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공간/중편 - 일지랑

일지랑(終) - 의상대사님과 선묘낭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여강 최재효 2018. 8. 28. 18:35

 

 

 

 

 

 

 

 

 

 

 

 

 

                           

                            

 


                             용이된 선묘화 상상도                          

 

 

 

 

 

 

 

 

 

                                                                        일지랑

 

 

 

                                                                                                                                                     - 여강 최재효

 

 

 

                                           마지막

 

 


 화엄종은 화엄경을 근본 경전으로 한다. 화엄사상은 중국 한나라

이후 대륙에서 흥망한 왕조들이 새로이 체계화한 독창적인 사상체

계 였다. 동진(東晉) 때 인도 승려 불타발타라가 화엄경을 한역(漢

譯)한 이후로 연구가 활발해졌고,  511년 인도의 세친(世親)의 저서

십지경론을 모두 완역한 것을 계기로 지론종(地論宗)이 성립되었는

데, 이는 화엄종의 학문적 기초가 되었다.


 화엄사상 교리의 중심은 전세계가 일즉일체(一卽一切)·일체즉일

(一切則一)의 무한의 관계를 설하는 법계연기관이다. 그 원융무애

모습은 십현 연기를 설하며, 그 이유로써 육상원융(六相圓融)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이 여섯 가지의 모습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고, 서로 대

하고 있다. 총(總)이라 함은 전체를 의미한다. 우주 안의 존재들은

나같이 전체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 화엄종은 두순(杜順)을 시

조로, 지엄(智儼)을 2대조로 하여 이어오고 있었다.


 육로를 걸어 3개월 만에 의상은 종남산 지상사에 도착하였다. 당

라 말을 못하는 의상은 필화(筆話)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어렵

게 당나라 수도인 장안에 갈 수 있었다. 등주를 떠나기 전에 유지인

으로 부터 자세길 안내를 받았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었다. 의상

은 지상사에 도착하여 지엄을 만났다.


 “나무아미타불. 지엄 대사님을 뵙습니다. 소승은 신라국에서 온

이라 합니다.”


 “아미타파. 지난밤 꿈에 동쪽에서 거대한 나무가 자라 하늘이 나뭇

잎으로 뒤덮여 있어서 나무에 올라가보았습니다. 나무 위에 봉황의

지를 발견하였는데, 그 안에는 마니보주(摩尼寶珠)가 놓여 있었어

요. 해서, 오늘 특별한 손님이 오리라고 예상했는데 신라의 의상,

그대였구려.”


 지엄은 의상을 따뜻하게 제자로 맞아 주었다. 지상사에는 당나라

역에서 모여든 학승(學僧)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지상사의

생활은 매우 엄격하였다.

 

 학습과정에서 쳐지거나 경내에서 물의를 일으킨 자는 가차 없이

출되었다. 의상은 지엄의 각별한 지도 아래 화엄의 오묘한 진리

를 하나하나 체득해 나갔다. 지엄의 제자들 중에 당나라 출신인

법장(法藏)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나이는 의상 보다 훨씬 아래지

만 이미 화엄에 대하여 달통하고 있었다.


 지엄은 의상과 법장이 장차 화엄의 꽃을 활짝 피울 재목임을 알

아봤다. 두 사람의 수행이 절정에 이른 어느 날, 지엄은 두 제자

를 불렀다.

 

 지엄은 의상에게 의지(義持), 법장에게 문지(文持)라는 법호를

내렸다. 스승이 보았을 때 의상은 실천수행에 뛰어났고, 법장은

학문적 이론 탐구에 장점이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의상이 지상사에서 수도에 정진하고 있는 동안에도 선묘화는

인편에 의상이 입을 의복과 수도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수시

로 보내왔다. 그녀는 의상에게 단월(檀越)을 함으로써 자신도 불

도(佛道)에 전념자 하였다. 의상과 법장이 지엄의 여러 제자

들 중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공부한 화엄의 이치를 간결하게 요약하여 보거라.”
 지엄의 권유에 의상은 대승장(大乘藏)을 지어 스승에게 보였다.


