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랑(洪娘)을 그리며
홍랑(洪娘)을 그리며
- 제주의 義女 홍윤애에게 부치다 -
- 여강 최재효
무심히 백년이 두 번이나 흐르고
영주산(瀛洲山)이 세 번이나 모습을 바뀐 것도 모자라
응어리진 칠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임의 뜨거운 숨결을 대하고 말문이 막혔네
간악한 인심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스쳐지나가는 춘풍(春風)도 아니었으며
만억겁의 숙연이 이어져
원악도(遠惡島)에 씨앗이 뿌려진 결과일 테지
천지사방이 설벽(雪壁)으로 막혀있고
새털보다 가벼운 병구(病軀)는 발목을 잡으니
지척에 임의 청총(靑冢)을 두고
차가운 잔을 잡고 눈물을 뿌리고 돌아서야 했네
섬 한가운데 모르쇠 하는 백두옹(白頭翁)은
때늦은 뭍의 나그네를 애써 외면하고
산새들도 겨울 가지에 앉아 지청구를 쏟아내며
백안(白眼)으로 이인(異人)을 경계하네
두 임의 붉은 마음을 누가 부인하리
억만년이 흐른들 인애(仁愛)가 변할까
정헌(靜軒)은 천리 수안보에서 손짓을 하니
어느 하세월에 동방(洞房)에 청사초롱이 내걸릴지
- 창작일 : 2018.1.10. 15:00
제주도 애월읍에서
[주] 1) 홍윤애(洪允愛)는 조선 정조때 제주도 여인으로
정조대왕 시해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된
정헌(靜軒) 조정철(趙貞喆)을 사랑한 이유로 1781.5.15일
제주목사 김시구에게 죽임을 당한 의녀(義女).
2) 조정철의 묘는 충주 수안보 입구 박석고개에
있으며, 호는 정헌. 저서로 정헌영해처감록(靜軒瀛海
處坎錄)이 있음.
3) 영주산 - 한라산을 예전에는 영주산으로 불림
4) 원악도 - 조선시대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살기 어려운 섬
5) 4연의 백두옹은 눈 덮인 한라산 정상
6) 청총 -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는 홍윤애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