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불전(終)
을불전
- 여강 최재효
(최종회)
간밤에 오골성주의 생일을 맞이하여 진탕 마시고 흥겨운
시간을 보낸 동명당 소속 성주들은 늦은 아침에 일어나 별
도의 방에 모여들었다.
말술을 마시는 호주가 오골성주 해사갈과 요동성주 고해사는
아직도 술이 덜 깬 듯 보였고, 개모성주 명림모달과 남소성주
대중걸은 일찍 일어나 부하들과 격구를 하며 몸을 풀었다.
을불은 술을 즐기지 않는 을지연과 앞으로의 계획을 짜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재모는 잠시도 을불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를 호위하였다.
해가 중천에 있었다. 오골성주는 부하들에게 푸짐한 오찬을
준비시켰다. 밤새 술을 마시느라 속이 얼얼해진 성주들과 그
들의 참모들은 속을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찬이 끝나고 바로 중대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는 을불과
재모 그리고 6명의 성주와 그들의 참모 등 20여명이 원탁에
빙 둘러 앉았다. 원탁 한 가운데 을불이 앉고 나머지 성주들과
참모들이 좌우로 앉았다. 을지연의 회의를 알리는 선언이 있
고 을불이 인사말을 하였다.
“지난밤은 참으로 오랜만에 심신이 편안 했습니다. 오늘 회
의는 앞으로 우리 동명당이 추구할 전략과 전술을 공표하고
그에 따른 여러분들의 가감 없는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입니다.
이미 우리는 한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중입니다. 그 배가 순
항하여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할 때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먼저 졸본성주의 설명을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병력 증원 방안에 대한 사안입니다.”
을지연의 설명이 있었다. 현재 동명당이 가용할 수 있는 병력
은 12만 명밖에 안 되기 때문에 추가로 5만명의 병력 확보가
있어야 대의를 완수하는데 안심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중앙의 군사를 이끌고 있는 장관들과 지방의
욕살이나 막하라수지(莫何邏繡支)들을 추가로 끌어들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병력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
가. 을지연의 설명이 끝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옥저나 동예 혹은 양맥 숙신 지역의 세력들을 접촉해 보는 것
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들은 삽시루 왕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요동성주 고해사가 의견을 주었다.
“최체부(最彘部)는 옛날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의 직할지였
으나 지금은 독립적인 군사 기반을 지닌 지역 군벌(軍閥)이 되
었습니다. 또한 점제부(秥蟬部)는 개마대 지역의 강자로 많은
병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 두 부족들의 기마병
들은 용감하기로 소문났습니다.”
박작성주 사중해의 의견이 아주 기발한 생각이어서 여러 성주
들이 무척 관심을 나타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을불이 큰 기
침을 한번하고 입을 열었다.
“옥저, 동예, 양맥, 숙신은 믿을 바가 못 됩니다. 그들은 자신
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부모형제도 팔아먹는 무람없는 족속들
입니다. 그리고 최체부나 점제부는 지금 무주공산입니다.
그들과는 접촉을 시도해 볼만 합니다. 그들이 강력한 기마대
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협상은 말
처럼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을불은 이미 고구려 주변국 들과 부족들의 돌아가는 상황을
꿰뚫고 있었다.
“태자님, 대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힘이 달리면 대패하게 됩
니다. 그 두 부족장들을 만나보고 군사적 지원 여부를 타진해 보
시지요. 그 두 부족장들이 우리에게 군사적 지원만 해준다면 일
이 아주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개모성주 명림모달의 의견에 여러 명이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최체부와 점제부의 힘을 잠시 빌린다? 그러나 그자들은 오래
믿을 바가 못 된다. 그들에게서 병력만 지원받을 수 있다면 좋
은 방책이 될 수도 있음이야,’
“개모성주께서 구체적인 접근 방안을 모색해보시지요. 또한 각
성주님들은 친분이 있는 조정 중신들과 적극 접선하여 국내성
안과 밖에서 동시에 연합작전을 펼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 보시
기 바랍니다.