 “스승님, 일별해보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내용은 훌륭하나 장구한 느낌이 든다. 핵심만 추려 간결하게

다듬어보거라.”
 의상은 다시 입의숭현(立義崇玄)을 지어 바쳤다.


 “고생하였다. 이것이 세존의 가르침에 부합된다면 영원히 사라

지지 않으리라.”


 지엄은 의상이 지어 바친 글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의상에게 핵심

골라보라고 하였다. 의상은 고심하다가 군더더기를 모두 버리

고 210자를 추려서 지엄에게 보였다. 이에 감동한 지엄은 의상에

게 그 문자들로 게송을 지으라고 하였다.

 

 의상은 그 문자들을 거두어 7언(言) 30구(句) 210자로 조성된 법

성게(法性偈)를 지어 스승에게 보였다.     

              

 “스승님, 이백 열 글자로 법계도(法戒圖)을 만들었습니다.”
 가로 15행, 세로 14행의 아름다운 도인 형태로 배치된 도서(圖書)

다. 법계도의 인은 사각형을 이루고 있고 중심의 법(法)자에서

시작하여 불(佛)자에 이르기까지 54개의 각을 이루면서 210자의

시가 한 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핵심은 사바의 중생들이 자신

근기에 따라 온갖 길을 경유하여, 끝내는 부처에게 이르는 화엄

의 진수표현한 것이었다.


 “오, 어여쁘도다. 화엄의 진수가 이 법계도에 그대로 녹아 있구

나. 장하도다. 신라의 꽃이 당나라에도 활짝 피었구나. 그대의 시

는 세세년년 여년세세토록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
 지엄은 의상이 바친 법계도를 보고 감탄하였다.

 

 늘 근엄하고 조용한 지엄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박수까지 치며, 

의상의 공로를 치하 하였다. 의상이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

던 스승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이때가 의상이 유학한지 8년째

되는 해였다.


 그러나 스승 지엄의 건강이 날로 악화되고 있었다. 제자들은 불

안한 얼굴로 지엄의 건강이 호전되기를 바랐지만, 날로 병세는 깊

어만 갔다. 668년 7월 지엄은 열반에 들었고, 의상은 사찰에 머물

며, 지금까지 배운 화엄사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스님, 묘화입니다. 화엄 공부를 마치셨으니 등주로 오시어요.

스님서 오시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지난 십년동안 단

하루도 스님을 잊은 적이 없었답니다. 어서 오시어요. 스님을 기

리느라 목이 빠지겠습니다. 스님, 일지-.’


 “헉-, 묘화, 묘화. 아직도 혼인하지 않은 게요.”
 의상이 새벽 예불을 마치고 잠시 요사채에 들어 눈을 붙이고 있

때 꿈속에 선묘화가 현몽하였다. 그녀는 원숙한 중년 여인의

모습었는데,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은 여전해 보였다.


 ‘선묘화가 아직도 독신으로 살고 있단 말인가?’
 꿈에서 깬 의상의 마음이 무거웠다. 등주를 떠나올 때 선묘화란

법명을 지어준 것이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 법명이 굴레가 되어 혼인을 하지 않고 자신이 등주로 돌아오

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

으로는 선묘화가 보고 싶기도 하였다.  


 나․당 연합은 백제에 이어 마침내 고구려까지 멸망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당황제는 백제가 망하고 백제의 고토(古土)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고, 고구려가 멸망하

자 역시 같은 이유로 고구려 땅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고구려 땅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당나라는 신라에 계림도독부를 설치하여 남삼한

땅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였다. 이에 문무왕은 당의 음모를 

간파하고 그들과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나라는 사전에 신라 조정의 기세를 꺾어놓기 위하여 문무왕의

아우 김인문을 인질로 잡아 놓고 있었다. 671년 어느 날, 당나라

조정 내린 신구도행군부대총관이라는 벼슬을 하고 있는 김인문

보낸 사람이 의상을 찾아와 서신을 건넸다.

