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 허망하게 지다
충주 수안보 안보리 박석고개에 있는 정헌 조정철님 묘소
첫번째 부인과 합장묘이며, 비석에는 세분 부인들의 인적사항이
적혀 있다
붉은 꽃, 허망하게 지다
- 정헌 조정철님과 한양 남양홍씨에게 부치다 -
- 여강 최재효
천지에 봄물이 연둣빛으로 곱게 물들었는데
오로지 충주 수안보 박석고개 아래
고운님 두 분 그윽한 합택(合宅)에는
이백 사십여 성상이 흘러도 여전히 잔설이 쌓였네
월편(越便)에 붉은 댕기 영월 신랑(辛娘)
탐라 애월읍 금덕(金德)에 의녀 홍랑(洪娘)
현덕(賢德)으로 세상 보듬은 한양 홍랑(洪娘)
선랑(仙郞)은 한 지붕에서 조용히 영면에 취해있네
붕당(朋黨)의 악습이 어찌 사라지지 않고
두 분 어깨에서
아직도 춤을 추고 있는 것인지
바닷길 건너온 나그네는 알 길 없어 한숨만 짓네
미증유 정유(丁酉) 역변의 광풍은
한양성 두 가문 기둥을 뽑아버리고도 모자라
해도(海島) 한가운데 한라까지 몰려가
어째서 기어이 붉은꽃을 꺾어버렸는가
하늘도 질투하는 재주를 감출 수 없고
세신(世臣)의 혈통은 주어진 운명이라서
천인(天人)의 시험은 예정된 질곡이니
선비님 단신으로 어찌 감내할 수 있었으리오
뒤늦게 소식 듣고 달려온 나그네
서러운 눈물 쏟고 계주(桂酒) 따르고 생각하니
피바람 속 당쟁(黨爭)은 본래
네 분 사주(四柱)와 거리가 멀었나이다
- 창작일 : 2018.5.8. [13:30]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 박석고개 정헌 조정철님 묘소에서
[주] 1. 신랑(辛娘) - 정헌 조정철님이 29년간의 유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혼인한 서번째 부인(영월 신씨)
2. 의녀 홍랑 - 정헌 조정철님이 제주목에 유배할 때 만난 제주 여인으로 이름은
홍윤애. 정헌님의 딸을 낳고 1781.5.15.일 제주목사의 흉계로부터 정헌님의
목숨을 구하고 순절함. 무덤은 제주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음(남양 홍씨)
3. 한양 홍랑 - 형조 판서 홍지해(洪趾海)님의 따님으로 정헌의 첫 번째 부인.
정유년인 1777.8월 정조임금 시해 미수사건의 주범들이 친정으로 확인되자
지아비 정헌은 처가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가게되었으며 이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홍랑은 8개월 된 아들을 두고 자결함(남양 홍씨)
* 조정철 -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성경(成卿), 호는 정헌(靜軒). 우의정 조태채(趙泰采)의 증손
(趙貞喆) 으로, 할아버지는 조겸빈(趙謙彬)이고, 아버지는 참판 조순영(趙順榮). 1751년 경기도
장단에서 태어났으며, 1775년(영조 5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처가의 정조
임금시해미수사건에 연좌되어 1777~1807년까지 제주, 추자도, 광양, 구례, 토현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제주에 적거할 때 의녀 홍윤애를 만나 딸을 두기도 하였
다. 1781년 제주목사의 간계로부터 지아비를 구하고 홍윤애는 죽임을 당한다. 1807년 유배
에서 풀려나 복직되었고 1811년 정헌은 제주목사 겸 전라도방어사가 되어 30년 만에
홍윤애의 무덤을 찾아가 헌시하고 비석을 세워주었고 딸을 만났다. 1831년에 사망하는데
벼슬은 형조판서,·지중추원사에 이르렀다.
* 조정철님과 제주 의녀 홍윤애님의 못다이룬 사랑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 "춘향전" 보다
더 가슴 아프고 애끓는 절절한 사연으로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에는 두분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