특히 국상인 창조리와 나의 외조부이신 을보님을 끌어 들여야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 있습니다. 동시에 나의 생모이신 을후
(乙后)와 안국군 달고 조부님의 부인이신 음씨(陰氏) 부인께
나의 존재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일은 해사갈 성주님께
서 맡아서 추진해 주시지요. 모든 일이 원만하게 이루어 졌을
때 거사 날짜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삽시루에 대한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이 최고조에 달하
고 있습니다. 때에 맞지 않는 서리와 우박으로 농작물이 시들
고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데도 불구하고 패악무도한 삽시
루는 서천에 신궁을 짓는 공역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반옥령
(班玉岺)을 파헤쳐 거기서 생산되는 청옥을 신궁 작업장으로
옮기느라 옥판을 짊어진 백성들의 행렬이 끝없이 뻗었고 힘에
부쳐 죽은 자들이 생겨나고 있다합니다.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도망하여 비적(匪賊)이 되어 관아를
습격하는 지경에 되었습니다. 삽시루가 스스로 명을 재촉하
고 있습니다. 각 성주님들은 동명당의 비밀 결사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 유지에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오골성에 있으면서 대사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박작성주는 박작상단의 단주(團主)로 있는 어림(漁林)을 접
촉하여 적극적인 지지를 받도록 하십시오. 아니면 그자를
나에게 한번 데리고 와도 좋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각 성주들은 돌아갔고 며칠 후 을불은 개모
성주와 참모 그리고 호위무사 등 병력 20인을 대동하고 최체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옛 낙랑지역에 있던 최체부(最彘部)의
군장이 다스리는 지역이었다.
군장에게 예쁜 딸이 있었는데 군장은 장차 사위에게 최체의
통치권을 물려줄 생각이었다. 을불은 최체의 내막을 알고 군
장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그의 딸을 얻으려 하였다.
그의 딸은 첫눈에 을불에게 반해 혼인을 약속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뒤늦게 을불이 고구려 조정에서 현상금을 걸고 찾
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알았다. 군장은 을불을 잡아 삽시루 왕
에게 넘기려 하지만 그의 딸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하였다.
화가 난 을불은 동명당 소속 성주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최
체부를 모두 점령해 버렸다. 을불은 최체부를 점령하여 기마
대 2천을 확보하였다. 이어서 을불은 점제부(秥蟬部)까지
확보하면서 많은 지원세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을불은 점제부
와 최체부의 세력을 재편하여 동명당 소속의 가까운 성에
편입시켰다.
이때 변방의 모든 부(部)의 영주(領主)들이 점제부에 모여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한 맹약(盟約)
을 다시 정(定)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여러 영주들이 을불을
초대하였다.
을불은 가고 싶지 않았으나 다른 부에서 참가를 독촉하므로
점제의 족장과 회맹에 가게 되었다. 고구려의 서부사자(西部
使者) 역시 참가하였는데, 그는 을불이 참가한 것을 보고 교묘
한 수법을 동원하여 을불을 체포하려 하였다.
회맹이 끝나고 주연이 벌어질 때 서부사자가 은밀하게 군병
력을 이끌고 와서 주연장을 급습하였다. 그는 삽시루 왕의 총
신이었다.
“을불을 잡아라. 저자는 고구려의 역적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을불과 점제부에서는 서부사자의
군대를 막아내지 못하고 그만 을불이 체포되고 말았다.
주연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창과 갈이 난무하였다. 서부
사자는 을불을 고구려 도성으로 압송하려 하였다. 을불이 소수
의 호위무사들만 대동하고 회맹에 참가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을불 태자님을 구하라.”
“을불 태자님을 보호하라.”
“서부사자 놈과 졸개들을 쳐 죽여라.”