 

 서신에는 당 황제가 곧 신라를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영

(囹圄)의 몸이니 스님께서 즉시 귀국하여 형님, 법민 대왕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기 바란다, 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가, 당에 건너와 그동안 조국 신라를 위하여 한 일이 별로 없다.

화엄 사상에 대한 공부도 마치고 스승님도 안 계시니 속히 내

나라 신라로 돌아가야 겠다.’


 의상은 동문인 법장(法藏)을 만나 작별 인사를 하고 신라로 향했

다. 그는 당나라에 처음 발을 내디뎠던 등주(登州)로 갔다. 등주에

는 선묘화가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의상은 10년 동안 자신을 위하여 단월(檀越)로 헌신하여준 그녀

을 칭찬하고 고마움을 전하려 했다. 의상은 먼저 신라로 가

는 배편을 알아보았다. 마침 신라 당항포로 가는 배가 한 시진(時

辰) 후에 있다고 하였다. 한 시진은 밥 한술을 천천히 먹을 수 있는

시간 이었다.


 “이보시오. 이 배 말고 다음 배는 언제 있습니까?”
 “열흘 후에 있습니다.”
 ‘뭐라. 열흘? 한시가 급한데 열흘 후 라니…….’


 “스님, 신라에 가실 거면 시간에 맞춰 배에 타셔야 합니다.”
 의상은 마음이 급했다. 다행히 항구에서 유지인의 집은 멀지 않았

다.


 의상이 부리나케 뛰어 유지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대저택에는 유

지인 노부부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 많던 하인들도 모두 어디 갔

는지 보이지 않았다. 10년 세월에 유지인의 가세(家勢)가 많이 쇠

락한 듯 보였다. 노인이 다 된 유지인은 금방 의상을 알아보았다.


 “아미타파. 대사님, 드디어 공부를 마치셨군요.”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두 어르신과 따님의 뒷바라지 덕분입

다.” 


 의상은 손수 작성한 화엄일승법계도를 유지인에게 선물로 건넸

다. 선물을 받아든 유지인은 감동하여 의상에게 큰절을 하며, 그간

의 자신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에 고마워하였다. 그런데 의상

이 아무리 둘러보아도 선묘화가 보이지 않았다.


 “스님, 딸아이는 관음사에 불공을 드리러 갔습니다. 조금 기다리

겁니다. 따분하시더라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유지인의 처가 차를 내오며, 의상에게 말했다.


 ‘아아, 이를 어쩐다. 신라로 가는 배가 곧 출항할 텐데…….’
 최근 신라와 당나라의 외교관계가 악화되어 예전에 이틀에 한신라

로 출항하던 상선이 열흘에 한번 출항하도록 당나라 조정에서 통제하

있었다. 의상은 발을 동동 구르며, 선묘화가 빨리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

랐다.


 “신라로 가는 배가 곧 출항을 합니다. 아무래도 따님은 뵙지 못할 것

습니다. 소승이 나중에 다시 당나라에 올 때 만나봐야 하겠습니다. 따님

이 오시거든 소승의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것을 전해 주십시

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의상은 지니고 있던 염주를 유지인에게 건넸다.


 “스님, 딸이 스님 오시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신라로

는 배가 곧 출항 한다니 가보셔야지요. 그 애가 오면 잘 이야기 하겠습

니다.”


 의상은 유지인 부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항구로 향했다. 가 막

항할 차비를 마치고 항구를 빠져나가려 하였다. 간신히 배에 올라

의상은 유지인의 집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서운한 마음을 간신히 달

래고 있었다.


 의상이 유지인의 집을 떠나고 얼마 후에 선묘화가 난희와 집

어섰다. 유지인은 마당에서 딸을 기다리고 있다가 염주를 건네며,

상이 집에 왔다가 배시간 때문에 항구로 떠났다는 말을 전했다.


 “아아-, 안 됩니다. 그대로 가시면 안 됩니다.”
 선묘화는 의상이 떠났다는 말에 맥이 풀리면서 혼절할 뻔 했다. 10년

을 기다린 꿈속의 임이었다.


