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사
추풍사
- 여강 최재효
나 한창 때 늦봄의 화전(花煎)은
참으로 즐거웠지
저 지난 여름 화전(花田)도 가슴을 뛰게 했다네
어느새 무서리 내려
장롱 속 두터운 솜이불 내려 덮어도
뼛속을 파고드는 한기(寒氣)는 밤새 그대로여라
호시절 난무했던 그 웃음이
이즈음 추운 밤마다 망령이 되어 찾아오는데
누구와 이 한 오백년 수심을 풀리요
태산 같던 정담(情談)은 어디로 갔나
이제 청담(淸談)도 혼자 주억대는 신세가 된 것인지
흔했던 안부조차 없네
타향 나그네 할 말도 많은데
유구무언이 어쩌면 정답 같아서
낙엽 쌓이는 밤낮으로 부쩍 헛기침만 늘어가네
애당초 순풍에 배 띄우는 일은 신기루
석잔 술도 이제는 듣지를 않아
거울 속 초췌한 이방인을 잡고 지청구를 늘어놓네
아아, 봄밤에 빠지던 환몽(幻夢)이여
북풍을 두려워하는 세상이여
몇 번의 추풍사(秋風辭)를 더 지어야 하는가
- 창작일 : 2017.11.13. [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