을불을 오랏줄로 묶어 압송하던 서부사자 일행들이 반왕잠
(班王岑)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반왕잠은 삽시루 왕이 서천
신궁을 짓는데 필요한 옥석재를 채취하는 산마루 였다.
강제 노역에 투입되었던 백성들이 서부사자 일행의 앞길을
막았다. 그때 비적 떼들이 바람처럼 달려와 사자 일행을 모두
죽이고 을불 태자를 구해냈다.
을불을 호송하는 과정에서 놓치고 말았다는 보고를 받고
삽시루 왕은 노발대발하며, 비적들을 모두 잡아들이고 을불을
찾으라고 엄명을 내렸다. 하마터면 도성에 잡혀가 삽시루 왕
에게 목이 떨어질 뻔했던 을불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을불은 긴급히 동명당 성주들을 오골성으로 소집시키면서
지금까지 준비된 사항을 보고하라고 주문하였다.
“주군,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큰일 날 뻔했습니다.”
“백성들이 구해주는 바람에 무사했습니다.”
이때는 6개 성의 성주뿐만 아니라 해사갈의 공작으로 창조
리의 좌우 보좌역을 맡은 북부대인 조불(祖弗), 동부대인 소
우(蕭友), 남부 대인 오맥남(烏陌南), 을불의 외조부인 을보
(乙寶)까지 참석하였다.
박작성주의 공작으로 박작상단 단주인 어림뿐만 아니라 오
골상단의 단주인 제갈소(諸葛召)까지 참가하였다. 참석자들
은 지금 국내 정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다.
“소신, 태자님을 뵙습니다.”
을보는 외손자인 을불을 보고 너무 감격스러워 소리 내어
울기도 하였다. 그는 창조리의 밀명을 받고 조우와 소우 그
리고 오맥남을 대동하고 비밀리에 회의에 참가하게 되었다.
“박작상단 단주 어림과 오골상단 단주 제갈소 태자님을 뵙
습니다.”
그들은 박작성의 성주에게 포섭되어 을불을 만나기 위하여
왔다.
“잘 오시었소. 앞으로 나를 위해 많이 애를 써주시오.”
을보와 해사갈은 이미 삽시루를 왕위에서 끌어 내리기
위한 작전계획안을 짜놓고 있었다.
그 계획은 국상 창조리가 초안을 잡고 해사갈을 위시한
동명당에서 부분적으로 보완한 삽시루 왕 퇴위 계획이었
다.
이미 고구려 모든 백성들과 조정의 중신들 그리고 각 지
방의 장관들이 삽시루 왕에게 등을 돌린 상태에서 당장
대군을 이끌고 국내성으로 밀고 들어가도 되지만, 그것은
만백성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듯 하여 을불은 고심하고
있었다. 을불이 고심하고 있자 을보가 외손자 을불을 설득
하였다.
“태자님, 이미 성찬(盛饌)은 준비 되었습니다. 결단만 내리
시면 됩니다. 하루 속히 삽시루를 왕위에서 끌어내려 만백
성의 고충을 덜어주셔야 합니다. 지금이 적기입니다. 계획
은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할아버님께서 향후 계획을 발표하여 주세요.”
을불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동명당 및 조정 중신들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을불은 참석한 모든 사람을 한데 모이게
하고 삽시루 왕을 퇴위시키기 위한 계획을 발표하였다.
“을불 태자님과 조정의 중신 그리고 동명당 여러분의 중지
를 모아 대의를 위한 작전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을보의 긴장된 음성이 대청을 울렸다. 집결한 모든 사람들
은 침을 삼키며, 과연 어떤 작전계획이 발표될지 촉각을 곤
두세웠다.
각 성에서 무예에 뛰어난 자 100명씩 차출하여 모두 600명
을 가짜 을불 태자로 꾸민 다음 고구려 전역을 돌아다니며,
탐관오리를 습격하고 곧 을불 태자가 고구려의 태왕이 된다
는 소문을 내도록 한다.