 그 임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신라로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녀는 의상

이 돌아오면 입힐 법복과 소용할 물건이 든 상자를 안고 항구를 향해

달렸다. 상자를 품에 안고 달려가는 선묘화의 두 눈에서 떨어지는 눈

이 바람에 날렸다.

 

 "아가씨, 천천히 달려가세요. 숨차 죽겠어요." 
 난희가 뒤따르며 투덜거렸다. 
선묘화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 는 이

아득히 바다 위를 항해하며,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아, 서방님, 일지, 나를 두고 혼자만 가시다니요.”

 선묘는 의상이 탄 배를 바라보며 통곡하였다. 그때 배위에서 등주를

바라보고 있던 의상이 자신을 바라보며, 울부짖선묘화를 발견하였

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선묘화, 선묘화. 훗날 다시 만나요.”


 의상은 선묘화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연신 고개를 숙여 작별인사

하였다. 그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의상은 바랑

에서 목탁을 꺼내들었다. 관음경을 독경하였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

    옴 아라남 아라다  옴 아라남 아라다  옴 아라남 아라다

 

 

 선묘화는 스님이 독경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수습한 뒤에 항구

에서 가까운 산으로 올라갔다. 산 정상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였다.

 

 파도가 밀려들어 바위에 딪칠 때마다 하얀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산위에서 보니 의상이 탄 배가 잘 보였다. 선묘화는 의상을 향해 합장

하였다.


 “아가씨, 스님은 이미 떠나가셨어요. 집으로 돌아가세요.”
 난희는 산위에 서 있는 선묘화가 위험해 보였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부처님, 소녀는 지금부터 불법(佛

法)을 수호하고 의상스님을 보호하는 신룡(神龍)이 되고자 합니다.

부디, 소녀가 세세생생 의상 스님 곁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대자대비한 부처님, 소녀의 간절한 청을 들어주세요.”

선묘화는 서원(誓願)을 마치자 법복이 담긴 상자를 바다에 던지고

뒤돌아 집이 있는 방향으로 두번 절을 하였다.

 

 "아버님, 어머님, 못난 딸을 용서하여주세요. 인사도 올리지 못하고

먼저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베풀어 주신 두 분 은혜 저승에

더라도 잊지 않겠습니다."

 

 

“난희야, 잘 있어. 그동안 고마웠다.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자.”   

선묘화는 치마를 머리 위로 쓰고 낭떠러지에서 바다를 향해 몸을 던졌다.


 “아악-, 아가씨. 안돼요. 안돼요.”
 난희가 선묘화를 붙잡을 사이도 없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묘화, 묘화, 안 돼-. 안 돼-.”

 의상은 멀리서 선묘화가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 선묘화가 낭떠러지에서 반쯤 내려왔을 때 갑자기 오색

름이 바다위로 자욱하게 깔리면서 하늘에서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다라화, 우담바라, 만수화가 눈처럼 내렸다.

 

 그리고 하늘에는 연꽃에 앉아 있는 거대한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보

다. 동시에 관음보살의 거룩한 음성이 선묘화에게 전해졌다.


 “선묘화여, 너의 지극한 정성과 지성이 나를 감복케 하였도다. 너를

두관음으로 변화시켜 너의 서원을 수행토록 하겠다. 너의 바람대로

세생생 호법신룡이 되어 의상이 신라를 불국토로 만드는데 헌신하도록

하여라.”


 잠시 후, 바다는 평온해졌고 주인을 잃은 난희의 애절한 울음리만 가

득하였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교화하거나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33가지 모습

으로 응신(應身)하여 나투시는데, 그 모습은 용두관음, 양류관음, 지경

관음, 원광관음, 유희관음, 백의관음, 연와관음, 낭견관음, 시약관음, 어

람관음, 덕왕관음……. 쇄수관음 등이다,

 

 “아아-, 선묘화여. 선묘화여. 그대의 서원이 이루어 졌구려.”
 의상은 하늘에 관음보살이 나투신 모습을 보았다. 선묘화가 바다를

해 던진 상자가 배 가까이 다가와 멈췄다.


