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공간/Essay 모음 1

휴대폰천하지대본야

여강 최재효 2018. 10. 5. 18:58












                               



 



            휴대폰천하지대본야




                                                                                                                                                  - 여강 최재효





 주인과 손님의 위치가 바뀐지 어언 20여년 쯤 되었다. 주객

(主客)이 전도(顚倒)된 것이 분명하다. 강상(綱常)의 도가 엄격

했던 조선 시대였다면 주인의 자리를 넘본 종놈을 멍석말이

해서 죽도록 장작개비로 두둘겨 팼을 터 였다.


 하룻밤 자고 나면 또 다른 별물(別物)이 나타나 주인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본성이 착한 우리민족은 바야흐로 노예로 전락될

명에 처했고 그 중 대다수는 이미 스스로 종의 신세가 되었다.

유사이래 인간 존엄성이 가장 숭고한 때에 이게 웬 변고란 말인

가?


 직장과 집이 가까운 관계로 나는 특별한 일이 있을때만 전철을

이용한다. 얼마전에 외부기관에서 주최하는 직무와 관련한 교육

에 참석하기 위하여 일주일 가까이 인천서 서울 경복궁까지 전철

을 이용하여 출,퇴근한 적이 있었다.


 휴가철이어서 그런지 전철 안은 크게 붐비지 않았다. 전철 안은

산사(山寺) 보다 더 적막하였다. 원인을 분석해 보니 전철 승객

대부분이 휴대전화 삼매경(三昧境)에 빠져 있었다. 앞좌석에

바투 앉은 남,녀는 연인처럼 보였지만 역시 전화기와 열애 중에

있어 대화는 없었다. 그 분위기가 너무 새퉁스러워 보였다.


 나는 전철 승객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임산부 배려석에 새치

름하게 앉아 있는 아가씨는 임산부인 듯한 여인이 승차한 것을

보고서도 모르는척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빈자리가 없었더라

면 나는 얼른 일어나 그 여자분에게 자리를 양보했을 게 분명

했다.


 나는 평정심으로 앉아 이웃들의 면면을 살펴 보았다. 신문이

나 책을 읽는 승객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10여년 전에는

전철역 입구에 여러 종류의 무가지(無價紙)가 널려 있었다.

가뜩이나 좁은 전철에서 신문이나 무가지를 보는 사람 때문에

더욱 붐비기도 했었다.


 부부사이에, 부모자식간에, 연인사이에 갈등을 조장하거나

관계를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휴대전화라 할 수 있

다.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막강한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 재벌, 폭력조직, 변호사, 의사? 아니

다.


 바로 휴대전화 이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부모는 아이에

휴대전화를 선물한다. 엄밀히 말하면 선물이 아니라 족쇄 또

항쇄(項鎖)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문명의 이기(利器)는 아이가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나의 하루는 휴대전화의 알람으로 시작하고 휴대전화 시간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든다. 물론 나의 하루를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데 손바닥 만한 분신(分身)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업무지시도 휴대

전화가 하고, 하루 일정을 알려주며, 안내하는 비서 역할도 휴대

전화가 한다.


 자동차 운전은 내가 하지만 휴대전화가 지시하는대로 따라야

다. 지시를 어기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갑작

러운 병으로 한달간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보다 앞서 여름에

도 담낭제거 술 때문에 보름 가까이 병상에 있기도 했다.


 가료와 휴식을 취해야 하는 나에게 가장 피곤한 상대는 손전

였다. 나는 고심 끝에 당분간 손전화의 수,발신을 정지시켰

다. 보름간 원시 자연림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의사와 간

호사 이외에 그 누구도 나에게 간섭하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일상화 되기 전인 1990년 중반 쯤으로 회귀하고

것이었다. 휴대전화라는 괴물이 나에게서 사라지고 나는 심

으로 안정과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것은 나의 착

이었다. 보름간 손전화를 서랍에 처박아 놓은 일로 인하여 나

지인들에게 큰 혼란이 생긴 것이었다.


 허약 체질로 자주 병원신세를 졌야했던 나의 화려한 이력으

로 내가 손전화를 정지시킨 일은 형제자매, 지인, 친구, 직장동

료들에게 온갖 추측을 낳게 하였다. 어떤 지인들은 물어물어

병원을 찾아 오기도 했다.


 내가 안 좋은 일을 당했을까 불안하여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하

였다. 나는 즉시 통신사에 의뢰하여 휴대전화 정지를 해제하였

다. 전화가 연결되자 수백통의 문자메시지와 이메일, 카톡 메시

등이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아, 내가 살아 있는 한 나의 분신을 잠재우면 안 되겠구나.’
 나는 휴대전화의 지시에 따라 행동해야하는, 자율권을 보장받

못하는 노예라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나의 똑똑한  분신의 활약으로 은행업무, 물품구

매, 공과금납부, 이메일 수발신, 화상미팅, 문서작성, 사진촬영,

형제자매와 자식들, 지인들 간의 의사소통 등 살아 있는 사람으

로서 해야할 일들을 수행해 오고 있었다. 이제는 병상에 있다

는 이유로 분신을 냉대할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갑자기 휴대전화의 사용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중년들은 인생의 반 이상을 휴대폰 없는 세상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지만, 휴대폰에 꺼둘려 살아

가는 미욱한 신인류(新人類)는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그들은 전쟁터에 나가며 총은 잊어도 휴대전화는 꼭 챙기리라.

적군을 앞에 두고서도 후방에 있는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단체 카톡을 하며, 어떻게 대처 해야하는지 물어보리라. 비단

이같은 상황은 한반도에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휴대전화의 보편성으로 이한 역기능도 많지만 순기능 또한 크

다. 산이나 바닷가에서 길을 잃거나 낯선 곳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나를 지켜 주는 것 역시 휴대전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분신

에게 너무나 의존하다보니 주인은 정작 헛똑똑이 아니면 멍청이

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가까운 지역도 실시간으로 전하는 휴대전화 앱을 보고

찾아가야 한다. 인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계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전화번호 3,40개를 기억하던 욀총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하인인 기계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해가는데 주인은

점점 퇴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부간, 부모자식간, 친지간,

이웃간에 손가락을 이용한 섬어(譫語)는 소통의 부재를 불러오

고, 오해와 곡해를 야기하여 척(隻)을 지기도 한다.


 더 늦기전에 최소한 집에서는 휴대전화를 멀리 했으면 한다.

가정이 비꾸러지지 않기 위해서, 부자유친을 위해서, 독거세대

의 급속한 증가를 막기 위해서라도 휴대전화라는 패악스러운

도깨비는 집 밖에서 사용했으면 좋겠다. 사람끼리는 상대의

얼굴을 보고 말을 주고 받아야 도타운 정감이 오고 간다. 사람

이 중심이 되는 시절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인가?



                                                                                                      - 창작일 : 2018.10.05. 오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