각 성주는 국내성 침공을 위한 기동 훈련을 실시하여 군사
력을 결집하고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군량미 확보 및 각종
무기류를 점검한다. 창조리를 비롯한 동명당과 뜻을 함께하
는 조정의 제신들은 특수 공작대를 만들어 나머지 중신들을
설득 또는 회유하여 아군 편으로 만들고 포섭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즉시 척살한다.
별동대 100명을 조직하여 도성에 침입하여 지금 짓고 있는
서천 신궁을 불지른다. 제1군은 오골성, 박작성, 졸본성 병력
7만 명을 편제하고 을불 태자와 해사갈 성주가 총지휘하고
사중해 성주와 을지연 성주가 보좌하여 압록수를 따라 국내
성으로 이동한다.
제2군은 요동성, 개모성, 남소성 그리고 최체와 점제부 병력
을 포함한 7만 명을 편제하고 총지휘는 요동성주 고해사가 하
고, 명림모달과 대중걸 성주와 최체부 점제부 족장이 보좌한다.
제2군은 남소성에서 집결하여 남하 하면서 아군의 편에 흡수
되지 않은 옥저성(沃沮城)을 포위한다. 성주를 아군 편으로 접
수하는데 어렵다고 판단되면 성을 공격하여 제압한다.
조불, 소우, 오맥남은 휘하의 병력 6만명을 이끌고 제1군과
만나 연합전선을 펼친다. 0월0일 새벽을 기하여 이 작전은 시
작된다. 작전 다음날 국상 창조리와 조정 중신들은 삽시루 왕
을 사냥을 빙자하여 유인한 다음 사냥터에서 체포한다.
왕이 사냥을 떠나는 날 준비된 모든 병력을 국내성 근처에
집결 시키고 을불의 최종 명령을 기다린다. 이 계획은 특급
비밀이니 거사가 시작되는 그날까지 보안 유지에 철저를 기하
기 바란다. 작전계획이 공표되었다. 각 성주들과 조정 중신들
그리고 두 상단의 단주들은 잠시 얼이 나간 듯 우두망찰
앉아 있었다.
“을불 태자님을 위하여 만세 삼창을 합니다.”
을지선 성주가 소리쳤다. ‘을불 태자 만세’ 소리가 오골성에
울려 퍼지면서 긴급회의는 끝났다.
고구려 전역이 마치 폭풍 전야와 같은 긴장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삽시루 왕은 궁궐 공사장에 나가 공사가 지지부진하다
며 관리들을 질책하며 조바심쳤다.
“뭐라,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로 을불이 나타나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면서 관리들을 해치고 있다고?”
“폐하, 서천 신궁에 불이 났습니다.”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에 삽시루 왕은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는 무엇을 어찌 수습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큰소를
질러댔다.
그는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빨리 을불을 잡으라고 호통
을 쳐댔다. 전국에 흩어진 600명의 가짜 을불들은 작은 자루에
곡식을 담아 끼니를 거르고 있는 어려운 백성들에게 나눠주었
고 백성들은 그것을 ‘을불곡(乙弗穀)’이라 하였다.
가짜 을불이 잡혀도 군사들은 그를 죽이지 않고 대신 짚으로
된 인형을 만들어 목을 잘라 도성으로 보냈다.
“폐하, 분명 을불의 목을 쳤는데, 가져오는 도중에 짚으로 변
했습니다.”
“그놈이 이제 도술을 부린단 말이오?”
도성에도 을불에 대한 괴소문으로 뒤숭숭하였다. 이제는 삽시
루 왕의 명령이 군사들과 관리들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삽시루
는 궁성에서 혼자 왕 노릇을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폐하, 요즘 여러 가지로 머리가 혼란하실 텐데, 사냥이라도
한번 가시어 머리를 맑게 하시고 성심을 정갈하게 하소서.”