 의상이 그 상자를 건져 올려 열어 보았다. 비단으로 지은 법복과 모자,

염주, 목탁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의상이 탄 배가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로 나왔을 때 바람이 불지 않아

선원들이 돛을 높이고 배 좌우에서 노를 젓고 있었다.


 “배가 이상하다. 조심하라.”
 “배아래 거대한 괴물이 있다.”
 “용이다. 용이 배를 업고 헤엄을 치고 있는 거 같다.”


 “황해 용왕님이다.”
 선원들과 뱃사공 그리고 당나라에서 신라로 가는 상인들은 기이한

현상을 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배 꽁무니에서 물보라가 올라오고 거친 파도가 쳐도 배는 일정한

도로 남쪽으로 내달렸다. 의상은 뱃머리에 올라가 다시 목탁을 꺼내

관세음보살정근을 염불을 하였다.

 

  나무보문시현원력홍심대자대비구고구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의상이 탄 배는 이틀 만에 신라 당항포에 도착하였다. 그때까지 의상

은 뱃머리에 서서 밤낮으로 관세음보살 정근을 염불을 하고 있었다.

선원들과 상인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의상은 거대한 황룡으로 화

한 선묘화보고 있었다.

 

 의상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서라벌로 향했다. 서라벌에 의상이 당나라

에서 돌아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신라왕 김법민과 조정대신들 그리고

고승대덕들은 의상을 맞을 준비를 하였다. 왕은 서라벌 외곽까지 나와

서 의상을 맞이하였다.   

 
 “대사, 잘 오시었습니다.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폐하를 뵙습니다.”
 의상과 김법민은 서로 정중히 인사를 나누었다.


 “대사, 지금 신라는 대사의 법문 한마디가 절실할 때랍니다. 대사가

당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신라에까지 명성이 자자합니다. 우리 신라

성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하느라 많이 지쳐

습니다.

 

 두 나라는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두 나라 백성들과 심적으로 대립

고 있습니다. 화엄으로 그들을 모두 끌어안아 조속히 신라가 진정한 삼

한 일통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나무아미타불. 폐하 곧 그리 될 것입니다. 너무 심려치 마소서. 선왕

의 유지를 받드시어 삼국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당나라가 곧 신라를 침범할 것이니 이에 철저히 대비를 하셔야 합니

다.”
 의상은 김인문에게 받은 서신을 왕에게 건네고 사태의 시급함

뢰었다. 


 “나무아미타불. 의상 대사님을 뵙습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원효대사님을 뵙습니다.”


 두 사람은 당나라와 신라에서 각각 대덕이 되어 있었다. 서라벌 백성

들은 의상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의상서라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대사님, 백성을 어여삐 여기시어 편히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대사님, 법력으로 외적들이 못 쳐들어오도록 막아주세요.”


 “대사님, 환영합니다. 신라를 불국토로 만들어 주세요.”
 귀국 후 의상은 끊임없이 수행하며 상구보리하였고, 산천을 편력하

서 가는 곳마다 법회를 열어 하화중생하였다.


 의상은 왕명을 받고 관음도량인 낙산사를 창건하고, 서라벌 황복사

머무르면서 법민 왕의 고문역할을 하였다. 그가 가는 곳에는 언제

선묘화의 분신이 신룡(神龍)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의상

은 태백산에서 잠시 머물며 산천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정도 산세면 대왕의 의지를 받들어 세존의 말씀으로 삼국의

민의를 일통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겠다.”


 의상은 이곳에 화엄 사상을 펼칠 수 있는 대가람을 지을 뜻을 정하

곧바로 착수하였다. 그러나 이곳에 이미 일단의 권종이부(權宗異

部)의 무리들이 자리하고 있어 마찰이 불가피 하였다.


 “나무아미타불. 이곳에 백성들을 세세생생 부처님의 말씀으로 교화

고 구국할 수 있는 참도량을 지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곳에 터를 잡고 있소이다. 절을 지으려면 다른 곳을

알아보시오. 우리는 이곳을 비워줄 수 없소.”


