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소제
가을 소제
- 여강 최재효
일 년 내내 회색빛 하늘
덩달아 바위같던 체중(體重)
나는 한 동안 고개를 숙이고 다녔야 했습니다
찬바람이 천지를 달리면서
하늘은 비로소 활짝 문을 열었고
사람들도 가벼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훨훨 날 수 있었지만
산야에 초목들이 무채색으로 마지막 화장을 마치자
북쪽에서 큰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옵니다
쓰디 쓴 눈물을 남몰래 흘려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웃음의 시간은 쏜살같아서
고개를 들고 자주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세상이 늘 제자리걸음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벽시계는 매일 똑같이 움직이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거울을 보고나서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초로(初老)의 사내가
나에게 거칠게 대들며 물었습니다
얼마전 그 청년은 어디에 있느냐고
나는 그가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지만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 창작일 : 2017.10.22. 00:05