“지금 을불놈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사냥이 다 뭐요?”
“폐하, 이런 때 일수록 백성들에게 폐하의 건재함을 보이셔야
합니다. 을불의 간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시면 중신
들과 백성들이 페하의 영민함에 감탄할 것입니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오.”
창조리의 말에 삽시루 왕은 연후(椽后), 초후(草后), 탐씨(耽
氏), 을씨(乙氏) 그리고 우태후(于太后)를 거느리고 사냥을 가
기로 하였다.
음력 9월 하순 삽시루 왕이 후산(侯山)으로 사냥을 떠났다.
초후의 아버지 상보(尙寶)와 장군 우자(于刺), 국상 창조리와
여러 중신들이 왕을 따랐다. 삽시루 왕이 사냥을 떠난다는 연
락을 받은 을불은 호위 무사를 대동하고 후산으로 떠났다.
다음날 아침 일찍 사냥이 시작되었다. 삽시루 왕과 비빈들이
앞장서고 중신들이 뒤를 따랐다. 왕 일행이 계곡 중간쯤 왔을
때 였다. 국상 창조리가 갈댓잎을 관에 꽂으며 소리쳤다.
“나와 마음을 같이할 자는 갈댓잎을 관에 꽂아라.”
창조리의 말에 따르던 중신들과 호위 군사들 모두가 관에 갈
댓잎을 꺾어 꽂았다. 그리고 칼을 빼들고 외쳤다.
“극악무도 왕 삽시루를 처단하라.”
“삽시루를 죽여라.”
신하들과 호위 군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따라오자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삽시루는 혼자 말을 몰아 도망쳤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삽시루는 군사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순식간에 삽시루 왕은 오랏줄에 꽁꽁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이놈들, 이게 무슨 짓이냐? 나는 고구려의 태왕이니라.”
“당신은 이제 태왕이 아니오. 우리의 태왕은 저기 오시는 분이
시오.”
군사가 백마를 타고 오는 을불 일행을 가리켰다.
“뭐라, 저, 저놈은 을불이 아니더냐. 여봐라, 어서 저놈을 잡
아라.”
“숙부, 오랜만입니다.”
을불이 삽시루 앞에 나타났다. 그는 황금색 용포(龍袍)와 황금
왕관을 쓰고 있었고, 좌우에 수십 명의 갑사(甲士)들과 병사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네놈이, 네놈이 기어이 나를 욕보이는구나.”
삽시루가 을불을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이놈, 삽시루야. 입을 조심하거라.”
갑사 한명이 삽시루에게 발길질을 하자 삽시루는 배를 움켜
쥐고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삽시루를 따르던 비빈들과 태후
그리고 왕자들은 모두 겁에 질려 땅바닥에 엎드려 을불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고구려의 새로운 태왕이신 을불님이시다. 모두 예를 갖추어
라.”
창조리가 칼을 빼들고 소리를 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
들이 을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을불이 사자후를 토해냈다.
“삽시루는 선대왕의 조서를 위조하여 부정하게 고구려 태왕의
위에 앉았다. 그리고 무고한 왕실의 사람을 죽였으며, 황음을
일삼아 외적의 침입을 유발시켜 국정을 혼란케 하였다.
굶주린 백성들을 동원하여 무모하게도 궁궐을 새로이 짓는 등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렸다. 이에 나 을불은 만백성의 뜻에 따
라 삽시루를 퇴위시키고 고구려 태왕의 위(位)를 받노라.”
조정의 중신들과 만백성들의 환호 속에 을불은 국내성으로
무혈입성 하였다. 을불은 고구려 제15대 태왕에 등극하였고,
삽시루는 두 아들과 함께 자결하였다. 나라에서는 그를 봉상
언덕에 묻고 봉상왕(烽上王)이라 불렀다. 이때가 서기 300년,
추모왕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지 337년째 되는 해였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