽시루는 동네의 파락호 같은 모용외의 침

입을 두 번씩이나 받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모용외가 서천태왕의 능을

파헤치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는 패악을 일삼았지만 삽시루는 수수

방관하고 있었습니다.


이 몸이 고구려를 책임지는 위치에 선다면 하늘을 이불삼고 대륙을 침상

으로 삼아 동서로 십만 리 남북으로 오만 리의 잃어버린 단군조선의 고토

를 반드시 회복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군왕이

될 것을 이 자리에서 확약합니다. 지금 고구려는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

에 서있습니다. 여러분이 고구려 천년 제국을 꿈꾼다면 이 사람을 믿고

따라 주십시오. 나 을불은 대륙과 사해를 아우르는 대제국 고구려를 만들

기 위하여 분골쇄신하겠습니다. 반드시 고구려의 기상을 만방에 알려 사

해가 우리 고구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조공을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중)

 

삽시루 왕의 실정이 이어지고 이에 백성들이 들고일어나자 을불은 마침내

국상(國相) 창조리와 중신들의 추대를 받아 고구려의 태왕이 된다. 을불

태자의 소금장수 이야기는 이미 동화나 구전(口傳)으로 많이 알려진 이야기

지만 작가는 당시의 정치상황과 백성들의 동향을 분석하여 세밀하게 작품화

하였다. 서론 부분이 완만하게 전개되다가 중반부 넘어가면서 스토리가 치

밀하고 박진감 있게 진행되면서 읽는 사람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한편의

스펙터클한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여섯 가지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한반도란 역사의 들판에 흐드러

지게 피어났다 스러진 들꽃 같은 삶들을 각각 조명함에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고 독자들과 담론하고자 한다. 영원한 패배라는 것을 알

면서도 묵묵히 삶에 맞섰던 인간이란 존재. 작가는 뿌리 채 뽑혀 내던져진

잡초들의 넋에 대한 연민으로 글 쓰는 내내 목울음을 삼키며 역사의 수레

바퀴에 무참히 짓밟혀 사라져간 인간의 존엄성을 고발한다.


전쟁이란 개인을 지우는 것. 폭력은 타인에게 삶을 강제당하는 것. 작가의

작업의지는 타인에 의해 지워진 개인을 조명하며 역사 속에 희미하게 구전

되어진 전설을 굳이 문학이란 서술로 독자 앞에 소개하는 사명감은 가장

비열한 악마의 비웃음 속에 갇힌 나약한 개인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

즉 휴머니즘(humanism)일 것이다.


H.W 허드슨은 소설은 인생의 해석이다.’라고 하였다. 선인(先人)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여강 최재효 작가의 열정이 오래 계속되어 한국문단에 신선한 향수

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변에 흔해 빠진 우수마발(牛溲馬勃)이나 잡기

(雜記)와 차별화 하면서 오래 돌올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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