 그들은 망국(亡國) 고구려에서 흘러들어온 유민(流民) 집단이었는데

규모가 5백여 명쯤 되어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의상은 갈 곳 없는

불쌍한 망국의 유민들을 어루만져 함께 불사(佛事)를 수행하고 싶었으

나, 그들은 완강하게 버티면 조금도 양보할 뜻이 없어보였다.


 의상이 바루에서 목탁을 꺼내 염불을 낭송하였다. 갑자기 산천이 진동

하더니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치면서 돌풍이 불었다. 무리들이 거주하고

있던 집들이 모두 산산 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언뜻 보아도 그 크기가 저택 100여개를 합친 것 보다 큰 바위

덩이가 허공을 날아다니고 거대한 황룡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며,입

에서 불과 물을 뿜어내며 으르렁 거렸다. 쑥대밭이 되어버린 산골짜기

목탁소리와 함께 수만 명이 부르는 듯한 게송(偈頌)이 들렸다.

 

 이에 놀란 무리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두려움에 떨면서 의상 앞에 엎

드렸다. 그제야 무리들은 의상이 보통 스님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너희들은 삿된 믿음을 버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라.”
 “이 순간부터 스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선묘화가 나를 돕는구나.’


 의상은 용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고마움을 표시하자 용은 하늘로 승

하여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의상은 무리의 도움을 받으며

가람 창건에 착수하였다. 나라에서도 의상이 태백산에 대가람을 짓는

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물자를 지원하였다.


 공사에 착수한지 반년 만에 가람의 실체가 드러났다. 가람의 치를

아래서 보면 산등성이를 따라 ‘華’와 같이 배치되어 있었다. 공사는

맨 위에 위치한 무량수전만 완공하면 끝나게 되어 있다. 의상은 가

람의 이름을 부석사(浮石寺)라 하였다.


 “대사님, 선묘화입니다. 저의 임무가 어느 정도 끝난 것 같습니다.

저는 용암(龍巖)으로 화하여 무량수전 아래에서 영원히 쉬고 싶습니다.

지금 저는 무량수전 뒤편에 길게 누워있습니다.”


 ‘선묘화, 선묘화. 안 돼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소.’
 ‘이제는 대사님을 따르는 제자와 백성들이 많습니다.’
 의상은 선몽에서 깨어나 터파기를 해놓은 무량수전 뒤를 살펴보았다.


 “아아, 선묘화여. 석룡(石龍)이 되시었구려. 사람의 인연이란, 이렇듯

무섭고도 기이합니다. 그대의 소원대로 불단(佛壇) 아래 그대를 안치

리다. 육신은 생로병사의 과정이 있으므로 그 수명이 한정이 있으나,

형상이 없는 마음을 깨치면 불멸하고 무궁하리니 곧 무량수라 합니다. 

깨우친 사람은 영원한 생명, 즉 무량수를 얻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

니다. 선묘여,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의상은 무량수전 터 뒤편에 길게 누워있던 바위를 옮겨 무량수전 터

묻고 위에 무량수전을 지었다. 부석사의 전체적인 가람 배치는 아래에

서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지형이 차차 넓어져서 마치 봉황이 날개를 활

짝 펼치고 날아오르는 형상이었다.

 

 신라의 절들이 대개 깊은 산속에 부석사는 특이하게도 산등성이에 기

다랗다 자리하고 있었다. 의상은 부석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3천여

명에 이르는 제자를 양성하였다. 의상이 만약 출가하지 않고 승만공주

와 혼인하였더라면 요한 그녀의 뒤를 이어 신라의 지존이 되어 일세

를 풍미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변함없이 진실로 한 여인

을 사랑하였고, 득도하여 그녀와 함께 서방정토에서 영세를 누리는

을 택하였다.

 

 

 

 

 

                                                                        - 끝 -

 

 

 

 

 

                          _()_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본 글을 오로지 소설로 감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여여하소서.

 

                               

                                여강 최재효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