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19. 2. 17. 08:38









                                                      








                     식은 죽 먹기란




                                                                                                                                               - 여강 최재효





     소독약 냄새 밴 병원밥 두려워하니 아내가 전복죽을 올렸다
     은은한 사랑이 철철 넘치는 천상의 음식이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하루 세끼로 용왕님 자손으로 만든 끼니를 선호하였다  


     36사단 신병교육대, 한 달 반 동안은 거의 죽음의 행보였다
     나는 조교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줄 그때야 비로소 알았다
     신성한 의무를 마치고 귀향했을 때 식은 짬밥이 먹고 싶었다


     전원에서 바닷가로 집터를 옮기고 단단하게 기둥도 박았다
     눈치껏 산을 하나 넘으면 누워서 먹을 수 있는 떡이 있었다
     뒤통수에 눈 하나 더 달고나자 밥 그릇이 일렬로 서있었다


     공자는 30에 이립(而立)하라 했으나 벗들은 달관한 듯 했다
     천명(天命)을 눈치 챘다는 그들, 삼시 세끼로 고기만 먹었다
     신명(神明)은 절대 땀 흘리지 않는 대가는 선물하지 않았다


     만유인력이란 사과가 저절로 입 안으로 떨어지는 법칙이지
     그런데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면 숟가락을 잃을 수도 있어
     하지만 관절통이 오니 내가 낙과(落果)가 되고 말았지 뭐야


     수양버들 아래서 사지를 쭉 뻗고 배 두드리던 시절은 갔다
     산 하나 넘으면 또 산이 버티고 있었고 떡은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에 눈알을 박아도 꿈같은 밥그릇은 나타나지 않았다


     집밥을 먹게 된 나는 그때 짬밥이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하루 종일 거실에 누워 빈둥거려도 떡을 맛 볼 수도 없었다
     죽은 몸에 싱싱한 빨판이 주렁주렁 달려 있을 때 먹어야 해



           - 2019.2.17. [0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